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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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화보Zen
작품등록일 :
2022.12.2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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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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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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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지로 화려함이 없는 짜장.1

DUMMY

짜장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한국의 근대 역사와 그 시작을 같이 하는 문제이다.


무엇을 짜장면이라 하는가?

검고 짜고 단 춘장 소스에 비벼서 먹는 면이면 모두 짜장면인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 한 남자의 손에 들린 짜짜게티는 짜장면인가?


짜장면이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맛이야 확연히 다르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고 짜장면과 짜짜게티를 헷갈릴 바보는 없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짜장면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짜장면은 검고 짜고 단 춘장 소스에 비벼서 먹는 면을 말함이다.


짜짜게티가 윗줄의 말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부분이 있는 면식인가?


그저 조리 방법이 살짝 다른 짜장면의 한 종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말인가?


그 말이 틀리지 않다면 짜짜게티도 짜장면도 짜장면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보글보글.



냄비에 넣은 짜짜게티 면을 보며 사색에 잠긴 남자의 이름은 고요한.


키만 훤칠했지 호리호리한 체격, 창백하고 여린 느낌의 얼굴은 탁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게 뭔가 영양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아니면 수면이 부족한 것인가?


눈 밑에 드리운 다크서클하며, 아무튼 무엇인가 결핍이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아무튼 고요한은 진지한 눈빛으로 냄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짜장은 속도가 생명.



고요한은 물을 딱 한 국자만 떠서 버리고는 스프를 풀기 시작했다.


물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면을 조린 물에다 스프를 풀어버리는 아무나 하지 못하는 기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중식과 라면의 조리방식에 한 가지 공통점이라는 것이 있다면 속도가 생명이라는 것이다.


뜨거운 물을 버리고 어쩌고 하는 동안에도 면은 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요한은 젓가락으로 빠르게 면을 휘감았다.


면을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이른바 태극을 의미하는 8자를 그리면 끝이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짜장스프가 냄비에 눌러붙어 냄비를 오염시킬 염려가 있었다.


그럼 설거지가 아주 귀찮아지기 때문에 고요한은 서둘러 면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그야말로 신속한 그릇으로의 배달이 끝난 후 고요한은 냄비를 싱크대에 담가놓았다.



-장담하는데 짜장면보다 맛있다 이건.



구운 살치살을 짜짜게티 위에 토핑하면서 요한은 중얼거렸다.


짜짜게티 두 그릇을 요한은 식탁으로 가져갔다.


의자에 앉아서 요리를 기다리는 남자가 있었다.


다시 보니 앉아있는 것도 꼭 무슨 명상을 하는 것처럼 폼을 잡고 앉아있는 것이,


눈까지 꼭 감고 있는 것이 금방 비켜줄 태도는 아닌 게 분명했다.


그리스 신화의 신을 빚어놓은 조각상 마냥 뚜렷한 이목구비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이 남자를 요한은 알고 있었다.



-귀국해서 먹는 첫 요리가 짜짜게티라고 너는 불평했지. 하지만 먹어봐라, 장호연.



용문반점에서 시작된 무도집단 용문.


장호연은 3대 점주 고강호가 직접 제자로 삼은 용문의 마지막 제자였다.


그런데 4대 점주 고강렬은 요리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로 용문반점과 용문이 분리되길 원했고, 3대 점주 고강호는 그 생각을 수락한 채 눈을 감았다.


3대 점주 고강호가 죽은 이후론 더욱 그러했다.


4대 점주 고강렬은 뼛속까지 요리사인 동시에 장사 소질이 있는 사람으로, 용문의 영역으로 쓰이던 곳을 과감히 없애고 이제 3층짜리 건물을 전부 용문반점으로 온전히 활용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용문을 이끌 예정이었던 고강호의 손자 고강준이 중국에 유학갔다가 돌연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젠 어딜 어떻게 보나 그냥 일반 중식요리점이었다.


용문반점의 과거를 아는 사람도 4대 점주 고강렬과 조리장 백지원뿐.


중심을 잃은 용문은 뿔뿔이 흩어져 현재로서는 그 명맥이 거의 끊겼다고 봐야했다.



-······고요한. 귀국해서 먹는 첫 요리가 짜짜게티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삼 년 만에 너랑 만났는데 짜짜게티를 해준대서 놀란 것이다.



목소리까지 뭔가 성인군자 같은 분위기로 장호연이 입을 열었다.



-안 보는 동안 무공은 좀 익혔나? 하나도 할 줄 몰랐었잖냐.



