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댄싱문 엘프의 죽음

그들이 거대한 규모의 적들과 대치하고 섰다. 먹이를 눈앞에 둔 거대한 개미 떼 같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단 간부들의 눈치를 보느라 감히 먼저 나서는 이는 없었다. 데릭이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나왔다.
“지금 한 판 붙어보자는 건가? 길을 열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
형제단의 간부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서로 마주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 중 은색 가면을 쓴 자가 호통을 치듯 말했다.
“쥐새끼같이 도망치던 놈이 궁지에 몰리니 되려 큰소리를 치는구나. 댄싱문 엘프나 내놓아라.”
“그럴 순 없지. 델루시오의 축복같은 돈 덩어리를 말이야.”
데릭의 뻔뻔한 대답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대뜸 반문했다.
“후우···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들었나?”
아무래도 형제단에서도 이 소문 때문에 꽤나 골치를 썩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목표물이 갑자기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되어버렸으니까. 데릭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헛소문이 아니라 신탁이다."
"······."
"애초에 델루시오는 이곳 빌테비샤의 수호자이자 도박과 사기의 신. 그의 성물은 우리 도적 길드가 차지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 말이지."
"그럴 것 같았으면 병력을 좀 아낌없이 투입하지 그랬나? 자살 특공대도 아니고 대체 이 인원으로 뭘 하겠다는 거지?"
"자네들 걱정이나 하시게. 나야말로 묻겠다. 스카치데일에서나 왕 노릇을 할 것이지, 왜 여기서 이 지랄들이신가? 잘 나가던 글렌힐 지부가 망해서 돈이 궁핍한 모양이지?"
데릭의 말에 나머지 길드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은색 가면이 조금 짜증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돈 문제가 아니다. 그저 청산해야 할 빚이 있을 뿐. 다 죽여버리기 전에 닥치고 댄싱문 엘프나 넘겨라."
“빚?”
“형제단의 일이다. 피차 시간낭비하지 말고 빨리 끝내지."
데릭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얄밉도록 과장된 몸짓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오오,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 그래, 니콜라이 멘도쟈. 그 유명한 미치광이 살인마 놈이 어린 댄싱문 엘프에게 뒈졌다지? 그래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근래에 들은 것 중 가장 병신같은 소식이었으니까."
순간 가면 쓴 자들의 살기가 느껴졌다. 데릭은 눈도 깜박하지 않고 계속 주절댔다.
“아니 뭐, 요즘 십 대 소녀들이 참 무섭긴 해. 겉멋만 잔뜩 들어서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며 부모의 등골이나 빼먹고 말이지. 자기 말을 무시한다며 바락바락 대들더니 결국 가출로 보복하더군. 그래놓고 또 필요한게 있을 때면 살랑살랑 가증스럽게 애교를 쳐 떨어대는데 이건 뭐, 때릴 수도 없고 말이야. 후우··· 아무튼 그래서. 복수를 위해 우릴 처치하고, 저 무시무시한 십대 소녀마저 죽이겠다, 이 말인가?”
“······.”
은색 가면은 한 마디 대꾸도 없이 허리에 차고있던 쇠사슬을 꺼냈다. 상대하지 않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차르릉- 무거운 사슬이 바닥에 끌리며 둔탁한 쇳소리를 냈다. 다른 이들도 무기를 빼들었다. 파란 가면의 거대한 낫이 살벌하게 번쩍였다. 데릭이 피식 웃었다.
“그게 대답인 모양이군."
도적 길드 쪽에서도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들에 살기까지 어리니 아주 흉흉하기가 그지 없었다. 광장에 숨막히는 전운이 감돌았다.
- 뻐엉! 뻥뻥 뻐어엉!
순간 보라색 가면이 바주카포를 요란하게 발사하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주먹만한 폭탄들이 크리스티안의 방어막에 부딪치며 폭발했다. 파편과 액체가 떨어진 지면이 부글부글 끓으며 녹아 내렸다.
"독극물같은건가?"
