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빨로 살리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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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2.05 16:31
최근연재일 :
2023.04.10 08: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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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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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그거라도 보러 가시겠습니까

DUMMY

나는 강도에게 역으로 물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하도 많아서 니들이 3교대로 들어도 모자란다. 반대로 하는 게 편할 것 같은데··· 다른 곳도 아닌 제국이 닦아 놓은 길에서, 아는 사람 운운하며 강도질을 하는 걸 보니, 뒤를 봐주는 놈이 있는 모양이구나. 누구냐, 네놈들 뒤에 있는 사람이?"


우두머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껌뻑였다.


"내가 멍청하게 그걸 나불나불 말할 것 같으냐?"


그냥 아니라고 하면 되는데, 역시 멍청한 놈이다.

나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왜?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일 수 있지 않나. 내 안부를 전하면 네 상관에게 칭찬받을지도 몰라. 내가 그래도 제법 인맥이 있다. 어쩌면 좋은 사람을 소개해줄 지도 모르지."


은근슬쩍, 발동을 걸었다.


【강도, 막시밀리안 콜드가 당신이 제안한 가능성을 떠올립니다.】

【강도, 막시밀리안 콜드가 당신이 제안한 가능성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녀석이 한 번 더 나를 스캔했다.

한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의복에 귀티 나는 외모까지.


최소한 없이 사는 놈은 아니다.

그리 생각한 모양인지, 녀석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그래서, 우리 윗분 직함을 이야기해 달라는 거냐?"

"그래야 나도 그에 맞는 사람을 소개해 줄 것 아니냐. 바쁘니까 빨리빨리 하자."


녀석이 고민 끝에 내게 말했다.


"동북성 제 2 경비 조장, 드루크. 그게 우리 윗사람이다."

"누구야 그게."

"음··· 설마 경비단장인 니콜라스 경까지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더 올라가면 그렇다."


옳지, 그놈.


드디어 아는 이름이 나왔다.

제국 소속의 하급 NPC였는데, 10년 사이 출세는 못 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잘 됐다.

옥새상서를 귀찮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녀석의 고삐 정도는 잡은 셈이 된다.


억울하다고 해 봤자 소용없다.

제국의 귀족이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말했다.


"그래서, 네가 안다는 분은 누구냐?"

"제국의 옥새상서와 잘 알고 지낸다."

"뭐? 네까짓 놈이 사신(死神)을 어떻게 안단 말 이냐?"


어안이 벙벙한 강도들을 향해, 나는 인용각주 스킬을 발동했다.


"너 자신을 알라··· 유명한 격언인데, 들어본 적 없나?"


【강도, 막시밀리안 콜드가 당신이 새싹 위인전에서 인용한 내용에 깊은 신뢰감을 느낍니다.】


느닷없는 신빙성이 당황스러웠는지,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너 그게 뭔 개소리···!"

"새싹 세계위인전 1권에서 쏘크라테스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실은 소크라테스보다 앞서, 델포이 신전인지 던전인지에 적힌 말이라고 한다.

새싹 위인전이 이렇게나 대단한 책이다.

나는 쿵 하고 발을 구르며, 새로운 스킬을 테스트했다.


"모두, 주목!"


【모두주목 level.9】

【근방 30미터에 위치한 모든 사람이 당신의 말에 주목합니다.】


녀석들의 눈과 귀가 내게 고정되어, 나는 졸지에 새싹반 강도 친구들의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

어그로 좋고.


"중대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

"이렇게 쉽게 배후를 노출하다니, 정말이지 허접스러운 부하들이로고. 내가 너희를 충성스러운 존재로 거듭나게 해주겠다. 참고로 진정 충성스런 신하는 죽은 신하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해골녀 루시아가 있다.


"이 새끼 죽여!"


우당탕 소리와 함께 강도들이 달려들었다.

나머지는 뻔한 이야기다.

수풀에 숨어 있던 루시아가 모습을 드러냈고, 곡선처럼 구부러지는 얇은 칼날이 뭉툭한 사내들을 상대로 기하학적인 형상을 그렸다.


경지가 격하되었음에도, 과연 루시아의 무위는 대단했다.

그 어떤 무협영화의 고수들보다도 칼을 잘 놀렸다.

