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라는 감성팔이
“ 나주성이 당선된 공모전 말이야. 그거 실은 카페 동원해서 조회수랑 별점 조작한 거래. ”
내 말에 지연이는 놀란 토끼처럼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뭘 이정도 가지고.
그게 네 남친이 실체야. 그러니까 넌 그 새낄 걱정할 게 아니라 비난해야 정상이라고.
그런 새끼들 때문에 글로 승부를 보려는 진짜 작가들이 떨어졌을지도 모르거든.
나랑 너처럼.
“ 그게 진짜야..? ”
“ 어. 이미 회사에서도 확인 끝난 거야. 너도 알잖아 요즘 네티즌들 무서운 거. 그냥 논란만 있었을 뿐인데 증거까지 싹 다 찾아와서 완전 빼박이었어. ”
“ 고작 그런 걸로 확신한다고? 그딴 증거에 공신력이 어디 있다고! ”
“ 지금 우리가 재판 하냐? 공신력 따윈 소송에 가서 찾으시고, 우리처럼 대중들 관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네티즌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야. 나주성 아이피랑 아이디도 다 뜬 마당에 뭘 더 어떻게 증명해줘야 하는데. 네가 백날 그렇게 떠들어봐. 누가 들어주나. ”
“ 하··· ”
지연이는 현타가 세게 온 듯 한숨을 내쉬었다.
“ 애초에 나주성은 네 소설 첨삭 해줄 능력도 안 됐어. 자기가 글로 당선돼 본 적이 없거든. 이제 답이 좀 됐어? ”
“ 그럼 지금 주성이 악플이 전부 그거 때문이라고? ”
“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지금 퇴출 운동 벌어지고 난리도 아니야. 우리 플랫폼에서 유료 작품 쓰게 된 게 공모전 당선 혜택이었거든. 자격이 사라졌으니까 혜택도 압수 당해야지. ”
“ 근데 다른 작가들도 다 그러는 거 아니야? 자기 작품 홍보한다고 SNS에 올리는 작가들 꽤 본 거 같은데! 그런 걸로 퇴출까지는··· ”
“ 주최자가 엄금한 걸 했으니까 문제지. 입사지원서에 수상내역 잘못 기재해도 합격 무효 처리되는 시대에 하지 말라고 못 박은 규정을 어긴 거잖아. 그리고 자기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걸 누가 뭐라 그래? 나주성은 작가 카페에 글 올려서 서로 찍어주기로 약속하고 단체 행동 한 거라고. 그게 조작이지 뭐야. ”
“ 그래도 그동안 소설 재미있다고 잘만 팔렸잖아! 그렇게 안 했어도 당선됐을 거란 방증 아니야? ”
어째 말을 하다 보니 내가 가장 경멸하는 나주성 팬클럽과 단독 면담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개념 밥 말아먹은 것들은 밥맛이라 말 섞기도 짜증났다.
“ 지금 우리가 당한 게 뭔지 알아? 밖에서 상사한테 깨지고 오랜만에 X나 맛있는 거 먹으면서 스트레스 좀 풀어보려고 배달 어플을 열었거든. 근데 뭐가 맛있는지 몰라서 BEST 순위를 봤어. 근데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김치찜이 있네? 후기를 보니까 별점도 겁나 높고 존맛이라는 후기만 천 건이 넘어. 그래서 당장 주문했지. 가격이 다른 집보다 3천원이 비싸도 맛집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일단 시킨 거야. 근데 이게 웬 걸! 막상 까보니까 집에서 내가 끓인 맛이야. 이 새끼가 댓글 알바를 써서 후기를 조작한 거였더라고. 근데. 어쨌든 베스트 순위에 있는 거니까 내 입맛이 잘못된 거니 생각하고 존나 맛있게 처 먹어야겠냐?! 애초에 조작한 새끼가 잘못이지 맛 없는 내 잘못이냐고! ”
“ 그럼 그 집은 손절하고 진짜 맛집 찾아서 먹으면 되잖아! ”
“ 식당이 수백 수천 개가 있는데 어디가 맛집인 줄 알고! 그걸 대신해 주는 게 BEST순위랑 후긴데 그거부터가 뻥카면 그 아래 숨어 있는 맛집을 내가 어떻게 찾냐!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김치찜 하나에 내가 몇 시간을 버려야겠냐고! ”
“ 그럼 집밥 먹으면 되잖아!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 ”
“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지금 우리 나라 문학계가 이따위로 망해가고 있는 거야. 조작한 새끼를 족쳐도 모자랄 시간에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는 새끼들이 설쳐서 제대로 된 정신 머리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진짜로 꺼진 거라고! 나주성팬들이야 나주성 글 쓰는 거 좋아하지 다른 독자들은 X나 혐오한다고! 너도 댓글 봐서 알 거 아냐. 그 새끼 꼴 보기 싫어서 아이디 탈퇴한다고. 그게 피해라는 거야! ”
“ 그래도 넌 주성이 친구잖아! 이럴 때 일수록 편 들어줘야지! ”
논리에서 밀리니까 감정에 호소하기. 딱 내가 예상한 레퍼토리라 놀랍지도 않았다.
