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황제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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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고라니01
작품등록일 :
2023.01.0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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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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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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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암살 (1)

DUMMY

1)


콘스탄티노플 하기아 소피아 성당.


콘스탄티노플의 대표적인 성당인 만큼 성당은 꽤나 크고 넓었다. 워낙 크고 넓은 덕에 어딘가 으슥한 공간이 생긴다. 그런 공간은 당연히 은밀히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접촉하는 공간이 되기 마련이다.


지금도 그렇다. 으슥한 곳에 있는 어두운 방. 그 곳에서 두 사람이 비밀리에 만나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은 놀랍지 않은 인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테오도시우스였다. 성직자인데다가 총대주교. 총대주교좌 성당인 그 곳에 그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뜻밖의 인물이었으니...


“어서 오시오. 대군주. 내 초대를 거부할까봐 걱정했는데 안 그래서 다행이구려.”


그 인물은 총대주교와 사이가 썩 좋지 않다고 알려진 대군주 알렉시오스였다.


“허허. 총대주교 예하의 초대를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대화는 일단 화기애애하게 시작했다. 다만 이것은 남들이 본다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할 광경이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세간에는 두 사람이 사이가 안 좋다고 알려져있었으니까.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본래 섭정단의 수장으로 대군주 알렉시오스가 내정되어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선제는 죽기 직전 갑자기 섭정단 수장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교체하였다.


대군주는 그 명령에 복종하였다. 하지만 다들 대군주가 속으로 앙심을 품고 있지 않겠냐고 수군거렸다. 일부는 총대주교가 권력욕에 사로잡혀 황제를 위협, 혹은 회유해서 결정을 바꾸었다고 비방하기도 했다. (사실은 다들 알다시피 어린 황제가 한 일이었지만)


거기다가 곧 두 사람이 충돌하기까지 했다. 헝가리의 군사행동을 두고 대군주가 양보안을 제시하고, 총대주교는 강경안을 제시했다. 거기다가 안드로니코스 처벌문제까지 터지며 두 사람은 팽팽히 맞섰다. 그래서 다들 두 사람의 갈등이 곧 폭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총대주교가 유리해보였다. 헝가리 문제에서 총대주교가 주장한 강경안이 통과되었고, 안드로니코스 처벌 논란에서 총대주교를 지지하는 유력 인사들이 좀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안드로니코스의 음모가 실제로 밝혀지면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총대주교는 졸지에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고, 그를 편들었던 테살로니키의 카이사르 요안네스 등은 바로 어린 황제 앞에 엎드려 깨깽거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만 이렇게 되었다고 대군주 알렉시오스가 엄청 유리해진 것도 아니었다. 안드로니코스의 음모 적발 및 반란 진압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어린 황제 알렉시오스 2세였으니까. 더 골치아픈건 주목을 받은 이유가 그냥 황제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황제 본인과 그 측근 나우티코스가 보인 놀랑누 활약 때문이란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제 총대주교 예하와 다른 분들이 대장간을 가봤다고 하더군요. 그 곳이 무척 크다고 들었는데 거기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무엇이라... 세상을 바꿀 것들을 보았지요. 정말 놀라운 것들이었소.”


총대주교는 아직도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라운 것들이라니요?”


“성벽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 그 무기를 축소해놓은듯한 갑옷을 한방에 뚫어버리는 불 뿜는 막대, 그리고 기존의 것보다 더 단단하면서 많이 만들 수 있는 강철까지. 세상을 뒤집어버릴 것들을 보았소이다.”


“마치 꿈 같은 이야기로군요. 가보지를 못 했으니 이거 할 말은 없습니다만. 말씀대로면 이제 로마는 걱정이 없겠군요.”


대군주도 자신이 지금 뭘 들은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상대가 총대주교가 아닌 어디 시정잡배였다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일갈했을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고결한 성직자이니 저 말을 거짓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소이다. 놀라운 일이지. 허나 진짜 놀라운 일은 따로 있소이다. 뭐. 그대라면 짐작했겠지만...”


“그 대장간을 비밀리에 만들고 운영하신 분이 황제폐하라는 거겠군요.”


“그렇소이다. 놀라운 일이 아니겠소? 그렇게 어리신 분이 그런 생각을 다 하시고 그걸 은밀히 운영하시다니 말이오.”


대군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총대주교의 말대로 순식간에 말도 안 되는 발명들을 해내는 대장간. 그런 곳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고 그것의 운영이 어제까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진짜 희한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폐하께서 점점 무서워지는군요.”


대군주가 총대주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테오도시우스 총대주교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더 고개를 낮추고 목소리를 깔았다.


