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몽골 5

갑자기 몽골 5
"너...무인이구나?"
여자가 말했다.
"그쪽은 악귀시네요."
미요가 답했다.
약간 경계어린 눈빛의 미요를 재밌다는 듯이 내려다보던 여자가 생긋 웃었다.
"악귀라기엔 나는 너무 강하지."
미요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뒷짐을 진 상태에서 메모지에 글씨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그래. 난 너무 강해."
여자가 주먹을 쥐며 희열에 가득찬 미소를 지었다.
자기애의 헌신과같은 모습이었다.
"....너 누구야."
"나? 나는 악의 신. 악의 모든 것. 악의 정의. 그리고 악의 근원이지."
여자가 높낮이없는 목소리로 덤덤히 말했다.
"뭐, 대마왕. 이런 거라도 되는건가?"
미요가 거의 다 써가는 부적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겉으로는 킥킥대며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미친듯이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어린 인간 여자애의 속마음 하나 못 알아볼 여자가 아니다.
"아가야."
"...오글거리게 아가는 무슨,"
"잘 보렴."
여자가 혀로 입술을 느리게 훑었다.
"이게 나의 힘이란다."
여자가 느릿하게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 딱!
여자가 손가락을 맞부딫혀 소리를 내었다.
- 쿵!
그 순간, 초원에 있던 모든 '인간'들이 쓰러졌다.
".............."
미요를 제외하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흥분한 악귀들이 난리를치며 쓰러진 인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인간을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미요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느릿하게 주위를 둘러본 여자가 눈동자만 굴려, 미요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나의 힘이란다."
조금 전과 같은 말의 반복. 하지만 가지는 힘의 무게는 달랐다.
미요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을 한거야."
"죽였어."
"...뭐?"
"확인해보아도 된단다 아가야."
여자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미요는 머뭇거리다가 근처에 쓰러져있는 박수무당에게 다가갔다.
박수무당에 붙어있던 악귀에게는 손에 쥐고있던 부적을 붙여서 쫓아냈다.
"..........."
박수무당은 앞으로 고꾸라진 자세로 쓰러져있었다.
미요가 힘없이 축 늘어진 그를 부축하며 말을 걸었다.
"저기요...괜찮으,"
미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박수 무당은 죽어있었다. 그것도 눈도 감지 못한 상태로.
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미요의 교복을 적시기 시작했다.
아직 피가 뜨거웠다.
- 크르르...
"...꺼, 꺼져! 꺼지라고!"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온 악귀들에게 악을 지른 미요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웁...."
토할 것 같다.
구역질이 난다.
"맥을 짚어보렴."
".........."
미요가 손을 덜덜 떨며 박수 무당의 손목을 잡았다. 맥박이 뛰지 않았다.
목에 손을 대어 보았다. 맥박이 뛰지 않았다.
코 끝에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숨을 쉬지 않았다.
박수 무당은 죽었다.
- 사락
"이게 나의 힘이란다."
어느새 미요의 등 뒤에 바짝 다가온 여자가 미요의 귓가에 속삭였다.
"재밌는 거 보여줄까?"
미요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여자는 부드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맞춰서 미요의 품에있던 박수무당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눈 뜨고 죽어있는 시체의 춤사위는 기괴했다.
"어때. 재밌지?"
"............"
미요는 그대로 굳어서 얼어있었다.
"인간은 나를 없앨 수 없어."
여자가 말했다.
"너는 내가 널 왜 살려놓았는지 궁금하지 않니?"
"............"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워낙 겁대가리없는 성격으로 소문이 자자한 미요였지만, 지금 만큼은 본능적인 공포감에 온 몸이 덜덜 떨렸다.
"별 거 없어. 넌 무인이잖니."
"........"
"이런 조무래기들은 재미 없지. 우리에게...아니 나에게 평범한 인간은 그저 먹이일 뿐이야. 물론 귀신과 대화하는 미친 인간들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너와 같은 무인들은 다르지."
"...원하는 게 뭐야."
미요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와 같은 사람들을 데려와. 그래야 조금 재밌어질테니까."
"..........."
"자. 눈을 감아봐. 네가 있던 곳으로 널 보내줄게. 참. 내 이름을 말 안 해줬네?"
여자가 미요의 어깨를 잡았다. 미요의 어깨 피부가 썩어문들어지기 시작한다.
"으윽...."
미요가 고개를 떨구며 신음했다.
여자는 마력으로 미요의 고개를 들어올리며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게했다.
마치 각인시키듯이.
"내 이름은 마라 파피야스야."
이 말을 마지막으로, 미요의 시야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
"일본에서는 큰 사람을 마라 파피야스라고 불러."
쪼록.
츠키나가 커다란 텀블러에 담긴 음료를 쪽쪽대며 말했다.
"그렇구나."
"한국은 뭐라고 불러?"
"그냥 대ㅁ...아. 미친."
민준이 오류창으로 뒤덮이기 시작하는 28개의 컴퓨터 모니터를 망연자실하게 쳐다보았다.
"마라. 진정해."
"후...씨발..."
옆에서 츠키나가 계속 말을 거는 바람에 코드를 입력하는 중에 오타가 났다.
"마라. 힘내."
츠키나가 특유의 갸루 말투로 측은하다는 듯이 말했다.
톡톡. 민준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건 덤이었다.
"하...제발 좀 꺼ㅈ,"
- 쾅!
민준의 작업실 문이 부서질 듯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
민준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츠키노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또 뭐. 왜. 무슨 일인데."
또 그렇고 그런 어그로를 끄는 것이겠거니...민준은 생각했다. 오니 쌍둥이는 소문난 어그로꾼이었다.
"찾았어."
"뭘."
"내가 스토킹하던 여자애."
"............."
음.
어디서부터 어떻게 짚고 넘어가야할까.
우선 누군가를 왜 스토킹했냐고 묻는 것부터 시작할까?
민준이 깊게 고민했다.
"이럴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야, 야야! 잠깐만!"
냅다 190cm정도 되는 츠키노에게 들쳐매진 민준이 버둥거렸다.
"우와! 비행기다 비행기~"
반대쪽에 같이 들쳐매진 츠키나가 킬킬댔다.
민준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경공을 밟아서 빠르게 청월 기숙사 보건실로 온 츠키노가 그제서야 민준과 츠키노를 내려놓았다. 사실 내려놓는다기보다는, 내동댕이쳤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었다.
"근데 우리는 왜 데려온거야? 네가 관심있는 여자애 병문은은 너 혼자와도 되는거잖아."
츠키나가 물었다.
"중요한 해킹이었는데...내 코드..."
그러거나말거나 민준은 멍하니 청월의 바다를 보며 중얼거렸다.
"혼자 들어가기 부끄러워서."
"아하."
츠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코드...내 해킹..."
"네가 먼저 가서 정찰 좀 해봐."
민준이 구석에서 우울하게 중얼거리던 말던, 냅다 민준의 뒷덜미를 잡은 츠키노가 보건실 병실 안으로 민준을 던져넣었다.
- 쿠당탕!
"으....츠키노 뒤지고 싶,"
"..............."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미요와 민준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
"..............."
"안녕."
피범벅이 된 교복을 입고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야마나시 미요의 꼴은 어떻게 보아도 안녕하지 않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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