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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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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 뽑아내려는 수작

DUMMY

김중만 대표와 김소리의 회사 대표실. 둘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에 마주보고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종이뭉치들이 가득하다. 김소리는 그 종이뭉치들에 흘끗 시선을 뒀다.

죄다 영화 시나리오들이다. 일부러인지 유명 감독들의 이름이 잘 보이게 해뒀다. 그중에서도 장형석 감독의 시나리오가 자신의 바로 앞에 놓여 있다. 거장 장형석 감독. 영화를 내는 족족 대성공하는 천재 감독님.

김소리는 이것만으로 대표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중만 대표가 입을 열며 침묵을 깼다.


“소리야, 영화 쪽은 안 끌려?”


김소리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김중만 대표의 얼굴은 진지했다. 김소리가 대답이 없자 김중만 대표가 말을 이었다.


“김설록 작가님 쪽에 있는 거 좋아. 그런데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올지 알고 가만히 기다려. 그것도 조연이면 어떡하고. 지금 것보다 비중이 낮으면?”


그는 고갯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장형석 감독의 시나리오 쪽을 향해서였다.


“이것들은 다 널 영화 주연으로 쓰고 싶다고 하는 작품들이야. 작품성이 안 좋으냐? 아니, 좋은 것들만 추려놨어. 그렇다고 감독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거장들도 널 원하고 있어. 이것들은 네가 선택만 하면 출연이 확정인데 시간이 별로 없어. 김설록 작가님이 차기작을 쓸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결정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지 않아.”


이대로 놓치기엔 너무 아쉬운 거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형석인데. 그가 자신을 주연으로 쓰고 싶다 하니 대표님께서도 흔들리고 있는 거였다.

김소리는 말했다.


“저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연기력이 그렇게 좋지 않아요. 작가님 대본이라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지. 할 수만 있다면 계속 김설록 작가님 쪽에 계속 있는 건 좋아. 지금도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되고 난리도 아니잖아. 네가 에미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는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런데 작가님이 계속 널 써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


김소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도 걱정하고 있는 거였다. 김설록 작가와의 친분과는 별개로, 그가 영감을 얻는 방식은 무척이나 특이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굿 김솔이’ 마지막 촬영 때, 이혜정 선생님이 이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다. 그가 자신을 써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말라고. 김소리도 이에 깊이 동의했다.

그러나 그건 그가 자신을 써주지 않을 때 원망하지 않는다는 거지, 이런 경우를 상정하고 한 얘기는 아니었다.


“작가님한테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계속 기회를 놓치고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 이게 은혜를 져버리는 일도 아니야. 캐스팅을 거절한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너무 감정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차분하게 생각해봐. 장형석 감독님은 널 주연으로 캐스팅하고 싶어 하셔. 이건 확률상 100%지. 근데 김설록 작가님은 널 차기작에 캐스팅할 지 안 할 지 몰라. 확률은 계산할 수가 없는 거야.”

“···.”

“김설록 작가님이 널 캐스팅하고 싶어 하시면 나도 너한테 이런 말 안 해. 고민할 여지도 없이 작가님이랑 같이 하자고 할 거야. 그런데 지금이 그런 경우는 아니잖아.”


김설록 작가를 배신하는 일이 아니다. 은혜를 져버리는 일이 아니다.

그의 말이 맞다. 설령 영화를 선택한다 해도 작가님은 축하해주실 분이다. 아니, 일반적인 축하가 아니라 저주와 장난이 섞인 농담을 던지면서 축하해주시겠지.


“소리야. 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지. 그리고 너 예전부터 영화 하고 싶어 했잖아.”


김소리는 입술을 깨물더니 물었다.


“···언제까지 결정해야 돼요?”


김중만의 표정이 환해졌다.


“2주. 최대한 끌어봐야 2주야.”



***



자고 일어나니 목이 텁텁하다. 침대 옆 테이블에 둔 물컵을 들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늘은 제작발표회가 있는 날.

피디님과 몇 명으로부터 톡이 와 있었는데, 난 김소리의 톡부터 확인했다.


[작가님 일어나면 전화해요]


입가에 가져갔던 물컵을 도로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목을 가다듬지도 않고 바로 통화를 걸었다.


