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스컵 (4) (수정)

남혜성의 표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강태양은 승리를 예감했다.
한 몸 처럼 움직이는 인도의 아룰 형제는 강력했다.
수신호를 주고 받으며 기계처럼 움직이는 그들의 팀워크.
그것이 깨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인도의 두 선수 움직임이 좋습니다. 빈틈이 전혀 없네요.”
“기습적인 발리.”
이번엔 강태양이 안정적으로 리턴한 볼.
돌아온 볼을 남혜성이 빠르게 달려 발리를 로브로 처리 해냈다.
네트 앞으로 공격적으로 붙어있던 인도의 아룰 형제가 뒤를 돌아보았을 땐.
이미 바운드된 볼이 바닥을 구르고 있을 때였다.
ㅡ 포티, 써티.
“오! 대한민국의 남혜성, 이제 몸이 풀렸나요? 절묘한 로브.”
“강태양, 후배 선수를 독려 하면서 이끌고 있습니다.”
엄지를 세운 강태양을 보고 남혜성은 씨익 웃었다.
“잘 흔들었습니다. 우리 선수들.”
“아룰 형제 너무 흥분했어요. 네트 앞으로 너무 나와 있었죠?”
“아룰 형제 좀 뒤로 가야 할 거예요.”
아룰 형제가 점령했던 네트를 버리며, 수비적 태세를 취했다.
그것을 확인한 강태양.
남혜성 리턴한 볼이 되돌아 오던 것을 기다리던 강태양은 기습적으로 네트 앞으로 달려가며 스매시를 때렸다.
- 쿵!!
코트 바닥에 내리찍힌 볼.
강한 파워로 높게 바운드 되며 건드릴 수도 없이 빠져나가버렸다.
“순식간에 점수를 따라잡는 대한민국.”
“듀스입니다.”
“남혜성의 로브와 강태양의 스매시. 정말 환상적인 호흡입니다.”
강태양과 남혜성, 두 사람은 듀스 상황을 넘어서며 결국 첫 게임을 따냈다.
“와아아아아아!!!”
함성을 내지르는 관중들.
남혜성이 얼었던 표정을 지우며 활짝 웃었다.
“강태양, 남혜성조 생각보다 강력한데요?”
“맞습니다. 남혜성의 리턴이 조금 불안했었는데요. 금방 적응을 한 거 같아요.”
“저였어도 강태양 선수 같은 듬직한 선배가 있으면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을겁니다!!!”
* * *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한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강태양 리턴은 어쩔수 없어도 남혜성은 막았어야지.”
“니가 막았어야지.”
“뭔소리야?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또, 예민하게 굴지마.”
“또?”
아룰 형제의 팀워크는 슬슬 금이가고 있었다.
“강태양 저 녀석··· 기대 이상이야. 생각보다 너무 뛰어난데.”
“ATP500 타이틀에 앤디 머레이를 이긴 선수야. 어리다고 만만히 볼 수 없다고 내가 얘기 했잖아.”
“언제 그런 얘길 했어. 훈련하기 귀찮다고 할 때는 언제고!”
“또또.”
아룰 라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목을 휙휙 꺾으며 준비 운동을 했다.
“조용히 좀 하고. 연습한 대로만 하자.”
“수신호?”
“응.”
라무가 한숨을 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별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라무였다.
* * *
“대단한데요?”
결국 1세트를 손쉽게 가져오는 대한민국 조를 보며 이형탁과 손진우는 감탄을 터트렸다.
“라무 저 선수, 꽤 실력이 좋았는데···.”
“형님보다 강태양 선수가 한 수위가 맞는 거 같네요. 이거 아무래도 세대 교체가 제대로··· 쿨럭.”
이형탁은 손 감독의 말에 부정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 두 사람.
‘웃고 있어. 경기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거야.’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강태양과 남혜성.
아무리 게임을 리드하고 있어도 힘들 법도 한데 연신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인정할 수밖에 없네.”
이형탁은 고개를 떨구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지는 해라는 것을 인정할수밖에 없을 만큼 강태양의 플레이는 완벽했으니까.
그런 그들의 눈에.
“와아··· 강태양 방금 잭나이프 샷. 진짜 잘하네요.”
제대로 자기 기량을 펼칠 무대를 만난 강태양의 기술 향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아룰 형제는 대한민국조를 완전히 잘못파악했다.
당연히 강태양이 주축이 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신호 역시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공격할 빈틈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막상 패를 까보니 남혜성과 강태양은 밸런스를 맞추며 공수를 하고 있었다.
‘약점이 없어···.’
둘 사이인 코트 중앙을 공략해 빈틈을 노려봤지만 그 역시도 쉽지 않았다.
파트너를 믿으며 다른 영역을 커버하는 두 사람.
