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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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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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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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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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의 속삭임 (4)

DUMMY

어머니가 떠나간 집 안 거실엔 어색함이 한껏 감돌았다.

에레씨는 다시 원래 복장으로 돌아오셨다.

나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맞은편에 앉았다.

에레씨 시선이 내 꽃무늬 잠옷 바지에 꽂혀 계신다. 그래, 첫 만남 때 입었던 그 바지니 반가운 기분이실 테다.


“어··· 일단 너무 감사드려요.”


이 말 먼저 해야겠지. 부담스러운 부탁일 텐데도 에레씨는 웃으며 우리의 엄마 역할을 수행해 주셨다.

이로써 한동안은 안심이다. 부모님을 찾아뵈는 날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지만 그건 나중 일 아닌가? 무릇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면 되는 법이다.


“별말씀을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걸요?”


싱긋 웃는 에레씨가 참 고우시다. 보고만 있어도 치유되는 얼굴이 이런 건가 보다.

감상에 빠져 있던 와중 에레씨가 물으셨다.


“그런데요.”

“네?”

“전 어떻게 돌아가나요? 급한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 자리를 비우긴 조금 불안해서요.”


얼레리.

그러고 보니 어떻게 돌려보내는 거야.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명부를 불렀다.


“며, 명부···!”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명부가 책장을 까딱한다.

아주 책 팔자가 상팔자다.

눈을 좁히자 그제야 명부가 털레털레 일어나 페이지를 보였다.

‘재회의 속삭임’에 대한 설명이 적힌 페이지 가장 아래쪽에 빛이 깜빡거리며 타이머가 돌고 있었다.


“으음··· 대충 두 시간 정도네요?”

“아! 다행이네요.”


에레씨의 얼굴이 환해지셨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방문 때 알렉시아와 이곳의 시간 배율이 2:1로 줄었었지.

돌아가시면 네 시간 정도가 흘러 있을 테니 에레씨가 걱정하는 일은 안 생길 듯하다.

좋아, 그럼 문제는 다 해결했고···.


“일단 고생하셨으니까 식사라도 대접해 드릴게요.”

“식사··· 아! 이곳의 음식 말인가요?”

“네, 두 시간이면 식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괜찮으세요?”


에레씨의 뺨이 붉어지셨다. 눈빛에 언뜻 기대감이 보인다.

먹는 걸 좋아하시는 듯하다.


“그럼요! 아까 먹었던 차도 굉장히 달았고 신기했거든요! 장의사님의 세계는 식문화가 아주 발전한 거겠죠?”


그쵸, 그쪽하곤 비교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오랫동안 발전해온 문명이니까요.

나는 싱긋 웃었다.

이렇게 기대하시는데 대충 먹여드릴 수는 없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스마트폰을 꺼냈다.

메뉴 선정이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치킨 한 마리··· 아니, 사람이 셋이니까 두 마리는 시켜 먹죠.”

“치킨이요?”

“치키!!!”


우리가 팔딱팔딱 뛰었다.

괜히 어깨에 뽕이 찬다. 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국뽕? 차원뽕? 아무튼 기대된다.

사이다 하나로 호들갑 떨던 에레씨가 이번엔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말이다.




*




“혹시 장의사님은 왕족 같은 건가요?”


순진하게 물어오는 에레씨에게 어떤 답을 줘야 할지 곤란해진다.

이 질문이 나온 경위를 먼저 설명하자면··· 그래, 배달 기사님 때문이다.


“맛있게 드세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님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치킨을 건네주셨는데 그 광경을 에레씨가 봐버린 게 아닌가. 하필 내가 한 대답도 문제인 듯하다.


“네, 기사님도 수고하세요.”


에레씨의 입장에선 그런 것이다.


“기, 기사가 밥을 가져오는군요! 저리 극진하게 예를 차리는 걸 보니 장의사님은 보통 신분이 아니었던 게 분명해요! 역시 장의사님은···!”


반짝거리는 눈이 부담스럽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도 도통 믿질 않고 “겸양 떨 필요 없어요.”라고만 하신다. 이 정도면 세대 차이도 아니고 시대 차이다.

배달 기사의 존재를 넘어 배달이란 개념, 거기에 자본주의 사회라는 개념까지 모두 설명하여 이 오해를 풀기엔 시간도 없었고 기력도 없었다.

하여 나는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로 말을 흘리며 판을 깔았다.


