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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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pa.
작품등록일 :
2022.12.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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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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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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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남겨진 이들의 등불 되어 (1)

DUMMY

일단 확인은 해야겠다 싶어 물었다.

울먹거리는 손바닥만 한 아이, 비단 외형뿐만 아니라 정신 연령도 아이의 수준에 닿아 있는 듯했다.

늘어지는 말꼬리나 경계심 없는 태도가 그런 가정에 신빙성을 더해줬다.


“네가 요정이니?”

“네에···!”


요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내 바짓자락을 낑낑 잡아당겼다.


“우, 우리 신님이 아파요오···! 구해주세요오···!”


피골이 상접한 꼴이다.

가만 봐도 기운이 다 빠져있는 게 훤히 보이는 데 이리 간절한 목소리를 낸다.

그게 참 가엾다는 생각을 떠오르게 만든다.


“장의사님.”


에레씨가 다가와 속삭이셨다.


“으음,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요. 이렇게 장의사님이 불려왔다는 건···.”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미 죽은 것 아니냐는 말이겠지.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명부의 역할은 죽어가거나 죽은 신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지 병에 걸린 신을 치료하는 게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명부는 말하지 않았나.


‘···이곳의 신은 이미 죽었어.’


침략자니 뭐니 하는 내용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명부는 이곳의 신이 죽었음을 확언했다.

입술이 달싹였다가 이내 다물렸다.

요정이 신이 죽지 않았다 판단한 이유를 아직 모르는 까닭이다.


“···일단 너희 신님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래?”


요정은 내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이쪽이에요오···!”


요정이 가리킨 곳은 유독 악취가 심하게 나는 장소였다.




*




한참을 걸어도 보이는 것은 어딜 봐도 죽은 숲뿐이다.

이곳을 보면 떠오르는 것은 악시온님의 세계다.

이런 메마름이 조금만 더 이어진다면 땅 전체가 그곳과 같은 황야가 되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아니, 실제로 악시온님의 세계 또한 이와 비슷한 형태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나는 무심코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죽은 숲에서 무언가를 느낀 건지 한껏 움츠러들어 내 품 안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악시온님의 기억이 남아있는 건가? 모르겠다.


“저, 저쪽이에요오···.”


내 어깨에 올라타 있던 요정이 말했다.

그 방향으로 코까지 틀어막으며 숲의 심부에 들어온 직후, 나는 심장이 덜컥 멎는 기분을 느꼈다.


‘이건···.’


“여기 신님이 있어요오! 빠, 빨리 치료해주세요오···!”


끔찍하다.

아니, 그것보단 서글프고 안쓰럽다는 말이 더 어울릴까.


숲의 심부에는 나무가 얽힌 형태의 침상이 있었고 그 위로 키가 140cm정도 되는 남자가 눈을 감고 있었다.

남자의 갈색 몸 위로는 온갖 기하학적인 문신이 푸르게 그려져 있었고,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네 개의 팔이다.


남자는 꼭 죽어서 수분이 다 빠진 시체의 꼴이다.

내 직업 특성상 그런 시신을 꽤 많이 봐왔기에 할 수 있는 비유였다.

아마 이 사람이 요정들의 신 포트리아님이겠지.

나는 요정이 포트리아님이 살아있다고 말한 이유를 깨달았다.


‘숨을 쉬고 있어.’


자세히 보면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호흡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크리시아스에서 봤던 옥좌의 신황이 딱 이런 꼴이지 않던가.

문득 의문이 든다. 이걸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빠, 빨리이···!”


요정의 울먹임이 짙어진다.

그 순간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봤다.


‘···요정들이야.’


하나 같이 피골이 상접한 몰골을 한 요정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외형대로 숨김을 모르는 이들의 표정에 확실히 알게 된다.

요정들 모두, 내가 포트리아님을 살려주길 바라고 있었다.


“갸우···.”


우리가 소리를 흘렸다.

시무룩한 얼굴을 보니 왜인지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도 저 요정들을 가엾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장의사님···.”

“네.”


에레씨의 걱정 어린 부름을 뒤로한 채 나는 앞으로 나섰다.

제단에 누워계신 포트리아님의 포개어진 손 위로 내 손을 겹쳤다.

아, 확실히 숨은 쉬고 있다.

숨‘만’ 쉬고 있다.


‘죽었어.’


몸이 아닌 영혼이 죽었다.

애매한 표현이긴 한데 나로서도 이런 말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내가 포트리아님의 죽음을 확신하는 기전은 확실히 명부로 권능을 휘두를 때와 같은 형태로 이뤄지고 있었다.

뇌리에 ‘죽었다’라는 사실이 확신처럼 꽂히고 있단 말이다.


에레씨를 바라봤다.

에레씨 역시 인상을 찌푸린 채 포트리아님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러던 중이었다.


“장의사님, 잠시만요.”


에레씨가 내 손목을 잡고 요정들이 없는 자리로 날 이끌었다.


“···성전이에요.”

“네?”

“사인이요. 성전이에요.”


에레씨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셨다.

