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원 살인사건 (4)
[24]
“저 사람이에요.” 피의자가 말했다.
“뭐?” 형사들이 대답했다.
“저 사람이 시켰습니다.” 피의자가 손으로 백원기를 가리켰다.
“뭐?! 야 이 새끼야! 너 누구야! 너 나 알아?!” 백원기가 깜짝 놀라 흥분하며 말했다.
형사들은 피의자 체포 후 그에게 백원기의 체포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교사 혐의 등을 묻지 않은 상태였다.
“백원기. 저 사람이 자신과의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시의원 김순백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피의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백원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 이런 X발놈이, 야! 너 이 개새끼···! 너 나한테 왜 이래! 누구야! 누가 시켰어!! 너 죽여버릴 거야! 야!!”
흥분해서 몸부림치는 백원기를 온몸으로 힘겹게 붙잡고 있는 무 형사의 눈에는 피의자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빨간색 전구가 유독 크게 보였다.
‘아니. 이 자식이 왜 이런 거짓말을···?’
피의자의 발언을 듣고 사건이 거의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최 형사, 김 형사와는 달리, 무 형사는 용의자의 전구를 보고 사건이 더 심각해졌다고 생각했다.
“야! 다시 데려가! 다시!”
최 형사와 김 형사는 피의자를 다시 취조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무 형사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격분해 있는 백원기를 주변 경찰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다시 유치장으로 데리고 갔다.
[25]
“피해자 김순백을 죽인 거 인정하는 거야?”
“예.”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거지···?”
“예.”
“백원기 저 사람이 사주한 거고? 그러니까, 공범인 거고?”
“예.”
“왜 죽이라고 한 거야?”
“김순백이라는 시의원이 자신과의 불륜 사실을 폭로하려 했고 죽여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타고 다니라고 본인 차 키도 줬고요. 그리고······”
조금 전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술술 털어놓는 피의자다.
[26]
“백원기 씨. 들었죠. 살인 피의자가 다 자백했습니다. 살인교사, 인정하시죠.” 무 형사가 백원기를 앞에 앉혀놓고 말했다.
“내가 살인교사?! 너, 너 미쳤어? 너 얼굴도 모르는 새끼가 하는 말을 지금 믿···”
“말조심하시죠!”
“내가 미쳤냐고! 당신들 지금 나한테 이러는 거 감당할 수 있어?! 내가 당신들 전부 다 가만 안 둘 거야 내가···!”
그때, 김 팀장이 옆을 지나가면서 백원기를 향해 주먹을 드는 시늉을 취하며 말했다.
“어허! 이 새끼가···, 쯧. 무 형사! 이런 새끼는 사람대접을 해주면 안 돼!”
“백원기 씨. 도주에 사용된 차량 소유주도 당신이고. 원한을 갖고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드러났습니다. 불륜을 저지른 것도 CCTV를 분석하면 곧 나오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주했다는 물증도 꼭 찾아낼 거고요.” 무 형사가 다시 한번 그에게 혐의를 상기시키며 말했다.
“······. 그래! 하 참나! 불륜이었다! 그게 뭐! 야, 그게 내가 그 여자 죽인 이유가 돼?! 너 내가 그년한테 얼마를 쏟아부었는지 알아?!”
“야 이 새끼야!! 말 곱게 안 해?! 누구는 말 못해서 안 하고 있냐? 이 새끼가 죽을라고···”
무 형사가 참다 참다,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볼펜을 던지더니 책상을 거세게 박차고 일어나며 말했다.
무 형사는 자신이 죽기 전 유강혁 형사일 때, 성격을 죽이지 못해 다 차려둔 밥상을 남에게 갖다 바치거나, 오랜 기간 들였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던 상황들을 떠올리면서, 무 형사로 살면서는 욱하는 성질을 죽이고 다시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역시나 죄를 짓고도 뻔뻔한 인간들을 보면 쉽사리 화가 참아지지 않았다.
무 형사의 화내는 모습을 실제로는 처음 본 김 팀장과 고 형사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무 형사가 버럭 성질을 내고 나서야 백원기는 비로소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해지는 듯했다.
“똑바로, 차분하게, 천천히 말하세요.”
“······”
“알아들었습니까?!!”
백원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쏟아부었다는 게 무슨 말이죠? 침착하시고 자세히 말해보세요.”
한참을 뜸을 들이던 백원기가 흥분을 다 가라앉힌 듯 말을 시작했다.