호연은 눈을 뜨지도 않은 채 계속 말했다.



-요리하기도 바쁜데 무슨 무공이야? 라면이나 먹어 임마.



요한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고강렬이 용문반점으로 부르기 전 요한은 당연히 그곳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동갑인 장호연이었는데 둘은 동갑에 고등학교 친구였던 까닭이다.


삼 년 전 갑자기 사라져서 그 동안 보이지가 않았었는데,


오늘 갑자기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어디 있었냐?



요한은 그제야 눈을 뜨고 한 젓가락 먹고 있는 호연에게 물었다.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가끔은 시카고랑 마이애미도 가고.


-미국에 있었다고? 뭘 했는데?


-킬러.


-웃기고 자빠졌네 진짜.


-새로 진출한 동유럽 마피아랑 본토 마피아가 치열한 전쟁 중이었다. 내가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능력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 아니냐?



호연의 말에 요한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그럼 넌 여전히 무공은 할 줄 모른단 소리냐?


-요리하느라 바빴다니까. 야, 나 삼 년 만에 용문반점 불판에서 일해. 대단한 거다 이거.


-그래, 그건 축하한다. 내가 삼 년간 미국 동부의 전설적인 킬러가 되는 동안 넌 용문반점의 불판장이 되었구나.


-불판장은 아니고 식사장······.



어디 만만한 중국집도 아니고 용문반점의 불판을 삼 년 만에 잡았다.


불판 중에서는 조리장 밑 식사장이라고 해도 쉬운 일은 분명 아니긴 했다.



-그런데 무공을 전혀 모른다면 니 할아버지 유언은 어떡하냐? 나만 피곤하게 생겼군.



호연의 말에 요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할아버지 유언?


-그래······용문오요은 유지되어야 한다.



호연은 말을 하는 도중부터 한숨을 쉬었다.



-강준이형은 죽었고, 강준이형이랑 중국에 같이갔던 우진이형도 실종됐고······ 남은 건 지원누님 뿐이잖냐.



고강준, 고우진, 백지원, 장호연.


이렇게 넷이 고강호가 생전 기대를 가지고 가르쳤던 젊거나 어린, 떠오르는 별들이었다.


뼛속까지 그냥 요리사 4대 점주 고강렬이 용문반점과 용문을 분리하고 싶다고 했을 때, 즉 무공 쪽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고강호와 담판을 지었을 때 고강호는 그 생각을 받아들이면서도 용문에 네 명의 인재는 유지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그런데 지원누님은 이제 요리만 하지. 남은 건 나뿐이잖냐.


-지원 조리장님은 요리할 때가 제일 행복해보이니까 가만 놔둬 좀.


-가만 안 놔두면 뭐 그 누님이 내 뜻대로 움직여줄 사람이긴 하냐?


-그야 그래.


-······아무튼 그래서 난 너한테 기대를 걸었었다.


-나한테? 그러지 마 좀.


-너나 그러지 마라. 니네 가문에서 시작된 무공을 그만 좀 애써 외면해라.



호연은 느닷없이 살짝 나무라는 식으로 말했다.


뜬금없이 혼난 요한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호연의 머리를 풀면 예수를 닮았을 것 같아서 괜히 더 혼나는 느낌이었다.



-난 삼촌한테 불려가서 용문반점에 가기 전까진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



요한의 말에 호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무림인들은 용문반점의 무공비급 ‘무위자장’을 너가 가지고 있는 줄 알던데. 4대 점주님이 무공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용문반점의 무위자장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딱히 없거든.


-구경도 해본 적 없어 난.


-그래?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넌 꽤 억울하겠구나?



호연의 말에 요한은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일? 무슨 일이 생기는데 나한테?


-아니 사소한 거지 뭐. 비급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영화나 만화에 보면 많이 나오잖아.



요한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호연이 사이코패스처럼 보였다.


하긴 웬만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보다 많은 사람을 미국에서 죽였을 거니까 그럴만도 했다.



-그걸 니가 가지면 되겠네. 용문의 무공을 익혔고, 아직도 용문의 이름으로 뭔가를 할 생각이 있는 건 너뿐인 것 같은데.



요한의 말에 호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어. 무위자장은 어디까지나 용문반점에 전해지는 것. 요리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나 같은 자가 어찌······


-요리 좀 가르쳐 줘?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제야 호연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요한도 모델을 해도 될 정도의 킨데 그런 요한보다 조금 더 컸다.



-아무튼 간만에 봐서 반가웠다. 가끔 찾아가마.


