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용사가 엘프로 환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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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삼
작품등록일 :
2023.01.2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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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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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스노우 골렘

DUMMY

알렌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젠장, 양호선생! 이러지 말고 감정 상한게 있으면 쫌 말로 풉시다. 예?!”


“괜찮다니까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언제까지?! 저 놈 주먹에 처맞아 가루가 되는 순간까지?!”


골렘은 없는 눈코입으로도 자연스럽게 미소지으며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야무지게 꼭 쥔 두 주먹. 하나가 거의 집 한 채에 필적 할 만한 사이즈다. 저토록 과감히 허리를 꺾는 것은 더 큰 추진력을 얻기 위함인가. 문득 놈이 미친놈처럼 장벽을 두드리던 광경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젠장, 망했군.'


유연하게 꺾였던 골렘의 허리가 돌아오면서 거대한 회오리가 쳤다. 알렌과 크리스티안은 그것의 거대한 두 팔이 하늘 높이 들렸다가 사정없이 떨어지는 광경을 무력하게 쳐다보았다. 동공에 비쳤던 하얀 점이 점점 더 크게 확장되어 시야 전체를 덮었다.


골렘의 주먹이 그들을 박살내기 직전, 공중에서 수직으로 마법진이 펼쳐졌다. 마력이 흘러 들어와 마법진 전체가 한 번 깜박이더니 화르륵 불을 뿜었다.


- 콰과과과광


거대한 불기둥이 발사되었다. 골렘은 갑작스런 공격에 멈칫했지만, 피하기엔 이미 늦어 버렸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에 두터운 눈벽이 줄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골렘이 황급히 손을 뻗어 불길을 막으려 했지만, 그것의 두 팔마저 불에 녹아 화르르 증발해버렸다. 허공에 수증기가 뿌옇게 차올랐다.


“하아··· 양호선생. 우리를 미끼로 유인한건가. 이 새끼, 두고보자. 말 한마디 안해줬다 이거지?"


알렌이 이를 갈며 중얼거리자, 크리스티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은 어차피 치유 매크로가 있잖아.”


“무적인 건 아니야. 게다가 고통도 고스란히 다 느껴진다고.”


그의 매서운 두 눈이 저 아래 어딘가에 있을 양호선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환된 마법이 끝나고 수증기가 걷히자, 반 쯤 녹아내린 스노우 골렘의 처참한 몰골이 드러났다. 마치 사정없이 뻥 걷어차인 눈사람 같달까. 대가리도 살짝 비뚤어진 것이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크리스티안은 살얼음이 줄줄 흘러내리는 골렘의 몸통을 가르켰다.


“형, 저기, 마석이야!”


“그래. 보고있어.”


사람 머리통만한 노란 마석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렇게 큰 건 처음 보는데.”


크리스티안이 못 믿겠다는 듯 눈을 비볐다. 그 순간 마석 주변이 노랗게 빛나더니 세찬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 마석 위로 다시 눈이 쌓이고 있었다. 벌써 회복을 시작하려는 건가. 알렌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시간이 별로 없어. 검 좀 빌리자.”


“뭘 어쩌려고?”


“어쩌긴. 네가 날 저기까지 던져야지. ”


알렌의 손가락 끝이 정확히 골렘을 가르키고 있었다. 거리가 꽤 먼데 괜찮을까. 간격을 가늠해보던 크리스티안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어··· 내가 실패하더라도 원망하지 말고, 부디 평화롭게 성불해 줘.”


“주둥이 좀 맞고 시작하자. 차라리 저주를 하지 그래?"


“시간 없다며? 일단 검부터 받아. 내가 방패를 들고 셋 까지 셀껀데, 셋 하면 이 위로 뛰어 내리는 거야.”