빈공간이 생기면 커버하며 서포트하고, 공격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는.
‘남혜성도 잘하잖아.’
아니, 그건 반대로 생각해보면.
‘강태양이 남혜성에게 맞춰주고 있는 건가?’
강태양은 100%를 다 하지 않으며 남혜성의 플레이에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자신이 온전히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내어주고 있다는 뜻.
그랬기에.
“와아아아아!!!”
“대한민국 조. 정말 여유가 넘칩니다. 반면 인도의 아룰 형제··· 완전히 말려버린 것 같은데요?”
“리듬이 깨졌습니다. 처음엔 분명 한몸 처럼 움직였었는데요. 이제는 그게 독이되고 있네요.”
아룰 형제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빈틈이 너무 많습니다! 빈 공간으로 잭나이프 샷을 찔러넣고 있는 강태양!!!”
“우와와 강태양, 정말 멋집니다!!!”
“내려찍는 양손 백핸드.”
“인도 대응하지 못하면서 다시 대한민국이 포인트를 가져옵니다!!”
몸을 틀며 점프.
잭나이프를 던지듯 샷을 내리 찍는 강태양의 모습은 여유가 넘쳤다.
“대한민국 이대로라면 2세트도 무리없이 따낼 것으로 생각이 드는군요.”
“멋집니다!! 인도의 아룰 형제를 상대로 아주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쌍둥이 아룰 형제는 점차 상대를 탓하기 시작했다.
볼로 함께 달리다 어깨를 부딪힌 두 사람이 인성을 퍽 지었다.
“제대로 해.”
“난 아까부터 제대로 하고 있었어. 네가 안하던 걸 자꾸 하잖아.”
“그럼 이 상황에 연습한 거만 계속 해? 그럼 진다고!”
“연습한 것만 제대로 했어도, 절대 안졌어.”
“그럼 나 때문이라는 거야?”
“당연하지.”
그리고 결국 말싸움이 번진 두 사람.
라켓을 휙 던져버리는 아룰 라무.
심판의 경고사인이 떨어져도 그 둘은 이마를 부딪치며 싸움에 집중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테니스 경기를 마저 열심히 해도 모자를 판에 싸움이 붙어버렸으니까.
“아룰 형제. 또 다시 흑역사를 만들려고 하나봅니다.”
“시비가 붙은 거 같은데요?!”
“아룰 라무 라켓을 집어던지며 강하게 불만을 표출합니다.”
“잠시 중단된 경기. 심판이 경고를 줍니다.”
완전히 무너져 버린 인도 쌍둥이 형제.
그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는데 집중 하다보니, 두 사람분의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므로 다시 재개된 경기에.
결과는 당연히 대한민국의 것이었다.
* * *
경기 결과.
둘째 날의 강태양 남혜성조의 복식경기는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대한민국은 셋째 날 단식 2경기 역시 인도의 선수들을 무찌르면서 내년도 월드그룹 진출을 확정지었다.
“감사합니다! 형!”
대회가 끝난 뒤 남혜성은 몇번이고 인사를 했다.
이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전하며.
“무슨 당장 헤어질 사람처럼 그렇게 인사를 해. 우리 또 볼 거야.”
“아, 맞죠.”
옆에 있던 정훈이 어리버리하게 있는 남혜성을 툭 치며 말했다.
“그래, 우리 내년에 또 봐야지. 그때는 키도 좀 커서 오고.”
“네! 알겠습니다!”
강태양은 이번 경기로 인해 희망을 봤다.
무엇보다 남혜성같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자신의 면모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생각했다
지난 생 코치로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지금부터 적용시켜 나가면 한국 테니스의 미래는 밝아질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강태양은 데이비스컵 기사를 확인했다.
아시안 게임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자축 기사들이 있었다.
그 아래.
‘이건 그때 그 기사잖아, 정정...?’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이은 데이비스 컵 예선 통과! 대한민국의 테니스의 미래는 밝았다.(정정)>
[기자가 한국 테니스의 현 주소를 밀착 취재해본 결과, 소외받는 선수들까지 양지로 이끌어내는 좋은 시스템을 확인했다. 이번 데이비스컵의 남혜성 선수가 좋은 출전 기회를 얻어내며 활약을 펼쳤다. 그 중심에는 강태양 선수가 있었다.]
데이비스컵 이후 뒤바뀐 정정기사.
그 기사를 확인한 강태양의 입술에 웃음이 번졌다.
‘그래, 바로 이거지.’
* * *
대회 이후.
현성차의 사장실 안.
