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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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월N휘서
작품등록일 :
2023.01.08 20:42
최근연재일 :
2023.01.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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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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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에스테르 영지(2)

-




DUMMY

“설라님, 히나님. 이제 시장은 많이 보셨으니··· 광장으로 가서 조금 쉬시죠.”


디마일로가 갑자기 말을 걸어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러고 보니 다리가 좀 아픈 것 같기도 하고요.”

“광장 쪽에 벤치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모로 감사해요, 디마일로님.”

“아닙니다.”


어딘가 딱딱하고 선을 긋는 태도 속에 부드럽게 상대를 신경써주는 것이 느껴진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벤치 위에 살포시 깔아주며 우리를 본다.

상관이랑은 180도 다르네.


“이 쪽으로 앉으시지요.”

“와, 재밌다! 그런데··· 우리 벌써 돌아가요?”


히나가 아쉬운 얼굴을 하며 디마일로에게 칭얼거렸다.


“그건···음.”


그 때, 디마일로의 어깨에 달려 있던 브로치에서 빛이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그저 장식인줄 알았으나 저것도 마도구였나보다.

마나라는 것으로 움직인다고 했던가? 디마일로가 마차에서 히나에게 뭐라 이야기해줬던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마도구가 전방위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았다.


디마일로가 브로치를 빼서 잠깐 바라보았다.

뭔가 연락 같은 게 온건가?


“아, 이런. 혹시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네!! 얌전히 있을게요!”


히나가 당장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쁜지 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다녀오세요.”

“혹시 모르니 돈이 필요하면 이걸 사용하십시오.”


그는 내 손에 주머니를 쥐어주고 목례하더니 시장 반대 편 방향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살짝 열어본 주머니 안에는 금색과 은색으로 빛나는 동전들이 몇 개 들어있었다.


“와··· 신기하네.”


이 곳에서 사용하는 화폐인 것 같았다. 관광지에선 역시 소매치기를 주의 해야겠지?

주머니를 손에 꼭 쥐고 벤치에 앉아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는 하늘을 쳐다보는 내 입에 무언가 들어왔다.

시원한 달달함이 입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히나? 이게 뭐야?”

“사탕인 것 같아! 아까 샀는데 특이한 맛이 나서. 설라도 맛있지?”


히나가 입가에 잔뜩 소스를 묻히고 베시시 웃고 있었다. 그런 히나의 입가를 닦아주려고 손을 뻗으려 할 때 였다.


“쨘!”


어디선가 손수건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예쁜 누나들!!! 이곳 에스테르에 관광을 오셨나요?!”


손수건을 내밀었던 이는 다름아닌 9살이나 10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였다.

낯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다니. 당차다고 해야하나?


“헤헤···저는 라히드라고 해요!!! 이 곳 에스테르 관광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데!”


멋쩍게 웃으며 투어리스트를 자처하는 꼬마가 우리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단돈 1골드에! 에스테르의 필수 관광지와 안내를 도와 드리겠습니다~ 예쁜 누나들이니까 엄청 싸게 해 드리는거라구요!”


돈에 대한 감각이 없으니 비싼건지 적정한 가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거절하려고 했으나, 히나가 어느 새 라히드라는 아이가 내민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이런.


디마일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가 돌아오기까진 좀 걸릴 것 같고···


“설라아··· 우리 가보자아. 금방 돌아오면 되잖아!”


나도 이 새로운 세상을, 이 주위를 더 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대담하고 당돌한 꼬마를 향해 주머니에서 꺼낸 금색의 동전 한 개를 건넸다.

내 주머니는 아니지만, 필요하면 쓰라고 했으니 괜찮겠지?


“감사합니다, 누나들!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다행히 맞았는지 꼬마는 얼른 챙겨 넣으며 우아한 귀족처럼 한쪽 손을 어깨에 대어 인사하고는 설명을 시작하였다.


