신들의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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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pa.
작품등록일 :
2022.12.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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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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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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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전지, 만능, 무감 (4)

DUMMY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레빈씨가 말을 내뱉는 순간 사일리카가 느낀 것은 분명한 ‘감정’과 좁쌀이라는 표현조차 과분할 미약한 ‘신앙’이었다.

어린 소년의 순수한 바람, 갈망과 구원을 향한 믿음이 사일리카에게 신격을 심은 것이다.


“잘 부탁해!”


레빈씨가 사일리카를 끌어안았다.

상처투성이의 소년이 해맑게 웃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아닌 사일리카의 감정이다.


<<···가족, 입력합니다.>>


싸늘한 기계음으로 밖에 말이 나오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이 인다.

그게 뭐가 좋은지 레빈씨가 헤헤 웃는다.

그렇게, 소년과 기원이 만났다.




*




이윽고 레빈씨의 과거가 더 소상히 밝혀지기 시작했다.

레빈씨는 고아였다. 그냥 고아도 아닌 AI가 스케쥴 대로 아이들을 육아하는 온정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고아원의 고아 말이다.


“마미아는 변수 개입을 싫어해. 그래서 넌 나랑 갈 수 없어. 대신 내가 매일 같은 시간에 널 찾아올게. 아! 밤 중에도 몰래 나올 수 있으면 나와볼게! 마미아는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프로그램 안정화에 들어가거든!”


레빈씨는 뭐가 그리 좋은지 사일리카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웃는 얼굴을 했다.

사일리카는 나날이 늘어가는 레빈씨의 상처에 안타까움을 토해내며 말했다.


<<찰과상이 있습니다. 신속한 치료를 권합니다.>>

“아, 이거? 괜찮아! 침만 바르면 낫는걸! 난 너랑 다르게 인간이라서 자체 수복이 가능해!”

<<생체의 회복 능력은 의술을 이기지 못합니다. 치료를 권합니다.>>

“괜찮아! 난 남자니까!”


레빈씨가 벌떡 일어나며 자신감 있게 외쳤다.


“그리고 치료를 받으면 칼리가 날 더 괴롭힐 거야! 그놈은 내 얼굴이 멀쩡한 걸 싫어하거든. 아, 칼리는 우리 고아원 대장인데 머리가 나빠서 주먹질밖에 못 하는 놈이야. 도태되기 딱 좋은 놈이지. 그놈은 신경쓰지 마!”


상처의 이유가 밝혀진다.

어찌 오갈 데도 없는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어주지 못해 싸우는 것인가. 애석함이 이는 중에도 맘 한 켠으론 그 이유를 깨달아버리고 만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벌써부터 서로에게 마음의 벽을 쳐버리는 게 아닐까.

기계의 손에서 자란 탓에 인간의 온기에 지레 겁먹게 된 게 아닐까.


“여하튼 내일 봐!”


레빈씨가 떠나간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른다.


“나 왔어!”


레빈씨가 점점 자란다. 얼굴의 상처는 여전하다.

레빈씨는 아직 이름 모를 창고에 걸려있는 사일리카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체로 고아원 내부의 일이다.


주먹대장 칼리가 오늘은 누구를 괴롭혔고 그놈은 어떻게 망할 거라는 둥, 자신은 이곳이 얼마나 싫고 어떻게 탈출할 거라는 둥.

레빈씨는 끊임없이 밝은 미래를 입 밖으로 내뱉으며 같은 말로 그 끝을 맺었다.


“같이 떠나자.”


그 순간 레빈씨의 푸른 눈을 보고 사일리카가 느낀 감상이 내게 전해졌다.


“내가 돈벌이를 할 수 있게 되면 너한테 더 좋은 부품을 달아줄게! 함께 걷고 뛰고 많은 것을 보는 거야? 알아? 이제 기술이 조금만 더 발전하면 우주 함선의 기동 능력이 광속에 도달할 거래! 이때까지는 안전장치가 없어서 불가능했잖아? 그게 해결되는 게 코앞인 거야!”


사일리카는 평가한다.

레빈의 꿈은 너무나도 시리도록 밝은 빛이라,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형태라고.


“나와 우주로 가자! 우리는 우주를 탐험하는 거야!”


