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구역 천계 (1)

74화
포티아에 모인 군단장들은 거대한 용들과 마주하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발자크의 심장을 용케도 빼내 왔군. 그런데 저건 마계의 군주들? 군주들이 왜 여기 있는 것이냐?]
화룡인 불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마왕의 자리에 올랐다.”
[크하하하하하. 농담이 지나치군.]
“마왕이 되면서 권능을 하나 얻게 되었지. 혼 추출!”
우연이 양손을 앞으로 뻗자 용들의 혼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용들을 벗어난 혼은 모두 우연의 인벤토리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이게 무슨..]
“너희 용족도 내가 지배하겠다. 너희들의 혼이 내 수중으로 들어온 이상 나를 주인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크흑.]
“지금이라도 기회를 주지. 내 지배를 원치 않는 녀석들은 말해라.”
[지배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거부하는 용들을 모조리 융합시켜 버릴 것이고, 그래도 지배를 거부한다면 혼을 부숴버릴 것이다.”
[혼을 부숴버린다니.]
“소멸시키겠다는 말이지.”
두둥
우연의 말을 들은 용들이 웅성거렸다.
“좋게 말로 설득하는 건 지금이 마지막이다. 용들이여 나에게 복종을 맹세하고 나와 함께 천계를 토벌하러 가자.”
불칸이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이며 우연에게 맹세를 표했고, 용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숙였다.
“좋다.”
[천계를 토벌하러 간다고 했는데,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말투부터 고분고분해진 불칸이 물었다.
“제3구역에는 천계와 제3구역을 잇는 통로라는 존재가 있다. 통로를 통해 천계로 간다. 나머지 설명은 천계에 도착한 후 다시 알려주도록 하지.”
그렉을 포함한 흑룡 군단장들은 갑자기 등장한 마계 군주들과 용들 때문에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방영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너희들은 천사들에게 천기를 받은 플레이어다. 몸속에 천기가 흐르는 이상 천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이번에도 저희는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까?”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왜 없다고 생각하냐? 내가 알고 있는 건 제1구역인 천계, 제2구역인 마계 그리고 제3구역인 이곳. 아직 판타지아가 제3구역까지만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 혹시 모를 침략에 대비해서 이곳을 수호해라. 그게 너희들의 임무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좋다.”
우연은 마계 군주들과 함께 집무실로 돌아왔고,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벨페가 입을 열었다.
[마스터, 통로인 지크 루이즈와 그의 일가족은 마스터가 모두 제거한 거 아닙니까?]
“아직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어떤 방법 말입니까?]
“통로는 루이즈 가문의 사람이 이어받는다고 하더군. 아직 루이즈 가문의 생존자가 한 명 있다.”
[서, 설마.]
“그래. 내 친구인 반 루이즈에게 갈 것이다. 지금 당장 갈 것이니 모두 준비해라.”
우연은 마계의 군주들을 모두 인벤토리로 불러들인 후 워프 게이트를 열어 에펜하임으로 향했다.
“자주 오다 보니 에펜하임도 마치 우리 동네 같구만.”
“일은 잘 처리하고 왔냐? 친구여.”
“그래. 미안하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군.”
“그래.”
“이번에는 무슨 일로 왔냐?”
“이미 다 알고 왔다.”
“이미 다 알고 왔다니?”
“천계의 지령을 받았겠지?”
“그, 그걸 어떻게.”
“네가 루이즈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니까 당연히 네가 통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군. 네 말대로 지령을 받았다.”
“어떤 지령을 받았지?”
“다섯 천사를 몰살시킨 자를 제거하라는 지령이었지.”
“네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천사들이 알고 있었을 텐데.”
“정확하게 알고 있군. 이번에는 나를 통해 천사들이 제3구역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천계로 가게 되었다. 천계에서 다른 천사들에게 훈련을 받은 후 제3구역으로 함께 오는 지령이 내려졌다.”
“나도 함께 가자.”
“너 혼자서는 위험하다.”
“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연이 공터로 가서 우연이 가진 모든 혼을 꺼내놓자 반 루이즈가 자신도 모르게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다 무엇인가?”
“나를 따르는 군대다. 천계로 안내해라. 친구여.”
