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논 대륙 (2)

37화
우연은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너희들은 지금 실수하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린메이가 지팡이를 꺼내 들며 말했다.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냐? 바로 흑룡 길드가 있다.”
“흑룡 길드? 설마 삼합회와 관련된 길드냐?”
“흑룡 길드를 모르다니. 하긴 중국 플레이어들은 워낙 많은 길드가 있어서 모를 수도 있지. 대마도사 웨이렌님이 길드장으로 있는 길드지.”
“대마도사 웨이렌?”
“하.. 대마도사 웨이렌님을 모르고도 카논 대륙에서 길드질을 할 수 있다니..”
“그게 누군데?”
린메이를 비롯한 50명의 플레이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문 대대로 골렘을 빚어온 골렘 장인이시다.”
“푸하하하. 웃기는 소릴 하는군. 골렘을 빚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나는 그란디아 공국에서 대마도사 웨이렌님을 만나러 이곳에 왔다. 그분을 모시게 되었고, 웨이렌님을 봐서 조용히 넘어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겠군.”
“그란디아 공국이면 대한민국 에어리어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냐? 다들 무기를 거둬라.”
린메이의 말에 50명의 플레이어는 우연을 겨누고 있던 무기를 거뒀다.
“자세히 말해봐라.”
“대마도사 웨이렌님은 자신의 신분이 밝혀지길 원치 않으셨다. 돌아가서 문책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오늘만큼은 밝혀야겠구나.”
“증거를 보여라. 네가 대마도사 웨이렌의 부하라는 증거 말이다!”
“역시 말로는 안 되겠군. 나와라 해골왕.”
해골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니 저건. 해골 몬스터? 저게 웨이렌이 빚은 골렘이란 말이냐?”
“보고도 모르겠냐. 나는 여러 마리의 골렘을 더 소환할 수 있지.”
[마스터, 저는 골렘이..]
‘닥치고 있어라.’
[예.]
“이제 봤으면 썩 꺼지거라. 마음 같아서는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오늘은 웨이렌님의 존재를 밝히는 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하지. 너 이름이 뭐냐?”
“실례했군. 나는 백금단의 린메이다.”
“백금단? 내가 지구에서 알고 있던 보석 가게와 이름이 비슷하군.”
“그란디아 공국에서 왔다고 하니 말해주지. 우리 백금단은 중국 에어리어 랭킹 3위의 길드다.”
“랭킹 3위라..”
“후훗. 랭킹 3위라고 하니 이제야 좀 실감이 나냐?”
“너희 길드장에게 돌아가서 전해라. 흑룡의 웨이렌이 돌아왔다고.”
“그대로 전하도록 하지.”
“건방진 네놈의 이름은 무엇이냐?”
“오란이다.”
“오란? 한국말로 우연이라는 의미군.”
“호오. 한국어를 아는 녀석이었군.”
“지구에 있을 때 K팝에 관심이 많았었다. 아무튼 오란. 만약 네 말이 거짓이면 그땐 직접 흑룡 길드를 찾아가서 너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
“골렘의 먹이가 되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왕첸을 데리고 철수한다!”
린메이와 백금단의 플레이어는 왕첸을 데리고 왕의 유적을 떠났다.
왕의 유적 던전 입구에는 백금단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대마도사 웨이렌이라는 이름은 삽시간에 카논 대륙 전체에 퍼져나갔다.
중국 플레이어들의 커뮤니티 실시간 검색 순위 10위에는 웨이렌이라는 이름이 등록되었다.
[마스터, 어쩌시려고 일을 벌이신 겁니까?]
“여기서 소란을 피워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
[더군다나 골렘이라니요.]
“카논 대륙에 있는 동안은 네가 골렘 행세를 좀 해줘야겠다. 할 수 있지?”
[마스터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그래. 해골왕 골렘. 잘 부탁한다.”
[마스터!!]
“장난이다. 중국 던전은 과연 어떨지 궁금했는데, 오랜만에 사냥이나 하자.”
[저도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크큭.]
“아 차! 너 SS급으로 진화했지. 기분이 어떠냐?”
[드디어 제 본 모습을 찾아가는 기분입니다. 해골 병사 녀석들을 부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제 카굴과 좀 비등비등하겠군. 그동안 카굴이 고생 많았으니 앞으론 네가 고생 좀 하자.”
[알겠습니다.]
우연은 왕의 유적 던전에서 살다시피 했다.
평소 우연이 해오던 것처럼 단숨에 보스방까지 진입하지 않고, 몬스터의 패턴을 분석하며 사냥을 즐겼다.
