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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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
작품등록일 :
2023.01.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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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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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파촉

DUMMY

시월 열이레.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파촉에 머물고 있던 이홍이 보낸 사절이 한창 공사 중인 영강(寧强) 근처의 파촉정벌군으로 찾아온 것이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답이 없으면 천군이 장안에서 포탄을 날려 파촉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지만 만약 항복해온다면 당왕으로 봉하겠다는 엄포와 유화책이 효과를 발휘했던 것 같았다.


사절단의 일행 중 관모를 쓴 문신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고돌발 대모달을 향해 말했다.


“당의 금자광록대부이자 좌복야이며 중서령인 허경종은 당조 황태자의 명을 받아 고려군 총관에게 항복을 청하니 받아주시길 바라오.”


허경종이 비록 간소했지만 나름의 절차를 갖추며 항복문서를 전해왔다. 비록 패전한 나라의 사자이긴 했으나 그래도 마지막까지 과거의 위세를 과시하고 싶었던 듯, 수식어가 제법 길었다.


그가 언급한 직급인 좌복야와 중서령은 정2품이었고, 품계인 금자광록대부는 종1품에 해당하는 고위 관료였다. 그러나 중원에서 멀리 파촉까지 도망갔다 항복을 청하는 초라한 처지에다 험한 산길을 오느라 그런지 몰라도 화려한 직급과 품계에 비해 행색은 무척이나 남루해 보였다.


고돌발 대모달은 허경종 일행을 끌어안고 싶었을 정도로 반가웠지만 짐짓 아닌 척 하며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파촉정벌군 대모달 고돌발이오.

대군이 파촉에 이르기 전에 이렇듯 미리 찾아와 수고를 덜게 되었으니 천군의 군주이신 대막리지 합하께서 기뻐하실 일이오.

장안성에서 신군의 대포로 능히 파촉을 초열지옥(焦熱地獄)으로 만들 수 있었으나 굳이 군이 이렇듯 파촉으로 향하게 된 것은 오로지 백성들이 상할까 하는 대막리지 합하의 염려때문이었소. 허나 시일이 조금만 늦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소.

천군이 길을 내어 파촉에 들어섰다면 여러 강들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지 않았을까 걱정이었을 뿐이오.”

“대모달의 말씀대로 적절한 때에 이르른 듯하니 이를 허하신 성도의 태자께 공을 올리겠소. 허면, 장안의 폐하와 황후께서는 근황이 어떠하신지?”


잘 나가다 황제와 황후에 대해 언급하는 허경종의 속내가 갑자기 의심스러워졌다. 그들이 폐위된 건 거의 두 달이나 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사신을 두 번이나 보냈는데도 파촉에서 아직 고종 이치의 근황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물론 사신이 도착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긴 했다. 원정군이 장안과 낙양 인근의 교통로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고 도중의 여러 곳에 산재한 군벌들 때문에 정보가 차단되고 역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파촉에서 이미 황제를 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것이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장안의 당 고종이 폐위된 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상인들에 의해 장안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리도 없었다.


황제가 폐위되었더라도 충신에게는 영원한 주군임을 알리고 싶었던 허경종의 잔꾀였을까? 불과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 이홍의 판단력을 추켜세우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았다. 아무리 형식적 수사라 하더라도 그것이 허경종의 머리에서 나온 얄팍한 수라는 걸 알아채기엔 어렵지 않았다.


허경종은 높은 직급이나 학식의 깊이 외에도 영악하고 술수가 뛰어난 인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당 고조 시절에 이미 문학관 학사가 되었지만 이후 30년 동안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해 출세와는 인연이 멀었고 한물간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측천의 입궁을 도우며 기회를 잡았던 덕분에 말년까지 부귀를 누리며 처세술의 달인으로 통했다. 암중모색(暗中摸索)이란 사자성어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허경종은 처세에 능한 것 외에도 곡필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돈과 관련된 여러 가지 곡필 의혹도 있었지만 그 중 압권은 당태종 실록이었다.


