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연습생은 내 최애를 1군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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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색초장
작품등록일 :
2023.01.23 20:06
최근연재일 :
2023.05.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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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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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머리

DUMMY

연습실에 들어온 멤버 셋은 차례차례 내 머리를 한번씩 놀려먹고는 연습을 재개했다. 그 중에서 한수연은 나를 꽤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희운아, 그거 진짜 괜찮은 거야?"

"예에, 괜찮습니다."

"그래도 아이돌 연습생인데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는 건⋯?"

그 말에 나름대로 둘러댔지만 그 비슷한 말을 계속 들었더니만 안 들던 걱정이 들기 시작하긴 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은상이 머리 얘기는 하나도 안 했다. 꽤 파격적인 퍼포먼스였는데도 불구하고. 거슬리는 거였으면 금방 얘기를 했겠지.

어차피 머리는 자라는 거다. 또 길었던 걸 자르고 나니까 몸도 가볍게 막 쓸 수 있고, 신경쓸 게 줄어든 느낌이었다. 스포츠 머리 수준까지도 아니라고.

그나저나 잘라놔도 잘생겼네, 크으.

"얘들아, 너네 오늘⋯. 야, 희운아!"

구연미 매니저가 들고 마시던 커피를 집어던질 기세로 날 쏘아봤다.

근데⋯.

오늘, 뭐?


***


헤어샵 실장은 이마를 한껏 찡그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옆에서는 구 매니저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저⋯. 실장님, 그래도 염색 테스트를 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응, 안돼."

"정말요⋯."

"머리가 좀, 응? 이마를 제대로 덮는 상태여야 발색을 보든가 말든가 하지. 이 상태면 별달리 머리 모양도 못 잡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아유, 애들 다 모이기도 전인데 이런 건 나중에 해야 맞는 거 아닌지 몰라~"

구 매니저는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었다. 나는 한껏 곤란해진 표정으로 그 모션을 50% 정도 따라하고 있었다.

"여튼, 이 상태로는 별다른 거 못해. 후보만 정해놓자."

염색약 냄새가 나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 있던 다른 멤버들은 본격적으로 염색을 하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가장 가까이 앉은 강유월이었는데, 기존에 옅은 갈색으로 염색해놓았던 걸 그냥 검은색으로 덮으려는 것 같았다.

하긴, 무엇보다도 순정은 중요하니까.

"자기, 해보고 싶었던 색 있어?"

눈앞에 펼쳐진 색깔의 향연에 기분이 좋았다. 빨주노초파남보 하나하나 전부 류희운의 머리카락으로 보고 싶었다.

"아, 저는요."

그 중에서도 성공한다는 데에 확신을 둘 수 있는 건⋯.

"핑크요."

헬프의 데뷔 무대, 그 새하얀 조명 아래에서 활짝 웃던 분홍 머리!

이 세계에서는 사진 하나 남지 않은 그 얼굴을 셀카로 왕창 남겨주고 싶었다.

"오, 과감하네. 오케이, 그럼 일단 그건 킵."

"예."

"그리고?"

그리고?

"뭔가 더 있어야 하나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후보가 하나인 건 좀."

아, 하긴. 후보라는 건 여럿이 있어야 성사되는 거지.

류희운의 레전드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이 언제였던가⋯.

⋯이 망할 Dia 엔터.

죽일 거야, 어? 진짜로.

왜 데뷔 때 말고는 염색을 하나도 안 한 거냐?

이게 아이돌의 윤리적 측면에서 말이 되는 거야? 어?

그럼 그냥 내가 보고 싶은 머리가, 음.

피부가 하얀 편이다 보니 웬만하면 쨍한 색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강? 파랑?

"은발도 예쁘겠는데?"

"엇, 그러게요, 예."

"그럼 은발도 킵."

은발이라니, 정신이 그쪽으로 팔려서 생각하고 있던 게 전부 사라졌다.

은발 류희운?

미친 거 아니냐?

벌써부터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최고다⋯.

"이 둘이어도 되겠는데? 자기는?"

"저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헤어 실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나를 다른 쪽으로 데려가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여기부터는 정신을 놓아버려도 괜찮다는 마음과, 그래도 이 세계에 와서 못 보던 메이크업한 류희운을 본다는 생각에 눈을 똑바로 뜨자는 마음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나는 후자를 골랐지만,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줄곧 새벽에 출근을 한 탓인지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명이 촉촉하게 감기는 눈가에 뭉개지는 걸 보면서 나는 잠에 들었다.