한무혁과 류 이사 역시 강태양의 기사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데이비스컵, 남혜성 복식조의 탄생 비화 화제>
[··· 강태양 남혜성의 활약이 대단했다. 이형탁 감독을 만나 이 복식조의 탄생 비화에 대해 물었다. 답은 놀라웠다. 강태양이 남혜성을 추천했다는 것··· 남혜성은 경애보육원 소속 주니어 선수로 강태양이 그를 추천해 발탁했다는 답변이었다. ···]
“보시다시피, 강태양 선수의 잇다른 선한 행동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보육원 소속인 남혜성을 이끌어 주었다는 선행이 화제가 되고 있고요.”
“흠, 이거 말고도 또 있다고?”
“네.”
<테니스 선수 강태양 ‘손목 밴드’ 판매 수익 전액 불우이웃 돕기에 통큰 기부>
[강태양이 경기 중 착용했던 라라펭 손목 밴드. 강태양 선수가 착용했던 손목 밴드의 수익을 전액 기부하겠다는 소식을 알린 라라펭. 표수현 대표는 강태양 선수가 착용했던 손목 밴드의 수익을 전액 기부한다고 밝혔다. ···]
“기부?”
“이거는 의류 브랜드 라라펭에 알아보니 브랜드 측에서 준비한 써프라이즈 선물이었다고 하더군요.”
“누군지 머리를 잘썼군.”
라라펭의 손목 밴드는, 브랜드의 이미지. 그리고 강태양의 이미지까지 모두 챙기는 좋은 마케팅 방법이었다.
“이게 언론에서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바람에 꽤 이슈를 탔습니다.”
“선한 이미지로 브랜드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겠어.”
“네. 아마 스폰서도 더 여러 곳에서 더 붙을 거라 예상이 됩니다.”
“충분히 그렇겠지···.”
현성차 한무혁이 기사를 꼼꼼히 확인하며 웃음지었다.
“류 이사.”
“네, 사장님.”
“강태양은 이제 호주 오픈에 가는 건가?”
그의 말에 한무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전에 나도 언제 강태양을 한 번 볼 수 있을까? 대면했을땐 어떤 녀석일런지 궁금해지는군. 우리 기업에서 후원 하는 친구인데 내가 한 번도 보질 못 했잖아.”
언론이 포장하는 강태양의 모습이 아닌, 실제 그의 모습이 궁금해진 한무혁이었다.
류 이사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깊게 숙이며 웃음을 감췄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 * *
- 덜커덩, 덜덜···.
어스름이 깔린 새벽.
눈 내리는 굽이진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자, 다왔습니다.”
류 이사가 백미러를 흘끗 보며 말했다.
“이사님은 안 내리세요?”
“저요? 눈이 조금씩 와서 그런가. 긴장 속에 운전을 했더니 좀 졸려서요. 눈 좀 붙이고 갈테니 먼저 가 계세요.”
말똥말똥한 두 눈을 감으며 팔짱을 끼는 류 이사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차에서 내린 한보름은 천천히 눈을 꾹꾹 밟으며 전망대 위로 걸어갔다.
그 옆에서 그녀와 보폭을 맞추며 걸어가는 나.
고개를 돌린 한보름이 입김을 뱉어내며 말했다.
“나 해돋이 처음 봐, 설렌다.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자고 한거야? 갑자기 해돋이 보러가자고 해서 나 놀랐잖아.”
이곳은 우리가 이 전에도 왔었던 추억의 장소였다.
해돋이를 핑계로한 첫 데이트 신청이었다는 걸 모른 척 하는건지.
“너랑 같이 소원 빌고 싶었어.”
전망대 위.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설산.
기막힌 설경에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던 우리.
“그리고··· 너 눈 좋아하잖아.”
“?”
그녀는 눈을 좋아했다.
눈만 오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방방 뛰어다녔던 그 모습이 눈에 선했으니까.
“어떻게 알았지?”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설산을 바라봤다.
바람에 흔들리는 그녀의 머리결,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쳐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겠지.
앞으로 이런 놀랄 일이 정말 많을 거다.
“어, 저기 해 뜬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제 막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바라봤다.
한 해의 시작,
“소원 빌어야지.”
“응.”
“무슨 소원 빌거야?”
“그건··· 비밀이야.”
웃으며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한보름.
그리고 그녀가 눈을 떴을 땐.
아직 소원을 빌지 않고 있는 나.
“너는?”
우리의 손.
닿지 않는 손이 닿을 듯 말듯.
바람에 흔들거릴 때.
“내 소원은······.”
나는 문득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눈처럼 새하얀 얼굴에 빨갛게 달아오른 양 볼, 배시시 웃는 너의 눈, 그리고 내 손 보다도 따듯한 너의 작은 손.
확실한건, 지금 우리의 청춘이 전보다 눈부시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이 모든 소원을 이룰 자신이 있다는 것.
2015년의 해가 이전보다 밝게 떠오르고 있었다.
- 작가의말
(수정)
전개상의 수정은 없으므로 다시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작품의 재미를 위해 일부 장면을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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