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구역 천계 (3)

76화
미카엘은 처음 등장 때와는 달리 표정이 굳어있었다.
대천사 미카엘
천사들의 최고 지휘관 미카엘과 남은 다섯 명의 대천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까 그 기세는 어디 갔냐? 크크큭.”
[이유가 뭐지? 왜 인간이 천계를 공격하냐는 말이다!]
“설명하기 귀찮으니 루시퍼, 네가 설명해라.”
[알겠습니다. 마왕님은 마계와 천계를 정복하신 후 신계에 도전하고 싶어 하신다.]
[신계?]
“그래. 천계와 마계가 나뉘고 인간계인 제3구역을 누가 나눠놓은 것 같냐? 그리고 왜 서로의 영역을 끊임없이 침범하고 싸우고를 반복하는 거 같냐? 그 이상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린 신계의 신들의 장난감에 불과한 거지.”
미카엘은 반박할 수 없었다.
천계가 마계를 공격했던 이유, 마계를 공격하기 위해 제3구역으로 영역 확장을 하려던 이유.
바로 신계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미카엘에게도 신계는 까마득히 멀고도 먼 영역이었다.
“내가 이뤄주겠다.”
[뭘 이뤄준다는 거지?]
“죽고 죽이는 나선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말이지.”
[...]
“천사는 왜 악마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 악마도 마찬가지다. 악마는 왜 천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 그로 인해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건 인간이었다. 아까 미카엘 네놈이 그랬지. 인간 따위라고. 인간은 태초부터 약한 존재로 태어나 천사와 악마들의 이유 없는 공격을 받아야만 했지.”
[그건 인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인간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마계에 대항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 어떻게 인간이 그걸 다 알고 있는 거지?]
“인간은 눈 뜨고 당하기만 할 줄 알았냐? 얘기가 길었다. 너희들에게 선택지를 주겠다. 나를 따를 것이냐, 아니냐만 선택해라.”
다섯 명의 대천사들은 미카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카엘님..]
[크흠..]
미카엘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이미 우연의 무위를 본 미카엘은 자신을 희생한다고 해도 나머지 대천사들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나의 선택에 따르겠는가? 천사들이여.]
[따르겠습니다. 우리들의 사령관은 미카엘님입니다.]
[알겠다.]
미카엘은 다시 우연을 향해 돌아섰다.
[우리가 인간인 널 따르면 우리는 어떻게 되지?]
“봐서 알겠지만, 마계 군주들도 나를 따르고 있다. 정신지배 따위를 당하진 않았지.”
[우리엘은 그럼 어떻게 할 건가?]
“마기 추출!”
우연이 우리엘을 향해 마기 추출을 시전하자 우리엘의 정신이 돌아왔다.
[미카엘님?]
[이제 정신이 드는가 우리엘?]
[제가 설마 미카엘님을 공격한건 아니겠죠?]
[괜찮다.]
[크흑.]
“자,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우리 대천사들도 인간인 너를 따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인간인 네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보고 싶군.]
“그래. 현명한 선택이다. 빠르게 가도록 하지. 혼 추출!”
우연이 손을 뻗자 대천사들의 혼이 대천사들의 몸을 빠져나와 우연에게로 향했다.
띠링
[천계를 통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천군]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 – 무한한 천기]
띠링
[천계와 마계를 모두 통일하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천마왕에 등극한 최초의 플레이어입니다.]
[차원 이동으로 갈 수 있는 장소가 추가됩니다.]
[신계와 명계를 출입할 수 있는 최초의 플레이어가 되었습니다.]
[보상 – 천마왕의 방어구 세트]
[천마왕에 등극하여 무기가 진화합니다.]
[[멸]이 [극멸]로 진화에 성공했습니다.]
그오오오오오오오
천사들의 혼을 받아들이자 상태창이 요란하게 나타났다.
“천마왕? 역시 신계만 있는 게 아니었네. 명계라니..”
우연이 말을 마치자 천계의 하늘에서 또 한 번 진동이 시작되었다.
천계의 하늘이 갈라지고 정체 모를 두 명의 사내가 등장했다.
[천계와 마계를 통일한 인물이 나타났군.]
“누구냐?”
[크크큭. 뭐야? 인간이잖아?]
[이례적인 일이군. 인간이라.. 우리는 신계의 사자들이다. 경외를 표하라.]
