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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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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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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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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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 블라디

DUMMY

상티누스가 내놓은 것은 낡은 깃발과 부러진 검 조각이었다.


“이것은?”


너무 오래되어 색이 바래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깃발에는 갈색 곰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블라디 남작 가문의 문장이었다.


부러진 검에는 제작된 곳의 도시와 길드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불스타운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블라디 남작의 군대가 여기 왔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 외에도 블라디 남작의 군대가 이곳 주민을 공격했다는 또 다른 증거들을 발굴해서 보관하고 있었다. 불스타운에서 제작된 마구, 부서진 갑옷 조각 등이었다. 블라디 남작 군대의 창날이 박힌 해골도 있다고 했다.


“불스타운과 키헨은 말을 달리면 이틀이면 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서쪽에 멀리 있던 알렉세이1세의 군대가 아니라 가까이 있던 블라디 남작의 군대가 학살을 저지른 겁니다.”


상티누스는 자신의 주장을 확신하며 힘주어 말했다.


아슬라프도 블라디 남작의 소행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예상했었다.

게오르그 후작은 알렉세이1세와 싸우기 위해 봉신영주인 블라디 남작에게 군대 동원령을 내렸다. 블라디가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면 불스타운은 빈집이나 다름없어지고, 알렉세이1세가 키헨에 공격명령을 내려 불스타운을 치라고 하면, 병력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불스타운은 곤경에 처할 것이었다.


블라디는 자신의 영지인 불스타운이 안전하기 위해서는 키헨을 먼저 정벌하고나서 게오르그의 군대에 합류하는 게 안전하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키헨을 불시에 점령하고 게오르그의 연합군에 합류한 것이었다.

키헨을 공격한 것은 군사작전 상의 일이지만, 점령하고나서 저항능력이 없는 주민까지 학살하고 키헨을 완전히 폐허로 만든 것은 전례없는 잔혹한 행위였다.


‘블라디라면 그러고도 남지.’


그는 잔혹하기로 이름난 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눈 밖에 나는 걸 두려워했다.


“그런데 키헨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점령되었나? 키헨도 방어용 성벽이 갖춰진 요새인데, 블라디의 군대에 너무 쉽게 당한 게 이상하군.”


아슬라프의 질문에 상티누스가 대답했다.


“키헨이 공격받기 며칠 전에 불스타운에서 일하던 키헨사람이 몇 명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들과 그들 사이에 숨어들어온 적병이 블라디 남작에게 문을 열어주었을 거라는 게 제 추측입니다.”


키헨과 불스타운은 다른 영주의 지배를 받았지만, 거리가 가까워서 주민의 교류가 잦았다. 산골인 키헨에는 일자리가 적어서 불스타운에서 일하러 가는 자도 있었는데, 그들이 전쟁으로 실직했다며 집에 돌아오자 주민들은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들이 블라디의 명령을 받았다 해도, 키헨에는 친척과 친구들도 있는데, 블라디를 위해서 문을 열어줬을까?”


“어떻게 된 일인지, 제가 블라디 남작의 군대에 있던 병사들을 만나서 알아봤습니다.”


상티누스는 감옥에서 풀려난 후, 당시 블라디 군에 복무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상황을 물어보았다고 했다. 그들 대부분은 모르는 일이라며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은 블라디 남작이 명령한 학살에 가담한 자들이니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처벌받으니 아무도 저에게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병으로 죽음을 앞둔 한 병사를 만났는데, 그만은 제게 진실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상티누스가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블라디는 키헨에 가족이 있는 자들에게 키헨으로 가서 몰래 성문을 열어주면 키헨 주민을 살려주고 그들은 포상하겠다고 구슬렀다. 그의 꼬임에 넘어간 주민이 블라디의 병사를 자신의 친구로 위장시켜서 키헨으로 데려갔고, 그들이 밤에 망보던 수비병을 죽이고 요새의 문을 열어줬다.


그러나, 블라디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주민을 모두 학살했고, 처음에는 문을 열어준 자들과 그 가족들을 살려줬지만, 그들이 불스타운에 정착한 후에, 한 어린아이가 실수로 예전에 키헨에서 살다 왔다고 발설하자 비밀을 누설했다며 그 가족을 모두 죽였다고 했다.


