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입니다만, 성불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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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우하
작품등록일 :
2023.01.02 17:10
최근연재일 :
2023.02.2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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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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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09




DUMMY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는 한 숨을 쉬며 앞에 놓인 책을 뒤적거리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라며 탄식하던 남자는 이내 책을 덮고는 의자에 기대어 누웠다.


최석환. 그는 OO대학교의 전공 교수이자 민속학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 명성이 자자한 꽤 유명한 학자였다. 몇 남지 않은 민속학 전공의 대학 중에서도 꽤 상위에 위치하는 대학에 이름 난 교수이며, 방송이나 각종 세미나 등에 다니며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진 민속학 박사. 하지만 민속학은 다른 역사학과 등에 밀려 찬밥 신세인 그의 학문이었다. 애초에 성공을 위해 해온 학문이나 교육이 아니었기에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고 있었지만 낮아지는 대접은 점점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수직보다는 연구직에 있고 싶었던 마음이 컸지만 현실적으로 민속학을 연구만 하기에는 한국에서의 지원은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조만간 그의 민속학은 다른 학과에 편입되어 이제 학과가 아닌 고작 몇 시간짜리 과목 수업이 될 판이었다.


- 띠리리리


의자에 기대어 누워 다음 강의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그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언젠가 그가 민속 신앙을 정리할 때 도움을 받았던 무속인이었다. 시왕신녀. 인간의 죄를 묻는다는 저승의 시왕, 십대왕을 모신다는 신녀였다. 한동안이나 연락이 없었던 시왕신녀의 연락.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답답하고 일이 안풀린다고 느낄 때야 자신이 먼저 그녀에게 연락을 하거나 찾는 경우는 왕왕 있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그녀가 먼저 자신에게 연락을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네, 오랜만입니다. 만신님.”


무속에서 20년 이상 신을 모시는 혹은 가장 유명하고 인정받는 자를 지칭하는 만신. 물론 시왕신녀는 질색을 하며 자신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지만 그 나름대로의 존중이자 존경의 표시였다. 제대로 된 무속인이야 많다고 하지만 그가 본 이들은 죄다 사기꾼들 아니면 신이라 부르기 민망한 잡귀 들이 붙은 무속인들이었다. 그러던 중 만났던 것이 그녀였다. 굿판에서 벌어지는 그녀의 대무를 보고는 마음이 편안해지며 그때 이후로 꼬였던 일들이 조금씩 풀려가는 기분이었다. 주변에서는 홀린 것이라 말하기도 하였지만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일이 잘 된다고 믿는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흘려듣고 있었다.


- 또또 만신이라 그러네. 자네한테 그렇게 들을 때마다 비웃는 것 같은 기분이야.


“그럴리가요. 존경해서 그럽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 아, 다름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지역에 토속신이 있는데, 이 신에 관한 자료 좀 찾아 줄 수 있겠나? 달애기씨라고 원래 인간이었다가 신격을 얻은 인신(人神)이라네.


“아... 네. 자료 좀 뒤져보면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시왕신녀의 말에 석환은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에 ‘달애기씨’ ‘토속신’ ‘인신’ 이라고 적었다.


- 일이... 있기는 있네만... 함부로 얘기하기 어려운 거라... 나중에 일이 다 끝나면 내 만나서 얘기해 줌세.


“알겠습니다. 자료 양 보고 양이 좀 많다 싶으면 제가 정리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 바쁜 교수님인데 그럴 수야 있나. 그냥 택배나 우편으로 보내면 되지.


그저 자신의 제를 보고 싶다고 하기에 위령제와 한 마을의 제를 지낼 적에 참관을 한 적이 있는 석환에게 부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시왕 신녀였다. 그런데 직접 가져다 준다는 말에 그를 만류하고 있었다.


“교수라는게 해보니까 생각보다 안 바쁘네요. 과도 특이해서 인지 수업이 많지도 않고 전공에 교수가 많은 것도 아니라 딱히 사회생활도 없고, 수업 준비나 시험 채점도 전부 조교들이 맡아서 하고 있고.. 지금도 낮잠이나 잘까 하던 중이었습니다.”


시왕 신녀의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석환은 단순하고 무료한 대학의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뭣 모르는 새내기나 대학생 들이야 수업이며 시험이며 동아리, 술자리 등으로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테지만 석환에게는 그런 것들은 이제 재미가 사라질 나이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민속학, 그 중에서도 민속 신앙에 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롭고 재밌는 일이었기에 그녀의 이번 부탁이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 배부른 고민이구만...


“그러게요.. 교수 되기 전에는 시간 강사로 시간 채우고 논문 제출해서 박사 학위 받고 교수 임용되려고 또 논문써서 평가 받고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하고 빌었는데, 이제는 12시간만 되도 충분할 것 같네요. 하하... 그... 지금 계신 지역이 OO군 이었던가요?”


- 그래, 맞네. OO군 사온리 쪽에 달애기씨라고 토속신이 있어. 그 토속신 관련하고 사온리쪽에 관련해서 신에 관한 자료라던가, 민담이라던가 그런 것들 좀 부탁함세. 그리고 최대한 빨리 좀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 되는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전화를 받기 전 세상의 무료함을 다 가진 표정에서 이제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 되었다. 달애기씨라.. 신에 관한 일인가?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무료한 일상에 재밌는 일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재나 뒤적거리던 지겨움은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는 시왕신녀가 말했던 자료를 찾기 위해 오랜만에 학교를 벗어나 외출을 하기로 결심했다. 학교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는 한정적이었으며, 특히나 무속신앙에 관련 된 것들이라면 더더욱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담당 전공 하는 과목이 민속 신앙이라 할지라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위주라 별다른 연구소는 없었기에 자료는 지극히 학생들 위주로 한정적이었다. 별 생각없이 한국에서 가장 크고 자료들이 모여 있다는 박물관에 가기로 결심한 그는 나가려던 몸을 멈추고 자신의 일정을 확인해 보았다.


