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날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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꼵꽭
작품등록일 :
2022.12.31 21:50
최근연재일 :
2023.04.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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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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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16화 - 왕궁에서 전령이 왔다

DUMMY

거의 알몸이었다. "괜찮아요." 기사가 부축하고 옷을 입혔다. "이제 괜찮소. 안전합니다." 키가 굉장히 컸다. 앞잡이는 중심을 잃고 안기듯 쓰러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동굴 입구에서 그녀가 붙잡고 늘어져 흐느껴 우는 동안 기사의 갑옷 속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지나오며 죽은 늑대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처참했다. 새끼를 벤 암컷까지 모두 죽인 모습을 보니 동정심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것들은 그녀한테 뭔가 먹을 것을 쥐여주기도 했었다. 허나, 밖으로 뛰쳐나가는 새끼들을 보니, 시울 붉은 눈에 핏발이 차올랐다.


"저놈들은 가만히 두는 건가요."

"새끼잖소."

"저 새끼들이 커서 사람들 죽이고 다닐 텐데도요?"

"저것들도 어린 건 죽이지 않던데."


말문이 막혔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제가 여기 있는 게 왜라고 생각하세요?"

"몇살이길레?"


그리 반문하자, 또 말문이 막혔다. 그가 뒤늦게 사과했지만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를 마을까지 데려다 주려고 하기는 했다. 그것이 고맙고 마음이 놓였다. 살에 붙는 옷도 따뜻하고 바람을 잘 막았다.


"성에서 오신 분이군요. 마을을 구하러 오신 거죠?"

"난 성에서 오지 않았소."

"그럼 어디에서...."

"세상에서."


가벼운 농이었다. 기사는 필요한 만큼만 대답했는데 그녀에겐 퍽 마음에 드는 답이었다. 그녀는 그 밖에도 여러가지를 물었다. 어디 출신인지, 누구를 섬기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 길인지. 기사는 모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한 번 트고 나니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말이 참 많았다. 그녀는 어느새 기사가 대화를 주도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놈들의 칼이 녹 슬어 있던 걸 보셨소? 아직 금속을 관리하는 기술까지는 터득하지 못했던 거요. 무리의 규모로 보아 자리잡은 지 2, 3년 정도 되었을까. 그간 사람들이 일구어놓은 것들을 잘 빨아먹으며 연명한 게지요."

"죽일 놈들이네요."

"그렇소." 그가 맞장구를 쳤다. "참으로 죽일 놈들이지. 하지만 진짜로 죽일 놈들은 따로 있는 건지도 몰라요. 세상에는 그런 놈들에게 빌붙어 벌어먹고 사는 인간 이하의 축생이 떠돌고 있다오... 그런데 어쩌다 그런 험한 꼴을 당하게 되셨습니까?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이 날 뻔했어요. 놈들이.... 죄송합니다. 몹쓸 짓을 했습니까?"

"덕분에 몸은 더럽혀지지 않았어요." 그녀는 기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뒤늦게 그가 혼자라는 사실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결론을 도출해내고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살며시 그녀를 밀어 재촉하는 손길에 겨우 발을 움직였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혼자서 그 득의양양한 놈들을 모조리 도살해버린 것이다. 닦고도 남은 피의 비린내가 칼집의 틈을 비집고 밤중으로 기어나왔다. 그녀는 눈꺼풀을 떨었다. 기사는 여전히 유쾌했다.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당연한 일이죠.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저 같은 사람의 의무니까요. 다만 오늘 하루 말동무나 좀 되어주시면 저도 힘이 나겠습니다."

"그것 하난 제가 참 잘하는 일이네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손님들을 상대하다보면 의외로 몸보다 말을 많이 쓰는 날이 있었다. 어쨌거나 생명의 은인이니 딱딱한 자세로 일관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만, 그 존재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가는 내내 말을 했다. 마침내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마을이 아니었다. 우물에 쓰러진 집터만 남고 나머지는 황량한 폐허였다.


