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법칙의 세상엔 히어로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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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헝
작품등록일 :
2023.02.24 12:23
최근연재일 :
2023.04.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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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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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춘배의 속마음

DUMMY

새벽이 깊어가고 있었지만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꺼내는 소라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느 허름한 골방이었어. 나중에서야 그게 격리를 위한 감방이란 걸 알게 됐지만. 나는 국정원에서 격리되어 누구하고도 접촉하지 않고 갇혀있었지. 하루 세 번 창살 틈새로 빵과 우유가 들어왔어. 온종일 그것만 바라보면서 지냈지.”


협탁 위의 주황빛 침실 조명이 소라의 옆모습을 비추었다. 소라는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의 국정원 시절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감방 앞으로 무섭게 생긴 아저씨와 왜소한 체형의 아주머니가 나타났지. 둘은 문 앞을 지키던 경비와 얘기하더니 아저씨는 그 누군가에게 화를 냈어. 아주머니도 옆에서 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지. 이윽고 경비가 감방문을 열었고 아주머니가 내 손을 마주 잡으며 머리를 쓰다듬었지. 그 손은 무척이나 따뜻했어.”

“혹시, 그 두 분이...”

“맞아. 교수님과 차장님이야. 두 분은 나를 데리고는 허름한 사무실 같은 곳으로 데려갔지. 좁고, 어두컴컴한 곳이었지만, 난 그곳이 좋았어. 교수님은 자기 집에서 나를 재우고 낮에는 그곳에 데려갔어. 그리고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셨지. 나는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던지 금세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쳤어. 17살이 되는 해에 나는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교수님은 곧바로 유학을 준비시켰지. 결과적으로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갔고 거기에서 대학을 졸업했어. 그러고선 곧바로 다시 귀국했고.”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본인에게 직접 들으니 더욱 생생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차장님과 함께 클래스를 훈련했지. 차장님도 보기에만 험상궂지, 누구보다 따뜻하고 자상한 분이었어. 나는 그렇게 교수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차장님과는 훈련하면서 매일을 보냈지. 그러던 어느 날 사무국에서 날 찾았어. 특수팀을 결성할 거고, 나더러 팀장을 맡으라 했어. 그래봐야 인원은 나와 교수님, 차장님뿐이었지만. 교수님은 대학교수로서 국정원 직책을 맡을 수 없었고, 차장님은 무슨 이유에선지 팀장을 맡는 걸 거부하셨어. 나밖에 할 사람이 없었지. 내가 자질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요. 누나는 훌륭한 팀장이에요.”

“고마워. 그렇지만 내가 팀장 역할을 잘했다면 지금처럼 팀이 해체되는 일은 없었겠지. 다 나의 불찰이야. 많이 부족했어.”


소라를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이후로 춘배 씨가 팀에 들어왔고, 진수 너도 합류했지. 그다음부터는 너도 알고 있는 내용이야.”

“그랬군요.”


소라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평범한 생활은커녕 국정원에 소속되어 평생 조직의 도구로만 이용된 소라의 삶은 너무 가혹해 보였다.


“분명, 꿈속의 어린아이는 나인 게 맞겠지. 부모님께 버림받은 기억을 잊기 위해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일지도.”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많이 힘들었겠어요..”


소라는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허공에 그리는 듯했다.


“내 기억에는 부모님이 안 계셔. 하지만 그 꿈이 정말 나의 과거의 기억이라면 꿈속의 그분들은 나의 아버지, 어머니겠지? 그렇게라도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있는 게 좋았어. 분명 그분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걸 거야. 나라도 나 같은 괴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걸.”

“그런...”


소라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제는 괜찮아. 교수님, 차장님처럼 믿음직한 어른들로부터 많은 가르침과 보살핌을 받았어. 춘배 씨는 약간 덜렁거리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고. 진수 너와 주연이가 팀에 오고 나서부터 시끌벅적한 게 즐겁거든.”

“다행이네요. 누나는 항상 어딘가 굉장히 고독하고, 쓸쓸해 보여서...”

“내가? 쓸쓸해 보인다고?”

“저만 그렇게 느꼈나 봐요. 누나가 좋다니 다행이에요.”

“무뚝뚝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렇게 보일 줄은 몰랐네. 노력해볼게.”

“노력할 필요까지야...”


소라의 과거를 듣고 나니, 그렇게 느꼈던 게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네 말대로였어. 내 삶을 증오했고, 원망했지. 하지만 이젠 달라.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이 생기고 나서부터 내 삶의 태도가 바뀐 것 같아. 나는 지금 내 곁에 있어 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이 세상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있어.”


소라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다. 매서운 눈초리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교단을 용서할 수 없어. 나는, 교단으로부터 이 세상을 지키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누나...”

“그러니, 진수 네가 도와줘. 너는 이미 우리 팀에서 매우 커다란 존재니까.”

“여, 염려 마세요! 저도 우리 팀이 좋고, 그리고, 교단은 나쁜 녀석들이니까!”

“후후... 그래. 고맙구나.”


소라가 살짝 미소 짓고는 침대에 등을 기댔다. 다시 몸이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 이제 다시 잘게. 괜찮으니까 너도 방에 들어가서 쉬렴.”

“그래도... 교수님이 누나를 잘 돌보라고 했는데.”

“정말 괜찮아. 내일 할 일이 많을 거야. 얼른 가서 쉬어.”

“알겠습니다. 누나도 쉬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 나가는 진수를 보고 소라는 조명을 껐다. 이불을 어깨까지 올리고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멤버들은 부지런히 사무실 이사를 했다. 임시 거처였던 허름한 옛 사무실로 이사를 마치고 나서 멤버들은 대책 회의를 위해 거실에 모여 있었다.


