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연습생은 내 최애를 1군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산호색초장
작품등록일 :
2023.01.23 20:06
최근연재일 :
2023.05.07 06:0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1,509
추천수 :
62
글자수 :
165,494

작성
23.03.05 06:00
조회
39
추천
2
글자
10쪽

17화. 재능

DUMMY

이호수가 약간 의아한 눈을 한 직원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첫 주에는 안 해도 된다는 말을 분명 들었을 텐데, 이호수는 동요 하나 없었다.

"신성 선배님 <Party in>이요."

"!"

제목에서 유추 가능하듯 신나는 노래다. 저 노래를 자발적으로 선곡했다는 건 꽤 많은 걸 포함하고 있었다.

신나는 노래!

다시 말해 즉 템포가 빠르다는 얘기다.

그룹 활동할 때처럼 여러 명이 파트를 나눠가지는 일이 없다며, 내가 무려 바다로의 메인보컬 신의성의 솔로곡을 얕잡아본 채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서 이 곡을 불러본 적이 있다.

⋯진지하게, 죽을 뻔했다.

음을 따라가는 것부터 어려운 건 그렇다 치고 숨이 미친듯이 달린다. 중간부터 뭔가 엿됐다는 걸 느낀 채로 보컬 선생님이 알려준 호흡법을 어떻게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끝날 때쯤 얼굴은 시뻘개진 상태로 선곡 재촉이 화면에 2번 뜰 때까지 코인 노래방 의자에 누워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선곡은 미친 짓이다.

이호수는 샵에서 덮어씌운 애쉬 블루의 머리를 털털 털면서 반주의 리듬에 맞춰 마이크를 쥔 주먹으로 가볍게 박수를 쳤다.

오묘한 음으로 늘어지던 일렉트릭 기타 소리가 뚜렷해지는 순간, 보컬이 시작이었다.

이호수는 백 피디 쪽으로 얼굴을 획 돌리며 첫 소절을 불렀다.

"Tonight we are crazy!"

강렬하고 돌발적인 음이 상상 이상으로 큰 성량으로써 들려왔다. 그 스튜디오 안에 있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반 무대에서는 지금의 이호수처럼 뒤돌아보며 첫 소절을 부르지만, 시설이 갖춰진 단독콘서트 무대에서는 신성이 이 순간 리프트를 타고 튀어올라 점프를 하며 이 부분을 부르게 된다.

그만큼이나 첫 소절의 임팩트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노래에서, 이호수는 거의 모든 걸 완성시킨 채 시작했다.

빠르게 흐르며 호흡이 가빠오는 파트를 한 음절 흘리지 않은 달큰한 음색이 들렸다. 한수연의 부드러운 목소리보다는 좀 더 확 튀는, 청량하고 자극적인 목소리였다.

"오늘 하루는 찢어버리고 한심한 모습 지워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힐끔 돌아본 한수연은, 무표정인 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표정 하나 깜짝하지 않은 이호수는 고난이도의 파트를 흐르는 듯이 부르고, 중간중간 기교도 놓치지 않았다.

⋯아, 베테랑이다.

음원처럼 들리는 그것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량음료의 탄산 방울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그 목소리는 그것이 자신의 당연한 색이라는 것처럼 폭발적이고 또 시원했으며, 달콤했다.

"현실로부터의 도피!"

전자악기의 소리가 드럼을 빼고는 몽환적으로 옅어지며 고음을 뻗는 목소리에 집중하는 독특한 후렴이 시작됐다.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그 파트가 시작하기 전에 씩 웃어보인 이호수는 원곡에도 없는 새로운 애드리브를 소름끼치게 잘 집어넣었다.

"특별한 파티를 시작합니다, 이 안에 들어온 이상 끝장판!"

재빠르게 뱉는 가사를 여유롭게 소화하는 실력이다.

저 박자라면 숨 쉴 틈이라고는 없을 것이 분명했으나 대체 어떻게 돼먹은 폐활량인지- 아니면 알아차리지도 못한 숨을 쉰 건지.

"낙장불입, Na-na-na-na~"

누구도 어떤 말을 덧붙이지 못한 채로 1절이 전부 끝나버렸다.