“언젠가는 이날이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올 것도 예상하였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아주 예상을 못 한 건 아니었지. 내가 통로가 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나를 제거하지 않는 거지?”
“난 친구는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친구라.. 난 어쩌면 너의 적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천사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천계를 토벌한 후 내가 결정할 문제다. 내가 너를 적이라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우린 친구다.”
“천계를 토벌할 자신이 있는 건가?”
“그건 가봐야 알겠지. 대천사들이라는 존재가 있다던데, 만만치 않겠지만 뭐든 겪어보기 전에 두려움을 먼저 가진다면 기세에 눌린 채 전투에 임하는 것이다.”
“자신감이 이젠 부러워지려고 하는군. 하하하. 천계에 가는 날은 내가 조절할 수 있다. 그전에 술이라도 한잔하겠는가?”
“좋지.”
우연은 반 루이즈와 술잔을 기울이며 마계를 토벌한 이야기를 했다.
“너의 배짱이 참 대단하군. 300년이나 지속 해오던 마계 전쟁을 단 하루 만에 정리하다니.”
“미루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크큭.”
“나는 천계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군.”
“네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다. 나를 천계에 데려가 주는 것. 나와 함께 천계로 진입한 뒤 넌 곧장 제3구역으로 넘어와라. 괜히 천사들에게 휘말렸다간 나를 데려간 너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함께 싸우는 건 안 되겠는가?”
“나는 싸움을 길게 끌 생각이 없다.”
“이번에도 하루 만에 토벌하겠다는 말로 들리는군.”
“못할 것도 없지. 크큭.”
다음 날 아침 우연은 다시 반 루이즈와 만났다.
“준비되었는가?”
“그동안 천사들이 어떻게 이곳으로 오는지 궁금했는데, 이번에야말로 궁금증이 풀리겠군.”
“무운을 빈다. 친구여.”
슈우우우우욱
반 루이즈가 인벤토리에서 [천계 통로]라는 아이템을 꺼내서 사용하자 두 사람의 몸은 푸른색 빛에 의해 어디론가 전송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천계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제3구역으로 돌아가라. 부탁이다.”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대신 죽지 마라.”
“크큭.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도 있고 참 좋네. 일을 잘 마무리하고 어제 갔던 그 가게에서 축배를 들자.”
“그래.”
약 10분 뒤 두 사람은 천계에 도착했다.
“이곳이 천계로군. 친구여 조만간 다시 만나자.”
“무운을 빈다.”
반 루이즈는 우연이 부탁한 대로 곧장 다시 제3구역으로 돌아갔다.
반 루이즈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우연은 반 루이즈의 얼굴로 변장했다.
[그대가 통로인가?]
천계의 입구를 지키는 천계 병사가 우연에게 말을 걸었다.
“예. 그렇습니다.”
[제1구역인 천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간단한 확인 절차만 마치고 들여보내 주겠다.]
“예.”
[[천계 통로]를 꺼내서 보여라.]
“그, 그게. 천계로 오는 도중 분실했습니다.”
[분실했다고?]
“예. 천계로 오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습니다. 제 몸이 어디론가 전송되는 기분이 들었는데,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천계 통로]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번 통로는 칠칠치 못한 녀석이 맡게 되었군. 통로가 되었다는 것은 루이즈 가문의 자식이라는 말인데, 어디 보자.]
입구를 지키는 천사는 우연의 얼굴 앞에 손을 펼쳐서 마치 엑스레이 촬영을 하듯 손을 움직였다.
[반 루이즈. 루이즈 가문의 사람이 맞는군. 따라와라.]
우연은 천사를 따라서 천계의 입구로 진입했다.
천계는 마계와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나타냈다.
순백색의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그들 대부분의 얼굴은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대가 통로인가?]
엄청난 기운을 뿜어대는 천사 한 명이 우연에게 다가왔다.
“예. 그렇습니다.”
우연이 고개를 숙이자 천사가 우연을 빤히 쳐다봤다.
[그대가 정말 통로가 맞느냐?]
“예. 그렇습니다만.”
[그대에게서 느껴지는 천기는 통로가 가질 수 없는 양의 천기로군.]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내 말이 틀렸다는 것이냐?]
온화한 미소를 짓던 천사의 얼굴은 싸늘한 얼굴로 바뀌었다.
“아닙니다.”