-작가님, 일어났어요?

“여보세요.”


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착 가라앉아 쫙쫙 갈라진 목소리. 내가 들어도 섹시하다.


-오! 작가님 목소리 되게 섹시한데요?

“···!”


살짝 남아 있던 잠기운이 확 달아났다. 너무 놀라서 몽롱했던 정신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 또렷해졌다.


“당신 누구야.”

-···전데요.

“거짓말하지 마! 김소리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하지 않아!”

-김소리는 죽었어.

“안 돼! 김소리 바꿔. 김소리 무사하지? 이봐! 원하는 게 뭐야?”

-적당히 해요. 이걸 3절까지 하시네.

“2절이 딱 적당했죠?”

-네.


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생각을 정리했다. 상대가 김소리가 맞긴 한데, 그녀의 정신이 이상했다. 아직 그리 더워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더위를 먹었나? 아니면 어제 뭘 잘못 먹었나? 그도 아니면 술에 취해 있나? 아니면···


“날 좋아하는 건가?”

-이걸 4절까지 하시네.


그녀가 헛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난 저 반응이 좋더라. 내 헛소리에 어이없어 하는 것. 이 맛에 한 번 중독되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경멸하는 시선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지.


“아무튼 왜요?”

-···그냥요. 아침부터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

“···!”


5절까지 하려다가 참기로 했다.


“차기작 뽑아내려는 수작이죠?”

-노력이죠.

“역시, 나한테 원하는 게 없는 여자가 이렇게 할 리가 없지.”

-능력도 매력이에요.

“그건 맞죠.”


뭐, 즐겨도 나쁘지 않겠다. 나한테 해가 될 건 하나도 없으니.

난 콧노래까지 부르며 싱글벙글 집을 나섰다. 빨리 그녀를 만나고 싶다. 노력하는 김소리는 귀했으니까.



***



어제는 신나연이 제작발표회를 했다. 두 번째 순서가 바로 나. 오늘은 어떤 자극적인 소리를 해야 피디님도 만족하고 대중들의 관심도 끌어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샵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유지선과 김소리가 먼저 와 있었다. 그녀들이 나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려서 그렇다.

유지선은 눈웃음과 함께 나를 반겨줬다.


“오셨어요?”

“응, 지선아. 오늘도 예쁘네?”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저 차가운 얼굴이 나만 보면 미소가 번지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김소리는 유지선을 흘끗 쳐다보더니, 똑같이 눈웃음을 지었다.


“오셨어요?”

“···노력이 가상하네요. 3점 드릴게요.”

“3점···?”


눈에서 살기가 번들거린다. 난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3점 만점에 3점.”


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이번 난이도는 최하였다. 이 정도 순발력은 이제 몸풀기도 안 되지. 연애랑 결혼도 이제 문제없었다.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상대가 없을 뿐이지.


우리는 샵에서 나란히 나와 차에 올라탔다. 이제 이렇게 같은 차에 올라타는 것도 거의 마지막일 거다. 난 지선이에게 물었다.


“지선아, 새로 제안 온 데는 좀 있어?”


회사를 말하는 거였다. 여러 예능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그러니까 그녀가 내 작품의 주연이 됐을 때부터 매니지먼트들이 그녀에게 접근하긴 했다.

그땐 그걸 다 쳐냈다. 아직 그녀의 가치가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서 그렇다. 또한 회사가 없어도 작품 찍는 데엔 문제가 없었으니까. 굳이 필요도 없었지.

여러모로 나중에 드라마가 공개되고 몸값이 쫙 올라왔을 때 계약하는 게 그녀의 입장에서는 더 유리했다.


“많이 왔어요.”


그때, 앞에서 “크흠!”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들으라는 듯 커다란 소리. 김중만 대표였다. 난 그를 힐끔 봤다가 다시 유지선에게 말했다.


“지선아, 회사는 꼭 큰 데 들어가야 돼.”

“작가님! 큰 데가 좋다는 건 흔히들 하는 착각입니다! 요새 작은 데도 얼마나 좋은 곳이 많은데요. 집중적으로 케어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어요.”


난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유지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떤 억울한 일이 있을 때 해결할 능력이 있는 회사가 좋아. 애초에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만드는 회사가 최고지.”

