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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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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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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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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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황제 피졸트(2)

DUMMY

피졸트는 40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집시 황제가 되었다. 그것은 그가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이기도 했고,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도 하는 능력자여서, 집시족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세속적이면서도 자극적인 내용이 많은 그의 연극은 정식 극장에서 상연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집시들이 거리에서 공연하며 시선을 끌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피졸트가 공연한다고 하면 귀부인들까지도 얼굴을 가리고 몰래 와서 관람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렇게 유명한 피졸트가 폭력과 성으로 점철된 알렉세이1세의 날조 연극을 써서 게오르그의 지원을 받아 수년간 전국에 공연하고 다녔으니, 사람들이 알렉세이1세를 폭군으로 생각하게 된 것도 당연했다.


“피졸트는 아직도 집시 황제야?”


“아뇨. 지금은 게오르그가 갤리온 공국에 설립한 극장의 극단 단장이 되었습니다.”


게오르그에게 충성한 대가로 한 자리를 차지한 모양이었다. 알렉세이1세에 대한 거짓말을 사람들이 믿게 만든 포상이었다.


아슬라프는 파밀라를 아주르 성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날 밤 잠든 채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은 그녀의 유지대로 집시의 관례인 화장으로 치러졌고, 유골은 햇빛이 잘 드는 높은 언덕에 뿌려졌다.


장례를 마친 아슬라프는 프랑케에게 같이 갤리온 공국으로 가자고 했다.


“나를 피졸트한테 데려다줘.”


갤리온 공국은 게오르그의 영지여서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혼자 가는 것보다는 갤리온 공국 사정에도 밝은 프랑케와 함께 움직이는 편이 낫다.


“피졸트는 왜 만나려고 하십니까?”


“그의 연극이 볼만하면, 에셀부르 극장에 초청공연을 부탁하려고.”


그렇게 둘러대었지만, 실은 피졸트가 알렉세이1세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운 이유와 방법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그의 선전이 거짓이었음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사흘 후, 그들은 갤리온 공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피졸트의 극장으로 가서 들어가려고 하니, 경비원이 그들의 앞을 막았다.


“집시들은 극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랍신다.”


경비원은 차림새만 보고 접근을 막았다.


“피졸트도 집시인데 집시를 차별하다니.”


프랑케는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경비원이 한 배우를 끌고 나와서 길거리에 내동댕이쳤다.


“출연료도 못 받았는데 이렇게 내쫓는 게 어디 있습니까?”


배우가 항의했지만, 경비원은 쌀쌀맞게 대꾸했다.


“피졸트 단장님의 명령이다. 또 여기 얼씬거리면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릴 줄 알라고 하셨다.”


배우는 씩씩거리며 극장의 닫힌 문을 쳐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아슬라프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왜 쫓겨나셨습니까?”


“내가 무대에서 더 주목받으니까 그게 싫었나 봅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니 발전이 없죠. 자기보다 잘하고 젊고 잘생긴 배우는 쓰지 않으니.”


그는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같이 공연하는 배우마저 저렇게 푸대접하니, 웬만한 사람은 피졸트를 만나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어쩌죠?”


프랑케가 난처한 표정으로 아슬라프에게 물었다.


“기다려봐.”


아슬라프는 종이를 꺼내서 위임장을 작성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장을 찍어서 봉인했다.


“뭘 하시는 건데요?”


프랑케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이제 변신을 해야지.”


아슬라프는 옷가게로 가서 깔끔한 옷을 사서 갈아입었다.


말쑥해진 모습으로 극장을 다시 찾아간 아슬라프는 경호원에게 위임장을 내밀었다.


“아슬라프 렌케 백작님의 전갈입니다. 에셀부르 극장에서 연극을 공연해주실 수 있는지 문의드리려고 합니다.”


렌케 백작의 인장을 확인한 경호원은 위임장을 읽어보고 그들을 극장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그들은 계단을 올라가서 극단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방안에서 남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우리 다음 달에 강에 뱃놀이 가기로 한 거 잊지 말아요.”


“백작님이 싫어하실 텐데.”


“싫어하면 어쩔 건데요? 난 이미 그 사람 작위를 물려받을 아들도 낳아줬고 할 일은 다 했어요. 왜요? 남편이 겁나요?”