“··· 김순백 그 여자, 골프 연습장에서 처음 만났지. 그 여자 한창 TV에 나올 때 좋아했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봤었고. 그 뒤에 몇 번 만나면서 친해졌고 가까운 사이가 됐지. 그 여자가 나한테 엄청 잘했거든 처음에는. 그 뒤로 내가 그 여자 다시 TV로 복귀할 수 있게 도왔어. 돈 참 많이 썼지··· 우리 회사 광고도 여러 개 붙여주고. 그러다 그 여자 갑자기 유명해지데? 처음엔 좋았지. 그러다 뜬금없이 정치를 하고 싶다 그래서 시간 쓰고 돈 쓰고 온갖 연줄 다 동원해서 시의원까지 만들어줬고. 근데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잘나서 일이 다 잘 풀린 줄 알고 이 여자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는, 이거 사라 저거 사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날 완전 종처럼 부려먹더니 심지어는 나보고 중앙정계로 진출하게 다리를 놓으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말했지. 나 그럴 정도 능력은 없다. 당신한테 이미 너무 많은 걸 쏟아부었다. 그리고 당신 그럴 정도 능력은 안 된다라고. 그러더니 온갖 모욕적이고 상스럽고 수치감 주는 말들은 다 퍼붓더니 이제 자기 인생에서 꺼지라는 거야···.”
백원기의 이 모든 말은 사실이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 초록색 전구가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관계를 폭로할 거란 협박을 했다는 건 뭐죠?”
“그 살인범 새끼랑 나랑은 상관없다니까!! 협박 같은 건 없었어. 지가 꺼지라 그래놓고는 뭐가 아쉬웠는지 수시로 연락해서 중앙정계 다리 놓아주면 다시 만나줄 거라 말했었지. 근데 내가 돈 쓰고 시간 쓰고 그런 취급을 받았는데, 하물며 내가 그런 능력이 있더라도 절대 당신 같은 여자 다시는 안 만난다고 나도 못을 박았지. 그 뒤로 매일 같이 전화해서 욕이란 욕을···”
이 말도 전부 사실이었다.
무 형사는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왜 피의자는 백원기가 사주했다고 말을 한 거지···? 누가 범인인 거야···?’
“다른 할 말은 더 없습니까?”
“없어. 난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 여자, 죽어서까지 날 괴롭히네···.”
[27]
교류 경찰서 강력 3팀 인원이 모두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CCTV 분석 결과, 교류 주택 단지 사건 현장에서 범행 후 강원도 홍천 사찰까지의 피의자 동선 모두 확인됐습니다.” 김 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어서 최 형사가 말했다.
“패딩이랑 바람막이에서 나온 DNA도 분석 완료됐는데요. 분석 결과 피의자의 것이 맞았고, 또 범행 도구에서 나온 혈흔과 피의자 옷에서 나온 혈흔은 모두 피해자 것이 맞는 것으로 확인됐어요.”
그리고 무 형사가 말했다.
“피의자가 범행 일체를 모두 자백도 한 상황입니다. 다만, 공범이라고 추정되는 백원기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살인을 교사했다는 증거도 피의자 자백 말고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고요.”
“백원기 집에도 뭐 나온 거 없지?” 김 팀장이 말했다.
“예, 아무것도 안 나왔습니다.” 무 형사가 대답했다.
“피의자 체포 현장에서도 뭐 별다른 게 발견되지 않았다고?” 김 팀장이 말했다.
“예 맞습니다. 현장 주변 수색도 거의 완료됐는데요. 피의자 소지품은 옷 두 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핸드폰 같은 것도 발견되지 않았고요.” 최 형사가 대답했다.
“그럼 이 자식은 원래 승려였던 거야 뭐야?”
“직업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꽤 오랫동안 생활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고, 현장에 있던 승려 2명 말로는 몇 달 전에 와서는 일을 돕겠다고 하면서 머물 곳을 제공해줄 수 있냐 물었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대? 그 사람들은 확실히 공범이 아니고?”
“그래서 누추한 복장을 하고 있긴 했지만 별다른 특이한 점이 없어 보였고, 마침 일손도 부족 했어서 그러라고 했다고 하고요. 특정 시간대에 밖에 나갔다 오는 것 외에는 일도 알아서 열심히 잘 했답니다. 그 두 사람은 원래 그 사찰의 승려가 맞고요.”
“거 참. 절에 숨어 있으면서 뭐, 킬러로 활동했다는 거야 뭐야?! 무슨 영화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 그것도 치안 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교류시에서···.”
“팀장님. 피의자 관련해서요. 아마도 본거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현재 CCTV 분석 중에 있는데 곧 끝날 겁니다.” 고 형사가 말했다.
[28]
새로운 단서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해 CCTV와 자료들을 분석하고 있는 강력 3팀 팀원들.
