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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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작품등록일 :
2023.01.20 16:14
최근연재일 :
2023.08.2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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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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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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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0쪽

X같으면 꺼져

DUMMY

***


장동복만큼이나 호구 같았던 나주성은 바로 그 날 오후 나한테 전화를 해왔다. 전화를 받기도 전에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가서 조소부터 터져 나왔다.


나주성 이 새끼는 같은 남자한테는 못돼 처먹었으면서 여자한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호구 새끼가 따로 없었다. 그냥 이 새끼가 성지연한테 커리어고 돈이고 집이고 다 빼앗겨 버렸으면 좋겠다.


이번 계획에 무소유 엔딩도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 왜. >


< 나야. 나주성. 천만원 바로 입금할게. >


내 예상대로였다. 이 호구 자식이 그렇게 개무시를 당하고도 천만원을 주겠단다. 앞으로 주성이 어머니께서 흘리실 피눈물의 색감이 벌써부터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네가 그동안 얼마나 부모님께 잘했던 여자에 미쳐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쓴 순간부터 넌 그냥 불효막심한 개자식인 거다. 이건 이 나라의 모든 어머니들을 대신한 공식 입장문이었다.


< 결국 화해했냐? >


< 너도 알잖아. 사랑 싸움이 칼로 물 베긴 거. 싸웠다가 금방 좋아지고 그러는 거지 뭐. >


다들 그러는 게 아니라 네가 완전 개호구잡힌 거야 이 멍청아. 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 그래..? 난 금방 안 좋아지던데. 얼마 전에 나연이랑 대판 싸우고 헤어졌어. >


난 마지막에 날 벌레 보듯 하며 떠나간 나연이를 추억하며 말했다.


두 번 다시 없을 내 진정한 끝사랑이라곤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만날 때 만큼은 더없이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이렇게 추잡하게 끝을 맺어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 어쩌다가. >


< 다른 여자랑 호텔에 있다가 걸렸거든. >


< 네가 양아치짓 했네. 그런 애인을 누가 용서해주냐. >


너. 이 새끼야. 넌 그런 성지연이랑 잘만 만나고 있던데?


물론 아직 그 사실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설령 알게 되더라도 성지연이 눈물 한 방울만 흘리면 바로 용서해줄 거란 걸 알았다.


< 그러게··· >


< 아무튼 나 바로 천만 원 입금할 테니까 오늘부터 다시 우리 지연이 글 좀 봐주라. 홍보는 내가 알아서 맡을게. >


< 그 전에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


< 뭔데 >


< 너 왜 그렇게 성지연한테 지극정성이냐. 말마따나 아직 혼인신고서에 도장 찍은 것도 아니잖아. 근데 왜 못 도와줘서 안달이냐고. 그러다 헤어지면 너만 개손해잖아. >


난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 나주성처럼 결혼 시장에서 서로 모셔가려는 최고의 신랑감이 뭐가 아쉽다고 성지연한테 저렇게 목을 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성지연이랑 헤어져도 나주성은 얼마든지 더 예쁘고 더 돈 많은 여자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나처럼 말이다. 인생을 올인하기엔 성지연이란 여자는 그렇게 좋은 매물은 아니었다.


< 왜겠냐. 사랑하니까 그렇지. 다른 건 모르겠고 난 지연이가 공모전에 입상만 하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싶어. >


< 이 새끼 진짜 좋아하나 보네. 알았어. 그럼 나도 준비할게. 오늘 너희 집에서 보는 걸로 하자. >


< 정말 고맙다. 내가 나중에 두둑하게 보답할게. >


< 됐어. 이따 봐. >


사내들끼리 고맙다고 하는 게 민망해 난 얼른 대화를 끊어버렸다.


이로서 난 나주성이 성지연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 그런 자식이 성지연이 자기를 놔두고 나랑 바람 피웠다는 걸 알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아마 장동복씨가 마지막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꿈을 잃어야 했을 때만큼 고통스러울 거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행보는 이미 결정 난 거나 다름없었다. 난 계속 내 소신을 굳히지 않고 쭉 밀고 나가기로 했다.