그는 알렌을 번쩍 들어 자기 어깨 정도 높이의 나뭇가지에 올려 놓았다. 알렌은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곧 자세를 잡고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크리스티안이 살짝 무릎을 꿇은 채 방패를 사선으로 눕혀 들었다. 그가 마나를 주입하자 표면이 서서히 푸른색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빛의 알갱이들이 반짝이며 피어 올랐다. 준비 완료. 크리스티안이 알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도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하나, 둘···”


- 셋


셋에 맞추어 알렌이 훅 뛰어 내렸다. 그의 발이 방패의 표면에 닿자마자 마나가 폭발하듯 터지며 그의 신형을 튕겨냈다. 알렌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삐이이이익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귓청을 찢을 듯이 울렸다.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경이로운 스피드. 너무 빨라서 눈조차 뜰 수 없었다. 이건 뭐 추락사가 아니라, 골렘의 몸뚱이에 처박혀 충돌사 할 지경인데.


'떠져라, 제발 쫌!'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거친 바람을 뚫고 마침내 그가 두 눈을 부릅떴다. 눈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희미한 시야로 골렘과의 거리가 빠른 속도로 좁혀지는 것이 보였다.


일격에 끝내야 한다.


그가 검을 단단히 고쳐쥐고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그의 이마에 노틸루카의 왕관이 떠올랐다. 목표물의 위치가 살짝 낮으니, 떨어지는 지점에서 사선으로 내려치자.


목표물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5미터··· 4미터··· 3미터. 마침내 알렌이 날아오는 것을 눈치 챈 골렘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바로 지금이다.


- 도살.


그의 검이 반원으로 보랏빛 궤적을 남겼다. 예리한 검 끝에 세찬 바람마저 베어져나갔다. 서걱- 골렘의 몸통에 대각선으로 그림자가 졌다.


- 쨍!


마석이 산산조각으로 박살났다. 골렘의 상체가 반듯하게 잘린 절단면을 따라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알렌은 추락하기 전 다시 검을 고쳐쥐고, 머리 위로 힘차게 휘둘렀다.


“흐앗!"


그의 검이 골렘의 몸통 깊숙히 박혔다. 그의 몸 전체가 검을 붙잡은 한쪽 팔에만 의지하여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발밑으로 까마득히 먼 지면이 보인다. 조금만 모자랐어도 바로 추락했겠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젠 심장 떨려서 미친 짓거리도 못하겠네."


쿵 쿵···. 예리엘의 작은 심장이 세차게 날뛰고 있었다. 잠깐. 지금 날뛰는 것은 내 심장인가, 아니면 혈관을 타고 미친듯이 질주하는 아드레날린인 것인가. 분명한 것은, 지금 머리가 급속도로 맑아지면서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상쾌해졌다는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


알렌은 미친놈처럼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래, 해냈다! 이 미친 짓을 내가 또 해냈어. 아, 웃으면 안되는데, 도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느라 검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손가락에서 자꾸 힘이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 빠악


순간 커다란 눈덩이가 그의 정수리를 후려치며 뭉개져내렸다. 동시에 그의 정신이 퍼뜩 차가운 현실로 되돌아왔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집 채만한 눈덩이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벌써 붕괴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젠장!”


그는 떨어져내리는 눈덩이들을 계단삼아 점프하며 서서히 지면으로 내려왔다.


- 아퀼로 에페루스


디오도르의 바람 마법이 알렌의 몸을 감싸며,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눈덩이들을 모두 날려 버렸다. 골렘의 붕괴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큰 덩어리들이 가루로 산산이 부서져 허공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끝났네."


알렌은 소용돌이치는 눈보라에 뒤덮혀 하얗게 지워져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오오오- 바람이 설원을 거칠게 핥퀴며 지나갔다. 그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근데 저것들은 또 왜 저래?"


알렌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악령들이 춤추던 것을 멈춘 채 일제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하얗게 비어있는 얼굴들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것들의 고개가 마치 스프링처럼 파르르 떨렸다. 몸통이 지직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악령들의 모습이 점점 더 기괴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또 다시 현혹하려 드는건가.


“건방진 새끼들.”


그의 입꼬리 한 쪽이 비스듬히 올라갔다. 두 번 당해주지 않을건데 어쩌지. 알렌은 그것들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이것들은 실체조차 없는 허상. 그러니 정체를 파악하겠다며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접근방식이었던 것이다. 악령이고 나발이고, 허상은 허상일 뿐. 분명한 것은 단 하나다.


‘나를 방해하면 모두 제거하겠다.’