성전? 혹시 신의 이름을 빌린 전쟁을 말하는 건가?


“···그게 무슨 뜻인가요?”


의아함이 들어 묻자 에레씨가 설명해줬다.


“말 그대로 신들의 전쟁이죠. 어떤 식으로 이뤄지냐면···.”


에레씨가 길게 이은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랬다.


“···영역 다툼?”

“네, 그 말이 옳겠네요.”


신들끼리도 영역 다툼이 있단다.

더 많은 신앙을 얻어 격을 높이기 위해 하는 전쟁이라는데, 확실히 의뢰에 붙은 ‘긴급’이라는 말은 신 본인도 예기치 못한 죽음이라는 의미일 테다.


영역 다툼이라, 확실히 명부의 의뢰엔 침략자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그런 사실들을 곱씹던 중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나는 물었다.


“···에레씨는 이런 걸 잘 아네요?”

“저는 선지자니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내려준 지식이 있어요.”

“아아···.”


확실히 이쪽에 관해 아시는 게 많으시긴 하다.

이번 의뢰에 에레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아니, 그보다 ‘재회의 속삭임’의 원래 용도가 이런 쪽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상당히 위급한 경우에요. 빨리 저 신님의 육신을 봉하지 않으면 땅 전체가 오염될 거예요. 이것보다 심하게.”


에레씨가 주변 풍경을 가리켰다.

검게 썩어들어간 숲과 악취, 습기가 불쾌함을 일게 한다.

이것보다 더 심하게 세상이 망가진단 말일 테지.

과연 이해는 했으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넘어야 할 난관이 있었다.


“···그런데 저 요정들을 어떻게 설득하죠?”


요정들은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아직 악취가 뻗어 나오는 시신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내가 발견한 것만 해도 내 어깨에 앉아있던 초록 친구까지 일곱이다.

그 이상의 요정이 있을지 없을지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


“설득, 그게 문제긴 하겠네요.”


에레씨가 공감이 간다는 듯 쓰게 웃었다.


“저도 아버지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면 첫 만남 때 에레씨가 그렇게 사나웠었지.

나에겐 얼마 되지 않은 일이겠지만 에레씨 입장에선 적어도 수백 년 전 일이니 감상이 이시는 듯하다.

잠시 상념에 빠져있던 에레씨가 말했다.


“그래도 장의사님이라면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

“제가요?”

“저도 설득해 주셨잖아요. 저는 저희 세상이 무너져내리지 않은 건 그날 장의사님 절 설득해 주신 덕이라고 생각해요.”


에레씨가 곱게 미소 지으셨다.

휘는 눈꼬리와 일렁이는 회색 눈동자가 괜한 부끄러움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노, 노력해볼게요.”


그래도 응원해줘서 참 감사합니다.




*




다시 돌아온 침상 앞은 암울한 분위기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 옷을 입은 일곱 요정.

삐쩍 골아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포트리아님 곁은 지키는 모습이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시, 신님! 우리 신님을 구해주는 거예요!”


노란 옷을 입은 요정이 헐레벌떡 달려와 내게 말한다.

그러자 빨간 옷을 입은 요정이 따라와 내 발을 콩콩 두드렸다.


“우리 신님 많이 아파야! 원래 이따 만큼 컸는데 지금 너무 작아졌다야!”


빨간 요정이 몸을 휘청거릴 정도로 큰 원을 그렸다.

그러다 꽈당, 뒤로 넘어졌다.

힘이 저리도 없는 걸까, 빨간 요정은 쉬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낑낑대고 있었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직전까지 남아있던 일말의 가벼움도 다 사라질 정도로.

더듬더듬 입술을 달싹이며 한참이나 꺼낼 말을 고민하던 중, 나는 이 상황에 대한 기시감을 느꼈다.


-아저씨, 우리 아빠는 언제 와요?


얄궂게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슬퍼하는 일조차 못 하는 어린아이를 이 요정들에게 겹쳐 봐버렸다.




*




죽음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의 사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비극적인 면이 있다.


“아저씨, 우리 아빠 언제 와요?”


한창 새내기 장례지도사일 적 일이다.

아직 수습 딱지도 떼지 못해 사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어느 날이었고, 그날 사수가 맡은 고인은 홀로 아이를 키우던 중년의 남자였다.

고인의 사인은 지병이라던가, 공장에서 일하던 중 심장발작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날을 되새겨보면 역시 떠오르는 것은 하나다.


“아저씨?”


검은 상복을 입은 채로 이곳이 어딘지도, 왜 이런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순수하게 물어보던 아이,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아 내 정장 바지를 꼭 쥐고 있던 아이 말이다.


“아빠 어딨는지 알아요?”

“아버지는···.”

“아빠 피자 사 온댔는데 아직도 안 와요.”


아이가 뺨을 부풀리는 게 어찌나 아프게 다가왔던가.

그 순박함이 필연적인 슬픔이 될 걸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확신하는 것이 있었다.


“우석아. 잠시 나 좀 따라와라.”