“블라디 남작이 이 일을 발설하는 자는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죽으면 환생해서 죄값을 치르게 될 것 같아서 참회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상티누스에 따르면 진실을 아는 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수백 명의 블라디의 병사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입을 다물고 그 기억을 잊고싶어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어떻게 키헨 학살이 알렉세이1세가 한 일로 소문이 퍼졌는지 알 것 같았다. 게오르그 후작의 부하인 블라디 남작이 키헨을 점령하며 자신의 영지의 안전을 위해 마을을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렸다. 그리고 자기가 저지른 짓을 알렉세이1세에게 뒤집어씌우고, 모두를 협박해서 입막음했다.

게오르그와 지그리드는 알렉세이1세가 학살자 이미지를 갖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니, 알렉세이1세가 한 게 아니라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잡아가두며 거짓소문이 퍼지도록 방조한 것이었다.


‘네놈들이 모두 작당한 거였군.’


아슬라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네의 억울함은 알겠네.”


그 누구보다 억울한 사람은 아슬라프 자신이었지만, 그는 입술을 깨물며 상티누스를 위로했다.


“조사한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 책을 완성하게. 그대의 책이 완성되면 출판할 수 있도록 힘써주겠네.”


아슬라프의 말에 상티누스는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저도 백작님을 위해서 힘닿는 데까지 역할을 하겠습니다.”


블라디에 대한 분노로 됫목이 뻐근할 정도였지만, 상티누스를 만나서 그나마 기분이 풀어졌다.

뜻하지 않게 키헨에서 상티누스를 만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찾던 총리를 다시 만나니 오른팔이 솟아난 듯이 든든했다.


게다가 그는 키헨 학살을 저지른 자에 대한 증거까지 수집해서 분류해놓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눈으로 직접 증거를 확인하면 키헨 학살이 누구의 짓인지 알게 될 것이다.


아슬라프는 상티누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키헨 발굴과 재건에 참여시켰다.

그는 다량의 시신이 매립된 곳과 불지른 흔적이 있는 곳, 블라디 남작의 병사들이 다녀간 흔적이 있는 곳 등을 알려주었다.

발견된 장소와 정황까지 세밀하게 기록해놓아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세 구의 시신이 있고, 그중 한 구에 불스타운 병사의 창날이 꽂혀있었습니다.”


발굴이 진행되고 시신을 수습하면서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병사들도 차츰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이 방패조각은 블라디 가문의 문장이 있는데 왜 여기 있지?”


“어제 발견한 시신에 박힌 칼날에도 불스타운이라고 새겨져 있었어.”


“이 시신이 움켜쥔 옷조각의 체크무늬도 불스타운의 문양이잖아. 한두 건이 아니야.”


“공격당한 시신들이 모두 불스타운 무기에 당한 걸 보면, 블라디 남작의 군인들이 여기 왔었나 봐.”


“학살을 저지른 게 알렉세이1세가 아니라 블라디 남작이었나?”


“그런데 왜 알렉세이1세로 알려진 거야?”


“그러게. 이상하네.”


그들은 발견한 증거물들을 상티누스에게 가져왔고, 그는 하나하나 번호를 붙여서 발견된 곳과 함께 기록했다.


거리를 청소하고 천여 구의 시신을 모두 발굴해서 장례를 치렀다. 아슬라프는 묘지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우도록 했다.


“추모비에는 뭐라고 새길까요?”


“여기 키헨에서 희생자된 자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쓰게.”


아슬라프는 추모비는 간략하게 적고, 그 앞에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의 동상을 세우도록 했다. 동상 앞에는 키헨에서 발견된 곰 문양의 깃발과 발견된 불스타운의 무기도 함께 조각하도록 했다. 키헨 학살이 블라디 남작의 짓이라고 명문화한 것은 아니지만, 발견된 유물과 유품을 그대로 조각해서 그것이 누구의 짓인지를 눈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상티누스의 책이 출간되면 사람들이 이곳에 와보지 않더라도 누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될 것이다.