***


나주성의 홍보 작업단이 활동을 재개하자 성지연의 소설은 20위 꼴등에서 19위로, 그리고 어느새 13위로 뛰어올랐다. 역시 우리나라는 상품의 질보단 홍보와 마케팅이 8할은 먹고 가는 포장의 나라였다.


하지만 내용물을 까보니 반품이 마려운 하자가 수두룩하게 발견됐다. 특히 나의 리터치를 받지 않았던 최신 회차들은 기절초풍할 수준이었다.


억지로 5천 자 맞추려고 다른 장면 바로 초반에 컷한 거 실화냐..?


이럴 거면 앞에 내용을 조금만 더 늘리던가. 아니면 칼 같이 5천자에 맞추지 말고 5천 7백자 정도는 써주던가. 이런 센스조차 없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하는 스승은 목이 쉬어 성대결절이 오기 직전이었다.


지금 나의 처참한 심정을 대변하듯 나주성의 지휘를 받지 않은 정직한 네티즌들의 진솔한 댓글들이 보였다.


< 뭐냐. 여기도 댓글 알바 쓰냐? 글이 이따윈데 왜 다들 좋다고 난리냐. 존나 티나네. >


내 말이. 간혹 가다가 이렇게 눈치 빠른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해줘서 속이 다 시원했다.


넌 베스트 댓글로 가라. 난 좋아요 버튼을 눌러줬다.


***


그날 오후 바로 나주성한테 천만 원이 입금됐다. 난 세금 처리를 위해 세무사님께 그 사실을 알리고 곧바로 나주성네 집으로 달려갔다. 지연이는 이미 퇴근해서 날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 나 당장 12시에 업로드 해야 하는데 한 번 봐줘! ”


입금했다고 지연이가 갑처럼 굴며 명령했다. 한낱 신인인 지금도 이런 데 나중에 성공해서 어깨에 뽕 차면 얼마나 갑질을 부리고 다닐지 상상이 갔다. 이런 인간들은 절대 성공해선 안 됐다.


“ 이제 5시간 정도 남았네. 봐봐. ”


난 그녀의 노트북을 빼앗아 미리 켜 둔 한글 파일을 검토했다.


제 점수는요. 별점 6.3점이요.


내가 한 번 다듬어줘서 전체적으로 글이 좋아지긴 했지만 작가의 필력이 허접한 탓에 도저히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이것도 내 덕분이지 아니었으면 평균 별점 3점에 머물렀을 거다. 넌 진짜 나랑 나주성한테 엎드려 절해야 한다.


“ 주성이 너도 이거 읽어 봤어? ”


난 나와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력직인 지연이 남친에게 물었다.


“ 아니. 지연이가 창피하다고 나는 보지 말래. 난 그냥 카페에다 홍보만 열심히 하고 있어. ”


저 똥 싸지른 글을 안 읽어도 되다니.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난 놈이 부러웠다.


반면에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내 손으로 손수 성지연이 싸지른 똥을 치워줘야 하는 걸까. 천만 원이 아니었으면 이대로 원본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다신 복구할 수 없게 쓰레기통을 비워버렸을 거다.


“ 어떤 사람이 내 소설이 갈비찜 레시피보다 재미없다던데 진짜 그래? ”


성지연도 그 댓글을 읽었는지 자존심 상한 얼굴로 물었다.


그 네티즌의 독설에 난 전적으로 동의했다. 갈비찜은 맛있기라도 하지. 쟤 글은 맛대가리가 없어서 별로 맛보고 싶지도 않았다.


“ 아니! 그 새끼 그냥 악플러 새끼야! 네 글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소설에 오가면서 방구석 평론가처럼 그 지랄 하고 다닐 걸. 그냥 무시해. ”


하지만 성지연의 발전을 원하지 않았던 난 오구오구 해주며 그녀의 각성을 원천봉쇄했다.