붓글씨를 쓰듯 부드럽게 휘두르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검 면이 태산처럼 움직였다.


강도들은 이승에서의 삶이 아쉽지도 않은지 충성스럽게 죽음을 향해 행진했고, 작은 오솔길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뒤덮였다.

결국, 길가에 남은 것은 시체, 오로지 시체뿐이었다.


보통이라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그래도 예의상 명함 한 장 꽂아두고 가기로 했다.


경비단장 니콜라스 선배에게 전하는 피에 젖은 러브레터.

나는 이 편지를 제국의 분란을 싹 틔울 불쏘시개로 쓸 참이었다.

노트 한 장을 부욱 뜯어내고는, 짧은 글귀를 적어 돌 밑에 깔아두었다.


-주인은 냄새나기 전에 치울 것.

-울리히




***




툭.

갑옷을 흔들자, 우두머리의 죽은 몸뚱이가 땅으로 스륵 떨어져 나갔다.


나는 핏자국을 휘휘 털어, 루시아에게 넘겨주었다.

수풀에 놓인 짐마차를 뒤져보니, 어렵잖아 투구도 발견할 수 있었다.


---

이름: 그럴듯한 플레이트 아머 (중급) [세트]

설명: 숙련된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진 갑옷입니다. 방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이동속도, 공격 속도가 하락합니다.

---


이제 루시아는 해골 미녀에서 해골 미녀 기사가 되었다.

모습을 감추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될 터.

수도에서는 괜한 시선을 끌까 싶어 구하지 못했는데, 마침 필요한 타이밍에 갑옷을 얻게 된 참이었다.


-히히잉!


센스 좋게 루시아가 마차에 묶인 말을 끌어왔다.


그 밖에 은화 몇 개 빼고는 건질 것이 없었다.

오히려 강도들의 물건을 만지는 것조차 거부감이 들었다.

어쩌면 울리히의 성정이 내게 옮아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




우리는 한참을 더 이동했다.

잘 닦인 제국의 도로를 달렸고, 해가 질 때면 주변 마을에 둘러 투숙했다.


루시아는 밤마다 칼을 휘둘렀다.

하락한 경지를 메우기 위해 그녀로서도 열심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종종 중하급 수준의 마수들을 맞닥뜨렸지만, 루시아가 휘두른 검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아드리안에 발을 들였다.

옛 이름은 모호이너지 직할령이었다.


"거참···"


나는 모호이너지 성읍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무너진 성벽, 공성 기계에 의해 구멍 난 성문, 말라버린 해자와 불에 그을린 성채.

어디, 해골이라도 굴러다니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아참 내 옆에 있구나, 말조심.


모호이너지 성은 강고한 요새이자 영웅세력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단, 10년 전에 그랬다.


4년 전, 루시아가 포로로 잡히며 공작령은 제국의 손에 들어갔다.

제국은 새로 얻은 영토를 아드리안 자작에게 하사했고, 전쟁으로 훼손된 대부분의 인프라를 복구했음에도 정작 모호이너지 성만큼은 그대로 방치했다.


제국은 이런 걸 참으로 좋아한다.

무너진 희망의 흔적을, 불가능한 시도가 맞이한 실패의 증거를 그대로 전시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는 자신에게 까불지 않도록.


하지만 모든 실패에는 흔적이 남는다.

패배한 전쟁에 무너진 성채가 남는 것처럼, 혹여나 사람이 죽더라도 시체는 남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기억은 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소망들이 그곳에 있었는지.

오늘 나도 그런 추억 하나를 찾아온 셈이다.


루시아의 안내에 따라, 무너진 성채의 골목 진 구석으로 굽어 들어갔다.

머리 위로 아찔하게 기울어진 들보가 있었고, 불에 그을린 외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루시아는 내게 사람을 한 명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검날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동시에, 해골이 된 그녀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

나로서도 얼추 짐작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물 항아리, 빨랫줄과 같은 사람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작은 길목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고,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루시아가 그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역시 여기에 있었군요, 필립 시종장."


쨍그랑.

사내가 떨어뜨린 그릇이 박살 나 바닥을 휩쓸었다.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가씨···?"


황량한 모래 먼지가 앙상한 담벼락을 타고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




필립 요하네스.