“···!”


대표님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상처받은 얼굴로 날 쳐다본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저긴 능력이 없다.

능력이 있었으면 김소리가 애초에 왕따 논란에 억울하게 휩싸일 일도 없었을 테고, 논란이 일었다 한들 금세 해결했겠지.

김소리는 데뷔도 저쪽에서 했기 때문에 유대감으로 그와 계속 함께 하고 있다지만 지선이는 상황이 다르다. 선택지가 많다.


“지선아, 꼭 잘 생각해야 돼. 알겠지?”

“아···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는데···.”

“지선아, 파이팅!”


유지선은 소리 내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빠.”


난 그녀가 꼭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길 바랐다.


“NH엔터, 포레스트엔터, 바다액터스 중에 온 거 있어?”


셋 다 대형이다.


“셋 다 왔어요.”


김중만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하여간 욕심도 많지. 김소리도 가지고 있으면서.

유지선까지는 안 된다. 내가 그녀를 이 바닥에 끌고 왔으니, 여기까지도 내 책임이라 생각됐다. 무엇보다 그녀가 앞으로도 사건 사고 없이 순탄하게 쭉 잘됐으면 하니까.

난 김소리에게 물었다.


“셋 중에 어디가 지선이한테 잘 맞을 것 같아요?”

“셋 다 좋아요. 여기선 회사보다 조건을 봐야죠.”

“예를 들면?”

“신인이라고 계약금 안 쳐주면 거르고, 계약금 쳐준다면서 생색 내도 거르면 돼요. 비율은 아마 다 같을 거니까 그건 됐고, 계약금이 얼마 차이 안 나면 나머진 사람을 봐야죠. 얼마나 자신한테 열정적이고 잘해주는지.”


입에서 술술 쏟아졌다. 난 작게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니까.”

“연륜?”


김소리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난 순발력에 자신 있으니까. 그런데.


“···.”

“···.”

“···이게 생각이 안 난다고?”


나를 믿고 막 뱉었는데 순발력이 고장났다. 자존심이 상했다.


“젠장! 젠장! 젠장!”


김소리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한 셈이다.



***



제작발표회 대기실. 거울을 보며 미모를 점검하고 있는 중, 김소리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저번엔 이때 팔짱을 꼭 낀 사진을 찍었었는데.

난 은근슬쩍 팔꿈치를 슥- 올렸다. 그녀는 내 앞에 섰다. 그녀가 날 올려다보며 열심히 살폈다.


“거울 볼 필요도 없겠네요. 멋있어요.”

“···이거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차기작 나올 때까지요.”

“이제 이런 걸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어요.”

“그럼 뭐요? 뭘 바라시는 건데요?”

“···.”


너무 가깝다. 시선을 피하고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이러는데도 정 안 나오면 그때는···”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


“커헉!”


입을 떡 벌리고 요물을 바라보는데, 요물 또한 날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혀를 쯧, 찼다.


“이게 안 되네.”

“···.”


이상하다. 내가 즐기려고 했는데, 어째선지 입장이 뒤바뀐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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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과욕, 만용, 객기, 오만 +38 23.03.27 13,367 425 16쪽
47 내가 그렇게 봤으면 그걸로 됐다 +43 23.03.26 14,210 42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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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투 배럭 +59 23.03.24 15,184 459 17쪽
44 영화 유망주 주연정 +32 23.03.23 16,238 46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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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그녀는 웃고 있었다 +29 23.03.21 15,811 390 12쪽
41 정말 1등 할 수 있을지도? +16 23.03.20 15,967 409 16쪽
40 김설록, 박연우, 원세영, 정희선 +21 23.03.19 16,018 405 13쪽
» 차기작 뽑아내려는 수작 +19 23.03.18 16,252 412 12쪽
38 제작발표회는 자극적으로 +23 23.03.17 16,655 397 15쪽
37 두 번째 만남 +19 23.03.16 17,155 425 15쪽
36 전초전 홍보 전쟁 +11 23.03.15 17,227 404 13쪽
35 상남자는 죽었다 +12 23.03.14 17,698 430 16쪽
34 그는 일류였다 +35 23.03.13 17,573 48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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