“아.. 이런.”


오늘은 수업이 있는 날. 두 시간짜리 강의와 한 시간짜리 강의. 이를 끝내고 나면 오늘 하루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음 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긴급 휴강을 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지만, 세시간이면 추후 보충을 하기도 만만치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온라인으로만 찾아 보는 것으로 하고 다음 날 움직이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진석과 유성은 마을에서 사당에 관한, 달애기씨에 관한 조사를 하고 다녔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워낙 오래전에 내려 오던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곳에 사당이 있는 것과 가끔 마을 사람들이 찾아가 치성을 드리는 정도의 사당. 마을의 희노애락이 있을 때에 공물을 바치는 정도는 아주 예전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따로 행사를 지내지도 않았으며, 행사에 절차나 법도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산에 돌탑을 쌓고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그저 마음 내킬 때 찾아가서 과일이나 떡 등의 공물을 올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넋두리나 하듯 혹은 기도를 하듯 찾아가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찾아 낸 거라고는 부여 사람이고, 원래 인간일 적에 애기씨라고 불렸던 연씨부인, 달이 뜨는 밤에 사당에 나타나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쪽으로 일이 풀리도록 축복을 준다 정도네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나 된다면 각종 기록이라도 남아 있을 테지만, 한 마을의 그저 토속신일 뿐인 달애기씨에 대해서는 마을 사람들도 아는 바가 없는 듯 했다. 진석 역시도 이 곳에서 십년이 넘도록 경찰을 하고 있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나머지는 죄다 전에 들었던 거랑 똑같은 내용이고... 이렇게 마을 사람이 없어진 적도 한 번도 없다고 하니 그것 참...”


이전에도 달애기씨라는 이름이 나온적이 있어서 그때 듣고 적었던 수사 내용과 별 차이도 추가된 내용도 없었다.


“방금 나온 그 집이 이 동네에서 제일 뭐라고 해야 되냐? 명문가? 뭐 그런거 맞냐?”


“네, 종가 중에서도 대종이고 대략 600년 정도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집 안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크다는 가문의 집. 크고 오래되다보니 전해오는 이야기도 많을 것 같고, 기록된 것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방문을 했지만 역시나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사라진 황철호의 집이 대대로 무언가를 많이 보고 듣고 알았으며, 기록이나 문화제도 몇 점 가지고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이 있었지만 그가 바로 사라진 당사자였기에 문제였다. 아직 가택 수사 허가가 나오지 않아 함부로 그 집에 가서 수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종가는 개뿔... 뭐 아는 것도 없구만... 에효... 이제 해 지는데... 더 파면 뭐 나올 게 있으려나.. 그냥 집에나 갈래? 어차피 여기 있어봐야 우린 할 것도 없는데..”


“반장님 연락 오면 어쩌시려구요.”


“몰라, 지금 반장이 무섭냐? 나는 귀신이 더 무서워. 그리고 도대체 잠복근무를 어디서 할거며 뭐를 보려고 할 건데? 보름도 지났고, 지금 뻔히 사람이 아닌게 보이는데 어디서 어느 집에 누가 없어 질 줄 알고 그걸 잠복근무를 하는건데.”


“....”


진석이 말한대로 잠복근무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곳에서 혹은 특정 범죄자가 나타날 것 같은 곳에서 사건을 미리 막던가 범죄자를 체포한다던가 하는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범죄자는 나타나면 오줌부터 지릴 판이었으며, 이미 사당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은 죄다 없어진 뒤. 게다가 무슨 연유인지 실종 사건은 항상 보름에 일어났고 지금은 이미 보름이 넘은 시점이었다. 자신이 있는다고 없어질 사람이 안 없어진다?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범인을 체포? 그건 더더욱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형사아닙니까? 그냥 집에 가요?”


“그래서 너랑 나랑 잠복근무를 일주일을 하고, 무당도 찾아가고 사당도 가보고 했잖아. 우리가 지금은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차라리 가서 좀 쉬고 그 신녀인가 선녀인가 하는 무당이랑 같이 와서 힘내서 조사를 해야 뭐가 나와도 나오지. 그 보름에 우리가 본 거 빼면 우리 보고서에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하냐? 사건 수사 특이 사항 없음, 탐문 결과 정보 없음... 계속 똑같은 말만 쓰고 쓰고 쓰고. 맨날 욕이나 먹고. 야 시발 그거 오늘도 또 쓰면 그건 욕 안 먹겠냐? 써도 욕먹고 안 써도 욕 먹을 거면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욕 먹을란다.”


유성은 더 이상 진석을 말릴 재간이 없었다. 유성이 하는 말도 도의적으로 그리고 직업적으로 본다면 맞는 말이었지만, 진석의 말도 현실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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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4장. 백일초(百日草) - 02 23.02.14 28 1 11쪽
62 4장. 백일초(百日草) - 01 23.02.13 37 1 11쪽
61 2부. 프롤로그 23.02.08 41 2 8쪽
60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에필로그 +2 23.01.30 51 3 10쪽
59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23(完) 23.01.30 4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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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21 23.01.26 48 4 11쪽
56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20 <수정> 23.01.25 5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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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18 23.01.23 52 3 11쪽
53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17 +2 23.01.20 53 2 11쪽
52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16 +2 23.01.19 67 3 12쪽
51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15 23.01.18 51 3 10쪽
50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14 23.01.17 6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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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11 23.01.15 55 3 11쪽
46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10 23.01.15 50 2 16쪽
» 3장. 삭월(朔月) ː 달이 지는 밤 - 09 23.01.14 64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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