“아뇨. 전혀요. 백작께서 작년부터 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지금까지 제 머리털 하나 못 뽑은 걸 보면, 말로만 큰소리치는 쫄보인 것 같군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극단장에 국민배우인 우리 피졸트님을 감히 누가 건드리겠어요? 남편은 신경쓰지 말고 가서 재미있게 놀아요.”


“허허, 그럼 가서 신나게 즐깁시다.”


방문이 열리고 안에서 한 귀부인이 나왔다. 피졸트는 인기배우라 애인 가운데는 귀족 부인도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생각지도 않는지 당당하게 피졸트와 애정행각을 주고받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배웅하고, 피졸트는 아슬라프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어서 오십시오.”


피졸트는 위임장을 읽어보고 그들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슬라프 렌케 백작님은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습니다.”


“렌케 백작님도 우리처럼 집시족 출신이니까 예술에는 일가견이 있죠.”


아슬라프의 말에 피졸트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에서 집시족으로 자신보다 더 출세한 사람이 있다니. 질투, 선망, 호기심, 부러움 등 복잡한 감정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렇지요. 그 위치에 올라가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아니,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피졸트 단장님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셨지 않습니까. 단장님은 순전히 본인의 노력으로 그 위치까지 가셨습니다.”


아슬라프는 피졸트를 추켜세우며 그의 비위를 맞췄다.


“허허, 과찬이십니다.”


“폭군 알렉세이1세 연극으로 대 히트를 치셨죠.”


“맞습니다. 제가 직접 출연도 했죠.”


피졸트는 게오르그 역할로 직접 무대에 섰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아슬라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앞으로 굽혔다.


“그래서 말인데요. ‘폭군 알렉세이1세’의 공연을 에셀부르에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폭군 알렉세이1세를요?”


피졸트는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왜 하필 그렇게 오래된 연극을 공연해달라는 겁니까? 다른 최신 연극도 많은데요.”


“올해가 폭군 알렉세이1세가 초연된 지 20주년이니까요.”


아슬라프는 에셀부르에서 각 도시의 극단을 초청해서 연극축제를 한다고 알려주었다.


“피졸트 단장님의 극단도 참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슬라프의 말에 피졸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비볐다.


“저야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갑니다. 공연비는 충분히 주시겠지요?”


“물론입니다. ‘폭군 알렉세이1세’가 초연된 지 20주년이니 특별히 크게 사례하고 홍보도 가장 빵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피졸트는 아슬라프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계약서를 작성했다. 아슬라프는 도장을 찍으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폭군 알렉세이1세를 창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이 연극은 제가 감옥에서 쓴 겁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에 집시족은 탄압을 받고 있었고, 나도 감옥에 투옥되었죠.”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감옥에서 그 대본을 써서 게오르그 후작에게 바쳤더니 아주 만족스러워하더군요. 직접 연출해서 무대에 올리면 나를 풀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자부심을 느끼는 듯이 검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게오르그 후작은 이 연극을 공연하는 집시족에게는 통행증을 발급해주었습니다. 그러니, 이 연극은 집시족을 살린 연극이나 다름없죠.”


감옥에서 풀려나기 위해서 대본을 쓰고는 자신이 집시족을 구원해줬다고 떠벌리고 있었다.


아슬라프는 연극 내용에 대해서 물었다.


“알렉세이1세의 악행은 좀 과장된 것 아닌가요? 그렇게까지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던데요.”


“아, 뭐 그 정도는 예술적 허용으로 봐줘야죠. 죽은 왕이 뭔 짓을 했던 알 게 뭡니까.”


그는 자신이 만든 거짓말을 예술적 상상이라며 당당하게 비호했다.


“그래도 사실이 아닌 내용까지 넣을 필요가 있나요? 진실을 밝히려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도 있던데요. 예를 들면 아주르 공국의 총리 상티누스라던지.”


아슬라프의 말에 피졸트는 코웃음쳤다.


“그건 상티누스가 미련한 거죠. 아니, 뭐하러 게오르그 후작의 심기를 건드립니까? 귀족에게 맞서다니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래서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나처럼 머리를 잘 써서 빠져나왔어야죠.”


그는 자신이 영리했다며 오히려 상티누스를 비웃었다.