“우선 이곳은 엘테르 광장이에요!! 그리고 누나들 뒤에 있는 이 분수는 트리아 분수인데, 예전에 세피엘 여신이 있었을 시절에는 아주 아주 멋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꽁꽁 얼어있지만···.어째서인지 마도석이나 마법으로 아무리 녹여도 저 얼음들이 녹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물동이에서 흘러 나온 물은 꽁꽁 얼어 흐름을 멈춘지 오래된 듯 했다.

보통 광장에는 하나씩 있는 장식인데다가 겨울이다보니 당연히 얼어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분수대 중앙에는 두 명의 여인이 앉아서 물동이를 부어주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분수대에 물이 흐르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반짝이는 물결들과 우아하게 흐르는 물줄기···

어쩐지 느긋하게 관광을 나온 기분이 되어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자, 저 쪽으로 올라가면 수호의 유적이 있어요. 유적이라고 하기엔 조금 초라하긴 하지만···”


라히드는 광장에서 조금 벗어난 다른 길로 안내했다.

여기저기 마모된 돌로 이어진 곳이 이어지더니 꽤 오래된 로봇같은 것들이 마치 시동이 꺼진 것 처럼 앉아 있었다.

이것도 마나석으로 움직였던걸까?

마치 운영을 멈춰 폐허가 된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굉장하죠?? 아주 오래전엔 이 골렘들이 움직이면서 마물로부터 마을을 지켜줬대요! 움직이면 좋겠지만··· 이것도 마법사들이 여러가지로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 움직이지 않는대요.”


라히드는 골렘에 살짝 발길질을 했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고장난 안드로이드가 널려있는 것 같이 보였다. 여기저기 부서진 잔해들도 많았다. 연구를 나름 했다고 하더니 분해해서 여기저기 옮겨간 모양이었다. 온전한 모양들은 거의 없었으나 남아있는 골렘들의 머리는 어딘가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어딜···보고 있는거지?"

“설라, 저기 봐. 저기, 여신님인가봐!”


히나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분수대에서도 보았던 여인의 석상이 있었다.

옷자락이 하늘하늘 날리는 듯 표현이 되어있는 섬세한 조각상이었다. 여신의 등 뒤로 동그란 구체들이 떠다니는 듯 보였고, 손에는 유리구슬 같은 것을 아주 소중하게 들고 있었다.


이 골렘들은 석상을 지키고 있었던 걸까?


“세피엘 여신의 손 위에 저건 모야?”

“저도 잘은 몰라요. 하지만 아프거나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주시며 북부를 지켜 주셨다고해요”


보통 신화란 것은 오래 구전되다 보면 실체를 알 수 없거나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만 남고는 해서 무엇이 진실인지 판가름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구체적이라는 것은 아마 실제 있었던 이야기거나. 아니면 실제로 있었던 사람을 여신으로 추대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와, 신기해! 여기 사람들은 세피엘 여신을 모두 좋아하나봐.”


내가 나름대로 납득하는 동안 히나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야 당연하죠! 이 곳 북부를 지켜주신 여신님인걸요?”


라히드는 여신의 석상 앞으로 다가가 올려다 보며 이야기하였다.


“어른들이 이야기 해주셨는데, 세피엘 여신님이 계시던 시절에는 여기가 남부만큼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이였대요. 저기 왕님이 계시는 수도보다 더요. 신께서 그 분을 데려가시기 전 까지는···”

“데려가다니?”

“아폴루아 신님이 여신님을 너무 사랑해서 하늘로 불렀대요.”

“우아··· 사랑?!!! 아폴루아는 로맨티스트야??!!”


라히드는 다소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하였지만, 히나는 사랑이야기에 설레보였다.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왕자와 공주의 러브스토리 영향일 것이다.

아무래도 히나에게 들려 줄 다른 이야기책을 여기서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글쎄요.. 세피엘 여신님이 아폴루아 신에게 돌아가고 난 후에··· 북부는 이렇게 추운 곳이 되어버렸다고 해요.”