우연이 던전에 박혀있는 동안 바깥에서는 한차례 폭풍이 일었다.
***
백금단의 수장인 진롱은 왕첸의 몰골을 보고 분노했다.
“도대체 어떤 녀석에게 당한 것이냐? 감히 우리 백금단을 건드려?”
“흑룡 길드의 오란이라는 녀석이었습니다.”
“오란? 흑룡 길드? 그게 다 무엇이냐?”
“혹시 대마도사 웨이렌이라는 자를 아십니까? 가문 대대로 골렘 장인이라고 합니다.”
“골렘 장인이라..”
“처음 들어보십니까?”
“처음 들어본다.”
“... 저희가 속은 걸까요? 찾아보니 흑룡 길드의 수장 이름이 웨이렌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우연이 새로 개설한 흑룡 길드는 아직 판타지아 길드 목록에서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조금 더 조사를 해봐야겠구나. 골렘을 직접 빚는 대마도사라면 분명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마도사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한 직업이니 조금 더 조사해봐라. 아무리 대마도사의 제자라고 해도 백금단을 건드린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
“알겠습니다.”
린메이가 진롱의 집무실을 나간 후 진롱은 중국 플레이어 협회에 연락했다.
“웨이렌 플레이어는 지구에서 가문 대대로 만두를 빚던 사람입니다.”
“만두를 빚었다라.. 만두를 빚었던 사람이 골렘도 빚을 수 있는 건가?”
“판타지아는 지구와 다르니까요. 무슨 일이십니까?”
“아, 아닐세. 고맙네.”
“별말씀을요.”
협회의 답변을 들은 진롱은 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시각 웨이렌은 우연에게 받은 금화로 길드 아지트를 확장한 후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찾아보고 있었다.
[대마도사 웨이렌의 등장. 가문 대대로 골렘을 빚는 마도사 집안의 후계자.]
“이, 이게 다 뭐지? 내가 대마도사라고?”
우연은 웨이렌의 직업을 듣지 못했는데, 판타지아에서 웨이렌이 받게 된 직업은 마도사가 맞았다.
가문 대대로 만두 가게를 운영하던 웨이렌은 꿈이 있었다.
[던전 몬스터]의 테스트 서버 유저 중 한 명이었던 웨이렌의 직업은 마물을 창조하는 마도사였다.
판타지아에서도 만두를 빚으며 요식업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꿈이자 [던전 몬스터]에서 플레이했던 마도사를 직업으로 갖게 되어 얼떨떨했던 웨이렌이었다.
마도사 클래스를 얻긴 했지만 웨이렌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만두 가게를 해서 벌어들인 돈은 지구에서 사업확장 실패로 인해 모두 탕진한 상태였고, 좋은 장비를 맞추지 못했던 웨이렌은 흑룡 길드라는 이름으로 길드원들을 모았다.
길드원들은 모두 만두 전문가였다.
띠링
진롱 – 웨이렌 플레이어입니까? 백금단의 수장 진롱이라고 합니다.
웨이렌 – 백금단이라면 중국 길드 랭킹 3등인 그 백금단 말입니까?
진롱 – 잘 알고 계시는군요. 얼마 전 흑룡 길드원과 저희 길드원 사이에 마찰이 있었던 건 알고 계시겠죠?
웨이렌 – 마찰이라뇨. 저희 길드원 중에 전투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만.
진롱 – 다 알고 하는 말입니다. 오란이라는 플레이어에게 저희 길드원 한 명이 상해를 입었습니다.
웨이렌 – 오란 플레이어요?
그제서야 웨이렌은 며칠 전 자신에게 흑룡 길드의 길드명을 구매해간 우연을 떠올렸다.
진롱 – 듣기로는 골렘을 빚는 대마도사라고 들었습니다. 저희 길드에 골렘을 하나 보내주시면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웨이렌 – 그럴수는 없습니다. 오란이라는 플레이어가 직접 책임져야죠.
진롱 – 오란 플레이어를 저희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웨이렌 – 그, 그건..
진롱 – 기다리겠습니다. 골렘 한 마리를 만드는 대로 저희 길드로 오십시오.
웨이렌 - ...
진롱은 자신의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웨이렌과의 대화를 종료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웨이렌은 곧장 우연에게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연은 보스방을 남겨두고 잠시 쉬고 있었다.
“뭐야. 일이 꽤 커졌잖아?”
우연은 자신이 벌인 일이니 직접 처리하겠다고 말한 뒤 보스방으로 들어갔다.
“하.. 이런 우연이 있나.”