그날 사수가 날 불러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이에게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해 헛구역질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사수에겐 참 감사한 일이다


“힘드냐?”

“···.”

“우석아, 힘들면 그만둬라.”

“아니에요.”

“혼내는 거 아니다.”


사수는 말했다.


“이것보다 더한 걸 보게 될 거다. 사람이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가 있을 거란다.

줄초상을 맞는 집안에 혼자 남는 사람이 있을 거란다.

그것뿐만 아니다. 결혼식을 앞둔 날 배우자를 잃는 사람과 취직에 성공한 날 부모를 잃는 사람, 그 외에 수많은 사람을 보고 그들의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이 일이란다.


“우석아. 남의 슬픔에 공감해줄 수 있는 건 좋은 능력이다. 하지만 우린 그 이상을 해선 안 돼.”

“···우리는 지켜봐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 우리는 지켜보는 사람이고 도와주는 사람이야. 죽음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줄 알아야 해. 선을 그어놔. 네 마음엔 이성이 몸을 움직일 만큼의 자리가 항상 남아있어야 해.”


사실, 아직도 잘 지키지 못하는 충고다.


“감정에 매몰되지 말아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보게 해줘. 그게 안 되는 아이라면 적어도 작별 인사는 해야 한다는 걸 인지시켜줘.”


사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안다.

이별해야 할 때 이별의 말을 전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만 그 이유가 무지와 순수함 탓이라면 내 슬픔은 억눌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냥, 그게 쉽지가 않은 거다.


“뒤늦게 후회하지 않게 도와줘. 그걸 못하겠다면 이 일 그만둬라.”


그날은 결국 못했다.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애둘러 이별을 말하는 일조차 못해 사수의 등 뒤에 서 있기만 했다.


“아주 오랫동안, 아빠랑은 떨어져 있어야 할 거다.”

“···언제까지?”

“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 아빠 얼굴을 기억하는 게 어려워질 때까지.”

“그땐 다시 만나?”


이제는 그래선 안 되겠지.


“그땐···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보지 못해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단 괜찮아질 거다. 아버지의 얼굴이 흐려지는 만큼 그 빈자리에 포근한 추억이 차오를 테니까. 그건 분명 네가 힘든 순간에 너를 다시 일으켜 줄 테고. 내가 보증하마.”

“으응···.”

“그러니까 오늘은 아빠하고 작별 인사를 하러 가자. 잠시 헤어져야 하잖냐.”

“으응···.”


이번엔 혼자서 해야지.

사수가 언제나 내 앞에 있어 줄 건 아니지 않나.

사수가 없어도 나는 장례지도사이지 않나.


“신님은···.”


나는 선고해야 하는 사람이다.

죽음을, 그리고 작별을.


“···아마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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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재회의 속삭임 (4) +7 23.01.19 748 47 12쪽
56 재회의 속삭임 (3) +6 23.01.18 742 52 12쪽
55 재회의 속삭임 (2) +9 23.01.17 755 57 13쪽
54 재회의 속삭임 (1) +6 23.01.16 820 42 12쪽
53 전지, 만능, 무감 (7) +9 23.01.15 837 56 12쪽
52 전지, 만능, 무감 (6) +8 23.01.14 785 50 12쪽
51 전지, 만능, 무감 (5) +7 23.01.13 792 46 14쪽
50 전지, 만능, 무감 (4) +5 23.01.12 729 47 12쪽
49 전지, 만능, 무감 (3) +3 23.01.11 767 50 13쪽
48 전지, 만능, 무감 (2) +3 23.01.10 797 41 12쪽
47 전지, 만능, 무감 (1) +7 23.01.09 873 40 12쪽
46 길을 잃은 걸지도 모르지 (2) +11 23.01.08 971 48 12쪽
45 길을 잃은 걸지도 모르지 (1) +5 23.01.07 964 55 12쪽
44 거짓 우상 (7) +4 23.01.06 993 49 12쪽
43 거짓 우상 (6) +6 23.01.05 973 59 12쪽
42 거짓 우상 (5) +5 23.01.04 971 49 12쪽
41 거짓 우상 (4) +3 23.01.03 960 56 14쪽
40 거짓 우상 (3) +5 23.01.02 1,006 51 13쪽
39 거짓 우상 (2) +4 23.01.01 1,049 51 13쪽
38 거짓 우상 (1) +4 22.12.31 1,075 53 13쪽
37 나, 너, 우리 (3) +7 22.12.30 1,120 52 12쪽
36 나, 너, 우리 (2) +6 22.12.29 1,150 65 14쪽
35 나, 너, 우리 (1) +4 22.12.28 1,178 48 12쪽
34 사랑이 족쇄가 되어(6) +13 22.12.27 1,279 63 12쪽
33 사랑이 족쇄가 되어(5) +9 22.12.26 1,213 66 13쪽
32 사랑이 족쇄가 되어(4) +9 22.12.25 1,217 63 12쪽
31 사랑이 족쇄가 되어(3) +3 22.12.24 1,249 53 12쪽
30 사랑이 족쇄가 되어(2) +6 22.12.23 1,280 5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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