그러니 사일리카는 같은 대답을 한다.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은하 탐사 기록을 조회합니다. 시간과 일정을 조율합니다.>>


싸늘한 기계의 몸이 되어 레빈씨의 감정에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었다.

어찌 그런 반응만으로 괜찮은 건지 레빈씨는 헤헤 웃으며 또 떠난다.


“그럼 내일 봐!”


또다시 내일을 기약한다.




*




그것은 사일리카와 동조되고도 꽤 시간이 흐른 날의 일이었다.

어리게만 보였던 레빈씨의 외모가 꽤 성숙해졌다.

이제 남자다운 태가 좀 난단 말이다.


“칼리가 없어진 지 1달이야. 고아원은 뭐··· 이제 완전히 태평성대지.”


변성기가 와버려 갈라지는 목소리로 레빈씨는 말한다.


“듣기로는 불법 카르텔에 말단으로 들어갔대. 그놈이 사이보그 시술을 받는다나 봐. 제일 원하는 건 흉부 장기 교체 시술이라는데, 받다가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네.”

<<흉부 장기 교체 시술의 성공률을 검색합니다.>>

“하지마, 불법 시술이라서 통상적인 통계로는 계산이 안 될 거야.”


레빈씨가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 순간 사일리카는 경악을 떠올렸다.

허둥지둥 사일리카는 흡연의 위험성을 레빈씨에게 설파했다.


<<경고, 경고. 흡연으로 인한 사망 수치는···.>>

“됐어. 폐병이라도 나면 기계로 바꾸면 돼.”

<<폐 교체 시술 성공 확률···.>>

“또또 그 소리. 의미 없는 확률이야.”


낄낄 웃으며 레빈씨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사일리카는 답답함에 속이 미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마냥 그런 감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시원섭섭함. 그리 표현해야 할까.

사일리카는 이 공방 안에서만 레빈과 마주할 수 있는 스스로의 처지에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소년이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의 한가운데 그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상황에 탄식까지 했다.


나는 깨닫게 되고 만다.

기계 몸을 하고 있음에도 사일리카는 레빈의 진짜 가족이 되어주고 싶어 했다는 것을.


“그보다 이것 볼래?”


레빈씨가 캐리어를 열어 보였다.

그 속엔 온갖 번쩍거리는 기계장치들이 들어차 있었다.


“네 부품이야!”


레빈씨는 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드디어 네가 걷게 해줄 수 있을 정도로 모였어! 이걸 다 달 때쯤에는 나도 고아원 퇴출이고!”

<<부품 교체, 반 년의 시간을 소요합니다.>>

“그래! 그리고 부품이 다 교체되면 우리 떠나자! 도시로 가는 거야!”


청년이 된 소년은 여전한 밝은 미래를 꿈꾸며 또다시 손을 내밀었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




반년은 빠르게 흘러갔다.

레빈씨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일리카의 부품을 교체했다.

끼긱끼긱, 나사를 조이고 전선을 잇는다. 척추를 드러내 그 아래 신경 역할을 할 새로운 부품을 쑤셔 넣는다.

그렇게 사일리카가 완성됐다.


“됐어! 이제 움직여 봐! 네 발로 세상을 걷는 거야!”


레빈씨는 좀 더 성숙해졌다.

이젠 변성기가 다 지나 완연한 사내의 목소리를 낸다.

기름 때가 번들거리는 얼굴로 낡은 점퍼수트를 입은 채 양 팔을 벌린다.

사일리카는 그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 어서!”


레빈씨가 재차 재촉한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응원의 말을 더해버렸다.


‘자, 가봐! 언제나 바랐던 거잖아!’


모르겠다. 사일리카의 시선에서 그녀의 감정을 계속 느끼다 보니 나 또한 이 나날의 한가운데 함께 있어 온 기분이다.

내 응원이 닿았는지, 그것도 아니면 레빈씨의 응원이 힘이 됐는지 사일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모듈을 작동합니다. 접속 상태를 확인합니다. 정상 범위 내에 있습니다.>>

“나는 천재니까!”

<<동작을 시작합니다.>>


속이 떨리는 기분이다. 사일리카가 그리 느꼈다.

이윽고 천천히, 끼기긱 소리와 함께 팔이 들린다.

뚜두둑, 등 뒤로 달려있던 전선이 뽑혀 나온다.