“그래서 말인데... 대군주. 허심탄회하게 물어보겠소이다. 그대는 이번 안드로니코스 사건에 분명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소. 혹시 그 배후가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민감한 질문. 대군주 알렉시오스는 이 질문의 위험성과 심각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주변에는 확실히 아무도 없는 상황. 거기다가 총대주교 본인부터 자기를 이 문제 때문에 불렀으리라.


그렇기에 대군주는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우티코스. 황제 폐하의 심복인 그 자가 선제께서 붕어하시기 직전 장기 휴가를 갔었지요. 그가 돌아온 뒤에 일련의 사태가 터진 걸 생각하면 그가 연관되어있을 것입니다.”


“틀린 생각은 아니오. 허나 나우티코스는 황제 폐하의 심복이지만 일단 신분은 호위병. 그렇게 장기 휴가를 신청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소?”


대군주는 총대주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총대주교가 의문스럽게 보는 것은 자신도 이상하게 보던 부분이었으니까.


“맞습니다. 저도 그게 이상했습니다. 폐하께서 믿으시는 호위병이 그리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좀 이상하지요.”


“그래서 말이오. 내 생각인데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황제 폐하가 계획한 것이 아닐까 싶소이다.”


“뭐...뭐요? 지금 그게 무슨!!!!!!”


“자자. 진정하시오. 자리에 앉으시고 목소리 낮추시오.”


대군주는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지르며 펄쩍 뛰었다. 총대주교는 그를 진정시키며 타일렀다.


“후우. 너무 이상한 소리입니다. 황제 페하께서 모든 걸 꾸미시다니요. 그 안드로니코스를 비판하던 괴벽보와 궁정 앞에서 시위하던 백성들, 가짜 코 녀석의 체포 같은 일련의 사안들 모두 어린 분께서 하시기는 좀 힘들지 않소이까.”


“그 말이 상식적이기는 하지요. 허나 가짜 코가 체포됬던 일을 다시 생각해보시오. 그 날 회의장에서 가짜 코를 끌고 온 건 황제 폐하 본인이셨습니다. 분명 대군주께서도 그 날에서야 가짜 코가 체포됬다는 것을 안 걸로 압니다만.”


“그건 그렇지요. 저도 그 날 폐하께서 놈을 끌고 오는 걸 보고서야 알았지요.”


대군주는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 방금 말한대로 대군주가 가짜 코가 체포된 걸 안 건 그 날 아침이었으니까. 그는 가짜 코와 관련된 어떠한 지시도 내린 적이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가짜 코를 체포한 건 황제 폐하의 심복 나우티코스였소. 함정을 파놓아 놈을 소환한 후 그대로 체포했다더군. 그대도 알다시피 나우티코스는 일개 호위병이오. 그런 자가 고관을 비밀리에 체포하는 대담한 짓을 단독 기획하기는 힘드오.


그래서 난 분명 거물급 뒷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오. 그리고 대군주 그대가 아니라면... 소거법적으로 황제 폐하밖에 남지 않소.“


총대주교의 놀라운 추리. 대군주도 그의 추리가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추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그 어린 군주가 그런 엄청난 짓을 했다는 것을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벽보들을 대량으로 찍어낸 것은 어떻게 설명하시려고 그러시오? 그 벽보는 아무리 봐도 너무 많이 찍혔소이다.”


“그 대장간. 대장간이 좀 이상하오. 온갖 기발한 물건들이 거기서 만들어졌소이다. 폐하께서 대포라고 부르던 물건이나 총통이라 부르던 무기, 강철... 벽보를 대량으로 찍어낼 물건쯤은 분명 가능할 것이오. 인쇄술이 이미 존재하니 인쇄술을 어떻게 했다면 설명이 될 것이오.”


총대주교는 대군주의 의문에 그럴듯한 추론을 바로 내놓았다. 이렇게까지 되니 대군주 알렉시오스로써도 테오도시우스 총대주교의 의견에 동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말이 맞는 듯 합니다. 헌데... 그럼 좋은 일 아닙니까? 황제 폐하께서 총명하시고 국정에 대한 의욕도 있으시다는 뜻 아니오?”


총대주교는 그 말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틀린 말은 아니오. 허나 난 걱정이 됩니다. 폐하의 행동이 기발하고 대단하긴 합니다. 거기다 총명하시기도 하고요. 그러나 대군주의 말대로 그 분은 아직 어린 아이요. 그런 분이 벌써부터 저러면 남들을 무시하고, 마음에 안 들면 쉽게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오만하고 잔인해질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총대주교의 말은 정론이었다. 대군주는 그 의견에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총명함과 행동력은 분명 장점이었다. 허나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하는 고도의 정치기술이라는 건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안드로니코스야 그 전에 지은 죄도 많았고, 진짜로 역모를 꾸몄으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매사 이런 식이면 억울한 사람이 생겨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 식으로 사람 하나 제거하려고 하시는 일은 다시 없게 막아야하지요. 암.”


