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Manners Maketh Riots(2).

‘전국민족통일조합총연맹’ 흔히 민통연이라는 이름의 용공 단체 회원 황민석은 어릴 적부터 치맛바람이 심한 집안에서 자라왔다.
하지만 그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대학을 다녔다.
부모는 그때부터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마치 실패작을 보는 시선이었지.
사실상 부모와 의절한 후.
방황하던 자신을 받아 준 곳이 바로 여기다.
그들만이 유일하게 황민석을 이해하고 받아줬다.
동지라고 불러줬으며, 함께 그의 과거에 눈물 흘려줬다.
그는 어느새 사이비 종교에 빠지듯 용공단체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말했다.
한국의 학력주의부터 빈부격차, 취업 등등 이 모든 것이!
미국과 일본 그리고 부패한 자본가에 의한 계획이었다고.
만인이 평등하고 학력으로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모든 대학을 평준화를 하고
자본가와 대기업의 지분을 빼앗아 시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이 모든 불평등과 갈등이 해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지금도 미제와 일제에 맞서 분투 중인 사회주의 모국(북한)을 도와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고. 황민석은 홀리듯 그 말에 빠져들었다.
그날 이후.
황민석은 자신 같은 희생자가 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일생을 사회주의 투쟁에 바치기로 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최근 사회주의 모국으로부터 받은 영광스런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이 시위에 참석했다.
****
황민석은 눈 아래에 난 멍자국을 문질렀다.
‘밤 사이에 뭐가 세워졌네?’
그러면서도 지금도 쉬지 않고 올라가고 있는 거대한 공사 부지를 응시했다.
하룻밤 사이. 안테나 형상을 한 첨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어제는 분명 없던 거다.
삐이이이이-
“음?”
그때였다. 문뜩 황민석은 자신의 휴대폰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느꼈다.
전화인가 싶어서 화면을 켰지만.
“....환청인가? 아니면 고장?”
그의 휴대폰은 멀쩡했다.
“나만 그런게 아닌가 본데?”
문뜩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처럼 고개를 갸웃하면서 휴대폰을 꺼때 보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명심하세요. 동지들! 절대로! 폭력을 휘두르면 안 됩니다! 언론사에 노인 패는 시위대라는 기사가 한 줄이라도 나오면! 그날은 그냥 다 같이 죽는 거야!”
저 앞에서는 평소의 붉은 띠가 아닌,
평화와 환경을 상징하는 초록색 띠를 머리에 두른 조합장이 연신 주의를 주고 있었다.
“씨부럴... 살다살다 별 개같은 꼴을 다 경험해 보네.”
문뜩, 바로 옆에 있던 한 남성의 살기 어린 투정이 들렸다.
“.....”
황민석은 최대한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노동과는 거리가 먼 하얀 피부에 커다란 덩치. 그리고 애써 토시로 가렸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전신 문신.
전형적인 조폭이었기 때문이다.
‘건설노조에서 나온 사람이었지?’
듣기로는 최근까지 건설 노조에 속해 있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건설노조에서 건설사들 삥뜯을 때 위압 주는 용도로 데리고 다니는 건달이라고 보면 됐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탄압 때문에 노조에서 반강제로 나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삐이이이이-
그때, 다시 한번 아까의 환청이 휴대폰에서 들렸다.
“씨발... 진짜 다른 일 알아봐야 하나? 돈 많이 준다고 해서 왔더니 북한 빠는 새끼들 아니랄까봐 돈 없는 건 아주 똑 닮았어.”
“.....!”
황민석은 이어지는 건달의 말에 이를 악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머릿수가 중요하다 해도. 받을 놈이랑 안 받을 놈이 있지!’
저 무늬만 지역조합장인 건달 놈이 감히 사회주의 모국을 모욕하다니!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 뿐. 최대한 참았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휴... 그놈의 로봇세가 뭔지. 시벌...’
로봇세 선언으로 사회주의 투쟁의 든든한 기둥 중 하나였던 노동계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
노동계에서 정부와 기업 눈치를 너무 많이 보았다.
때문에 대규모 노동단체들이 이번 시위에 전부 불참 의사를 밝혔다.
저런 있어 봤자 도움도 안 되는 놈을 머릿수라도 채워야 한다면서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본가 놈들만 아주 신났지. 빌어먹을... 다 엎어버려야 하는데!’
로봇세 선언으로 특히 기업들, 그 중 건설사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예전처럼 혁명 자금을 위해 월례금과 노조에 일감 몰아주기를 요구했다간, 언론에 고발하겠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렇다고 이 건설사 놈들이 깨끗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도 하청 업체 뜯어 먹을 때, 노조에 있는 조폭들을 데려다 잘만 썼으니까.
