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저의 꼬리
임성웅 헌터의 기운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발견한 약점을 한시라도 빨리 전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위험해.’
한편으로는 이상한 점도 있었다.
그동안 봐 온 임헌터의 힘이 매번 차이가 크다는 것.
“도대체 진짜 힘은 어느 정도인거야..”
S급 수준에 달하는 거인은 너무 쉽게 쓰러뜨렸다.
하지만, 어느 날은 A급 체인저놈도 다 죽어가며 이겼다.
‘뭔가 제한이 있는걸까..’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화려하게도 벌이고 갔네.”
산을 가로질러 간 듯 산 길 여기저기에 전투 흔적이 잔뜩했다.
“사람 없는데서 싸우려던거 아니었어..?”
헌터들이 있는 곳을 떠나서 산 중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한 줄 알았는데, 전투의 흔적은 다시 도심으로 향했다.
“무슨 생각으로 싸우고 있는거야.”
어쩌면 강력한 괴물놈에게 밀려 도심까지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 할 수록 마음만 조급해질 뿐이었다.
“가르르르!!”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잔뜩 짜증난 듯한 괴물의 소리가 들렸다.
“다 왔다.”
소리를 따라 간 곳에는 적갈색이었던 괴물의 몸이 더 붉게 빛나고 있었다.
“기운이 더 강해져있어..”
놈의 맞은 편에는 임성웅 헌터와···
“대체 뭘 들고 있는거야?”
깃털 색이 많이 진해졌지만 자세히보니 항상 임성웅 헌터와 함께 다니던 반려몬스터였다.
“근데··· 왜..!”
더 강해진 기운을 내 뿜는 괴물의 꼬리가 쏘아질 때마다 임성웅 헌터는 손에 쥔 반려몬스터를 방패 삼아 꼬리를 막아냈다.
푹! 푹! 푹!!
괴물은 어떻게든 임헌터에게 꼬리를 쑤셔박으려 애썼지만, 꼬리는 매번 반려몬스터의 화조의 몸통에 꽂혔다.
“삐! 삐이이!!”
“으흐흐흐흐..!”
그 때마다 반려몬스터는 흉측한 비명을 질렀고, 임헌터는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저.. 저.. 미친거야..?”
*
목표에 꼬리가 닿지 못하자 당황한 괴물과 달리 성웅과 화조는 즐거워했다.
( 너무, 좋아..! 더더더 꽂아줘! )
화조는 마치 마약이라도 한 듯 기쁨의소리를 질렀고.
“점점 색이 변하고 있어.”
화조의 몸이 주황빛으로 물들수록 성웅도 기뻐했다.
“가르..가르르..”
“뭐야! 왜 멈춰.”
괴물의 꼬리가 더 이상 성웅과 화조에게 쏘아지지 않았다.
핼쓱해진 모습의 괴물은 꼬리침은 포기하고 오로지 손톱과 꼬리 전체를 휘둘렀다.
“느려졌구나.”
“가르르!!”
화조에게 기운을 빼앗긴건지 괴물의 공격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임헌터님!!”
조금 전 지나쳐 온 산등성이 위로 유단희 헌터가 날아왔다.
“유단희 마스터, 다른 분들은 무사한겁니까?”
“앞에..앞에요!!”
영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힘을 빼앗긴 놈을 상대하는 것은 훨씬 수월했다.
“얼굴 빛이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네.”
시간이 지나면 놈이 조금씩 힘을 회복 하는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해야겠어.’
때 마침 유단희 마스터의 버프가 이어졌고, 좀 더 안정된 힘으로 구슬을 두개로 나누었다.
“꼬리와 몸통사이 관절이나 머리 뒤쪽을 노리세요! 거기가 약점입니다!”
나눠진 구슬이 점점 납작해지더니 날카롭게 벼려졌다.
“너는 침 맞아본 적 없지?”
두개의 날카로운 장침을 손에 든 성웅이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다가오는 성웅을 향해 괴물은 꼬리를 휘둘렀고.
“화조야!”
( 간다! )
화조가 움직이자 괴물 놈이 멈칫했다.
동시에 괴물의 양 손톱과 성웅의 침이 격돌했다.
손톱이 길게 뻗어나온 것과 붉은 것을 빼곤 놈의 손 모양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푸슉-!