기사는 혼자서 뭐라 중얼거리더니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허나 이건 이것대로 좋았다.


"밤이 깊었는데 하룻밤 정도는 더 지켜주시겠죠?"


이쯤 되니 그녀의 의혹이나 두려움은 말끔히 씻겨 없어진 뒤였다. 왜냐하면 기사의 말솜씨가 아주 좋았고 태도도 친절했기 때문이다. 직업 상 그런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없다시피 했던 그녀는 목가적인 상황에 굶주려 있었고, 지금 자기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공주가 된 듯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본인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지만.

기사는 그러겠다 말하고는 그나마 온전한 집터에 불을 피우고 사라졌다. 한참 후 그가 돌아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묻어주고 왔소이다. 내가 보기에 이 마을은 돌림병이 돌아 쓰러져버린 게요. 뼈들이 모두 집 구석에 쪼그려 있더군. 지금은 안전하오. 병 냄새가 사라졌소."

"병에 냄새가 있나요?"


기사는 제 코를 가리켰다.


"난 코가 좋거든. 다만 근처에는 버려진 수레에 옷 입은 백골이 쌓여 있고, 사람 묻는 구덩이는 메워지지 않은 채였소. 당시의 모습이 훤하더이다. 어찌 영주와 교회는 보고만 있었는가. 병이야말로 진정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재앙이오. 신이 내린 철퇴이니, 응당 두려워 할 줄을 알고 오손도손 살아가야 하건만.... 그래도 해골이 길가에 즐비한데 그저 잊었다고? 그런 슬픈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에 대한 동조는 아무리 그녀라도 부담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사는 미적지근한 반응이 마음이 들지 않는 듯했다.

이에 조급해져 그의 행동을 칭찬하고 큰 키며 그 강함이며,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끝없이 표했다. 그닥 반응은 없었지만, 효과가 있었는지 이것저것 장황한 말들을 풀기 시작했다.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라 흘려들었다.


지금껏 보던 기사들과는 다른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치들은 함께 울고 웃다가도 일을 치르고 나면 동전을 던져놓고는 바지를 추스리며 가버리곤 하였으니. 기사가 끓인 물에 향풀을 넣어 우려주었다. 몸이 따뜻해졌다. 기사는 꼿꼿이 앉은 채로 활활 타는 불을 보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여자는 이것 말곤 보답드릴 방법이 없다며 옷을 훌렁 벗고 불 너머에 섰다. 그리고 얼굴을 보여달라며 투구에 손을 댔다. 기사는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피곤해 보입니다. 오늘은 이만 자세요. 내가 파수를 설 테니."


그녀는 내심 화가 치밀어 일어나려는 그를 사납게 붙잡았다.


"여자의 간청을 내치시려고요."

"아가씨, 저를 난처하게 만들지 마시지요." 기사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두 손으로 어깨를 지긋이 눌렀다. "그런 보답을 받아도 기쁘지 않을 겁니다. 제가 한 일을 고맙게 여긴다면, 제가 부탁을 드릴테니 얌전히 주무시길 바랍니다. 밤바람이 차가우니 옷을 입으세요. 저를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본인을 해친다면 과연 저는 댁녀를 잘 지켜드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존심이 상했으나 자리를 깔고 누워 생각해보니 그렇게 싫지만도 않았다. 그녀는 한동안 기다렸다. 기사는 밖에서 뭘 하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근처에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다음날 해가 뜨고 그녀가 길을 보아가며 마을로 인도했다. 녹풀 쓰석이는 보리밭에 이르자 그녀가 하룻밤 묵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청했다. 그는 거절했다.


"이만 가겠습니다. 다음부턴 조심하세요. 놈들이 점점 창궐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언제 또 올지도 모릅니다. 놈들은 사방에서 오니까요."