오랜 기간 루시아를 보필해 온 모호이너지 공작가의 시종장.

그는 멸문한 공작가를 잊지 못한 채, 무너진 성채에 천을 걸고, 초를 피우며 반쯤 야만인처럼 기거하고 있었다.


루시아의 소식에 그는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그녀가 얻은 것이 새로운 삶인지, 아니면 죽음보다 지독한 저주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저 살아생전만큼 아름답게 빛나는 그녀의 하늘빛 머리칼을 보며, 눈물을 훔칠 따름이었다.

루시아가 그를 위로했다.


"슬퍼할 것 없습니다. 목적을 두고 얻은 삶이니까요."


필립에게 나의 정체나, 황제를 죽이겠다는 목적까지는 공유하지는 않았다.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지만, 지나친 정보는 그를 위험하게 만들 뿐이니까.


루시아는 내가 자신을 불러낸 사령술자이며, 주인으로 모시는 분이자, 모호이너지 가문의 재건을 목표로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라 둘러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필립은 내게 공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나는 본론을 꺼냈다.


"루시아의 물건 중, 당장 필요한 것이 있다. 자네라면 제국과의 전쟁에서 루시아가 포로로 잡혔단 소식을 들었을 때 멍하니 있지 않았겠지. 공작가의 재산과 유품을 모아놓은 곳이 있을 터. 그곳의 위치를 알고 싶다."


필립은 감탄하며 대답했다.


"놀랍군요. 아가씨만큼이나 저를 잘 아는 분이 또 있을 줄은··· 맞습니다.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장소를 물색해 가문의 재산들을 빼돌렸지요. 수일 내로 성이 함락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했으니까요. 혹여나 아가씨가 살아 돌아오지는 않을까, 그리 기대하며 지내왔습니다만··· 얼마 전 생을 달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주인 없는 무덤을 만든 꼴이 됐구나 싶었죠."


나는 몇 가지를 확인했다.


"자네 외에 그 장소를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는가?"

"있었지만, 전쟁통에 휘말려 모두 죽었습니다. 지금은 저뿐이죠."


몸을 일으켰다.


"바로 가지.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나?"


하지만 필립은 나를 멈춰 세웠다.


"안내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찾으시는 물건이 없을 겁니다. 3년 전에 도굴당했거든요. 지금은 묘비 빼곤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뭐···?"


낭패였다.

여기까지 와 놓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아쉬운 마음에 물었다.


"범인은 잡지 못한 모양이지? 대강이라도 추측되는 인물은 없나?"


조금의 단서라도 있다면, 울리히의 지위를 이용해 수소문해 볼 수 있을 터다.

그런 계획을 어렴풋이 떠올리고 있자니, 시종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잡았습니다. 그리고 죽었죠. 남겨두고 간 물건이 있었는지, 무덤을 다시 찾은 놈을 잡아 포박해두었었습니다. 빼돌린 장소를 극구 함구하다가, 지병이 있었는지 한 달 만에 죽어버렸습니다. 결국 재물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되었죠."


새로운 활로가 생겼다.

이 도둑놈은 훔친 재물로 장밋빛 미래를 그리다 잡혀 죽었을 터.

원혼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놈을 깨워 물어야겠다.

공작가의 유산들을 어디에다 꿍쳐놓았는지.

시종장에게 물었다.


"장례까진 아니더라도··· 그놈 무덤 정도는 만들어주었겠지?"


그가 대답했다.


"그랬지요. 그거라도 보러 가시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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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망선고 23.03.29 320 26 14쪽
15 빌헬름의 무사수행 +2 23.03.28 374 24 13쪽
14 고대의 유지 오르비스 23.03.27 387 25 14쪽
13 하겐 숲지대 공성전 +2 23.03.26 427 31 13쪽
12 환경보호 +2 23.03.25 417 32 13쪽
11 시몬을 찾아서 23.03.24 434 32 14쪽
10 정령석 경매와 리센 백작가 +3 23.03.23 478 33 13쪽
9 유포리아 +1 23.03.22 532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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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판타스마고리아 +2 23.03.19 820 3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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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는 이름 +4 23.03.17 1,104 47 12쪽
3 가능성 감각 23.03.16 1,285 5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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