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에서 온 사람
이정이 냉막한 분위기에 머뭇거리다 은검중년검수의 앞에
나갔다.
그러자 그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이정의 팔목 완맥을
갈쿠리 같은 손으로 벼락같이 움켜잡았다.
야윈 몸매였으나 일어선 키가 이정보다 머리 하나 정도 컸
다.
“윽!”
갑자기 잡힌 팔목을 통해 느껴지는 고통과 팔목을 타고 흘
러들어오는 강한 진기에 혈맥이 터질듯 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이정이 신음소리를 내며 물었다
“무슨... 짓이오!”
이정이 팔목과 몸조차 꼼짝 못한채 억지로 입을 열었으나,
은검검수는 표정의 미동조차 없었고 이정의 눈빛과 몸내외부의
반응을 냉철히 살피는 듯 했다.
낯선 진기가 어느새 이정의 심장까지 관통하고 있었다.
“근골은 허약하고 내공은 텅빈 수레 같다. 무공 역시 익히지 않았군”
은검검수가 그제야 팔목을 놓아주었다.
이정의 내력을 살핀 것이다.
이정이 무림인들이 괴팍하다고 알고 있었으나 일언지하의
사전말도 없이 그를 다룬 것에 화가 났으나 손님이었다.
그로서는 어쨌든 참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은검검수가 방금 전의 무례함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
의 기색조차 없이 오히려 호통을 쳤다.
“앞으로 뒤에서 다가올 때는 발걸음 소리를 죽이지 말아라. 그
리고 적어도 10장 밖에서 먼저 인기척을 내고 얼굴을 보지 못
해도 고개를 깍듯이 숙이고 큰소리로 인사를 해라. 그러지 않
으면 잘못 이 어르신의 말을 쥐새끼 같이 훔쳐듣는 줄 알고 눈없는
검날에 목이 달아날 것이다”
물론 이정의 발걸음 소리를 금검보의 고수들이 놓치지 않겠
지만 미리 억박을 지르는 것이다.
“그리고 본 어르신의 명호는 추혼수사이니 머릿속에 잘 새겨
두어라. 그리고 어르신들이 부르면 적어도 다섯 셀 동안 바로
달려올 수 있는 거리 내에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다리없는 앉은뱅이가 될 것이다”
추혼수사의 말을 빌면, 이정은 벌써 머리가 없고 양 다리도
없는 시체가 되어 있었다.
본가인 남궁세가 무인들이 본래 오만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
나, 그래도 형제같이 가깝다는 금검보 무인들도 이렇게 횡포를
부리는 것에 이정이 결국 참지 못하고 분한 소리를 했다.
“소생이 비록 추혼수사님 같이 훌륭한 무인은 못되나 본장원
의 하인이 아니고 나름대로 정원사로 채용된 고용인이오. 그리
고 장주님에게 본장의 귀빈들을 시중들기로 명령받았지 이렇
게 눈앞에서 하인 취급당하며 수모를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은검검수 추혼수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날카로운
눈을 부릅뜨며 꾸짖었다.
“이놈, 무엇이라고! 하인이나 정원사나 무슨 큰 차이가 있느냐!
이 어르신네들이 생명을 걸고 돈을 벌어다주면 네놈들은 그에
맞게 몸을 자라새끼같이 움츠리고 시키는데로 하면 되지 감히
어디다 대고 말대꾸냐! 내 오늘 네놈의 못된 버릇부터 이집 어
른들을 대신하여 고쳐주마”
그리고 그가 커다란 손을 들어 이정의 면상을 막 내리치려
할 때였다.
갑자기 심유한 경력이 그의 손속을 막았다.
황포노인이 소매를 떨쳐 보이지 않는 경력이 은의검수의
손속을 저지한 것이다.
“그만 두어라. 우리가 보주님에게 받은 지시가 백화장원과의
관계에서 본장의 실력을 확실히 각인 시켜주라 했지 그렇게
첫날부터 굳이 시중드는 사람을 때려가며까지 서둘 필요는 없
다.
며칠 내 많은 고수들이 몰려 올 것이다. 자중하도록 해라.
여기는 하인이나 고용인들을 개처럼 부릴 수 있는 본장이 아
니다“
이정이 황포노인이 말리기에 황포노인에 대한 인식이 처음
에는 좋았으나, 듣고 보니 사람을 개에 비유하는 황포노인의
말도 새겨듣기에 따라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었다.
이정이 속으로 분을 끓이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의 분을 달래는 청량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 청년의 말이 맞소이다. 그는 하인 신분이 아니오. 실제
백화장원은 하인이 몇 안되오. 충성된 하인들은 세월이 흘러
모두 나이가 들거나 죽고, 이제는 대부분 채용된 사람들이오. 특
히 그는 가볍지 않은, 누구도 함부로 경시할 수 없는
추천장을 가지고 멀리에서 온 사람이오“
이정이 뒤를 돌아보니 소장주 장명휴였고 장의경도 같이 곁에
서있었다.
장의경의 눈빛에 은연중에 노기가 비쳐 있었다.
소장주 역시 표정은 손님들 면전이라 온화했으나, 눈빛이
굳어진채 이정의 벌겋게 부어오른 팔목을 보더니 걱정스레 말했다.
“이정, 내실에 가서 손목에 금창약을 발라라. 그대로 두면 나아도 후유증이 남는다“
“예”
이정이 내실로 가고 황포노인이 마음에 없는 소리
를 했다.
“소장주, 추혼수사가 시중들 아이를 미리 규율을 잡아두려 한
것이오. 그냥 멍든 자국이니 개의치 말기 바라오”
소장주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백마신검(百魔神劍) 노선배님, 잘 알고 있습니다. 추혼수사
선배를 포함하여 금검보의 고인들께서 하는 행동은 모두 본장의
윗사람들을 대신하여 장원 식구들에게 따끔한 훈계를 내리기
위한 것임도 잘 알고 있소”
그가 대답을 가운데 조금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이다.
“험험!”
백마신검 이라 불린 황포노인이 헛기침을 하고는
추혼수사를 돌아보는 모양새가 경솔함을 나무라듯 보였다.
그리고 황포노인이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함부로 경시할수 추천장이라니 어느 분의 추천장이오?”
백마신검이 소장주가 들어서며 처음 한 말을 기억한 것이다.
고수는 본래 사소한 말 한마디 그냥 무심히 들어 넘기지 않
는 법이다.
정심을 요하는 무공수련과 일상생활은 하나이지 둘일수 없
었다.
“그는 진현에 계시는 본장의 대사부님의 추천장을 가져왔소이다. ”
“진현의 귀장의 대사부라고...? 혹시 진현 세심원의 한어르신을 말하시오?”
“그렇소. 백화장원에서 대사부라 불리는 분은 그분 한 분
뿐이오”
"아ㅡ!"
금검보에서도 불과 십여명에 불과한 금검무인중 일인인
백마신검 갈평이 놀라 외치더니 잠잠해졌다.
나머지 수행무인들이 의아해 했다.
그러나 백마신검이 그에 대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고
일행들이 소장주의 안내를 따라 다시 공식일정 대로 장원의
윗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려 별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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