태종실록은 후에 구당서와 신당서 등을 편찬할 때 기본사료로 쓰였기 때문에 무척 중요한 원천사료였지만, 허경종에 의해 이미 많이 왜곡된 뒤여서 구당서와 신당서의 신빙성까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태종실록의 편찬자였던 허경종은 당 고조 이연 뿐 아니라 태종의 형과 아우인 이건성, 이원길이 했던 일까지 태종의 공적으로 기록한 의혹을 받고 있었다. 태종의 ‘정관의 치’라던가 일세출의 명군이라는 업적과 호칭 등이 조작됐거나 적어도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허경종이 이렇게 곡필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태종의 아들인 고종과 무측천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태종실록에서 왜곡된 부분 중에는 당 태종이 직접 친정했던 고구려 원정이 빠질 수 없었다.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퇴각할 때 성을 잘 지켰다고 안시성 성주에게 비단을 하사했다거나, 요택을 지나면서 말은 열에 여덟아홉 마리나 죽었지만 병사들은 불과 2천 명만 죽었다는 기록 등은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 외에도 2차 고당전에서 당군의 참패를 누락시키거나 은유적 표현으로 돌려 행적을 감추는 등 중요한 곳에는 왜곡의 흔적이 많으며, 여러 전투에서 양측 군사의 숫자에 의문 가는 점이 한둘이 아닌 이유가 바로 곡필 때문이었다.


고돌발 대모달도 파촉으로 분조한 인물들에 대해 대강 전해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허경종이 일부러 모른 척 수를 쓰는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아무리 술수를 쓰고 묘책을 짜낸다 하더라도 대세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허경종의 잔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고돌발 대모달이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당의 선왕이 이미 폐위된 것을 아직 모른단 말이오? 망국의 군주는 폐하는 것이 중원에서도 통하는 법도일 것이니 황상을 칭한 것은 마지막으로 취한 작은 예의로 알겠소. 다시는 그리 칭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오.

다만 중원을 버려둘 수 없으니 그 후대를 두어 안정해야 하는 법. 파촉의 왕자가 가장 적자라 하기에 데리러 가던 길일 뿐이오.”


황태자가 아닌 왕자라는 호칭을 들으며 허경종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이어 애써 눈물을 지으며 말했다.


“폐하와 황후께서 황조의 종묘와 사직을 더 이상 모시지 못한다 하니 그 신하 된 도리로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야 마땅하나 혹여 명을 부지한다면 후대를 위한 천명 때문일 것이오. 이제 대의는 파촉의 황태자께 있는 듯하니 본관은 대모달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 올리겠소. 혹여 대막리지 합하의 뜻이 다르지 않으신지 염려될 뿐이오.”

“대막리지 합하의 명은 이미 말씀드린 그대로이니 왕자는 시일을 지체하지 말고 중원으로 행차하여 국인들을 평안케 하라 전해주시오.”


대모달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허경종은 당 황실에 대해 끝까지 최고의 경칭을 썼다. 그러나 대모달은 굳이 이를 다시 지적하지 않았다. 자칫 수가 틀어져 다시 돌아가 버린다면 도로 공사를 계속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몰랐다.


대신 대모달은 허경종이 경칭을 쓸 때마다 왕과 왕자로 부르며 용어를 낮춰 사용했다. 눈치 빠른 허경종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고였다. 그리고 시일을 지체하지 말라는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허경종이 거듭 알겠다며 어느새 웃는 얼굴로 답했지만 또 어떤 술수를 쓸지 모를 일이었다.


참군 예위의 조언대로 대모달은 돌아가는 허경종 일행에다 발위사자와 함께 파촉정벌군의 말객을 딸려 보내며 병력 일부를 대동하게 했다. 거의 1000명에 달하는 적지 않은 규모였다. 그들은 허경종 일행과 함께 파촉으로 들어가 주둔한 뒤, 정세를 살피고 태자 일행의 귀환을 독촉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정도라면 허경종도 마음대로 하기는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


사절단이 돌아가고 난 후, 파촉정벌군의 일부는 한중에 주둔하며 파촉의 망명정부를 기다렸다.

나머지 병력과 작업자들은 대부분 장안으로 철수했다.






십일월 열엿새.


한겨울 밤새 내린 서리가 비탈을 하얗게 수놓다 높은 산자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녹아내렸다. 해가 솟아오르면서 다소 날씨가 풀리긴 했지만 완연한 겨울 날씨라 대기는 차가웠고 한낮에도 해는 달처럼 힘을 내지 못했다.


지난번에 굶주린 군벌들을 다 해산시켰지만 한중성에는 여전히 유랑하던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성에 주둔한 5천여 정벌군은 장안으로부터 실어온 군량을 창고에 쌓아두었지만 이들에게는 전혀 나눠주지 않았고 모여드는 사람들은 즉시 다시 해산시켰다.


한중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식량 공급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한중 자체의 생산량은 매년 작황에 따라 편차가 심해 불안정했지만 그리 많지 못했다. 강남으로부터 올라오는 곡물이 당나라 전역에 고르게 배분되는 덕에 한중은 적정 규모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면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왔는데 이젠 그렇지 못했다.