“ 친구 좋아하네. 너도 나주성이 내 욕하고 다닌 거 알지? 내가 묻자. 그 새낀 날 친구로 생각해서 그랬냐? ”
“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 주성이가 너 공모전도 도와줬다며! 근데 네가 어떻게 이래?! ”
“ X발 그거 아니니까 그렇지! 너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지가 당선된 적도 없는 새끼가 날 어떻게 도와주냐고! 결과를 보고도 아직도 몰라?! 나 당선되고 한 번도 1위 아니었던 적 없거든! 애초에 배워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새끼였다고! 그러니까 너도 정신 차려! 이런 일로 두 번 다신 찾아오지 말고! ”
난 지연이에게 마지막 조언을 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도 나주성한테 단단히 세뇌 당한 거 같은데 말로 어떻게 해볼 수준이 아니었다.
천생연분끼리 잘 먹고 잘 사시고요. 너도 이제 손절이다!
***
난 미인계를 박멸시키는 동시에 오히려 상대의 사상까지 개조시켜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다음 날 최종보스가 직접 등판했다.
저 새끼가 이번엔 또 어떤 뻔뻔한 소리를 하나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 왜. >
< 너 지연이한테 무슨 말 했냐? >
< 별 말 안 했는데? >
< 근데 얘가 공모전 얘길 어떻게 아냐고! >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달아 날아온 진상 커플의 연타에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올라왔다.
이게 2 대 2 커플 나락전인 줄 나만 몰랐지 뭐야. 그래서 난 정정당당하게 혼자 왔는데 너흰 둘이었네?
<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걔도 알 수 있지. 네 댓글만 읽어도 다 알겠더만. 고맙게도 누가 일목요연하게 요약 잘 해놨더라. 차라리 그 사람을 대필 작가로 뽑지 그랬냐. 그럼 지금 별점에서 0.1점은 더 올라갔을 텐데. >
< 이 새끼가! 오리발 내밀 생각하지 마! 지연이가 너한테 들었다고 했으니까! >
< 그럼 진작에 얘기하지. 괜히 연기하느라 힘만 뺐네. 지연이가 찾아와서 묻더라. 네 댓글 읽어봤는데 사실이냐고. 이미 다 알고 온 거 같은데 그럼 내가 아니라고 했어야 해? >
< 그랬어야지! 죽어도 나주성은 그럴 사람 아니라고 했어야지! >
얘 진짜 미친 새끼인가..?
< 아니.. 이미 다 밝혀진 일을 내가 어떻게 아니라고 우겨.. 너 기사도 떴잖아..어차피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니까··· >
이제 좀 이해가 되냐, 이 멍청한 새끼야?인간 주제에 감히 손바닥으로 하늘은 못 가린다고.
내가 아무리 신 들렸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글을 잘 써도 진짜 신은 아닌지라 그거까지는 무리였다.
< 똑같은 상황에서 네 여친이 물었으면 난 끝까지 모른 척 했을 거야. 넌 의리도 모르는 X새끼야! >
허. 이 새끼가 어디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주절거리고 있었다.
< 지랄하네. 내 여친한테 네가 날 키운 거라고 구라쳤겠지. 지연인 내 공모전 당선 시켜준 것도 너로 알고 있던데? 그게 네 의리라면 아주 잘 봤다. >
< ··· >
역시 죄인은 말이 없었다.
내가 원하던 게 이런 거다. 잘못을 했으면 반성하고 자숙하면 되는데 이것들이 자꾸 얼굴에 자꾸 철판을 깔고 나와서 더 열 받게 했다.
잘못한 새끼가 아카데미 한다고 설치고 다니기나 하고 말이야.
신작 낸다고 깝치고 말이야.
그러니까 눈초리 한 번 받고 끝날 일에 돌팔매질을 맞는 거다.
< 너 그거 때문에 아직도 뚱해 있냐, 이 속 좁은 새끼야?! >
< 아니 X발 네 잘못 얘기 중인데 왜 또 내 욕이 나와?! >
이 새끼가 착하게 말을 섞어줬더니 이걸 또 내 탓으로 몰고 가려 했다. 방심하고 있었으면 또 가스라이팅 당해서 ‘내 탓이오’하며 사과할 뻔했다.
신은 무슨 일이든 내 탓으로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그 말에 반대했다. X발 이건 절대 내 탓이 아니었다.
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는데 이게 왜 내 탓이야!
< 그래. 내가 미안하다. 됐냐? 그러니까 이제 제발 그만 하자! 남자끼리 치졸하게 이게 뭐냐! >
그 말은 마치 사과해 줄 테니 그냥 먹고 떨어지라는 거 같았다. 거기다 은근슬쩍 날 치졸한 새끼로 몰고가려던 시도는 그냥 귀여운 애교로 봐주기로 했다.
< 사과는 너나 많이 처 먹고, 먹는 김에 즐도 같이 처 먹어라, 이 X새끼야! 끊는다! >
작은 격전이 있었지만 이런 사사로운 일에 감정 소비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난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우리의 전쟁터는 현실이 아닌 온라인 세계였다. 미국과 러시아가 제 영토 망가지는 게 싫어서 다른 나라에서 전쟁을 벌이듯 우리도 제 3의 영토에서 죽기 살기로 싸워보자는 의미에서 내가 배려한 거다. 거기선 죽는 사람도, 신체 불구 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양심의 가책 없이 마음껏 서로를 물어 뜯을 수 있을 거다.
물론 마음의 상처는 남겠지만, 우리 나라 법이 그걸 상해로 인정해 주지 않으니 피해 보상은 없는 걸로. 도장 쾅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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