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다
이정은 부어오른 팔목에 약을 바르고는 정원 자신의 거처에
돌아오니 팔목의 고통과 더불어 금검보 무인들의 거친 행동에
화가 났다.
그렇다고 맡은 일을 중도에 싫다고 할 수 없었다.
물론 장원을 그만두면 되었으나, 그러나 그것은 그동안 그를
믿고 잘해준 장주님과 소장주 그리고 장의경에 대한 도리가
아니었다.
거듭 생각해봐도 현재 백화장원의 처한 상황을 알기에 참
을 수밖에 없었다.
“이정아, 네가 검을 쥐고 싸우면 어린 소녀인 상화만도 못하면
서, 하다못해 손님의 시중하나 변변하게 들지 못하느냐! “
그가 마음을 추스리고는 다시 별실에 가니 다행히 금검보의
일행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별실 대청난간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여
름 마른 나뭇잎이 자신의 모습만 같았고, 자신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다”
귀절은 분명 그가 과거 누구에게 들은 귀절을 혼자말로 한것이다.
생각하니 평소 고향 진현의 한 어르신이 즐겨 하던 말이었다.
“그분은 누구시기에 이곳 장원 사람들조차 어려워 하는가?”
장원사람들은 한선생을 어려워하는 가운데 존경하는 심성마저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겨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만 쳐다보고
있다가 마당을 쓸고자 대비를 가지러 내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때 사람들 이야기가 십전공자가 도착했다고 했다.
금검보의 소보주인 그를 처음 보는 장원의 사람들 역시 그
의 뛰어난 위용을 보러 대문에 나가 있었다.
이정 역시 자신보다 불과 두살 위라는 그의 옥룡과 같은
모습이 궁금하여 한 손에는 대비를 든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백화장원의 웅장한 정문에 금검보의 나머지 일행들과 함께
들어선 십전공자의 모습은 정녕 듣던대로 군계일학이며 인중
룡이었다.
금검보 천명 인원중 불과 10명에 불과하다는 금빛소검이
황삼 상의에 새겨져 휘황찬란하게 여름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그의 큰 키와 희고 준수한 용모는 단연 여러 사람들가운데서
도 임풍옥수와 같이 돋보였고, 단지 표정이 어딘지 냉막했으
나, 이는 오히려 낭만적인 소녀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일 수 있
었다.
그가 백화장주를 포함하여 백화장원의 어른들에게 먼저 정
중히 인사하고는 장의경을 향해 표정을 바꾸어 반가운 표시
를 했다.
“장소저 그동안 잘지냈소?. 소생은 이렇게 다시 만날 날을 학
수고대 했소이다”
그녀 역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하며 답례했다.
“소보주님도 잘 지냈는지요. 마지막 본지가 한달 여군요“
“그렇소. 한달이란 기간은 매일밤 서신을 쓰더라도 한 수레에
실을 정도로 길고 긴 날이오”
십전공자가 장의경에 대한 연모의 마음을 은연중에 나
타내었다.
이윽고 수인사를 마친 일행이 일단 내실로 향했다.
모두 정해진 자리에 착석하여 차를 마시는 가운데 십전공
자가 죽은 감당주에 대한 사안을 꺼내었다.
그가 백화장원에 오기 직전에 살해 현장을 둘러보고온 소
감을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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