그녀는 안절부절 못했다. 모두가 환영할 것이니 제발 하룻밤만이라도 자고 가라 애원했으나 듣는 채도 안 했다. 그녀는 주머니를 뒤져서, 이것만이라도 가져가 달라고 아끼고 아끼던 금화 한 닢을 내밀었다. 기사는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래서 금화를 넣고 은화를 주었더니, 조금 고민했지만 유쾌히 받아들고는 집게 손가락으로 집어 흔들었다.


"하룻밤에 은화 한 닢이라니."


상투적인 농담이었다. 그녀는 울상으로 활짝 웃어보였다. 기사는 다시 돌아 걷다가 중간에 멈춰섰다. 그가 은화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곧장 다가와 늑대원숭이 앞잡이의 목에 칼을 박았다.



ㅡㅡㅡㅡㅡ



전령의 말은 명료했다. 그는 왕령 마루아에서 출발해 열흘 간 말을 달려 이곳 게헨나에 도착했다. 들르는 성마다 말을 바꿔서 빨리 올 수 있었다. 마지막 성에서 빌려준 말은 등자에 혹사당한 부위에서 피를 흘렸다. 게헨나 백작 휘하 멜서진 가문의 경주마다.


"예까지 오는데 열 흘이 걸렸습니다."


오자마자 땀을 닦으며 한 말이 그것이었다.


그 때 게헨나 백작은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허나 중요한 건 소식, 소식이다. 전령은 말하기 시작했다. 말씨는 엄중하고 단어는 신중했다. 말하는 내내 장 부당을 '왕자님'이라고, 수도의 장 마피를 '저하' 라 칭하며 그 점을 분명히 했다. 노곤한 저녁 때에 백벽의 카미엔이 왕국 최후의 종을 울렸다. 사자인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백작은 의자에 누워 묵묵히 들었다. 그의 의자는 진정 누울 수 있었다.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그 위에 온갖 솜이며 깃털 비단에 공단 다마스크 직물을 푹신하게 깔아 누워 있으면 요람에 누운 아기같았다.


"고맙소." 전령의 말을 끝맺자 그는 왼손을 배 앞에 두었다. "동생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겠군."


일단은 괜찮아보였다. 예를 차리기까지 했다. 그는 전령을 식사에 초대하고 원하는 만큼 성에서 쉬어도 좋다고 했다. 왕족의 신분으로 간청하여 수도의 소식을 몇몇 묻기도 하였다. 그러나 간촐한 저녁식사 와중,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다들 입 안에 맛있는 것을 좋게 씹고 있을 때 왕자는 음식에 전혀 입을 대지 않고 있었다. 하나둘씩 이를 깨닫고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오직 먼 데서 온 손님만이 그것을 몰랐다. 전령은 여전히 옆에 앉은 기사에게 오면서 들른 도시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게헨나 음식들은 역시 다르네요. 마루아와 차이가 있지만, 간소한 맛에도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이런 것도 좋네요. 너무 기름지지 않고 과식도 없고 딱 기분 좋은 맛을 느끼기에 좋은 정도로만 양념을 치셨어요."

"그게 저하의 음식 취향이거든요."

"저하요?" 전령은 취해서 어색하게 웃었다. 말을 할 지 말 지 고민하는 얼굴인데, 차라리 벙어리가 오는 게 나을 뻔했다. "저하께선 지금 왕궁에 계신데요? 왕비님과 함께 대관식 준비로 바쁘십니다...... 아, 누군가는 왕궁에서 그런 일을 해야 하니까요. 제 말 자체에는 동의하시죠?"


말트레는 저 불손한 전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불쌍한 놈. 오늘 안에 목이 달아날 것이다. 갑자기, 그녀가 사랑하는 둥글고 작은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메센나." 불구왕자는 취하고 말았다. 요즘 들어 그는 과음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팔에 수수한 금잔이 걸려있었다. 소문과 다른 부분이다. 왼팔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팔로 문서에 서명하고 음식을 먹고 여자를 안았다. "그 여자가 날 죽일 거야."