[검증과정을 거쳐야겠군. 나를 따라와라.]
천사는 우연을 결투장으로 데려갔다.
결투장에는 이미 다른 천사들의 결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결투를 관람하는 관객의 숫자도 어마어마했다.
“이, 이곳은 어딥니까?”
[천계 결투장이다. 천계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들끓는 곳이지.]
“저를 왜 이곳에..”
[무려 다섯 명의 천사가 소멸했다. 산미구엘까지 하면 여섯이지. 마인들의 소행인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만, 단 한 명의 짓이면 네가 감당하기 힘들다. 빨리 강해지는 방법은 강자와 결투를 벌이는 것이지. 죽지 않을 정도로 상대하라고 부탁했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곳에 천계의 강자들이 모두 모여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대천사님들을 제외한 강자들은 이곳에서 서로 결투를 벌이며 성장하고 있지.]
“그렇군요..”
[왜? 벌써 겁이 나느냐?]
“아닙니다. 저는 빨리 강해지고 싶습니다.”
[일단 기본자세는 되어있군. 다음 경기를 네 경기로 잡아놨으니,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발휘해 보아라.]
“만약 제가 경기에서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크하하하하. 첫 경기부터 네가 이긴다면 그다음은 내가 상대해주지. 제3구역에 파견 갔던 카미엘 녀석도 내 아래였으니, 영광으로 생각해라.]
“알겠습니다.”
경기가 모두 끝나고 우연의 차례가 되었다.
[제3구역에서 천계로 수련을 위해 온 자를 소개합니다. 새로운 통로로 지명된 반 루이즈!]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은 천사가 아닌 인간이 나타난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첫 상대부터 만만치 않은데요? 천계 공식 랭킹 120위 마누엘!!]
[와아아아아아!!]
마누엘이라는 천사는 근육이 다부진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창을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었고, 온화한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험상궂은 얼굴의 천사였다.
[인간 따위를 상대하라고? 크크큭. 천사와 인간의 차이를 보여주마. 먼저 덤벼라. 인간!]
[자존심 강한 마누엘이 선공을 양보했습니다. 과연 인간은 어떤 공격을 펼칠까요?]
결투장 내의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우연은 [멸]을 꺼내 들었다.
“후회하게 될 겁니다. 크크큭.”
[그 무식한 몽둥이는 뭐냐?]
“천사님을 골로 보낼 몽둥이죠.”
우연은 천기를 끌어올렸다.
우연이 가진 천기의 10%만을 사용해 [멸]을 휘둘렀다.
쎄에에에에에에엑
서걱
툭
우연의 천기는 마누엘의 목을 순식간에 베고 지나갔다.
[...]
수많은 관중이 앉아있는 천계 결투장에는 적막이 흘렀다.
말 많던 사회자조차 들고 있던 마이크를 땅에 떨어뜨렸으며, 우연을 결투장으로 데려온 천사는 곧장 우연에게 쇄도했다.
챙챙챙챙
다짜고짜 우연에게 공격을 퍼붓던 천사는 다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네놈 정체가 뭐냐? 마누엘을 한 일격에 죽일 수 있는 천사들은 많지 않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번에 통로로 지명된 인간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군. 통로의 전투력이 높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이전에 통로를 담당했던 제 아버지와 제가 같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애초에 가문에서 버림받은 자식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검술 수련을 했고,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지요. 건방진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저도 한 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왜 인간은 천사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건방진 놈! 나도 꺾으면 네놈의 실력을 인정해주지.]
“제가 통로인데 만약 죽으면 어떡합니까?”
[머리를 굴리고 있군. 애초에 통로라는 존재는 우리 천계인이 제3구역을 배려해서 만들어놓은 시스템이다. 우리가 만들었으니 우리가 깨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 말씀은, 언제든지 제3구역을 침략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못할 것도 없지. 크크큭.]
“얘기 잘 들었습니다.”
우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기를 모두 끌어올렸다.
그오오오오오오오
천기가 모두 모이자 오른손에서도 하나의 기운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두 기운은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구체가 되었다.
[이, 이 기운은 마기?]
“모두 나와라.”
우연은 천마기를 눈앞에 있는 천사를 향해 날린 후 인벤토리에 있던 모든 혼들을 꺼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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