그 와중에도 디오도르는 신기하다는 듯 주섬주섬 샘플을 채집하고 있었다. 데릭이 바로 옆에 서 있던 요리사에게 경고했다.
“한 발짝 물러나 있어라."
그가 지팡이를 비스듬하게 올리자마자 육중한 낫이 후웅- 바람을 갈랐다. 깡!! 금속과 금속이 세차게 부딪치며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단 일 초라도 방어가 늦었다면 목이 날아갔을 것이었다.
“인사 잘 받았다.”
데릭이 낫을 쳐내며 곧바로 파란 가면의 뒷통수를 가격했다. 쩌엉!! 다시 불꽃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파란 가면의 가녀린 팔은 흔들림조차 없이 공격을 받아냈다. 저 체구로 이런 무식한 쇳덩어리를 잘도 휘둘러대는군. 그가 마음 속으로 감탄했다.
‘과연, 간부급이라는 건가.’
대단하긴 하지만 별로 달라질 건 없었다. 뭐, 처리 시간이 늘어날 순 있겠지. 그래도 강한 상대라면 적어도 전투가 더 즐겁긴 할 테니까 말이다.
데릭은 낫을 부술 기세로 지팡이를 내려쳤다. 그것도 집요하게 날의 가장 얇은 부분들만 골라서. 쩡! 쩡! 마치 대장장이가 담금질이 끝난 쇳덩이를 사정없이 두드리는 것 같달까.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금속성의 비트, 구성진 가락. 파란 가면은 귀가 울려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부서져버린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녀가 거리를 벌리며 낫자루를 길게 잡아 휘둘렀다.
- 부웅
낫이 갈고리처럼 그의 몸뚱이를 낚아채기 직전, 데릭이 슬쩍 다리를 굽혔다. 간발의 차로 그가 공격을 피했다. 젠장, 두 동강이 났어야 하는데! 파란 가면이 이를 갈며 곧장 다리를 파고 들었다. 그가 재빨리 지팡이를 지면에 꽃아 막으며 동시에 킥을 날렸다.
- 뻐억!
데릭의 발차기가 머리에 적중하면서 가면이 박살났다. 산산이 깨진 잔해 사이로 훤히 드러난 얼굴. 그녀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흐음, 저거 생각했던 것보다 젊어 보이는데. 데릭이 씨익 웃으면서 지팡이를 짧게 고쳐 쥐었다.
“새파랗게 어린 것이 예의가 없구나. 웃어른게서 말씀하시는데 얼굴을 보이지도 않고 말이야, 어!"
“이 늙은 꼰대 새끼가.”
파란 가면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가냘픈 목소리로 쌍욕을 들으니 어쩐지 기분이 묘하달까. 그녀가 이를 악물며 더 맹렬한 기세로 낫을 휘둘렀다. 흥분한 상태라 공격이 아주 사정없었다. 그들이 서 있던 지면이 날카롭게 패인 자국들로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낫이 아니라 쟁기였나? 왜 애꿏은 땅을 갈아엎고 지랄이지?”
“닥쳐!”
그가 살짝 허리를 틀어 또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냈다.
"후우··· 이번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군."
그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치곤 꽤나 여유로운 태도였다. 뒷통수를 노리며 흉흉한 기세로 날아드는 낫을 보지도 않고 쳐내며 또 잔소리.
"동작에 영 절제가 없구만. 근거리에서 이렇게 크게 휘둘러 뭘 어쩌겠다는 거냐. 하아··· 이 궤도를 보게. 너무 끔찍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군. 공격인지 경작인지 하나만 해라. 이거 뭐 날 죽이겠다는 건지, 아니면 농사를 짓겠다는 건지···. 어? 그런데 왜 그렇게 얼굴이 새빨개졌나? 가면을 바꿔 쓴 줄 알았네."
"아, 이거 진짜 미친 늙은이 아냐?!"
