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외롭고 강은 사연을 담아 흐르다
이제 동녘 하늘이 어둠을 걷고 아침 먼동이 트고 있었다.
사람 사이는 싸움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법이고 무엇보다
황유정의 장평을 보는 시각이 어느새 목화솜처럼 부드러워져
있었다.
잠시후 두 사람이 헤어졌고 장평 또한 그의 소축으로 되돌아
왔으나 곧
세면을 마치고 시간에 맞추어 아침 식사를
하기위해 내원 별원으로 들어가니 대청에는 국주를 포함모두가 모여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보고모두가 아는체 했다.
"사제 어서와. 같이밥먹자"
"숙부 빨리 식사하세요"
모두반가와하기에 장평이 가져보지못한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마음이 찡해졌다
"예 감사합니다"
장평 역시 예의를 차리고 식탁의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니
공교롭게도 황유정의 옆자리였다.
마치 식구들이 알아서 그녀의 옆자리를 비어놓는 듯 했고
그녀 또한 개의치 않는 듯 했으나
괜히 장평만 속으로 민망해 했다.
식사 도중에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는 옅은 꽃향기가 스며들었고 따스한
햇살에 강과 하천이 많은 강남특유의 채소와 향료를 겻든 물
고기 요리의 내음은 여지껏 산속에서 간소한 식사만을 하던
장평의 입맛을 돋우었다.
마침 대화중에 황유정이 옆자리의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는
장평을 돌아보더니 맞은편에 앉아 있는 부친인 황대녕에게
말했다.
“아버지, 장평소협을 먼저 유천무관에 다니게 하지요”
황대녕이 돼지고기를 맵게 다진 동파육 한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다가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정색
을 한채 대답했다.
“너희들이 다니는 유천무관은 구대문파의 우두머리중 하나
인 화산파를 등에 업고 있는지라 입관비뿐만 아니라 매달 들
어가는 경비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물론 뒷배경이 없는
평범한 사람은 입관조차 거부되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 자녀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던 터라 이참에 부모의
자식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먼저 새삼 강조하는 듯 했다.
"유천무관은 항주를 포함한 절강, 강서성 각지에서 몰려든
관원들에게 무술을 가리키는 무관일뿐만 아니라, 힘있는
관리들이나 무림세가 자제들의 친목장소이기도 한것은 너희도 잘알것이다.
이미 유천무관 출신의 관원들이 이곳 항주와 절강성 그리고
멀리 북경에까지 진출하여 동문을 이루고 있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기에 당연히 다른 무관보다
두세배나 비싼 교습비를 받고 있고 이 아비 역시 너희 세 명
에게 드는 돈이 한달에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이제 훈계의 시선이 그의 두 아들들에게 향했다.
“너희 둘도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꾀를 부리지 말고 평소에
도 네 누이처럼 열심히 하여 세인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딸 사랑은 아버지가 한다지만 그의 두 아들에 비해 장녀인
황유정에게 향한 정은 각별했다.
물론 황유정은 그에게 있어 큰 자랑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표국의 식구들 그리고 유천무관뿐만 아니라
하늘과 통하는 신선들이 사는 화산파의 명숙들에게서도 인정
받는, 그래서 어린 나이에 벌써 화산파의 속가제자로 선택된
그녀는 분명 장래 화산파의 뛰어난 여걸이 되어 황씨 가문을
빛낼 것이다.
그에 비하여 황유정 아래의 장남이나 둘째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채 설익어
있었고 더구나 익기전에 벌써 밥이 되어 무공에 있어서 건방과
겉치례만 늘고 있었다.
그가 하던 말을 마저 계속했다.
“매달 드는 그 많은 경비를 장평이 감당 못할 것이다”
그때 황유정이 이미 생각해둔 해결책이 있는듯이 말했다.
“표국일을 하면 충분하잖아요. 그리고 처음 입관때의 신원
보장과 비싼 입관료는 먼저 아버지가 죄송하지만 대신
내어주시고요. 나중 급료에서 제하면 되지 않나요”
자기 부친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쳐다
보는 황유정과 그리고 그냥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시선을
음식에만 돌리고 못들은 채 앉아 있는 맞은편의 장평을 보더니
황대녕이 수긍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본인인 장평의
의사를 들어보았다.
