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몽골 1

갑자기 몽골 1
영웅이 신입생 비무대회에서 수석을 차지한 그날밤.
몽골의 인적이 드문 초원을 가로지르는 한 인영이 있었다.
- 사사삭
"하 씨발...빨리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경공으로 빠르게 이동중인 이 남자는 요원 K-303. 대한민국 출신의 세계무림맹 C급 요원이었다. 보통 이 정도의 낮은 등급의 요원들이 하는 일은 주로 잡일이다.
예를 들면 서류 전달이라던가, 심부름이라던가, 조사같은...정말 잡다한 일들만 하는 것이 C급 요원이다.
그보다 더 높은 등급의 요원일수록 임무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그리고 임무의 중요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 타탓!
- 사사삭
밤바람을 가로지르며 K-303요원이 빠르게 초원위를 지나간다.
그가 맡은 임무는 자잘한 심부름이었다.
여차하면 아침 해가 뜨고나서 해도 될만한 그런 심부름.
하지만 윗 기수의 선배 요원들의 눈치때문에 이 오밤중에 경공을 펼치며 심부름을하고 있는 K-303요원이었다.
"개같은 꼰대새끼들..."
중얼거린 K-303이 잠시 땅에 발을 디디려 하는 참이었다.
- 쿠르르르...
"음?"
지진인가?
- 탓
땅에 발을 디뎌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광활한 초원이 통째로 흔들린다.
"지진은 아닌 것 같은데..."
요원이 잠잠한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보통 어디선가 지진이 나면, 요즘 시대에는 사람보다 스마트폰이 먼저 반응한다. 어찌나 빠르게 반응하는지, 한국에서 터키에서 난 지진 소식을 10분도 되지 않아서 들을 수 있을 정도다.
"흠...뭐지."
요원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머리를 긁적인다.
지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눈에 보이는 특이사항도 없었다.
적어도 K-303 요원의 눈에는 말이다.
사실 온통 암흑이라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건가..."
- 툭
무언가 요원의 뒷목에 닿았다.
차갑고, 축축한 무언가.
"뭐야."
요원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어디선가 날아온 이슬에 젖은 잔디인줄 알았다.
아니었다.
- 쉬이이이...
커다란 뱀의 비늘과 쉿쉿고리는 소리가 들린다.
요원은 저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 쉬이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랴.
3m 남짓하는 커다란 뱀의 몸통과 대가리가 자리해야할 곳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여자의 얼굴. 새하얀 얼굴에 날카롭지만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꽤나 미인형이다.
요괴가 생긋 웃었다.
날카로운 이가 반짝인다.
"안녕?"
- 사아아악
요괴의 끝이 갈라진 긴 혀가 요원의 목을 부드럽게 감산다.
요원의 뒷목을 건드린 것은 나뭇잎 따위가 아니었다.
요괴의 혀였다.
".........끄, 끄아아아악!"
요원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려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요원의 주위에는 어느새 인간이 아닌 것들이 바글거리며 진을 치고 있었다.
대충보아도 끝이 안 보일만큼.
"으, 으아아악!"
요원이 소리를 지르며 경공을 펼쳐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한다.
- 크크크크크크
- 푸하하하하
- 푸힛
- 낄낄낄
주위를 가득 채운 요괴들이 요원이 도망치는 길을 일부러 비켜주며 놀리듯이 비웃는다.
마치 모세의 기적과 같이.
끝도 없는 요괴들이, 끝도 없이 자리를 터준다.
마치 지옥과도 같은 풍경.
- 털썩.
"하아, 하아..."
경공을 최대한 밟아보았지만...결국 내력도, 체력도 다 떨어져버린 요원이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쉰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패닉이 심하게 왔다.
손발이 벌벌떨린다.
온 몸의 떨림을 멈출 수가 없,
- 찹
"흐이이익....!"
목 뒤로 차갑고 축축한 무언가가 닿았다.
"거기까지가 네 한계인거야?"
뱀 여자 요괴, 누레온나가 쉿쉿대며 물었다.
"살, 살려..."
- 피슉!
요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음 달다."
하찮은 벌레를 죽이듯이 가볍게 요원을 죽인 누레온나가 생긋 웃으며 손에 묻은 피를 혀로 햝았다.
"얘들아. 오랜만에 인간 피 맛 좀 보고 갈래?"
그리고 친절히 동료들에게 양보도 해준다.
원래 진정한 친구는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는 법이다.
- 피다...!
- 신선한 피...
- 인간의 피다...
마치 설탕물을 발견한 개미떼처럼 요원의 시체에 달려든 요괴들이 우글거리며 시체를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씹어먹었다.
이 요괴들은 하급요괴들.
하급 요괴들의 뒤에서 다양한 형상을 한 그림자들이 그 모습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저리도 좋을까요?"
"이해는 간다만 너무 심한 것 같기도?"
거대한 덩치의 요괴.
료맨스쿠나(りょうめんすくな)가 말했다. 이 요괴는 두 개의 얼굴이 있었는데, 주로 한 얼굴이 말하면 다른 한 얼굴이 맞장구를 쳐주는 식으로 만담같은 대화를 전개해나갔다.
"사실 소승도 먹고 싶기는 합니다."
산화상(山和尚)이 말했다.
멀리서봤을때 검은 승복을 입은 스님같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어느새 자신이 승려라고 착각하고 있는 요괴였다.
"넌 뇌 먹는애가 그러는 거 아니다."
일본의 지네 요괴.
오오무카데(おおむかで)가 말했다.
"앞으로 많이 먹을거니까 조금만 참아라."
마라가 말했다.
그리고 마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 위이이잉
잠자리 날개같은 것이 끊임없이 회전하는 이상한 쇠뭉텅이.
물건에서 생명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이 시대의 물건이겠지.
마라는 물건에서 보이는 빨간 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생명력은 느껴지지 않으나, 자아를 갖고 있는 것 같은 신기한 물건.
아마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는 물건이리랴.
- 삐이이이...삐! 삐! 삐!
초록색의 얇고 긴 빛을 낸 물건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다시 밤하늘로 사라진다.
"대장...저건 뭡니까?"
"나야 모르지."
어깨를 으쓱거린 마라가 피식 웃었다.
잔대가리 굴리는군.
"어이, 스님."
"예. 말씀하십시오."
산화상이 차분한 불자마냥 말했다.
흉내치고는 꽤 비슷한 모습이다.
"곧 네가 좋아하는 살아있는 인간 뇌 실컷 먹을 준비해라."
산화상이 기뻐하는 걸 보며 마라는 머릿속에 그간 세워놓았던 계획을 한 번 더 정리했다.
착.
착.
착.
지옥에서 몇 천년간 썩어가며 세운 계획이다. 저깟 처음보는 문명따위 알 게 무엇인가?
모든 수의 변수에 대한 대응책이 있다.
실패는 없으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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