“경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우연이 두 사내를 향해 [극멸]을 휘둘렀다.
쐐애애애애애액
[호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콰앙!
극멸의 검기가 두 사내에게 닿자 두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뭐지?]
“당황했냐? 크큭.”
[어떻게 이런 기운을 낼 수 있는 거지?]
“내 발로 찾아갈 거니까 조용히 돌아가라.”
두 사내는 당황했다.
대천사인 미카엘조차도 신계의 사자에게는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다.
[다시 찾아오겠다. 인간. 널 기억하고 있도록 하지.]
“신계의 사자도 별것 없네. 크큭. 도망가는 꼴 하고는.”
[방금 뭐라고 했느냐?]
두 사내중 한 명이 우연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우연은 사내의 검기를 가볍게 피하며 검기를 날린 사내에게 쇄도했다.
턱
순식간에 머리를 붙잡힌 사내는 저항할 수 없었다.
“조용히 가라고 했지? 이건 내 말을 어긴 대가다. 혼 추출!”
슈우우우우욱
사내의 혼이 사내의 몸을 빠져나왔다.
[당장 그만둬라!]
나머지 한 명의 사내가 소리쳤다.
“너도 뒈지기 싫으면 입 다물고 있어라.”
우연이 엄청난 살기를 뿜자 사내의 입이 닫혔다.
“신계 사자의 혼은 얼마나 쓸만한지 한 번 볼까? 크큭.”
우연은 인벤토리에 들어온 신계 사자의 혼을 꺼냈다.
“저 녀석을 죽여라.”
[충!]
우연의 부하가 된 신계의 사자는 함께 온 나머지 한 명의 사자를 향해 쇄도했다.
챙챙챙챙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주인님의 명을 따를 뿐이다.]
대천사들과 마계 군주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구경하고 있었다.
[신계 사자들을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다루는 사내라니..]
미카엘이 입을 열자 옆에서 루시퍼가 입을 열었다.
[나도 마왕님의 능력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300년 동안 지속해오던 마계 내전을 단 하루 만에 정리하셨으니.]
[뭐라고? 하루 만에?]
[그래. 천계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가 이곳에 온 건 바로 오늘이다.]
[...]
“지루하다. 얼른 결착을 내라.”
[충!]
우연이 신계의 사자에게 천마기를 주입했고, 우연의 혼이 된 신계의 사자는 단숨에 눈앞에 있는 동료의 목을 베었다.
“끝났군. 들어와라.”
[알겠습니다.]
우연은 천계의 결투장에 자신의 혼을 모두 꺼냈다.
“나는 천계와 마계를 통일해서 천마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천마왕. 역시 대단하십니다. 마스터.]
해골왕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고맙다. 마물의 왕.”
우연이 마물의 왕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 마계 군주들이 해골왕을 노려봤다.
[뭘 쳐다봐. 내가 너희들보다 선배라고!]
“그래. 해골왕은 내가 판타지아에 온 후부터 쭉 함께해왔지. 너희들끼리 싸워서 서열을 가리라고 하고 싶지만, 너희들의 서열은 의미가 없다. 그 말인즉 가진 힘에 관계없이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모든 혼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신계로 바로 가지 않을 것이다. 천마왕이 되면서 신계를 포함한 명계라는 곳에도 출입이 가능해졌다.”
미카엘이 우연의 말에 대답했다.
[명계 말입니까?]
“그래. 명계. 나는 명계로 먼저 갈 것이다.”
[언제 가실 생각입니까?]
“지금 바로 간다. 다들 들어와라.”
우연은 혼들을 인벤토리로 불러들였고, 차원 이동 스킬을 사용해 명계에 진입했다.
[명계에 진입한 최초의 플레이어입니다.]
“이곳이 명계인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인 명계
우연은 명계에서 찾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스무살의 우연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신 분들.
우연의 부모님이었다.
그오오오오오
우연이 명계에 발을 들이자마자 누군가 우연에게 다가왔다.
[어째서 인간이 명계에 발을 들인 거지?]
“이곳에 올 자격이 되어서 왔다.”
[올 자격이라. 그게 뭐지?]
“나는 천계와 마계를 통일했다.”
[뭐라고? 인간이 천계와 마계를 통일했다는 말인가?]
“그래. 넌 누구지?”