“그리고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오. 이번 일로 민중들의 정치적 참여욕구가 커질 수도 있소이다. 근 100여년간 억눌러져있던 것이 말이오. 그것이 한꺼번에 터져나왔을 때의 문제점은 대군주도 잘 아리라고 있소이다.”


그랬다. 그것도 문제였다. 콤니노스 황조가 건설된 이래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막혀오고 있었다. 그동안의 황제들은 이것을 교묘하게 억눌러오고 달래오고 있었다. 허나 이번 안드로니코스 사태는 여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는 시민들의 적극적 정치참여 욕구가 터져나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도 확실히 골치아픈 일이 될 것 같습니다. 허나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다 좋은데 총대주교 예하의 말은 추론일 뿐이지 증거가 부족해요.”


“증거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요. 해서... 정면으로 돌파해볼 생각입니다.”


“정면으로 돌파하다니요.”


“조만간 폐하께 직접 여쭤볼 생각입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결코 동의할 수 없군요.”


대군주 알렉시오스는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허나 이미 총대주교의 결심은 꺾을 수 없었다.


“내 결심은 이미 섰습니다. 폐하께 직접 여쭤보고 인정하시든 아니든 내 직접 다시는 그런 방식은 쓰지 말라고 간언할 것입니다. 내 그것을 말하려고 대군주를 불렀습니다.”


총대주교의 고집은 황소고집 그 자체였다. 하긴 선제 생전에도 선제의 개종 정책에 정면으로 들이받았던 사람이었다. 그 고집을 고작 대군주 따위가 꺾을 수는 없다.


휴우


대군주 알렉시오스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주먹을 굳게 쥐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저도 함께 하지요. 당장 내일 합시다. 내일 회의가 끝나면 그 때 한번 간언을 같이 합시다.”


“고맙소이다. 대군주. 내 솔직히 그대를 견제했었지만 오늘에서야 그대에게 다른 마음이 없는 걸 알았습니다.”


테오도시우스 총대주교는 알렉시오스 대군주의 손을 굳게 쥐며 감사를 표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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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화. 빌어먹을 악몽 (1부 完) +4 23.06.08 569 21 12쪽
94 93화. 악연이 끝나다 (2) +4 23.06.07 524 18 13쪽
93 92화. 악연이 끝나다 (1) +3 23.06.06 420 18 13쪽
92 91화. 카리스토스 해전. +3 23.06.05 424 19 12쪽
91 90화.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4) +3 23.06.03 421 23 12쪽
90 89화.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3) +2 23.06.02 397 19 12쪽
89 88화.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2) +2 23.06.01 471 21 13쪽
88 87화.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1) +1 23.05.31 406 15 11쪽
87 86화. 나비효과 +3 23.05.30 411 14 12쪽
86 85화. 폭풍전야 +2 23.05.29 376 21 11쪽
85 84화. 지연전. +4 23.05.27 435 20 12쪽
84 83화. 코인 +4 23.05.26 414 24 13쪽
83 82화. 전쟁의 시작 (2) +1 23.05.25 422 21 12쪽
82 81화. 전쟁의 시작 (1) +2 23.05.24 429 22 12쪽
81 80화. 주사위는 던져졌다. +2 23.05.23 438 20 12쪽
80 79화. 밀과 가라지를 걸러낼 시간 +2 23.05.22 554 19 12쪽
79 78화.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3 23.05.21 507 20 12쪽
78 77화. 잠깐의 휴식 +4 23.05.20 519 22 12쪽
77 76화. 예루살렘과 시칠리아 (2) +2 23.05.18 476 23 12쪽
76 75화. 소소한 변화 +3 23.05.16 511 20 12쪽
75 74화. 예루살렘과 시칠리아 (1) +2 23.05.14 534 24 14쪽
74 73화. 천상의 왕국 (2) +3 23.05.13 530 21 13쪽
73 72화. 천상의 왕국 (1) +5 23.05.11 546 20 12쪽
72 71화. 원로원과 민회 (6) +2 23.05.09 525 19 12쪽
71 70화. 원로원과 민회 (5) +2 23.05.07 538 23 11쪽
70 69화. 원로원과 민회 (4) +3 23.05.06 526 22 12쪽
69 68화. 원로원과 민회 (3) +4 23.05.04 554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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