-용문반점에?


-그래, 점주님이 약속한 게 있잖냐.



4대 점주 고강렬이 장호연과 한 약속.


용문오요에겐 식사비를 받지 않는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요한의 말에 호연은 웃었다.



-사람은 먹고사는 일에 제일 민감한 법.


-······앞으로는 어떡할 생각인데?


-미국에서 돈을 어마무시하게 벌었으니까 돈 걱정은 없고, 글쎄 무얼할까?


-요리나 배우라니까.


-넌 요리하고 난 무공하면 되겠네. 그리고 내 생각에 이곳 생활이 별로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호연은 길쭉한 키와 넓다란 등을 과시하듯이 꼿꼿하게 쫙 편 자태로 현관으로 움직였다.


들어왔을 때처럼 천장 쪽을 봤다가 베란다 밖을 봤다가 집구경을 하면서 어기적 움직였다.



-귀신이라도 보이냐? 왜 그렇게 두리번 거려?



요한의 말에 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잡귀가 붙어있는 것 같은데?


-진짜냐? 이 자식아. 장난치지 말고 말해 이 자식아.


-진실을 말해주면 니가 잠이나 자겠냐?


-뭐야? 이 자식아. 이미 잠은 다 잤어 임마!



버럭거리는 요한을 외면하고 호연은 요한의 집에서 나왔다.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간 호연은 담배를 한 대 물고 불을 붙였다.



-잡귀라고 해야할지 모기라고 해야할지······.



호연은 담배를 한모금 빤 후에 혼자 중얼거렸다.


짜짜게티 한 그릇에 해충을 퇴치하는 세스코 역할까지 해주는 건 좀 과한 감이 있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만난 친구라고 생각하면 이 정도야 못할 것도 없었다.


호연은 검을 뽑아들었다.


검을 들고 옆을 돌아보니 옥상에 수상쩍은 무사집단 여러 명이 호연을 포위 중이었다.



-너희는 재수가 없다.



호연은 차분하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호신용으로 우산을 들고 다닐 텐데 오늘은 바로 오느라 칼밖에 없거든. 니들이 아마도 내 마지막 살생이 되겠구나.



호연의 위협적인 말에도 아랑곳않고 무사들은 불나방처럼 호연의 범위 안으로 뛰어들었다.


옥상에서 선혈이 낭자하는 줄도 모르고 요한은 장을 보러 집 밖을 나왔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방울 콧등에 떨어진 것을 슥 닦으면서 요한은 마트로 향했다.


화창한 날씨에 누가 베란다 물청소라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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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14.기묘한 승부.5 23.04.21 16 0 11쪽
89 14.기묘한 승부.4 23.04.19 18 0 11쪽
88 14.기묘한 승부.3 23.04.17 23 0 12쪽
87 14.기묘한 승부.2 23.04.15 22 0 12쪽
86 14.기묘한 승부.1 23.04.13 29 0 13쪽
85 13.초인학교.6 23.04.11 26 0 11쪽
84 13.초인학교.5 23.04.09 37 0 11쪽
83 13.초인학교.4 23.04.07 25 0 12쪽
82 13.초인학교.3 23.04.05 25 0 12쪽
81 13.초인학교.2 23.04.03 23 0 11쪽
80 13.초인학교.1 23.04.01 25 0 12쪽
79 12.염매(厭魅).8 23.03.30 26 0 12쪽
78 12.염매(厭魅).7 23.03.28 35 0 12쪽
77 12.염매(厭魅).6 23.03.26 39 0 12쪽
76 12.염매(厭魅).5 23.03.24 36 0 12쪽
75 12.염매(厭魅).4 23.03.22 29 0 11쪽
74 12.염매(厭魅).3 23.03.20 29 0 11쪽
73 12.염매(厭魅).2 23.03.18 27 0 12쪽
72 12.염매(厭魅).1 23.03.16 30 0 12쪽
71 11.맛집동맹.6 23.03.15 37 0 12쪽
70 11.맛집동맹.5 23.03.13 33 0 11쪽
69 11.맛집동맹.4 23.03.11 32 0 11쪽
68 11.맛집동맹.3 23.03.09 32 0 11쪽
67 11.맛집동맹.2 23.03.07 32 0 11쪽
66 11.맛집동맹.1 23.03.05 40 0 12쪽
65 10.강남경찰은 놀고 있냐?6 23.03.03 27 0 12쪽
64 10.강남경찰은 놀고 있냐?5 23.03.01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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