마침내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대차게 잘 놀려먹는지 조롱에 연륜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데릭은 요리조리 공격을 피해가면서도 귀신처럼 허점을 찾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힘은 빠져가는데 조금도 타격을 입히지도 못했으니 그녀로서는 아주 환장할 노릇이었다. 파란 가면의 공격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순간 그가 재빨리 허리를 회전시켜 짧고 강력한 샷을 날렸다.
"!"
공격에 여념이 없던 그녀의 시야 가장자리로 지팡이가 매섭게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이건 못 막으면 죽는다. 짧은 찰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녀가 휘두르던 낫을 그대로 지면에 꽃으면서 자루 끝을 잡고 허공에 거꾸로 매달렸다.
- 쩌엉!
지팡이가 그녀의 몸 대신 낫자루를 가격했다. 자루도 금속이었던 모양인지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몸을 빙글 돌려 착지한 그녀가 낫을 뽑으면서 땅을 한차례 거칠게 긁었다. 흙먼지가 피어올라 시야를 가리자, 데릭이 재빨리 뒤로 몸을 뺐다.
그 순간
- 차르릉···
공중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쇳소리. 뿌연 시야로 여러 겹의 사슬이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것이 보였다.
‘다른 놈이 합류했나?’
그와 동시에 챙챙 채- 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신영 하나가 날아들었다. 어지럽게 원을 그리던 사슬이 무언가에 몇 차례 부딪치더니, 다시 주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데릭 앞에 착지한 남자의 손에는 새파랗게 빛나는 식칼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요리사.”
데릭이 씨익 미소지었다. 요리사가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흐음, 날이 많이 상하겠는데요. 아끼던 칼이었는데 아쉽게 됐네.”
“그게 뭐 대수인가? 이제 곧 큰 부자가 될텐데.”
“오오, 그렇죠. 끝없는 재물의 축복이라고 했던가요?"
그들이 서로 마주보더니 배꼽을 잡은 채 미친듯이 웃어댔다. 적을 코앞에 둔 것 치고는 꽤나 태평한 태도였다. 은색 가면이 분노를 억누르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전원 공격.”
- 뻐엉! 펑! 뻐-엉!
하늘에서 폭탄들이 우박처럼 떨어졌다. 크리스티안과 디오도르가 곧바로 방어진을 펼쳤다. 이번에는 폭약도 섞인 것인지 여기 저기서 펑 펑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곱 개의 날개와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방어마법이 섞여 마치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적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숫자로 볼 때 절대 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인지 다들 일말의 주저조차 없었다.
“바짝 붙어라."
데릭의 지시에 따라 도적 길드원들은 마차를 등진 채 부채꼴 모양으로 진영을 갖추었다. 영광의 전장이 푸른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펼쳐졌다. 크리스티안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 잊혀진 광휘
기사단장의 이능이 발현되었다. 그의 전신이 찬란한 황금빛으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갑옷의 형태를 갖추었다. 어디선가 붉은 기가 날아와 지면에 꽃혔다. 잊혀진 고대 기사단의 문장.
"저건 언제 봐도 정말 사기라니까."
알렌이 마차 안에서 슬쩍 바깥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크리스티안의 황금빛 검이 허공을 가르자, 달려들던 적들 수백 명이 한꺼번에 썰려 나갔다. 이능이 유지되는 시간은 10분. 그 동안 시전자는 무적상태가 된다.
"끄아아악!"
적의 사기를 꺾어놓기에는 더 없이 충분한 시간이었다. 크리스티안은 검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적진 한 가운데로 돌진했다. 도망치는 놈들, 밟혀죽는 놈들에 이성을 잃고 무기를 마구 휘둘러대는 놈들까지.
말 그대로 일방적인 학살.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던 진영이 한순간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한 쪽의 수가 월등히 많았기에 조금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망망대해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한 기적.
"수고했다."
이능의 발현이 끝나고 크리스티안이 복귀하자마자 전투가 다시 재개되었다. 적의 진영이 무너져 상대하는 것이 한결 더 수월해졌다.
데릭의 지팡이가 허공을 가르며 시원하게 스윙을 날렸다. 수많은 이들의 몸뚱이가 파바박 피를 쏟으며 튕겨나갔다. 길드원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신나게 적들을 후드려 팼다. 조금이라도 부상을 입으면 즉시 치유마법이 들어왔다.