“밥이나 먹죠.”


후라이드 한 마리 양념 한 마리, 스탠다드한 구성이다.


“얀년!”

“우리 기다려. 손부터 씻어야지.”


그리고 닭다리부터 노리는 건 무슨 버르장머리니.

닭다리는 어른부터 먹는 거야 인석아.

재빨리 우리를 화장실로 데려가 손부터 씻겼다.


“에레씨는···.”

“아, 전 괜찮아요.”


에레씨가 짝짝 박수를 치자 허공에 물방울이 떠올라 에레씨의 손을 감쌌다. 그리고 휘리릭 에레씨의 손을 훑더니 사라졌다.

세상에, 에레씨는 저런 것도 가능하구나.


“이제 먹으면 될까요? 이건 어떻게 먹는 건가요?”


에레씨가 기대감에 차서 물었다.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와서 에레씨의 손에 후라이드 닭다리를 쥐여드리며 말했다.


“이대로 뜯어먹으면 돼요.”


곧장 설명대로 닭다리를 입에 문 에레씨의 표정은 말해 뭐할까.

내가 튀긴 치킨도 아닌데 뿌듯함이 들 정도 극적인 반응이었다.


“너무 맛있네요!”


치킨 먹다 눈물 흘리는 사람이 실제로 있을 줄이야.




*




사실을 따져보면 그랬다.

에레씨와는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지만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나눈 일이 없었단 말이다.

그런 만큼 이 식사 자리는 에레씨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된 꽤 뜻깊은 자리였다.


“···해서, 오르와 바나의 아들이 의식에 쓸 과실을 낼름 먹어버린 게 아니겠어요? 그날 오르의 표정이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요.”


에레씨는 생각보다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주로 내가 떠난 뒤 낙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는데, 웃으며 말하고 계시지만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떠나간 이들을 추억하는 에레씨의 얼굴 위로 옅은 슬픔이 깔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 어느 날은 홍수가 있었어요. 오르와 바나의 증손주가 처음 나무를 탄 날이었죠. 그날의 홍수가 얼마나 심하던지 기껏 키운 작물이 다 죽어버려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그 애가 실종될 뻔한 걸 구하느라 힘도 많이 썼었구요.”


문득 든 생각이다.

위로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건 내 착각일까.

씁쓸한 미소와 함께 처진 어깨가 시선을 끈다.

하여 나는 말했다.


“···많이 힘드셨겠네요.”

“네?”

“그분들을 다 떠나보내는 일이요. 에레씨가 그분들을 아주 아꼈던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에레씨의 얼굴이 멍해졌다.

입술은 더듬더듬 달싹이고 계셨다.


와중 입가에 튀김옷이 묻어있는 게 보인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튀김옷을 톡 털어낸 순간이었다.


“흐약!”


에레씨가 들썩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스킨십이었을 수도 있겠다.

바로 사과했다.


“아, 죄송해요. 입가에 묻어···.”

“아니, 아니요!”


휙휙 에레씨가 고개를 젓자 은발이 찰랑찰랑 흔들린다.

얼굴이 빨개지셨다. 그래, 에레씨도 연세가 있으실 텐데 입가에 뭘 묻히고 있던 게 부끄러우실 수도 있겠지.


“마, 마저 먹죠!”


에레씨가 바로 치킨 날개를 집어 드셨다.


“갸악!”

“앗, 왜, 왜 그래···?”

“우리가 찜해둔 건가 봐요.”

“앗.”


우리가 화냈다.

나는 킥킥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촤르르륵!


명부가 갑작스레 떠오르며 페이지를 넘겨댄다.

그뿐만 아니라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 현상이 뭔지 이제는 모를래야 모를 수 없다.


‘잠깐, 이렇게 갑자기?’


의뢰를 마치고 온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당황하는 중 명부가 페이지 위로 빛으로된 글자를 써내려갔다.


『긴급 의뢰!』


긴급, 이제껏 없었던 단어다.


“장의사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허공을 보시고···.”

“아, 아뇨. 잠시···.”


라고 말하는 순간, 덜컥 몸이 멎었다.


『성계 : 포트리아에서 장례를 요청합니다.


대지의 의지라 불리는 신이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권능에 빌어 거대한 땅과 그 위를 살아갈 수많은 요정을 지어냈습니다.

태평성대였습니다. 또한 무궁한 풍요와 발전이 약속된 세계였습니다.

