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이런 게 바로 사이코 패스일까

얼굴에 두건을 뒤집어 쓴 자가 안개를 헤치며 천천히 걸어왔다. 디오도르의 추적마법에서 뻗어나온 초록 사슬이 그의 온 몸에 감겨 있었다.
“척 봐도 면상을 칭칭 감아댄 꼴이 아주 수상하기 짝이 없군. 양호선생, 그래서 저게 누군데?”
“후후. 직접 확인해보시죠.”
디오도르의 손가락에서 화르르 파란 불꽃이 일더니 회오리치며 쏘아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낯선이가 두르고 있던 두건이 펑 하고 찢어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모두의 열렬한 관심 속에 드디어 감춰졌던 진실이 공개가 되었다.
“어어?!”
모두가 경악했다. 그 자리에 서 있던 것은 너무나 의외의 인물이었다.
“아하하, 안녕하세요, 여러분.”
소니아의 선생님이 멋적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알렌이 어- 어- 하며 말을 차마 잇지도 못한 채 삿대질부터 해댔다.
“아니, 도, 도대체 여기서 뭐하세요?”
뭔가 더 그럴싸한 질문은 없었을까? 그는 스스로도 바보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뜬금없는 조우였으니까.
“어··· 이 사슬같은 게 몸에 엉겨붙어 떨어지질 않아서요. 줄이 연결된 곳을 따라 걷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선생은 사슬이 치덕치덕 감긴 두 팔을 들어올리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은근히 무거워요, 이거.”
한숨을 푹 내쉬며 허리를 두드리는 그녀를 보며 알렌은 인상을 찌푸렸다. 망했네. 이거 완전 잘못 짚었잖아? 셋은 반사적으로 디오도르를 돌아보았다.
“오··· 이거 관심이 아니라 흑심이었던거군.”
“흠··· 선생님, 이건 좀··· 추적을 부탁드린건데 스토킹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사스으을? 저런 게 취향이었어? 어휴 이 짐승!”
알렌이 디오도르의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기회다 싶을 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어뜯는 동료들을 보며 디오도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다들 잘 보세요. 저 여자분,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지면이 일그러지는거 보입니까?”
“?”
그들의 시선이 선생에게로 쏠렸다. 그녀가 밟고 있는 땅이 아지랑이처럼 천천히 구부러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시공간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디오도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이미 사람이라고도 볼 수도 없습니다. 마법진의 일부이지요.”
“그럼 저 사람이 정말 범인이라는 건가?”
“네. 이 마법진의 주인이자 서쪽의 마녀의 꼭두각시입니다.”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선생의 얼굴이 천천히 무표정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양쪽 입 끝을 쭈욱 늘리며 한껏 치켜 올렸다. 어쩐지 소름끼치는 미소.
“후후, 그냥 거짓말을 하려고도 생각해봤는데, 이젠 별 의미가 없겠네요. 어차피 오늘이 오덴버그의 마지막 날이 될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예요. 오늘 우린 모두 소멸할거랍니다."
갑작스런 그녀의 선언에 모두가 당황했다. 푼수끼 넘치는 행동이나 말투는 평소와 다름없는데,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참으로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알렌이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소니아를 죽인 건가요?"
“어머, 죽이다니요! 그런 한시적인 것 따위가 아니랍니다. 소니아는 소멸한거예요.”
순간 소니아 아빠의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순간, 사샤가 마법을 걸어 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지금은 적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 일단 뭐라도 내뱉도록 유도해야 해.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스티안이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소니아는 당신 학생이잖아요.”
“뭐, 갑자기 이렇게 되버려서 미안하긴 해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어차피 모두가 곧 함께 하게 될테니까.”
“···오덴버그의 마지막 날이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죠?"
“히엠스 여신을 영원히 봉인할 마법진을 드디어 완성했거든요. 여신의 가호를 잃는 순간, 오덴버그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거지요.”
디오도르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여신을 봉인하겠다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그게 가능할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렇죠? 저도 처음에는 안될까봐 걱정했어요. 하지만 이걸 보세요. 제가 이렇게 해냈잖아요.”
선생이 활짝 웃으며 자랑스럽게 마법진을 가르켰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아니, 이유가 뭡니까?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목적 말입니다.”
“음··· 목적이라. 글쎄요. 굳이 찾아보자면 그저 평안한 안식이랄까. 죽음과 탄생은 하나잖아요. 히엠스가 봉인되면 더 이상의 죽음은 없겠죠. 오직 소멸만이 있을 뿐.”
그녀가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듯,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모두가 영원한 공허 속에 함께하는 거예요!”
알렌의 입이 떡 벌어졌다. 허, 이거 완전히 미친년이었잖아?! 도저히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지극히 평범했던 껍데기 속에 이런 광기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아니, 선생님. 갑자기 왜 이래요? 맨날 술, 술 거리더니 도대체 뭘 쳐마신거예요?”
“후후, 예리엘 씨.”
“원래 미치셨던건가? 아님 뭐에 잠깐 씌이셨나? 성불시켜드리기 전에 그 정신줄 다시 부여잡는 게 좋을 겁니다."
알렌이 검을 빼들었다. 선생은 그를 천천히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지금 저랑 싸우시겠다는 건가요?”
“통제 안되는 미친 짐승은 도살이 답이죠. 당장 죽는 게 소원이라면 미친소리를 계속 지껄여보세요.”
“아아, 이 망설임조차 없는 독설! 이래서 저는 당신이 참 좋다니까요.”
선생이 얼굴을 붉히며 황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욕을 처먹으면서도 행복해하는 걸 보니, 진실의 물약의 효력이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문득 알렌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이 여자랑 매일 얼굴을 마주쳤으면서도 눈치채지 못했던 거잖아.'