멍한 사람들의 표정 사이로 이호수가 여전히 웃는 낯을 한 채로 음악이 꺼진 정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이런 걸 듣게 해주셨으니 내가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

⋯라고, 나한테 한 말은 아닌 그 말에 답할 뻔했다.

"예, 잘 들었습니다."

백 피디의 표정이 미묘해져 있었다.

아니, 미묘하지 않았다.

백 피디는 확신의 미소를 지었다.

"호수 씨, 재능이 엄청나네요."

재능.

재능이다.

그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걸릴 것만 같은 일에 대해 지름길을 쥔 채 태어난 것.

"기초가 탄탄하네요. 그것도 모자라서⋯."

한수연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보였다.

"테크닉이, 훌륭합니다."

백재신은 당장이라도 이호수를 데뷔시킬 기세였다. 소리를 내며 껄껄 웃은 백재신은, 이호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직원에게 뭐라 속닥거렸다.

직원은 슬리퍼를 직직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후에 악보를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제목을 여전히 읽을 수 없는 그 악보는, 얼마 전 한수연이 부르는 데에 반쯤 실패했던 그 라틴팝이었다. 스페인어의 모양이, 그랬다.

⋯나는 어쩐지 백재신이 원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음 주 이호수 씨 곡입니다. 연습해 오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


숙소로 가는 버스 안은 고요했다.

한수연은 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고, 이호수는 원래도 말 안 걸면 입을 열 생각이 없는 놈 같고, 나는 한수연을 주시하다가 눈치 없이 말을 걸어오는 강유월에게 대꾸하기를 놓쳤더니 강유월도 묵언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니 이호수에게 말을 걸 마음은 없겠지.

그 안에 앉아있는 모두가 대중교통 예절을 너무나 잘 지키고 있었다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숙소에서도 이어졌다.

어째서 이런 분위기일까,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우리 팀에 들어왔다고 하면 잘 된 일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한수연이 걱정됐다.

대놓고 비교하려는 것처럼 같은 곡을 준 백재신도 원망스러웠고, 저녁까지 백재신의 스튜디오에서 커버곡을 녹음하며 보컬 레슨을 받았던 한수연의 노력이 떠올랐다.

이게 비단 시간 때문에 생긴 정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수연이 같은 그룹 멤버가 되길 바랐던 1순위 인물이란 말이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형."

"방은 어떻게 하지?"

내가 나지막하게 한수연인지, 강유월인지 모를 누군가를 향해 '형' 소리를 꺼냈다가, 한수연이 하는 말에 놀라 그것을 다시 집어넣었다.

"⋯방이요?"

"응, 유월이가 계속 거실에서 잘 수는 없잖아."

"아."

그랬었지.

강유월은 여전히 거실 신세였고, 한수연과 나는 한 방에, 그리고 이호수가 가장 큰 안방을 쓰고 있었다.

강유월이 대단히 걱정되는 모양인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한수연은 꾸역꾸역 그 말을 꺼냈나 보다.

"어? 저 괜찮은데요, 형님~"

⋯톤이 좀 과하게 가볍다?

강유월은 이 분위기를 파악할 의향이 없어 보였다.

"아니야, 그래도 거실에서 자면 너도 그렇고 다들 불편하니까 방을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네! 알겠습니다."

강유월은 소파에 늘어져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잠시 후 표정이 조금 굳는 게 보였다.

이호수와 같은 방을 쓰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어떤 방 배정이 제일 이상적일지 생각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제가 호수랑 쓸 수 있을까요."

한수연과 강유월의 눈에 안도한 기색이 떠올랐다. 강유월은 나를 향한 의아함도 조금 담고 있었지만.

"오, 류희운!"

이호수는 저항 없이 나를 향해 안겨왔다.

"어느 방을 누가 쓸지 정하실래요?"

"희운! 나랑 가위바위보, 아니, 묵찌빠."

"옙."

나는 이겼다. 그리고 이호수의 요란한 요청에 의해 원래 쓰던 안방을 쓰기로 했다.

"류희운! 잘 부탁한다."