길게 뻗은 손톱 아래로 날카로운 침 두개가 꽂혔다.
“챠아—!”
괴물에게서 듣지 못한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퍼졌고, 놈의 손톱 사이에서 보라색 피가 뚝뚝 떨어졌다.
“화조야 먹어치워.”
떨어지는 피를 화조가 정화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괴물 위로 튀어오른 성웅은 놈의 뒤통수에 침 두개를 박아버렸다.
콰직!!
단순히 뼈가 관통되는 것이 아닌 단단한 돌 하나가 박살난 느낌이었다.
“챠악!!”
괴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회복한 손톱을 뒤로 휘둘렀지만, 이미 성웅은 뒤로 넘어가 두개의 침을 무릎 뒤쪽에 박았다.
“내가 한의학 쪽은 전혀 몰라서 말이야, 어디다 찌른건지 모르겠다.”
“가르르르!!”
괴물이 모든 상처를 회복하기 전 화조는 새어나오는 피와 기운을 모두 정화했다.
파르르르···
많은 기운을 빼앗긴 괴물은 몸을 떨며 화조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휘익..
휘익..
힘이 빠진 녀석은 뒤늦게 화조를 공격했지만.
( 귀찮게 하고있어. )
지친 놈의 공격은 강해진 화조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 해 볼만 하겠는데? )
콱!!
화조는 천천히 날아오는 손톱을 피해 놈의 손등을 물었다.
콰드득!!
“가르..?!”
촤-악!
손등을 문 화조가 힘을 주자 놈의 손이 뽑히고 엄청난 양이 피가 쏟아졌다.
“끝났어..”
괴물의 몸은 더 이상 회복되지 않았고, 붉었던 몸은 화조와 비슷한 수준으로 붉은 기운이 빠져나갔다.
“죽어.”
서걱-!
구슬검을 쥔 성웅이 단번에 괴물의 꼬리와 몸통 사이 관절을 베어버렸다.
쿵.
띠링-
[ 영역 밖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
[ ‘영역 확장’ 다음 레벨의 요구조건이 달성되었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응?”
지난 레벨업 보상 하나도 선택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다음 ‘영역 확장’의 요구조건이 달성되었다니..
“이건 못 참지.”
띠링-
[ ‘영역 확장’을 선택하셨습니다. ]
[ 어느 곳의 영역을 확장하시겠습니까? ]
“서울로 하지.”
[ 상태창 ]
이름 : 임성웅
레벨 : 15
체력 : 1099
힘 : 1099
민첩 : 1099
마력 : 10699
물리방어력 9999
마법방어력 9999
특성
영역확장 Lv.7 스텟상승 Lv.6
거점 - 서울, 강화도
다음 영역확장으로 지금 있는 곳까지 전부 영역이 되었다.
띠링-
[ ‘서울의 기사’ 칭호를 얻었습니다. ]
[ 영역 내 동료에게 3%힘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
“엄청나네.”
칭호와 효과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 확장 된 영역은 서울시 전체였으니까.
더 이상 서울 내에서 뭐가 나오든 무서울 것이 없다.
예전처럼 도망치며 싸울 필요가 없다.
“부리새 잡을 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임헌터님 괜찮으세요?”
“아 예, 멀쩡합니다.”
유단희가 다가와 성웅의 상처를 치유했고,그러는 동안에도 화조는 쓰러진 괴물의 몸을 정화했다.
“역시.. 사람이었네요.”
그제서야 괴물은 유기몬스터 연구소 한국지부 소장 심기용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심기용 소장..?!”
“아는 사람입니까?”
“예, 유기몬스터 한국지부 소장이예요.”
“이 사람도 체인저 소속이라는 겁니까?”
자의로 이런 괴물이 된건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그들과 만난 적이 있거나 관련이 있단 뜻이다.
“그건 모르지만.. 최근 그의 밑에 있던 연구원들이 모두 자취를 감췄어요.”
“흠··· 의심해 볼만한 일이네요.”
유기몬스터 연구소와 체인저와의 관계.
이것이 체인저를 잡는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이번에도 결국 헌터님 도움을 받고야 말았네요.”
“아닙니다, 저도 유단희 마스터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거예요.”
실제로 그랬다.