보스방에 들어가서 보스의 이름을 본 우연은 이마를 '탁' 쳤다.
[대마도사 웨이렌]
웨이렌이라는 이름은 중국에서도 흔한 이름이었다.
대한민국에서의 동명이인 개념과는 다르게 워낙 인구가 많은 국가라서 이름과 성씨가 같은 사람이 수두룩했다.
우연은 이때까지도 흑룡 길드의 수장이었던 웨이렌이 마도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보스 몬스터인 대마도사는 흙과 돌로 된 골렘들을 소환해서 우연과 대치했다.
“생각지도 못한 발견이네.”
우연은 [던전 몬스터]를 플레이할 당시 대마도사 역할을 하는 혼은 손에 넣지 못했다.
발자크 레이드를 할 때만 해도 해골왕, 아리아, 원거리 딜러 하나에 근거리 딜러 두 마리뿐이었다.
[그오오오오. 인간. 너도 나의 골렘 컬렉션에 넣고 싶구나.]
“그오오오오. 보스 몬스터. 너를 나의 혼 컬렉션에 넣고 싶군.”
[... 건방진 소리를 하는군. 크하하하. 나는 대마도사 웨이렌님이다. 위대하신 왕의..]
빠각
우연은 대마도사 보스에게 달려들어 몽둥이질했다.
평소 같았으면 느긋하게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만두 장인 웨이렌의 연락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만두 장인 웨이렌에게 골렘을 빚는 방법을 가르치면 어떨까?”
비록 만두 장인 웨이렌의 직업은 몰랐지만, 판타지아는 안되는 게 없었다.
전직 변경권을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었고, 비전투원이던 플레이어도 전투원으로 전직 변경이 가능했다.
우연은 대마도사 보스를 상대하며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SS급으로 성장한 해골왕과 해골왕이 소환하는 병사들 덕분에 대마도사 보스 몬스터를 잡는 과정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30번째 클리어 이후로는 카굴과 아리아를 함께 소환해서 대마도사 보스 몬스터를 잡기 시작했고, 80번째 클리어를 하게 되자 드디어 [대마도사 웨이렌의 혼]을 얻게 되었다.
“응? 이건 뭐지?”
[대마도사 웨이렌의 혼]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건 히든 클래스 전직권이었다.
“히든 클래스 전직권?”
[히든 클래스 전직권]
히든 클래스인 대마도사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대마도사는 각성으로 얻을 수 없는 히든 클래스입니다.
마도사 클래스의 플레이어가 사용 시 생성할 수 있는 골렘의 종이 20종 추가되며, 마력과 스텟이 대폭 상승합니다.
유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박이네.. 유일 직업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좀 아쉽구먼. 크큭.”
우연의 행복회로는 더욱 증폭되었다.
대마도사 웨이렌의 혼을 얻어서 만두 장인 웨이렌을 가르치려던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평생 만두만 빚어왔다면 능력치 자체는 만두를 잘 빚는 것에 맞춰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우연은 곧장 만두 장인 웨이렌에게 연락했다.
우연 – 지금 어딘가요?
웨이렌 – 길드 아지트에 있습니다.
우연 – 골렘은 잘 만들고 계시는가요?
웨이렌 – 지금 장난치십니까? 만두만 열심히 빚고 있습니다.
우연 – 만두 골렘으로는 안될 텐데요.
웨이렌 – 바쁘니까 나중에 연락하시죠.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해졌는지 알고 있습니까? 너무하시네요. 저는 당신에게 흑룡 길드의 이름을 준 것밖에 없는데요.
우연 – 그럴 줄 알고 선물을 들고 가는 길입니다. 조금 이따가 뵙죠.
우연은 웨이렌을 처음 만났던 장소로 이동했다.
“호오.”
이전 흑룡 길드의 허름함은 온데간데없었다.
검은 용으로 장식된 외관은 웨이렌의 취향을 알 수 있었다.
길드의 명패도 바뀌어 있었다.
[흑룡투 길드]
“흑룡에 대한 고집이 꽤 강한 편이었군.”
우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웨이렌과 길드원들은 만두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흑룡투 길드가 만두 가게라니..”
“오셨습니까? 오란님?”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백금단에서 이곳에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오란님이 책임질 건가요?”
“들이닥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죠?”
“골렘을 만들어서 주면 되죠.”
“무슨 수로 골렘을 만든다는 말입니까?”
“저와 계약을 합시다. 계약하면 웨이렌님이 골렘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우연은 웨이렌에게 주종의 계약을 시전했다.
- 작가의말
.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