서자들의 갑옷이 소리를 냈다. 그들에겐 기다리던 순간이다.


말트레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누가 감히 저하를 해칠 수 있겠어요?"


창으로 밀려드는 저녁 어스름을 촛불이 막아냈다. 다들 너울에 취했는지 말석에 전령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듯했다. 동쪽은 별이 맑은 보랏빛 하늘이라 식탁을 중심으로 양쪽 벽의 창문이 각각 다른 세상이었다. 비서장은 주름진 입술에 힘을 주었다. 백작의 주정을 받는 건 그녀의 역할이니까.


"게헨나는 저하의 영토입니다. 감히 왕이라 해도 허락없이 손발을 뻗칠 수는 없는 겁니다."

"자네는 그 여자랑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르잖나."


그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장 부당과 왕비? 서로 본 적도 없지 않나? 불구왕자의 눈물이 볼을 뒤덮었다. 하녀들이 달려들어 재빨리 찍어닦고 물러났다.

장 부당은 한쪽이 늘어진 입술을 움직여 며칠 전 밀정의 보고를 들었을 때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보들보들한 리넨 천이 얼굴을 찍어내는 와중에 백작의 몸은 앞으로 굽어졌다. "그 여자가 날 죽일 거라고." 긴 식탁에 궁중 신하들이 난처한 얼굴로 눈을 깔았다. 백작의 장자인 골렛이 바로 옆에서 의기양양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가 불구왕자의 유일한 적출이고, 나머지 일곱 서자들의 대장이다.


왜 그가 여기 있는 걸까? 지금쯤 백벽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전령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 여자는 알고 있어. 바보가 아니야. 내가 살아있는 한, 장 마피의 자리가 불안하다는 걸 알아. 새끼를 지키는 암사자가 얼마나 표독한지 아오? 사자라면 내가 잘 알지. 자객이 올 거야. 자객이 이 몸에," 그는 잘 듣고 있는지 한 명 한 명 얼굴을 쳐다보며, 술잔을 든 손으로 무딘 가슴을 퍽퍽 쳤다. 하얀 비단옷, 수놓인 검은 사슴에 붉은 술이 쏟아졌다. "이 몸에 칼을 꽂으러 올 것이오, 여러분. 사자가 아니라 인간이 날 죽일 것이오."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말트레가 언성을 높혔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하,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구요?" 그녀가 불구왕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그런 여자의 칼이 게헨나 백작에게 닿을 거라 생각하시죠? 당신은 백벽의 관리자입니다."


믿을 수가 없다. 어찌 다들 가만히 있지? 모두 장 부당의 신하가 아니었나?


"그 여자가 그런 짓을 한다면 저희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둘째 서자 존 뮬렛이 이렇게 거들 뿐이었다. 백작이 듣는 시늉도 않자 그도 더 말하지 않았다.


"장 마피야 다들 좋아하겠지. 젊고 잘생겼고, 무엇보다 싱싱한 팔다리가 있으니까." 백작이 말했다. "나랑은 다르지."


불구왕자는 불행한 외팔이였다. 신은 그의 불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듯했다. 사자인이 쏜 독화살이 오른팔에 박혔을 때, 어차피 쓸모없는 팔이니 그냥 잘라버렸다. 감각없는 팔이라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 유약함을 부정하는 기나긴 여로의 끝에 참아낸 상처는 흉터로 쪼그라지고 누구보다 추하게 늙어버리는 최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백작은 늙은 이후 손거울을 자주 들었다.