본격적으로 키헨 요새 재건이 시작되었다. 도시 개발 경험이 많은 상티누스의 도움으로 공사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남쪽과 서쪽은 흙벽과 돌벽이 남아있으니 그대로 활용하면 됩니다. 동쪽은 절벽이니 망루만 세우면 됩니다.”


그동안 키헨에서 발굴작업을 하며 지낸 상티누스는 주변 상황에 빠삭했다.


“도로도 조금만 보수하면 되겠더군. 흙을 치우고 보니 많이 상하지는 않았어.”


“그렇습니다. 쓸만한 통나무가 남쪽 숲에 많이 있습니다. 거기서 베어오면 됩니다.”


토성에 돌을 보수하고 베어온 통나무를 박아 벽을 높이 쌓자 며칠 만에 성채의 모습이 갖춰졌다.


이제 집을 짓고 사람들이 와서 살면 이전과 같은 키헨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때 전령이 편지를 가지고 달려왔다. 편지에 찍힌 인장에는 발톱을 세운 곰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블라디 남작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벌써 알아차렸군.’


아슬라프가 키헨을 재건한다는 소문이 그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알렉세이1세가 죽고 블라디는 키헨을 자신의 영지로 포함시키려고했다.

그러나, 지그리드와 게오르그는 어차피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된 곳이니 그대로 놔두자고 합의했다. 그 곳이 다시 요새화되면 지그리드에게도 게오르그에게도 서로 껄끄러운 곳이 되니, 그냥 방치하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어느 한쪽이 가지면 다른 쪽이 불편해지는 전략적 요충지라서 중립지역으로 놔두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슬라프가 키헨에 요새를 구축하면서 게오르그와 지그리드와 사이의 암묵적 합의가 깨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블라디로서는 자신의 앞마당을 언제든 칠 수 있는 곳에 요새가 건설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미 게오르그에게도 보고를 했을 것이다.


편지에는 예상대로 공사를 당장 중지하지 않으면 불스타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아슬라프는 편지를 서랍에 넣어두고 공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어차피 전쟁은 벌어질 것이다. 최대한 공사 시간을 앞당겨서 방어체제를 갖춰놓아야 한다.


며칠 후, 이번에는 지그리드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아슬라프가 블라디의 편지에 대꾸하지 않자, 게오르그가 지그리드에게 직접 공사를 중단하라고 항의했을 것이다.


아슬라프는 지그리드에게 답장을 썼다.


[

키헨의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키헨 요새가 완성되면 갤리온 공국은 절대 국경을 넘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게오르그 후작이 항의하면 그들이 국경에서 군사훈련을 한 것에 대해서 똑같이 항의하십시오.

블라디 남작이 군사행동을 하면 지그리드 후작님께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제 선에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유리한 상황이니 갤리온 공국에 끌려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


지그리드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딱히 손해볼 일이 없었다. 아슬라프가 나서서 게오르그와의 껄끄러운 국경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아슬라프는 지그리드가 자신의 말을 따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너희들에게서 의리 따위를 찾느니 개한테서 깃털을 찾는 게 더 쉽겠다.’


지그리드도 게오르그도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뭉친 사이였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결국 언젠가는 갈라서고 말 관계였다.

아슬라프는 키헨을 이용해서 그 시기를 조금 일찍 앞당긴 것뿐이었다.


게오르그와 지그리드는 키헨을 두고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며 협상을 시도했으나, 자기 입장만 고수하며 실패로 돌아갔다. 아슬라프는 지그리드에게 게오르그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며 옆에서 부추겼다.


결국 블라디는 게오르그의 허락을 받고 아슬라프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어서 와라.’


블라디가 군대를 출정시켜 키헨으로 향한다는 소문을 들은 아슬라프는 그를 맞아 싸울 준비를 했다.


‘네가 학살을 저지른 곳에서 최후를 맞게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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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코카나무 농장 23.05.25 254 8 13쪽
150 환관 이달고의 제안 23.05.24 249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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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군터의 모함 23.05.22 255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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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태풍 23.05.20 24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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