[난 명계 출입을 담당하는 켈벡이다.]
“찾고 싶은 인간이 두 명 있다.”
[이름을 말해라.]
우연은 자신의 부모님의 이름을 말했다.
[...]
켈벡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왜 그러지?”
[저, 정말 그 두 분이 너의 부모님이라는 말인가?]
“그래.”
[손을 내밀어 보아라.]
우연이 양손을 내밀자 켈벡이 우연의 손을 잡았다.
그오오오오오오
[마, 맞군. 그분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 같아. 따라와라.]
우연은 켈벡을 따라서 명계의 출입문을 통과했다.
명계는 천계와 마계, 인간계에서 소멸한 존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누군가는 죄업을 치르고 누군가는 현생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켈벡을 뒤따라가는 우연을 본 명계인들은 일제히 우연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우연은 처음에는 자신의 기운에 눌려 머리를 숙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개의 워프 게이트를 통해 도착한 곳은 신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야 한다. 신전에 들어가면 네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고맙다.”
켈벡은 우연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우연은 신전의 입구로 들어갔고, 신전을 지키는 병사들이 우연을 보자마자 머리를 숙였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찾으러 왔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병사들 중 한 명이 앞장섰고, 우연은 병사의 뒤를 따라갔다.
[들어가시지요.]
신전의 가장 안쪽에는 거대한 문이 하나 있었고, 우연이 문 앞에 도착하자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문이 양쪽으로 열리자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두 존재를 마주했다.
바로 우연의 부모님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우연아!]
우연의 부모는 우연을 향해 걸어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설명은 차차 해주도록 하마. 너라면 반드시 이곳까지 올 수 있을 줄 알았단다. 기특하다. 내 아들.]
우연의 아버지는 우연을 끌어안았다.
우연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버지의 품.
옆에서 우연의 어머니는 우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 사람은 거대한 식탁에 둘러앉았고, 우연의 아버지가 손가락을 튕기자 우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가득 차려졌다.
“명계에서 한식이라니. 특이하긴 하군요. 하하.”
[이곳은 안되는 게 없는 곳이지.]
“어디선가 들어본 말 같은데요.”
[그래. 네가 판타지아에 처음 들어올 때 들었던 말이겠지. 궁금한 게 많을 것이다.]
“예. 이곳에 부모님이 계신 이유가 가장 궁금해요.”
[우리는 명계를 다스리는 신이다.]
“신이요?”
[그래. 나도 원래는 신계에 있던 신이었지. 명계의 공주였던 네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난 선택을 해야 했단다. 신계의 신 중 한 명이었던 내가 명계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자 신계는 명계를 호시탐탐 노려왔단다. 하지만 신들은 명계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지. 천계와 마계에서 쏟아져 오는 존재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지.]
“신이었군요. 아버지가. 그럼 저는 어떻게 태어난 거죠?”
[천계와 마계에서 쏟아져 오는 존재들이 있었지만, 신계에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찾을 수 없었단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결정을 하게 된단다. 신계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구역. 우연이 네가 판타지아로 오게 되었을 때 가장 처음 시작한 곳인 제3구역이었단다.]
“그럼 제가 개척자의 직업을 가지고 시작한 것도 모두 부모님 덕분인가요?”
[그렇단다. 우리는 늘 우연이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두 지켜보고 있었지. 우연이 네가 개척자가 된 것이 우리가 설계한 것은 맞지만 그 이후로는 우연이 네 스스로 이뤄낸 업적이란다. 제3구역에서 신계에 도전할 수 있는 인물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는데, 너는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활용했지.]
“제 끈기는 부모님의 물려주신 거잖아요. 하하하.”
[기특하다. 내 아들. 네가 잘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단다.]
“제가 이제 뭘 하면 되죠? 신계의 신들을 쳐부수면 되나요?”
[신들은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들이 아니란다. 일단 계획을 세운 뒤에 다시 얘기해보자꾸나.]
“저는 늘 행동이 먼저였어요. 그래서 이곳까지 빠르게 올 수 있었던 거고요. 식사가 마치면 저는 바로 신계로 가겠습니다.”
[혼자 가겠단 말이냐?]
“저는 이제 혼자가 아니거든요.”
우연이 미소를 지으며 인벤토리에 있던 혼들을 모두 꺼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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