"난 늙었어." 고개를 푹 숙인 백작은 흘린 술을 닦으러 온 하녀를 거칠게 밀었다. "늙었다고! ....늙은 불구는 늙은 불구지, 암. 이제 나를 두려워하는 놈은 없어. 바로 앞에서 고개를 숙일지언정 그 눈은 늙은 불구를 보고 웃는 거야." 왕자는 잔을 든 손으로 전령을 가리켰다. 술이 앞으로 쏟아졌다. "그러니 저 천한 개놈이 열흘이니 왕자니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었던 거지. 그렇지 않나? 응, 전령 양반. 자네는 나한테 포고를 하러 온 게 아닌가."

"백작님." 전령은 자리에서 튀어오르다 근처에 앉은 기사에게 잡혀 다시 앉았다. 그는 불안하게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가 감히 그럴 리가요."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단지 전령입니다. 제 말은 국왕의 말입니다."


멀리 있는 왕자에게 들리도록 말하기 위해 그는 고개를 앞으로 빼고 겸손하게 목청을 높혀야 했다. 희극이었다.


불구왕자는 한참을 노려보았다. 그의 안색이 구겨졌다. 방금 전까지 예의를 차리며 함께 밥을 씹던 사람들도, 고관 대작이며 기사들, 부유하게 차려입은 고귀한 여식들, 심지어 바닥에서 뼈를 씹던 개들까지도, 불편하게 침묵하며 그의 실수를 비난하는 고요한 표정을 지었다.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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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3화 - 네 사람을 기억하라 23.04.03 18 0 14쪽
24 22화 - 게헨나 땅에 노을이 지고 불구왕자가 목소리를 높혔다 23.04.01 26 0 18쪽
23 21화 - 무당 사는 동굴에 귀인이 찾아왔다 23.03.28 15 0 15쪽
22 20화 - 메센나 왕비가 장 마피 왕자를 꾸짖는다 23.03.26 15 0 15쪽
21 19화 - 백벽에서 온 기사 23.03.25 20 0 15쪽
20 18화 - 늑대원숭이가 심상치 않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23.03.20 21 0 17쪽
19 17화 - 백벽전사의 칼에는 사자가 있었다 23.03.10 19 0 15쪽
» 16화 - 왕궁에서 전령이 왔다 23.03.05 23 0 16쪽
17 15화 - 불구왕자는 왕궁의 소식을 듣고 앞잡이 여자는 끌려갔다 23.03.03 29 0 15쪽
16 14화 - 이 주 전에 집 떠난 청년들이 놀라운 것을 잡아왔다 23.03.03 20 0 19쪽
15 13화 - 대리 순례 갔다가 돌아온 무당이 늪주인을 만났다 23.02.28 23 0 17쪽
14 12화 - 늑대원숭이 감방 23.02.23 26 0 17쪽
13 11화 - 메센나와 장 마피 왕자가 앓아누운 존 왕을 찾아간다 23.02.21 27 0 15쪽
12 10화 - 사내가 깨어났다 23.02.19 22 0 18쪽
11 9화 - 굿판이 벌어졌다 23.02.12 23 0 16쪽
10 8화 - 옛 신을 만나고 제령은 시작된다 23.02.09 28 0 22쪽
9 7화 - 원장은 신성한 법열에 빠지고 불목하니가 황자 얘기를 꺼냈다 23.02.02 27 0 21쪽
8 6화 - 새 신과 옛 신 모두에게 기도를 드리고 원장을 뵈었다 23.01.28 26 0 16쪽
7 5화 - 장 보듬 왕자 23.01.12 24 0 18쪽
6 4화 - 메센나 왕비가 병든 남편을 찾았다 23.01.08 32 0 18쪽
5 3화 - 랑캉탱의 자크는 에카에게 꺼림칙한 일을 시키려 한다 23.01.06 32 0 15쪽
4 2화 - 웬 여자아이가 열 여덟 명의 순례객들을 데려왔다 23.01.04 29 0 16쪽
3 1화 - 방당크 순례자들, 클라르코 수도원 23.01.02 45 0 11쪽
2 프롤로그2 23.01.01 59 0 17쪽
1 프롤로그1 22.12.31 9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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