예견된 미래대로 흘러갔다면 그 땅은 과실에 파묻힌 요정이 노래하는 땅이 될 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한 미래가 예기치 못한 형태로 끝을 맺었습니다.


바로 대지신 포트리아의 죽음.

자비라곤 모르는 침략자에 의해 요정들은 그들의 어버이인 포트리아를 잃었습니다. 그들의 영토와 과실을 빼앗겼습니다.

침략자의 심복이 그 땅을 다스리며 일어난 일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은 신의 사체, 그리고 사체 독에 의해 썩어들어가는 마지막 은신처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포트리아의 요정들이 종말을 맞을 것입니다.

명부의 주인으로서, 부디 그들을 구원하고 마땅한 순리를 지켜주십시오.』


이상했다.

무엇이 이상하느냐 묻는다면 바로 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선택권이 없어.’


의뢰에 <수락>과 <거절> 부분이 없었다.

나는 이윽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강제 이송됩니다.』


화아아아악―!


명부에서 빛이 폭사했다.

내 의지를 고려치 않은 강제적인 이동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를 꽉 끌어안았다.


“자, 장의사님! 이게 대체 뭔가요!”


에레씨도 뭔가를 느낀 듯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셨다.

손에는 지팡이를 꽉 쥐고 계셨다.

입술을 달싹이려 했다.

하나 그것보다 명부에 빨려 들어가는 게 더 빨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에레씨!’


에레씨가 나와 함께 명부에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




속이 메스꺼웠다.

다만 갑작스러운 차원 이동 때문만이 아니었다.


“켁, 켁!”


숨이 막힐 정도로 공기가 텁텁하다. 폐부로 악취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대체 여긴 또 어디야. 아직 시야가 돌아오지 않아 파악이 힘들었다.

나는 훅훅 숨을 내뱉으며 외쳤다.


“에, 에레씨!”


분명 나와 함께 명부로 빨려들어 오셨다.

그렇다면 이 주변에 에레씨가 있어야 했다.


“네, 네! 장의사님? 어디 계세요?”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에레씨도 아직 시야가 회복되지 않으신 듯하다.


“바로 옆이요! 잠시만요! 금방 눈이 다시 보일 거예요!”

“아, 알겠어요!”


에레씨의 목소리에 당황이 짙게 배어 있었다.

물론 나도 그렇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다. 밥 먹는 중에 이런 강제적인 이동이라니.

명부에 대한 질책보단 덜컥 겁부터 나는 게 아니겠나.


‘분명 긴급이라고 했어.’


고민할 틈도 줄 수 없을 정도로 시급한 일이란 말일테다.

게다가 텁텁한 공기나 악취를 생각하면 위험한 곳에 온 건 아닐까 싶어진다.

그나마 마음을 놓이게 하는 사실은 아직 내 몸 위로 방탄 쫄쫄이가 입혀져 있다는 것 정도.

나는 쿵쿵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천천히 시야를 확보했다.


“여긴···.”

“꺄우으···!”


우리가 내 품에 매달렸다.

악취와 텁텁한 공기가 힘든 모양이다.

나는 우리를 꼭 끌어안으며 주변을 살폈다.


“···숲?”


정확히는 죽은 숲이라고 해야 하나.

새까맣게 썩어들어간 나무들이 온 사방을 가득 메운다.

바닥으로는 재인지 낙엽 부스러기인지 모를 것이 움직임마다 부스럭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장의사님, 여기가 대체 어딘가요?”


어느새 시야를 회복한 에레씨가 내게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죽은 신의 사체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밖에는.”


에레씨의 얼굴로 경악이 떠올랐다.


“언제나 이런 식으로 이동하시는 거예요?”


갑작스러움을 말하는 것이면 틀렸고 이동 시의 감각을 말하는 거면 비슷하다.

차이점을 설명하려고 입술을 뗀 순간이었다.


“호, 혹시 신님인가요오···?”


흠칫, 몸이 떨렸다.

발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고개를 숙이자 내 눈에 보인 게 있었다.


“신님이 맞나요오···?”


손바닥안에 들어올 크기의 작은 생물.

누더기라는 말도 과분한 녹색의 옷과 고깔모자를 쓴 꼬질꼬질한 3등신의 아이가 내 바짓자락을 붙잡은 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포트리아가 지었다던 ‘요정’일 것이다.


“맞죠오···?”


요정이 울먹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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