그때, 한동안 가득했던 적막을 깨고, 고 형사가 김 팀장의 자리로 가서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팀장님”
“뭘!”
“본거지요.”
“어···?! 용의자 본거지??”
“예.”
“야, 고 형사야!! 너 인마, 뭘 그런 걸, 아니 뭐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을···, 야! 야! 피의자 그거, 거기, 거주지 발견! 출동 출동!” 김 팀장이 먹고 있던 빵을 입속으로 욱여넣고 허겁지겁 떠날 채비를 한다.
“피의자 아지트 말하는 거 맞죠, 팀장님?!” 나머지 팀원들도 황급히 출동 준비를 한다.
“그래! 그거! 아지트! 그래서, 어디라고??”
“교류 2동에 있는 G 오피스텔 1001호요.” 분주한 팀원들과 다르게 고 형사는 끝까지 평온하고 차분한 말투로 답했다.
고 형사를 제외한 강력 3팀 형사들이 서둘러 서를 빠져나갔다.
[29]
“여기지?”
“맞습니다. G 오피스텔.”
“1001호?”
“예, 1001호.”
“자, 혹시 모르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예!”
“준비됐으면 올라가자.”
.
.
잠시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형사들과 관리실 직원은 이내 1001호 문 앞에 다다른다.
무 형사가 현관문에 귀를 갖다 대고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곧이어, 김 팀장과 김 형사가 현관문 왼쪽에 서고, 최 형사와 무 형사가 문이 열리는 오른쪽에 서서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 후, 관리실 직원에게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내 관리실 직원이 마스터키를 도어락에 갖다 대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순식간에 형사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상 무!”
“이상 없습니다.”
집은 일자로 뻗은 흔한 원룸형 오피스텔 구조였고, 보통의 살림살이가 갖추어져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
.
한참 동안 집 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형사들.
그러나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오피스텔의 모습이다.
“아무것도 없지?” 팀장이 말했다.
“예. 너무 평범한데요.” 최 형사가 대답했다.
“진짜 아무것도 없네요. 여기 맞죠?” 김 형사가 집 안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근데 너무 평범해서 의심스럽지 않아요? 사진이나 액자 같은 것도 하나 없고, 화장실이나 주방 식기들이나 테이블을 보면 사용감이 전혀 없어요. 무슨 모델하우스 같이···” 무 형사가 의심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평소에 강박적으로 깔끔한 사람일 수도 있어. 범행 현장에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걸 보면···” 김 형사의 이 같은 말에 최 형사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이웃들한테도 한번 물어보자고.” 팀장이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30]
주변 탐문 수사를 마친 형사들이 다시 1001호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뭐 특별한 거 있어?” 팀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뇨. 여기서 몇 년 동안 살았던 이웃들이 여기 사람이 사는 줄도 몰랐대요.” 김 형사가 답했다.
“그래? CCTV는?”
“확인해봤는데, 범행 당일에는 오지도 않았고요.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주로 손에 든 것도 없이 그냥 맨몸으로 다녔고요.” 최 형사가 말했다.
그 순간, 무 형사가 벽을 두드리며 말했다. “팀장님,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모두 무 형사가 두드리고 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직사각형 형태의 원룸 오피스텔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붙박이장이 방 안쪽에 있는 옷장 옆까지 쭉 이어져 있었고, 왼쪽에는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짧고 좁은 복도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방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주공간이 나왔는데 바로 정면에는 커다란 통창이 달려 있었고, 왼쪽으로 돌면 화장실 벽 맞은편에 붙어있는 작은 주방시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주방시설과 화장실 사이를 잇는 벽이 무엇인가 어색해 보인다는 것을 느낀 무 형사는 그곳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거 안에 비어있는 거 같은데요?”
무 형사의 말에 팀원들이 화장실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쳐다보고, 벽을 두드려보면서 이상한 점을 찾아보려 움직였다.
그때, 싱크대 하부 장을 열고 살펴보던 최 형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여기 좀 보세요!!”
“뭐야? 왜 그래?”
“팀장님! 여기 뭔가 이상합니다! 야! 김 형사!”
최 형사의 부름에 상대적으로 몸집이 가장 왜소한 김 형사가 달려가 허리를 숙여 싱크대 하부 장 안쪽을 들여다본다.
다른 이들은 그 모습을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
.
그 순간, 하부 장 안쪽을 과할 정도로 꼼꼼하게 살피던 김 형사가 소리쳤다.
“여기 공간이 있습니다!!”
“뭐?!”
“화장실 벽이랑 싱크대 사이에 밀실이 있어요!!”
그랬다.
그곳에는 범인이 비밀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매우 은밀한 밀실이 존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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