"예,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강유월은 이놈을 왜 껄끄러워하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친 미모에, 노래까지 수준급에다가, 왜 할 줄 아는지는 모르겠는데 미용도 할 줄 안다.

성격이 파탄났나? 아니, 근데 솔직히 말 좀 단답으로 하는 것 빼고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솔직히 내가 당장 룸메이트가 되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강유월이나 한수연이었다. 둘과 뭐라도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형, 노래 잘 들었어요."

"나 잘 불러."

"예, 그러시더라고요."

⋯티키타카가 안되는데.

이 자신감은 또 뭐고.

그래, 뭐 이건 전에도 봤으니 그렇다 치자.

"보컬 연습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저도 알고 싶어서요."

"그냥 많이 부르면 돼."

"테크닉은 아무래도 그냥 많이 하는 것보다 많은 걸 요하잖아요."

"난 정말 많이 부른 게 다인데."

"⋯그렇군요."

좀 더 정확한 내용을 다루는 토크도 실패다.

나는 정말 두뇌를 풀가동시켰다.

할 만한 얘기가 뭐가 있지?

"아, 형. 저번에 드신 토스트였나, 그거 어디서 사신 거였어요?"

"그거? 요 앞에 있던데. 다음에 데려가줄게."

"네, 부탁드립니다. 이 주변에 끼니 해결할 곳이 많이 없더라고요."

"맞아."

그래, 망했구나.

나는 포기하기로 했⋯. 아니지.

"유월 형이랑 잘 지내셨어요?"

"잘 지냈냐고?"

이호수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에서 보기 드물게 고민하는 기색이 올라왔다. 눈은 내가 아닌 어딘가를 봤다.

"잘 지냈지."

"그래요?"

"응."

"전 유월 형 예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거든요."

"아아, 그런 거?"

"네,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음⋯."

이호수는 침대에 풀썩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그냥 다같이 지내는 거 좋아하고, 유쾌한 애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그 정도가 끝이었다는 뜻이었다.

⋯이거, 꽤 힘들 수도 있겠다.

이호수는 그런 기색도 없었지만 나는 꽤 불편했던 날의 밤이 째깍째깍 지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프로 연습생은 내 최애를 1군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35화. 행복 회로 23.05.07 9 0 10쪽
34 34화. 화 23.04.13 19 0 10쪽
33 33화. 좋은 노래 23.04.11 19 0 10쪽
32 32화. 소질 23.04.09 20 0 10쪽
31 31화. 결전의 날 23.04.06 22 1 10쪽
30 30화. 생일 축하합니다 23.04.04 22 1 12쪽
29 29화. 주스 23.04.02 28 1 10쪽
28 28화. 마감 23.03.30 24 1 11쪽
27 27화. 안티 23.03.28 27 1 11쪽
26 26화. 신이 난 채 23.03.26 27 1 10쪽
25 25화. 청 자 돌림 23.03.23 31 1 10쪽
24 24화. 소금 23.03.21 33 1 10쪽
23 23화. 술 23.03.19 33 1 10쪽
22 22화. 이상한 여행 23.03.16 31 2 11쪽
21 21화. 관심 23.03.14 34 2 10쪽
20 20화. 거짓말 23.03.12 37 2 10쪽
19 19화. 그래서 외쳤다 23.03.09 36 1 10쪽
18 18화. 회복 23.03.07 37 1 10쪽
» 17화. 재능 23.03.05 40 2 10쪽
16 16화. 마음에 안 드세요? 23.03.02 39 2 10쪽
15 15화. 머리 23.02.28 38 2 11쪽
14 14화. 사각사각 23.02.26 38 2 11쪽
13 13화.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23.02.23 42 2 10쪽
12 12화. 한수연은? +2 23.02.21 45 2 11쪽
11 11화. 데뷔할 멤버 23.02.19 46 3 11쪽
10 10화. 추적 신정민 23.02.16 52 3 11쪽
9 9화. 멤버 23.02.14 50 3 10쪽
8 8화. 두번째 23.02.12 54 3 10쪽
7 7화. 장르 23.02.09 55 3 11쪽
6 6화. 보컬 23.02.07 65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