“ 그렇지? 난 또 내가 재능 없는 줄 알고 식겁했잖아!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다! 나 앞으로 더 열심히 써볼게! ”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해. 부족한 건 나랑 나주성이 다 채워줄 테니까. ”


절대 따로 노력도 하지 말고, 격분하지도 말고, 어려운 건 우리한테 다 맡기고 넌 그냥 그렇게만 있어줘. 그럼 넌 1년 안에 망하게 될 거야.


***


다시 우리가 붙자 성지연의 소설은 결국 10위 안에 진입하며 저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입상을 하려면 최소 4등 안에는 들어야 했기에 성지연은 만족하지 않고 계속 우리를 쪼아댔다.


“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8등밖에 안 돼··· 이러다가 4등 안에 못 들고 떨어지겠어. 나 어떻게 해..! ”


양심상 네 실력에 8등도 감지덕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성지연은 자기는 이제 망했다며 울고 불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성인이랑 같이 일하는 건지 아니면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미성년자랑 일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렇게 운다고 일이 해결되면 나도 맨날 울겠다! 나도 엉엉 울 테니까 장동복씨 돌려내!


“ 아직 시간 있잖아. 그 안에 더 많이 잘 쓰면 되지. ”


나주성은 또 여자친구라고 스윗한 척하며 달래줬다. 성지연 나쁜 버릇은 쟤가 다 버린 거다.


“ 이미 충분히 잘 쓰고 있다며! 네 홍보빨도 다 떨어져 가고! 나보고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 ”


“ 지연아, 그러지 말고 일단 진정해 봐. 그래야 대책을 세우지. ”


“ 진정하긴 뭘 진정해! 내 인생이 망하게 생겼는데! ”


“ 고작 공모전 하나 가지고 무슨 인생이 망했다고 그래. 이번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도 있는데. ”


“ 지금 나한테 이번에 포기하라는 거야?! 꺼져! 나한테 다음은 없어! 무조건 이번에 입상해야 한다고! ”


답도 없는 대화를 계속 듣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팠다.


그 정도 정신머리로 글 쓸 거면 그냥 여기서 때려치웠으면 좋겠다.


내가 대기업이 이런 말 하는 걸 참 재수없게 생각했는데 오늘은 꼭 해야겠다.


여기 너 아니어도 네 자리 채울 사람 많으니까 X같으면 꺼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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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같으면 꺼져 23.05.17 92 6 10쪽
43 넌 뭐 되냐? 23.05.16 97 7 11쪽
42 밑지는 장사 23.05.15 95 9 10쪽
41 계획하지 않았던 사고 23.05.14 101 11 10쪽
40 가장 보통의 작가 23.05.04 117 15 10쪽
39 예선 가격 23.05.04 99 13 10쪽
38 나 담가 먹으려고? 23.04.27 127 16 9쪽
37 100원의 권력 23.04.26 118 12 10쪽
36 망해도 50억 자산가 23.04.18 152 16 9쪽
35 우정이라는 감성팔이 23.04.17 136 13 10쪽
34 더 많이 가진 자가 지배해 23.04.16 144 12 10쪽
33 시험의 일주일 23.04.15 139 17 11쪽
32 우리 작가님 지켜! 23.04.13 156 17 10쪽
31 너의 이름에 뒤에서도 그는 행복해 했다 23.04.12 158 14 10쪽
30 작가가 스토리 작가를 구한다고? 23.04.11 165 14 9쪽
29 너의 이름은 23.04.06 195 17 9쪽
28 변절자 23.04.05 221 15 10쪽
27 비밀 과외 23.04.04 215 19 10쪽
26 미치도록 가지고 싶어 23.04.01 303 21 10쪽
25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그녀 23.03.31 293 21 10쪽
24 자랑질 23.03.30 277 19 9쪽
23 베스트셀러 작가 되는 법 23.03.29 307 17 9쪽
22 염탐 23.03.28 311 20 9쪽
21 나 영업 안 해! 23.03.27 317 20 10쪽
20 네임벨류 23.03.24 361 2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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