장평 역시 아침에 황유정의 권유하는 말이 있었고 무관에
다닌다하여 화산파에 소속되는 것은 아니다 했고 한편 시중의
무관에서 가르키는 강호의 제반 무공에 대한 흥미도 있었으며
그 역시 매일의 수련장소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그녀와 같은 무관에 다니는 것이 좋았다.
장평이 조심스레 긍정의 의사를 밝히자 황대녕이 역시 승낙
했으니 사제인
장평이 무관에서 뛰어난 무공을 익히게 되면 그에게 자랑이되고
표국에도 좋고 도움이 되는 법이다.
그때 그제껏 두 사람의 하는 말을 입도 벙긋
못하고 귀만 기울이고 듣고 있던 셋째인 진명이 신이난 듯
장평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하, 장평 숙부가 유천무관에 입관하면 제 밑에 들어오네
요. 제가 이제부터 선배가 되지요. 앞으로 본 옥룡유협이 잘
지도 해드릴께요”
“옥룡유협이 무어냐?‘
옆 자리의 황대녕이 둘째 아들의 처음 듣는 명호에 의아해
하며 물었다.
진명이 부친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더니 눈치를 보며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옥룡유협은 ... 제가... 지은 제 명호입니다”
“......?”
“인석아! 네가 무슨 옥룡이고 유협이냐"
한 소리 꾸짖고는 황대녕의 신랄한 말이 쏟아졌다.
“아직 매화 72검중 풍우비화의 초식을 시전하며 공중으로 채
일장도 못 뛰오르는 네녀석이 어떻게 구름 위를 노니는 옥룡이냐!
그리고 거울을 한번 쳐다보아라. 네가 무슨 반안과 같이 잘생겼고
옥으로 된 흰 거죽을 쓰고 있느냐. 무공과 생긴 것은 차체하고라도
어떻게 공자와 맹자의 학식과 덕을 알고 익혀 유협이라고 스스로
명호를 정하고 부르느냐.앞으로
토룡소귀(土龍小鬼)라고 바꾸어 불러라!”
”
부친의 신랄한 나무람에 진명이 젓가락을 쥔채 그냥 변명도
못하고 고개만 푹숙이고 있었다.
“자고로 별호는 아비의 별호인 진천신검 같이 남들이 숙고하여 지어주는 것
이다. 아비의 이 별호는 강호동도들이 내 뛰어난 무공을 보고
하늘을 베는 신검이라고 인정하여 별호를 지은 것이다.
본래 내가 공산의 뛰어난 내공심법을 어릴때 배워 내력도 유독
뛰어나지”
말을 하며 그가 자랑스레 장평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자리의 아무도 장평을 제외하고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가 젊은 시절 잘못 귀한 약재를 먹어 신력이 남다른 것으로
여겼고 결코 호남성의 한 이름 없는 문파의 심법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이집 안주인인 여백령이 남편이 아이들을 꾸짖으며 자신
자랑만하자 장평을 향해 말했다.
“사실
술자리에서 허풍과 호언을 일삼는 저이의 술친구몇명이 같이취한채 즉석에서
지었어요. 그리고 당연히 그날 술값은 저이가 계산했고요”
“어허!-”
여백령의 말을 자르며 황대녕이 그녀를 나무라는 듯이 눈을 크게
부릅떴으나 말은 사실인지라 그녀의 모르는척 하는 표정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녀들 역시 겉으로 웃지는 못하고 소리죽여 킥킥대기만 했다.
장평 역시 그러한 가족들의 격의 없는 대화에 마음이 포근
해졌다.
본래 산은 높아질수록 청정해지며 외로왔고, 강은 작은 물줄
기들이 모이며 많은 사연을 서로 나누었다.
산은 귀 기울이면 산정의 바위를 스치는 바람소리 쓸쓸했고
강은 눈을 감으면 수많은 지난 과거의 이야기까지도 다정하게
들려주었다.
그의 귓가에, 머릿속에 맑은 강물 한줄기가 흐름되어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소란스럽던 식사시간이 끝났다.
그리고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황유정이 장평을 데리고 오전
에는 바로 이웃 유천 무관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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