“대장, 이거 엄청난데요. 밤새도록 싸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길드원 한 명이 적에게 어퍼컷을 날리며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사샤는 구석에서 이것저것 시험해보면서 그 일대를 아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주문조차 외울 필요없는 간단한 마법들이 왜 혼자 극악의 레벨로 구현되고 지랄인 것인지.
“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가 작은 불씨 하나를 소환하자마자, 혜성만한 화염구가 떨어졌다. 퍼엉- 그 일대는 완전히 불바다가 되었고, 타 죽는 자들의 비명으로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이런, 또 이 모양이군. 사샤가 이번에는 물 마법을 시전해보았다.
“아아악!!”
가랑비처럼 떨어져야 할 물방울들이 창처럼 날카롭게 적들의 몸을 꿰뚫으며 대지에 쳐박혔다. 적들이 물방울에 찔려 죽거나 화형당하면서 깨끗하게 말살되고 있었다. 불과 물. 서로 상극인 마법이어야 할 두 마법이 오히려 훌륭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있는 지경이랄까.
“그럼 더 간단한 걸 시도해보기로 할까."
순간 돌풍이 몰아치면서 3-40명의 몸뚱이가 한꺼번에 훅 날아 올랐다. 잠시 후 하늘에서 시체가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이제 그의 앞으로는 적들이 감히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드래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연약한 인간놈들로는 뭘 시험해 볼 수조차 없겠군.
한편 싸움을 지켜보던 형제단의 간부들은 이 광경에 황당해하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잘 싸우네.”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도 지치겠지만···."
은색 가면이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다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일단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뭔가 찝찝하다는 느낌이 영 가시질 않는군. 작전을 조금 앞당기는 것이 어떤가?"
"동의하는 바야. 엔조, 바로 시작하자."
보라색 가면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깨에 멘 바주카포의 탄창을 모두 비웠다.
- 공간이동
하얀 가면이 주문을 외우자 그의 발 밑으로 마법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러 겹으로 겹쳐진 원 안의 수식들이 맞물리며 돌아가다가 마침내 회전을 멈추었다. 발동준비 완료. 그가 엄지를 척 들어올리자, 엔조가 장전 레버를 당겼다.
- 철컥
그와 동시에 마법이 그대로 포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좋아, 조준··· 발사!”
방아쇠를 당기자 뻐엉! 소리와 함께 그의 전신이 뒤로 밀려났다. 발사된 마법은 아치형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정확하게 마차 지붕 위에 착지했다.
“앗? 마차가 공격당하는데요?”
누가 어찌해 볼 겨를도 없이 공간마법이 발동되었다. 마차가 깜박거리며 사라졌다가 형제단의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중에 살짝 떠 있던 마차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지면에 내려 앉았다.
은색 가면이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지금부터 처형식을 거행하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란 가면이 낫을 휘둘러 문을 열고, 보라색 가면이 사람 머리만한 폭탄을 마차 안으로 던져 넣었다. 은색가면이 재빨리 사슬을 휘감아 마차 전체를 단단히 봉인했다. 모두가 귀를 막은 상태에서 하나, 둘, 셋···
- 뻐엉!
귀가 찢어질 듯한 폭발음과 함께 대지가 한 차례 뒤흔들렸다. 허공으로 솟구쳤던 마차가 쿵- 땅에 쳐박혔다. 마차의 잔해가 맹렬한 불길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런 폭발 속에는 시체조차 남아있지 않을 것이었다. 은색 가면이 광기어린 시선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자, 봐라. 누구든 우리 얼굴없는 형제단을 건드리는 자는 저 꼴이 될 것이다!"
그 현장의 모든 이가 그의 음성을 똑똑히 들었다. 군중 속에 섞여있던 형제단 전원이 그의 연설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나머지 무리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불타는 마차를 쳐다보았다. 산 채로 바쳐져야 할 제물이 갑자기 허무하게 죽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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