그의 눈동자 전체가 화르르 타들어가는 것처럼 짙은 보랏빛을 뿜기 시작했다. 마치 온 세상이 보라색 불길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악령들이 잔상이 한 번 크게 일렁거리더니,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마치 촛불이 꺼지듯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검은 연기만이 재처럼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흐음.”


알렌이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쩌다보니 아주 퇴치를 해버렸네. 조금 찜찜했던 건, 저 불길해보이는 연기에서도 어쩐지 미약하게나마 신성력이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저쪽도 대충 마무리가 된 것 같아.”


어느샌가 크리스티안이 다가와 오덴버그 성을 가르켰다. 마물 토벌이 끝난 모양인지 기사단들은 대열을 이루어 질서정연하게 성 안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무리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직 신성력을 거두지 않은 것인지, 여기저기에서 웅- 하는 파동음이 들려왔다. 알렌과 크리스티안이 소근거리며 대화했다.


"아무래도 경계하는 것 같지?"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은빛 순록이 새겨진 보라색 휘장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휘장은 온통 마물들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전원 성기사로 이루어졌다는 오덴버그의 수호기사단.


버거운 전투였는지 그들은 모두 지쳐보였다. 피와 땀에 젖은 수많은 얼굴들이 날카롭게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중 단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그들에게 물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누구신지 여쭈어봐도 되겠소? 이 근처에서 뵌 적 없던 분들인 것 같은데.”


낮고 거친 음성. 예의는 갖추었지만, 어쩐지 심문하는 듯한 말투였다. 디오도르가 먼저 앞으로 나서 신관의 예의를 갖추며 인사했다.


“그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사단장은 디오도르를 면밀히 살폈다. 뾰족한 귀와 긴 사제복, 그리고 축복의 인사까지. 동부 숲 엘프 영지의 사제인가. 그는 그제서야 말에서 내려 고개를 숙였다. 북부인답게 그는 키가 크고 덩치도 우람했다.


"무례를 용서해주시게. 전투 직후라 내가 조금 예민했소. 오덴버그의 무너지지 않는 장벽, 제 7 신성 기사단 단장 브랜든 타탈론이오."


"괜찮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저는 노틸루카 신전의 신관, 디오도르 엘론디엘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견습 사제, 예리엘 클레이도프. 다른 두 분은 글렌힐에서 저희를 지원해주시기 위해 동행하셨습니다."


“아니, 그럼 고작 네 명? 대체 이걸로 어떻게 스노우 골렘을 처치하셨단 말씀이오?”


그의 눈이 한층 더 짙게 의심이 서렸다. 디오도르가 동요하지 않고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같은 사제들이 뭐 대단한 전투력이 있겠습니까? 여기 두 분께서 다 하셨지요. 마왕을 물리친 원정대의 영웅들이십니다.”


거창한 소개에 크리스티안과 사샤가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디오도르의 주도로 모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 기사단장도 이젠 의심을 완전히 벗어버린 듯 환한 얼굴로 그들을 응대했다.


"이렇게 대단한 분들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군.”


“아니, 저희야말로 오덴버그의 성기사단을 실제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크리스티안처럼 잘생긴 청년이 겸손한 태도로 응답하자, 수염이 덮수룩한 기사단장의 입가에도 훈훈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니, 그나저나 여기까지 대체 어쩐 일로 오셨오?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터인데."


"이번에 노틸루카의 신탁을 받아 히엠스 신전을 방문하러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해가 가는군. 버거운 신탁으로 먼 길 오시느라 고생들이 많으셨소."


"그나저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마왕 봉인 이후로 마물들이 떼를 지어서 나타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게다가 저 거대한 골렘은 또 뭡니까?"


알렌이 타이밍을 재다가 더 참지 못하고 불쑥 질문을 했다. 궁금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의 질문에 단장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저 스노우 골렘은 하얀 밤마다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어떤 수를 써도 완전히 없앨 수가 없었소. 게다가 나타날 때마다 매번 크기가 불어났지. 지난 번 부터는 장벽까지 공격하기 시작해서 다들 많이 지친 상태였다오.”


그의 말을 듣고있던 알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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