***


별달리 든 건 없는 책가방을 의자에 던져놓고 헤드폰을 꼈다.

백 피디님은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근래에 작업물도 밀리셨는데 저러다 뭔 일을 치르시겠군- 싶었지만 최근에 피곤하셨던 것을 알기에 깨울 의지는 들지 않았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어제 피디님이 시키신 일이나 처리하고 있었다.

간단한 작업이긴 하지만 양이 많아 노가다가 된 그것은 성가시기에 충분했다. 괜히 쓰고 있는 후드 위 헤드폰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자고 있는 피디님도 깨우고 겸사겸사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때, 피디님이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셨던 핸드폰 화면이 밝게 켜지며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피디님?"

얼씨구, 조는 수준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대로 딥슬립을 하고 계셨다.

"피디님, 전화 오는데요."

어쩔 수 없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만약 급한 전화라면 받아두지 않을 수 없-


[은상]


⋯오.

"피디님, 진짜 받으셔야 해요. 이 피디님인데요."

"여름아, 나 잠 좀 자자⋯."

"아뇨, 받으세요. 피디님!"

아까까지는 코도 안 골던 인간이 낮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다.

"넵. 백스테이지입니다."

[⋯목소리가. 직원이신지?]

"넵, 맞습니다."

[백 피디 지금 뭐하고 있나요?]

"⋯요 며칠 밤에도 일하셔서, 주무시고 계신데요."

[하아⋯.]

저도 면목이 없습니다. 어떻게, 발로 차서 깨워볼까요.

[깨면 전화 달라고 해줘요. 급한 일이라고.]

"아, 넵,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피디님. 일어나세요, 좀⋯."

그나저나 무슨 일이냐, 이렇게 두 분이 직접적으로 통화하시는 걸 못 본 것 같은데?

뭐, 물론 나야 여기서 알바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다지만.

일이나 하자. 언제 일어나겠지.

"흐억!"

"으악!"

"뭐, 뭐하냐."

"예?"

"왜, 뭐?"

나 원 참, 뭔 꿈을 꾼 건데.

"그⋯. 거기 물 좀 줄래."

"넵."

나는 잽싸게 물병을 건넸다. 그리고 피디님이 한두 모금 물을 마시는 걸 확인하고는 본론을 꺼냈다.

"이 피디님이 전화 달라시던데요."

"이 피디? 이 피디 누구."

"사장님이요. 이은상 피디님."

"⋯아, 은상이. 어?"

피디님은 꽤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인내심을 끌어올려 다시 한번 설명을 할 요량이었다.

"은상이가 전화를 했다고?"

"네."

"은상이가? 이은상이?"

"넵."

"걔가?"

이 피디님이 평소에 전화를 잘 안 하시는 건가. 나는 마지막이길 바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백 피디님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그 너머로 전화를 걸었다.

바퀴 달린 의자가 날아와 내 정강이를 강타한 건 알 바가 아닌 모양이었다.

"어, 은상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오늘은 내 작업물을 들려드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놀라 잠에서 깨보니 내 손에는 클랜징 워터가 적셔진 화장솜이 들려 있었다.

의자에 줄곧 구겨앉아있던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켜고, 거울을 보며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딱히 특별한 화장은 아니고 그냥 제품을 발라보기만 할 생각이었나 보다. 별 생각 없이 숙면한 나를 칭찬하고 싶었다.

"류희운!"

거의 다 지웠을 때쯤 들려온 그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이호수가 제 머리색을 자랑하려는 듯이 턱을 들고 서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 표정관리가 처참하게 무너졌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와아, 얼굴, 이야.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덮은 속눈썹 위로 밝은 색 머리가 올라가자 몽환적이기까지 한 분위기가 창에서 쏟아지는 자몽색 빛 속으로 얽혀들었다.

저 얼굴에 대체 뭐가 안 어울리겠냐만은, 머리를 금발로 탈색한 이호수는 짧게 말하자면 엘프 그 자체였다.

⋯류희운에 충족되고 있던 내 덕질 욕구가 솟아오른다.