화조가 기운을 많이 빼놓긴 했지만, 영역 안으로 놈을 끌고가지 못하면 이기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괴물이 약해진 타이밍에 주어진 유단희의 버프가 놈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죽지 않았으면 뭐라도 알아냈을텐데..”
“쿨럭..!”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심기용이 피를 토해냈다.
“화조야 멈춰!”
심기용의 세포액 정화는 거의 끝난 상태였다.
그나마 남은 기운이 사라지면, 정말 목숨이 끊어질 것이다.
( 밥 먹는데 부르지마. )
“잠깐 멈추라고!”
성웅은 기운을 흡수하는 화조의 부리를 막아버렸다.
( 읍! 으읍! )
“미안한데, 잠깐만 기다려봐.”
“최..한..”
“뭐라는 것 같습니까.”
“글쎄요.”
성웅은 심기용의 입 근처에 귀를 가져다 댔다.
“최한···록···그 개새끼를.. 잡아.. 미국.. 제임스..의 앞잡이다..”
“그게 누군데.”
“···”
더 이상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화조의 부리를 놓아주었다.
( 잘 먹고 있는데 말이야. )
“최한록이나 제임스란 이름 알고 계십니까?”
“제임스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하나 알고있긴한데.. 워낙 흔한 이름이라..”
그렇담 최한록이란 자를 쫓아야한다.
“심기용을 믿을 수 있으시겠어요?”
“상관없습니다, 죽는 마당에 나온 이름이라면 조사 해 볼 필요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시죠.”
잠시후, 괴물의 기운이 사라진 것을 눈치챈 헌터들과 유명재가 다가왔다.
“둘다 괜찮은겨?”
“네.”
말과 달리 유명재는 오로지 자신의 딸의 상태만을 살폈다.
“헌터님 괜찮으십니까?”
“예,근데 그건 누굽니까.”
“아까 그 괴물이 죽인 것 같습니다, 조사해봐야겠지만 중국인 같더군요.”
최정훈의 손에 웬 사체 하나가 들려있었다.
“어..? 잠시만요.”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에 손에 허리춤이 잡힌 중국인 사체는 어딘가 익숙했다.
( 저번에 그 놈이야! )
화조가 난리를 쳤고, 성웅도 알아챌 수 밖에 없었다.
“이 중국인 지난번 한남동에서 만났던 놈 입니다.”
“그렇다면 체인저 놈들이 이곳에 있던 건 확실하군요.”
최정훈은 자묵과 심기용의 사체를 확인했다.
“저기 유단희 마스터님.”
“예?”
“아까 심기용.. 아니 괴물의 약점은 어떻게 아신겁니까?”
S급에 서포터라곤 하지만, 지금은 영역 밖에서도 유단희보다 강한 힘을 가지게 됐다.
그런 그녀가 성웅보다 빨리 약점을 찾았다는 게 궁금했다.
“제가 안게 아니예요.”
“예?”
“저희 아버지가 알려주신거예요.”
“그게 무슨..”
유명재가 은퇴한 헌터라는 것 정도는 들었다.
하지만, 그다지 대단한 헌터도 아니었다고 알고있었는데..
“능력이란게 다 그런겨. 하나 정도는 특출난게 있어야지.”
“저희 아버지는 몬스터의 약점 뿐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세요.”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고도 이렇게 유명하지 않을 수 있죠?”
“···”
성웅의 팩폭에 부녀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귀찮아지는건 딱 질색인겨어~.”
진작부터 어르신의 성격이 그러했다.
위험한 게이트를 토벌하고 유명해져 많은 돈을 벌기보단 처자식을 책임질 수만 있으면 됐다.
“그러니까, 약한 게이트만 수도 없이 돌아서 돈도 못벌고 몸만 상했잖아! 으휴!”
두 부녀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 배부르다. 이거 가져가도 돼.)
“정화 끝난거지?”
( 꺼억-! )
화조가 심기용의 몸을 완전히 정화했다.
띠링-
[ 화조가 한층 더 성장했습니다. ]
심기용의 정화가 끝난 화조는 온 몸이 주황색으로 뒤덮혔다.
“너 진짜 정체가 뭐냐..”
어디까지 색이 변할지..
주황색이 끝이긴 한지 화조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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