‘성세류 같은 사람이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 농민의 편에 섰다면 진짜 든든했을 텐데...’
성세류가 선언한 로봇세는 어느 순간 SR의 손을 떠나 여론의 영역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노조 중에 노조. 귀족 중에 귀족이라 불리는 금속 노조와 미래,지아차 노조들도 요즘 들어 사측의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날씨 진짜 엿같이 덥네...”
6월이라는 초여름 날씨. 심지어 여긴 대구와 가까운 경북 수성시다. 더위와 불쾌지수는 높았고.
덩치에 맞게 살집도 있는 저 조폭 출신 조합장은 계속해서 짜증과 함께 살기를 풍겨 왔다.
삐이이이이-
또 이상한 소리가 이번엔 저 조폭의 휴대폰에서 들렸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지. 저 문신돼지는 자신의 휴대폰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로봇세라... 잘만 정착되면 진정한 사회주의 낙원을 만들 수 있을지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거대한 혁명으로 지금의 정부를 무너뜨려야 해. SR인더스트리도 협동조합화 해야 하고!’
황민석은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면서 저 인간의 존재감을 잊기로 했다.
“저기 저 공사장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환경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정신을 파괴할 겁니다! 우리 수성시의 소중한 자연 유산! 또래암 바위를 아십니까? 그 바위가 전자공장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색이 변하고 있습니다!”
“또래암을 지키자! 또래암을 지키자!”
문뜩 확성기에서 이 시위의 구호가 들렸다.
솔직히 황민석 자신도 웃음이 나오는 구호였다.
하지만 이런 모순을 견뎌야만 자본주의 중심에서 사회주의를 외칠 수 있다.
삐이이이이-
또 어디선가 환청 같은 소리가 들렸다.
황민석은 이제 이 이상한 소리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더위와 허탈함 사이에 서 있을 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현 정부 들어서 탄압이 심해진 것은 각오했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진보당 후보의 투쟁이 역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속 시원했던 토론과 별개로. 이 나라 인민들은 아직 계몽이 덜 되어 있었다. 그렇게 진실을 알려줬음에도! 기어코! 친일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에 앉히다니!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어느 때보다 세가 커졌었지...’
원래 철은 두들길수록 단단해지는 법.
탄압이 심해질수록 동지들은 뭉쳤고. 수는 적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이 전보다 더 큰 지지를 해줬었다.
그 기세를 모아서 제주해군기지부터 여러 공항까지.
민족의 강토를 파괴하고 적화통일을 방해하는 괴뢰 시설을 저지하기 위해 열심히 투쟁했었다.
“하아...”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로웠는데...
‘모든 게 저 회사 때문이야!’
몰락은 갑자기 찾아왔다.
중간중간 부수익 좀 벌 겸, 대기업 자본가 놈들에게서 삥 좀 뜯을 겸. 화성시의 SR인지 뭔지 하는 회사로 원정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유모차에 휘두르던 쇠파이프 사진이 퍼진 이후.
황민석이 있는 용공 계열 단체 중 절반이 해산됐고. 간부 중 7할 이상이 감옥으로 잡혀갔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전 국민으로부터 하루아침에 테러리스트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삐이이이이-
자신들이 뭣 모르고 건들었던 SR인더스트리라는 회사는 이후로 미친 듯이 승천했고.
최근에는 로봇세 선언 때문에 연대 형식으로 기생했던 대형 노조와 시민단체와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모든 게... 전부... SR과 성세류 때문이야!’
정부에서는 진즉에 자신들을 이적 단체로 지정하고. 지원금도 끊어 버렸다.
그렇게 굶어 죽기 직전. 혁명 본진이자 사회주의 모국 북한에서 사이버 드보크로 지령이 떨어졌다.
동시에 중국을 통해서 공작금도 들어왔다.
삐이이이이-
‘SR... SR...!’
문제는 그 대상이다. 바로 SR인더스트리.
처음엔 다들 고민했지만, 이윽고 먹고살기 위해서 참여했다.
지금까지 해 온 일이 이런 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캠퍼스는 다들 트라우마에 미군도 있어서 포기했고.
비교적 만만한 2캠퍼스를 타겟으로 삼았다.
“다들 절대 폭력을 휘두르면 안 됩니다! 그냥 맞으세요! 이 나라에서는 약자가 곧 강자입니다! 이틀간 잘 참으셨습니다. 삼일째인 오늘도 우리! 잘 버텨 봅시다!”
삐이이이이-
그리고 집회 첫날이었던 그제. 황민석과 동지들은 보았다.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은 낯익은 대치를.
차이점이 있다면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있는 노인들의 물결이라는 것.