"잘 어울리시네요."

"어, 알아!"

"예⋯."

입을 열면 그 생각이 좀 사라지는 것도 같고.

"얘들아~ 슬슬 가자."

우리는 샵으로 올 때 탄 밴이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는 맨 뒷자리 오른쪽에 앉아 멤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일단 탈색을 한 사람은 한수연, 이호수, 둘이었다. 강유월은 아까 본 대로 흑발이다.

이호수는 아까 봤고, 한수연은⋯. 음.

⋯진짜 양아치같이 생겼다.

날티 나는 컨셉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은 했다만 그렇다고 작정하고 날티 나는 머리색을 만들어놨더니 PTSD 찾아올 수준, 닥치는대로 꾸민 양아치같이 생겼다.

그냥 탈색하지 말고 흑발 그대로 활동 부탁합니다, 제발. 다수에게 불온한 기억을 남기는 불상사가 없도록 하소서.

그리고 강유월⋯. 어.

흑발⋯. 잘 어울리네?

난 내 옆에 앉은 강유월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오감에 둔한 놈이라 그런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차 천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게 다행일까.

⋯이건, 이건 아무래도 갈색 머리가 뒈지게 안 어울리는 거였던 거다. 그게 아니면 염색 하나 했다고 얼굴이 이렇게 살 수가 있나.

"매니저님, 저 솔직히 흑발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으응? 아니야~ 내가 볼 땐 지금이 훨씬 낫다."

진심인데, 미쳤냐?

뭐가 좋고 나쁜 건지 객관적인 확인이 안 되는 거냐고.

"유월아, 나도 흑발이 나은 것 같은데."

"저도 유월 형은 흑발이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한수연의 말에 재빠르게 편승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수의 반응이란 자고로 대중의 반응 아니겠냐, 그런데 이놈은 괜히 고집스러운 얼굴로 갈색이 나은 것 같다며 중얼거렸다.

그래, 뭐.

한동안 보던 것과 달라졌으니 그렇게 느낄 수는 있지만, 아무리 봐도 이놈은 감각적이질 못했다.

"아, 맞아, 희운아."

"예?"

"백 피디님이 너 보자고 연락이 오셨던데?"

"저를요?"

"응. 지금 회사에 내려줄 테니까 뵙고 숙소로 바로 가, 알겠지?"

"예."

회사 건물이 보이고 약간의 의문을 가진 채 차에서 내렸다.

그나저나.

저쪽 풀숲에 있는 사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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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 화 23.04.13 19 0 10쪽
33 33화. 좋은 노래 23.04.11 1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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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결전의 날 23.04.06 22 1 10쪽
30 30화. 생일 축하합니다 23.04.04 22 1 12쪽
29 29화. 주스 23.04.02 28 1 10쪽
28 28화. 마감 23.03.30 24 1 11쪽
27 27화. 안티 23.03.28 27 1 11쪽
26 26화. 신이 난 채 23.03.26 27 1 10쪽
25 25화. 청 자 돌림 23.03.23 31 1 10쪽
24 24화. 소금 23.03.21 33 1 10쪽
23 23화. 술 23.03.19 33 1 10쪽
22 22화. 이상한 여행 23.03.16 31 2 11쪽
21 21화. 관심 23.03.14 34 2 10쪽
20 20화. 거짓말 23.03.12 37 2 10쪽
19 19화. 그래서 외쳤다 23.03.09 36 1 10쪽
18 18화. 회복 23.03.07 37 1 10쪽
17 17화. 재능 23.03.05 39 2 10쪽
16 16화. 마음에 안 드세요? 23.03.02 39 2 10쪽
» 15화. 머리 23.02.28 38 2 11쪽
14 14화. 사각사각 23.02.26 38 2 11쪽
13 13화.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23.02.23 42 2 10쪽
12 12화. 한수연은? +2 23.02.21 45 2 11쪽
11 11화. 데뷔할 멤버 23.02.19 46 3 11쪽
10 10화. 추적 신정민 23.02.16 52 3 11쪽
9 9화. 멤버 23.02.14 50 3 10쪽
8 8화. 두번째 23.02.12 54 3 10쪽
7 7화. 장르 23.02.09 55 3 11쪽
6 6화. 보컬 23.02.07 6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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