젠장!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재빨리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다를까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아차려? 꼬맹이들에게 시달려 항상 지쳐있는 꼬라지가 영락없이 평범한 직장인의 면상이었다고오!”
그는 억울하다는 듯 빽 소리를 지르며 먼저 급발진을 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시선이 공감을 구걸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형. 감이 많이 떨어졌네. 사고 후유증 같은건가? 지능같은 건 문제없지?”
“댄싱문 엘프들이 워낙 둔하긴 해요. 그래도 천사처럼 고운 심성을 지녔으니까요. 아, 근데 알렌은 심성도 참 한결같은 쓰레··· 흠,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뭐 하나 나아진게 없다는 뜻입니다."
가차없는 비난이 떨어졌다.
아니, 근데 양호선생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차린건데? 알렌이 그를 홱 돌아보았다.
“그래서?”
디오도르가 엣헴,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아, 그저 선생님의 설명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히엠스가 말하는 죽음은 탄생을 내포하지요. 죽음은 삶을 예비하기 위한 과정. 즉 죽음 안에서 영원히 하나가 된다는 말 자체가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랍니다."
“고작 그런 걸로 확신을 한다고? 이건 거의 도박성 추측아니야?"
“아니, 도박이라니요? 이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다고! 교리는 믿음의 근간입니다. 이 근간을 뒤집는 건 배교나 다름없는 행위란 말입니다!"
종교인의 깊은 속사정 따위야 내 알 바 아니지. 견습사제 예리엘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선생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요. 저는 황혼회 소속이랍니다. 어떤 이들은 서쪽 마녀의 추종자라고도 하더군요.”
알렌은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하필 소니아를 택했지?"
“제가 선택한게 아닌데요? 굳이 따지자면, 그 애가 스스로 자청한거죠.”
선생이 몸에 감긴 사슬들을 가볍게 털어버리며 대답했다. 알렌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마법의 이름은 죽음의 기만. 으흠, 뭐랄까. 꽤 까다로워요. 죽음의 결과를 백 번 전복시킴으로서 완성되거든요.”
“그렇니까 그게 소니아를 죽인 거랑 무슨 상관이···.”
알렌은 잠시 말을 멈추고, 선생이 내뱉은 문장을 찬찬히 곱씹어보았다.
- 죽음의 결과를 전복시킨다.
그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상자를 사거리에 묻으면 죽은 이를 꿈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주문.
- 겁을 줄 목적이었다면 왜 하필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넣었을까? 이건 마치···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밖으로 꾀어 내려는 의도 같잖아.
크리스티안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그래,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선생이 했던 말을 전제로 놓고 생각해보면 모든 것의 아귀가 착착 들어 맞는다.
'그건 그저 시나리오의 일부에 불과했던 거야.'
주문, 기이한 괴담들, 그리고 끊이지 않던 죽음의 그림자까지. 이 모든 것이 잘 짜여진 하나의 거대한 판이었던 것이다.
알렌의 표정이 점점 차갑게 굳었다.
“네가 상자를 묻는 주문을 퍼뜨린 장본인이었군?”
“네, 맞아요.”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드디어 누군가가 알아차린 것이 사뭇 기쁜 듯 했다.
“사실 그건 자신을 제물로 죽은 이를 살려내는 주문이랍니다. 뒤바뀐 죽음은 관련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전복시켜요. 죽음은 없던 것이 되고, 제물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지지요. 결국 소멸하는 거예요."
소니아 아버지의 표정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소니아가··· 나 때문에 소멸하게 될 거라고?
‘안돼!’
그가 안간힘을 써봤지만 사샤의 마법때문에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이 약화된 히엠스가 결국에는 봉인당하는거고.”
알렌의 얼굴에 순간 깊은 혐오가 떠올랐다.
“너 정말 역겨운 놈이구나. 그럼 선생으로 위장한 이유도···.”
“아? 아아, 네. 아이들이 순진해서 속이기가 더 쉽잖아요. 엄마 아빠에 대한 애착이 가장 클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거 아세요? 요즘처럼 마물이 자주 출몰하는 시기에는 비극적인 일들이 꽤나 자주 일어나는 법이랍니다."
"······."
"마물에 의한 죽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
선생의 입에서 순간 풋-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살짝 떨더니, 잠시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여자는 이게 지금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아, 이 두 조합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어요. 덕분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시간이 단축되어버렸지 뭐예요?"
"그러니까 마물도 네놈의 짓이었다는 거지."
“어떻게보면 그렇죠. 마법진이 더 많은 죽음을 삼킬수록 강해지거든요. 그에 따라 차원의 경계가 흔들리면서 마물들의 웨이브가 발생하는거지요. 물론···"
그녀가 혀를 쏙 내밀며 윙크를 했다.
"····이따금 제가 광산에 몇 마리씩 풀어놓기도 했지만요, 후훗."
선생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즐거운 추억이라도 상기하는 듯한 태도랄까. 후회나 죄책감따윈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젠 마무리 할 시간이네요."
선생은 말을 마치자마자 번개처럼 알렌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검을 들어 막았지만,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검신을 움켜잡더니 그대로 가슴에 꽃아 넣었다. 뿌드득- 갈비뼈가 부러져나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검 끝이 그녀의 심장에 박혔다.
알렌은 순간 멍해졌다.
“도대체 무슨 짓을···!?”
“후후, 예리엘. 최후의 순간에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저는 이 마법진의 마지막 회로. 저의 죽음이 바로 마법 발동의 조건이랍니다."
선생의 차가운 손가락 끝이 잠시 무방비해진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얼굴 가득 피어난 환희. 승리에 도취된 미소. 그녀의 몸이 검을 타고 그대로 쓰러져내렸다.
와, 지금 이 미친 여자가 대체 뭐라고 지껄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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