분명 진심으로 싸운다면 젊은 자신들이 이긴다.
하지만 첫날도 둘째 날도 고개숙이며 벌벌떠는 연기를 하면서 맞기만 했다.
“참아야 합니다! 어제처럼 태극기 노인들이 와도 고개숙이고 맞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둔기처럼 휘두르는 시위대에게 예수처럼 반대쪽 뺨을 대야 합니다!”
삐이이이이-
앞에서 단체장들이 몇 번째인지 모를 주의를 주었다.
“씨발... 더럽게 쫑알거리네! 빨갱이 새끼가!”
삐이이이이-
“.....!”
동시에 옆에 있던 건달의 짜증도 화음처럼 들렸다.
황민석은 오늘도 어김없이 있을 보수단체와의 충돌을 슬슬 준비하며 마음 속에 참을 인을 썼다.
‘참자... 참자! 코리아 연방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미군을 몰아내고. 한미동맹을 철폐하고. 친일파를 척살한 후. 사회주의 모국(북한)과 코리아 연방을 결성하는 것!
당당한 핵보유국이 되어 진정한 자주독립 통일국가로 나아 가는 것!
모든 부를 재분배하고. 대학을 평준화 해 차별 없는 이상국가를 만드는 것!
오직 그걸 위해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황민석은 빨갱이라는 모멸 가득한 인생을 인내했다.
황민석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동지 대부분이 비슷하다.
‘상상하라! 코리아 연방!’
미국과 일본의 탄압? 중국, 러시아와의 동맹으로 이겨내면 된다!
오히려 통일된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연결되어 동아시아의 물류 허브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인내를...
삐이이이이-
“그나저나 오늘은 보수단체 노인네들이 안 보이네? 씨벌 오늘은 진짜로 몰래 한 명 정도 죽여버릴까 했었는데!”
하지만 그런 그의 인내를 저 양아치 조합장 놈이 계속해서 시험한다.
그러고보니 벌써 대치 중이었어야 할 보수단체들이 오늘은 유독 늦는 것 같다.
“어이! 절대 폭력을 쓰면 안 된다고 한 말 못 들었어?”
참다 못한 다른 동지가 그 건달에게 공격적으로 대꾸했고.
“뭐 씨발? 내가 그쪽 말을 왜 들어야 하는데?”
당연하지만 이 조폭 녀석은 순순히 말을 듣지 않았다.
차라리 시골 똥개가 말이 더 잘 통할 듯 싶었다.
‘참자... 참자... 참자!’
삐이이이이-
“뭐라고 했냐? 씨발? 어이! 나보고 씨발이라고 했어요? 누군 욕 할 줄 몰라서 이러는 줄 아나? 문신돼지 새끼가 육수나 존나게 처흘리는 게!”
참자... 참아야 한다.
“문,문신돼지? 이 병신 빨갱이 새끼들이... 지금 뭐라고 그랬어?! 뭐라 했냐고? 씹새야!”
삐이이이이-
“그래! 씨발, 이번 기회에 대가리를 깨주마! 서비스로 눈알도 하나 찔러 줄게! 그거 아냐? 내 손에 병신 된 전의경만 열 명이 넘어! 이 건설조폭 새끼야!”
삐이이이이-
참자, 참아야...
황민석은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지만.
삐이이이이-
“죽여버려!”
“막아!”
“잡아, 찔러!”
“뭘 봐? 기레기 새끼들아! 어디 구경났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코리아 연방 만세!”
“크아아아아악!”
와장창! 와장창!
싸움은 순식간에 시위대 전체로 퍼져 있었고.
삐이이이이-
“으아아아악! 다 죽여버리겠어! 이 민족반역자 새끼들아!”
황민석 또한 결국 이성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삐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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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C의 한문도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수성시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시위대 내에서 발생한 극심한 유혈사태가...]
[경찰에서는 이번 시위대 내분으로 현재까지 중상자 84명을 포함한 총 211명의 사상자가....]
[도를 넘은 시위대! 정부는 뭐 하나?]
[경찰도 진압을 포기한 괴물 같았던 폭력 시위대들]
[수성시 시위대, 전부 폭력시위 전과 있어.]
[무슨 이유로 내분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아.]
텔레비전 뉴스에서 오늘 낮에 있었던 일들이 여과 없이 보도되었다.
이미 가디언즈가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을 소파에 앉아 팝콘과 함께 보았던 나였지만, 저렇게 기자들의 중계와 함께 보니 또 새롭다.
이래서 스포츠에 해설가가 필요한 모양이다.
“정부에서는 뭐랍니까?”
나는 스냅백 모자를 대충 벗어 던진 후
그림자처럼 옆에 서 있는 고요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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