쿵, 기계의 무게가 쇳바닥을 짓누른다.


“좋아! 한 걸음 더!”


쿵, 또 한 번 쇳소리가 난다.

사일리카는 걸었다.


<<동작 시험 완료.>>


기계음이 공간에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쿵쿵쿵, 사일리카는 막 걸음마를 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바르게 레빈씨를 향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서서 레빈을 끌어안았다.


<<포옹은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호르몬···.>>


기계음으로는, 데이터베이스 상에 존재하는 사전적 지식으로는 그 어떤 말을 해도 사일리카의 말을 다 담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레빈씨는 평생 모를 것이다.

언제나 당신에게 이렇게 해주고 싶었다고.

사일리카가 간절히 바라온 일이 이제야 일어났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이 알 테다.


“잘했어!!!”


레빈씨는 쾅쾅 사일리카의 등을 치며 희열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자, 이제 나가보자! 이 지긋지긋한 공방도 안녕이야!”


포옹을 푼 레빈씨가 사일리카의 손을 잡아 끌었다.

사일리카는 손바닥에 내장된 센서로 레빈의 온기를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벅차오른다.


“짜잔!”


레빈씨가 공방의 문을 열었다.

아, 사일리카는 그제야 깨달았다.

레빈의 간절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가 어째서 그 어린 나이에도 이 공방을 독점하며 부품들을 공수해 온 것인지.


<<좌표 검색, GPS 신호 감지, 지형 감지.>>


이윽고 이 공간의 정체가 밝혀지니.


<<현재 위치, 로이드 그레이브.>>

“기계 무덤이지. 세상 모든 폐기된 기계들이 최종적으로 버려지는 장소. 꽤 좋은 교보재가 많아서 금방 기술을 익힐 수 있었어.”


참으로 찬란한 재능이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어린아이가 스스로의 힘과 열망으로만 이런 폐품으로 사일리카를 완성한 것이니 말이다.


“자, 사일리카.”


밤하늘 가득 떠 있는 인공위성들의 빛을 등진 채 레빈씨가 말한다.


“무덤에서 부활한 감상은 어때?”


눈가의 주름이 곱게 접히며 기름때의 모양을 바꾼다. 듬성듬성 난 턱수염이 입꼬리의 상승과 함께 딸려 올라간다.

망막, 뇌, 호르몬 작용.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사일리카는 감정을 느꼈다.

찰칵, 사일리카는 안구에 내장된 카메라로 그 장면을 담았다.

이윽고 말한다.


<<아름답습니다.>>

“푸하하! 기계답지 않은 말인데!”


그녀의 속에서 단 하나, 이 풍경만큼은 영원히 아름다울 것임을.




*




레빈씨는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허름한 점퍼수트 한 벌을 더 구해와 사일리카에게 입히고 폐기된 자동차를 수리해 로이드 그레이브, 기계들의 무덤을 벗어나 가도를 내달렸다.

저 멀리 밤하늘보다도 밝게 빛나는 회색의 도시가 있었다.


“저기가 스카이시티야! 7지구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고 인류 문명권 전체를 통틀어도 기술만큼은 그 어디에도 지지 않는 문명의 심장이지!”

<<스카이시티, 도시 정보를 검색합니다.>>

“됐어! 나도 이미 아는 내용이니까! 그보다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저기는 들어가는 것부터가 불가능에 가까운 이 우주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땅이야. 그리고 내가 거기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는 거지!”


사일리카는 어느새 레빈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공유하는 나 또한 레빈씨를 바라봤다.


“내 연구가 스카이시티에서도 통하는 연구인가 봐! 우주 함선의 자체 항로 설정 시스템에 관한 연구였거든. 거기에 널 개발하면서 기록한 자료들도 첨부하니까 바로 스카이시티 제1 연구동에 취직된 거야!”


꿈 많은 청년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레빈씨는 미친사람처럼 웃으며 악셀을 밟았다.

그리하며 사일리카를 바라보며 환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스카이시티 최고의 콤비가 되는 거야! 자기들이 제일 잘난 줄 아는 멍청이들 대가리를 깨뜨려주러 가자고!”


사일리카는 답했다.


<<살인은 중범죄에 해당···.>>

“비유야!”


그 순간 사일리카가 느낀 감정은 분명 레빈씨보다 더하면 더 했지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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