조금 풀이 죽어보이더니 라히드는 곧 눈을 반짝이며 금방 기운을 차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에요! 며칠 전에 그 빛 보셨나요?”

“빛이라니?”


어리둥절해진 내가 되물었다.


“저기 북쪽 숲 끝에서 빛이 번쩍이고 땅이 막 이렇게 쾅쾅 울리는데, 다들 아르미스님이 나타날 징조라고 했어요! 여신님이 나중을 위해 자신의 조각을 남겨주신다고 하셨거든요. 근처 숲에서 엘로아 열매를 수확하는 아주머니나 아저씨들도 다들 기다리시는데, 언제 오실까요?”


나는 그제서야 디마일로가 하던 말을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세계수가 빛이 나던날 우리들이 나타났으니, 그들이 기다리던 존재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북부에 봄을 가져오고 자신들을 돌봐 줄 존재.


지배자를 신격화하여 권력을 강화하는 등의 신화에 대한 논문들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믿는 사람들은 없었다.

있어도 관광 명소의 가치 때문일 뿐.

신에게 기대도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

이건 아이들이나 보는 동화책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광신도 놈들이 한 두명이 아니구만.

터무니 없는 것을 바라는 이들을 보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라히드가 이야기해 주는 근처의 맛 집도 몇 곳 기억해두며 이끄는 방향으로 걸어가다보니 아까 출발했던 광장이 보였다.

다리가 다시 아파오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많이 걸어다닌 것 같았다.


“누나들! 이제 다 왔어요. 어때요? 만족스러우세요?”

“응. 고마워, 라히드. 고생했어.”


라히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써 어른스럽게 행동해도 칭찬을 바라는 것이 귀여운 꼬마아이였다.


“그럼 누나들, 저기로 가면 아까 만났던 광장이에요! 저는 이제 갈게요!”

“라히드!!! 다음에 또 봐아! 놀러올게!"


그새 정이 들었는지 히나가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다.


아까 디마일로와 헤어졌던 자리로 서둘러 향하니 아니나 다를까, 타고 왔던 마차 옆에서 디마일로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검을 허리에 찬 남자 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디마일로?”

“설라님, 히나님! 걱정했습니다.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아···그게, 조금 둘러 보고 싶어서요.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나요?”

“아닙니다. 안 계셔서 걱정했습니다. 자네들은 수색 명령은 취소해주게.”

“이 아가씨들이신가요? 무사히 찾아서 다행입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의 걱정어린 호박색 눈빛을 보니 약간 좀 미안해졌다.


“저 사람들은 누구에요?”

“이 영지를 순찰하는 경비대입니다. 혹시 큰일이 생기면 어떡하실 뻔 했습니까. 다음부터는 이렇게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두 분은 신분증명서도 없으시고 혹시 나쁜 마음을 먹은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모하셨습니다. 물론 경비대가 있어서 치안이 나쁘진 않지만···정말 걱정했습니다.”

“디마일로님, 죄송해요··· 내가 가자고 했어요.”


히나가 시무룩해져서 사과했다.


“별 일 없이 돌아오셨으니 다행입니다. 곧 해가 지니 돌아가시죠.”


디마일로가 마차의 문을 열며 이야기했다. 추운 곳이라 그런지 해는 빠르게 저물었고 깜깜해진 길을 달렸다.

나는 주저하다가 물었다.


“디마일로님, 혹시··· 정말 저희가 아르미스라고 믿으세요?”

“물론입니다.”

“만약..아니라면요?”

“어떻게 그런말씀을 하십니까. 두 분이 아니면 누가 아르미스겠습니까? 혹시 저를 시험하시는 건가요, 설라님?”

“하하,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그의 확고한 대답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새 창에 기대어 잠든 히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장은 아르미스임을 증명 하라거나 하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아니, 생각보다 빨리 이 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머물렀다고 벌써 정이 든 걸까.


떠날 준비를 해야겠지.

캄캄해져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바깥의 풍경이 마치 내 마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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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에스테르 영지(2) 23.01.09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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