원정군이 운하를 장악하면서 당의 물류 기능이 제 역할을 못한지 몇 달이 지났고 장안을 비롯한 한중까지 그 여파가 미친 것이다. 대도시라면 살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유랑민들이 몰려들었으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차라리 낙양이나 정주, 변주 등으로 갔다면 굶는 것은 면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오래도록 살아왔던 터전을 두고 멀리 떠나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굶주린 이들의 모습은 애처로웠고 특히 죄 없는 아이들에겐 동정심이 일어 도와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곡식을 풀면 금방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었다. 한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면 또다시 군벌들의 거점이 될 수 있고, 방어가 쉬운 지형 때문에 재차 점령하는 것이 쉽지 않을 염려가 있었다. 원정군처럼 박격포가 있으면 공략하기 쉽지만 원정군이 고구려로 돌아가고 난 후에는 기존의 방식대로 전투를 치러야 할 것이다. 재래식 전투로는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가 되자 그나마 날이 누그러졌다. 한중성의 담벼락엔 아직 성을 떠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붙어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때 몇 기의 기마가 긴박하게 말을 달려 한중성으로 들어와 소식을 알렸다. 이어서 긴 나팔소리와 함께 멀리 언덕 너머로 밝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행렬의 첫머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홍 일행이었다.


왕자 이홍과 이를 보위하는 허경종 이하 관리들, 환관, 군사 등 2만이나 되는 큰 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는 이적, 소사업, 양사선, 배행방 등 높은 지위에 있던 장군과 중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상당수는 2차 고당전에서 유명을 달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바뀐 운명으로 인해 살아남게 되었고, 멀리 파촉을 거쳐 다시 장안으로 향하는 길에 오른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상당수는 파촉에 그냥 눌러앉으려다 허경종과 함께 들어간 정벌군에 의해 떠밀려 억지로 태자 일행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파촉에 유력한 인물을 단 한 명도 두지 못하게 하려는 대막리지의 방침 때문이었다.


이홍 일행에겐 파촉에서부터의 고단한 걸음을 멈출 시간이 반나절만 주어졌고, 한중에서 하루를 묵은 후 다음날 새벽 일찍 곧바로 장안성을 향해 출발해야 했다.


높은 고지대이자 산자락이 깊은 진령산맥을 넘어가면서 잠시 사이에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지고 안개가 자욱해 몇 미터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등, 변덕이 심한 날씨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이전에 도로를 건설하는 당군들이나 작업자들은 모두 밧줄로 묶은 상태로 관리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찾아온 일행에게 밧줄을 옭아맬 수는 없었다. 당군이 이런 상황에서 반란을 일으킨다면 원정군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벌군이 태자 일행을 둘러싼 채 엄중한 경계를 했고, 무기도 대부분 압수한 상태라 별 탈 없이 일행은 진령산맥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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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32. 마지막 독대 2 +1 23.04.10 346 20 14쪽
131 131. 마지막 독대 +6 23.04.10 320 14 12쪽
130 130. 간극 +1 23.04.07 372 20 12쪽
129 129. 귀환 3 23.04.07 323 15 12쪽
128 128. 귀환 2 +1 23.04.06 334 18 13쪽
127 127. 귀환 1 23.04.06 362 14 13쪽
126 126. 다시 낙양으로 +1 23.04.05 335 12 13쪽
125 125. 서하 +1 23.04.05 322 13 12쪽
» 124. 파촉 23.04.04 344 14 12쪽
123 123. 한중 23.04.04 348 13 11쪽
122 122. 사천정벌 +1 23.04.03 392 16 12쪽
121 121. 태극전 23.04.03 335 15 14쪽
120 120. 다시 장안성으로 +2 23.03.31 412 17 12쪽
119 119. 달빛 전투 23.03.31 334 15 12쪽
118 118. 반격 +1 23.03.30 361 15 12쪽
117 117. 추격 23.03.30 354 13 12쪽
116 116. 금원 +1 23.03.29 397 17 12쪽
115 115. 황성 +1 23.03.29 347 13 14쪽
114 114. 장안의 밤 23.03.28 418 19 14쪽
113 113. 장안성 공략 +1 23.03.28 402 19 12쪽
112 112. 장안성 앞 2 +2 23.03.27 371 21 12쪽
111 111. 장안성 앞 1 23.03.27 353 16 12쪽
110 110. 장안으로 2 23.03.24 432 15 13쪽
109 109. 장안으로 1 +2 23.03.24 413 15 13쪽
108 108. 진입 +1 23.03.23 430 19 13쪽
107 107. 심문 23.03.23 438 19 13쪽
106 106. 낙양성 전투 4 +3 23.03.22 440 18 14쪽
105 105. 낙양성 전투 3 23.03.22 395 16 14쪽
104 104. 낙양성 전투 2 23.03.22 426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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