“죽은 사람 편들어준다고 그 사람이 살아납니까?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사람 이용해서 탄압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죠. 왜 화를 자초합니까?”


쯧쯧 혀를 차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을 정당화했다.


“내가 집시족이 살아날 길을 마련해준 겁니다. 내가 아니었다면 집시족은 갤리온 공국과 지론드 공국에서 폭행당하고 마차도 빼앗기고 이리저리 도망 다녀야 했을 겁니다.”


피졸트의 뻔뻔함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아슬라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달 후에 에셀부르에서 뵙겠습니다.”


“예. 홍보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하고 극장을 나온 아슬라프는 프랑케에게 물었다.


“너도 이 연극 다 알고 있지?”


“그럼요. 통행증 없이 다닐 수 있게 될 때까지 10년 넘게 공연해서 잘 압니다.”


“그럼 너의 집시 무리를 데리고 와. 에셀부르에서도 공연하도록 무대를 만들어줄게.”


“예? 공연 기회를 주신다면야 감사합니다.”


프랑케는 자신이 속한 집시 무리를 이끌고 에셀부르로 왔다.

아슬라프는 극장으로 온 프랑케에게 대본을 내밀었다.


“여기서 내 극단 배우들하고 이걸로 공연해봐.”


프랑케는 대본을 읽어보더니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건 알렉세이1세에 관한 내용 아닙니까?”


“맞아. 하지만 전혀 다른 해석이지.”


아슬라프는 알렉세이1세가 룽족 연족 등 외적의 침입을 격퇴했던 전투, 시행했던 문화발전 사업, 경제발전, 민족 갈등 해소를 위해 공정한 법 제정과 판결 등 당시 사건을 그대로 대본으로 써주었다.


“이건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요? 알렉세이1세가 이런 사람 맞습니까?”


프랑케는 자신이 지금껏 보아왔던 ‘폭군 알렉세이1세’와는 정 반대되는 캐릭터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거 공연했다가 괜히 폭군을 미화했다고 욕먹는 거 아닐까요?”


그는 어깨를 움츠리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연극을 만들어온 그로서는 대중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을 공연하면 어떤 비난을 받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돈을 받기는 고사하고 시금치나 호두같은 물건이 무대로 날아오기도 했다.


“키헨 학살처럼 이번에 새로 알려진 관한 내용을 넣은 거지 미화한 게 아니야. 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야.”


아슬라프는 피졸트가 쓴 ‘폭군 알렉세이1세’의 대본과 대조하며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바로잡는 내용으로 대본을 구성했다.


“에셀부르 극단의 이름으로 공연하는 거니 너한테 뭐라는 사람은 없을 거야. 준비나 열심히 해.”


“알겠습니다.”


프랑케는 배우를 캐스팅해서 연습에 들어갔다.


에셀부르의 곳곳에는 연극축제를 홍보하는 문구가 걸리고 공연 일정이 게시되었다. 다른 도시에서도 연극축제를 보러 귀족들과 상인들이 몰려왔다.


“어서오십시오.”


아슬라프는 에셀부르에 극단을 이끌고 도착한 피졸트를 맞았다.


“홍보도 가장 크게 했고, 요청한 대로 가장 좋은 날짜인 마지막 날 폐막작으로 배정해놨습니다.”


“고맙습니다.”


피졸트는 싱글벙글 웃으며 극장을 구경하러갔다.

높은 천정에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되고 음향의 울림이 멀리까지 들리는 구조에 감탄했다.


“정말 멋진 극장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극장은 제국의 수도에나 가야 있을 겁니다. 여기서 공연하다니 영광입니다.”


자신의 극장보다 더 호화롭고 웅장한 규모에 피졸트는 다소 기가 죽었다.


“개막작은 에셀부르 극단의 공연이니 편하게 보고 쉬십시오.”


아슬라프는 그에게 좌석을 안내하고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피졸트는 VIP석에 앉아서 연극축제의 프로그램을 살펴보았다. 목록을 바라보던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알렉세이1세의 꿈?’


개막작의 제목이었다.


‘왜 하필 알렉세이1세야?’


자신의 연극과 주제가 겹치는 연극이 먼저 공연되는 것에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등을 의자에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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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군터의 모함 23.05.22 256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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