“나 참,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방을 빼래? 에구구, 온몸이 쑤시네.”

“아저씨는 별로 힘도 안 썼잖아? 가벼운 물건만 들던데? 얌체 같아.”

“무슨 소리! 그나저나 너 나한테 관심 있냐?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구먼?”

“허, 헛소리 지껄이지 마! 내가 왜 당신 같은 원숭이를? 착각도 유분수야!”


춘배와 주연이 으르렁 대자 교수가 테이블을 효자손으로 탁탁 쳤다.


“시끄러워! 이놈들아! 너희는 어째 허구한 날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니?”

“이모! 봤잖아~ 얘가 먼저 시비 거는 거.”

“시비라니? 얌체같이 군 게 누군데!”

“조용히 해! 한 번만 더 떠들면 둘 다 거실 청소 일주일이다.”


사무실이 금세 조용해지자 소라가 회의를 시작했다.


“특수팀은 공식적으로 해체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계속 활동을 이어 나갈 생각입니다.”

“나는 상관없다. 어차피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여기서도 문서 해독은 가능하다.”

“감사해요. 차장님은 일본에 계신 김에 에이지 씨와 접촉해 위원회에 협조 요청을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잠깐. 난 여길 떠나겠어.”


춘배가 소라의 말을 끊었다. 소라를 제외한 모두의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떠나다니? 팀을 탈퇴하기라도 하겠단 말이니?”

“공식적으로 팀이 해체된 마당에 내가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는 없어. 사실 내가 정상인 거라고. 아니면 뭐 자기 목숨이라도 내놓고 활동하란 말이야?”

“저는 더 이상 팀장이 아닙니다. 춘배 씨의 탈퇴를 막을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힘을 합쳐야...”

“아니. 내가 한 결정이 맞아. 비전투원인 나는 너희들에게 걸림돌만 될 뿐이야.”


춘배는 나지막이 자신의 탈퇴 사유를 밝혔다. 주연이 팔짱을 끼고 불쾌한 표정으로 춘배를 바라봤다.


“흐~응. 얌체같이 군 게 아니라 얌체가 맞았네. 팀이 어려워지니깐 혼자 내빼시겠다? 아줌마, 우리도 이런 겁쟁이는 필요 없어.”


춘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연의 멱살을 잡았다.


“닥쳐.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지? 내가 무슨 심정으로 탈퇴를 결정했는지 알아?!”

“그딴 거 알 바임? 당장 이거 놓지 않으면 손바닥에 바람구멍을 내주지.”

“두 분 다 그만두세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요!”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둘을 말렸다. 춘배가 몸을 부르르 떨고는 멱살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였다.


“대체 뭐 하는 거냐? 어린애도 아니고!”

“너희들은 모르겠지. 내가 얼마나 이 팀에서 무력감을 느꼈는지... 너희들이 사지에 몰려서 싸우고 있을 때마다 비겁자가 된 것 같았다. 나도, 나도 싸우고 싶었어! 그렇지만 레이와 워터파크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때 깨달았다.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렇지 않아요. 춘배 씨가 있었기에 저희가 임무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어요. 지원 업무 또한 전투만큼 중요합니다.”

“그딴 입에 발린 위로는 집어치우시지! 지나가는 백수를 앉혀놔도 그건 다 할 수 있을걸? 이미 결정했어. 팀을 떠나기로. 더 이상 날 붙잡지 마.”


춘배는 외투를 챙기고는 사무실 문을 향했다. 문을 닫으며 춘배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잘 있어라.”


쾅!


춘배가 떠나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결국 뒤를 쫓기로 했다. 소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춘배가 사라진 방향을 보고 있었다. 주연이 벽에 기대어 화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저대로 놔둘 거야?”

“아니. 다음 임무에 춘배 씨는 꼭 필요해. 진수를 믿는 수밖에.”




밖으로 갔을 때 이미 춘배는 밴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운전석 창문을 두들겼다.


“형! 잠깐만 기다려요! 제 얘기를 좀 들어봐요!”

“꼬맹이! 너도 날 잡지 마! 난 이미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잠시만, 제 말을 좀!”


이미 저만치 멀어지고 있는 밴을 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래된 자전거가 한 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클래스를 발동했다. 빠른 속도로 밴의 뒤를 쫓았다.


밴이 큰길로 진입하자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밴의 속도는 50km/h를 넘고 있었지만, 자전거가 어느새 밴의 옆으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춘배는 사이드미러를 바라보다 자전거가 쫓아오는 걸 보고 뿜을 뻔했다.


“으악! 지, 진수? 저 자식, 대체 뭘 하는 거야?”


춘배는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외쳤다.


“야, 이놈아! 너 미쳤어? 차도 한 가운데서 자전거로 뭘 하는 거야!”

“형! 그러니까 잠깐 멈춰봐요!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필요 없어! 더 이상 쫓아오지 마!”


춘배는 창문을 닫고 다시 속력을 냈다. 밴은 이미 70km/h를 넘으며 과속하고 있었다. 차선을 계속 바꾸며 다른 차들을 앞질러 가자 차들이 여기저기서 경적을 냈다.


백미러로 계속 쫓아오는 자전거를 보고 춘배는 질리고 말았다. 이대로는 물리량 소진보다 밴의 기름이 먼저 떨어질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춘배는 큰길에서 빠져서 인적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밴은 머지않아 어느 하천의 다리 위에서 멈췄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작은 다리였다. 춘배는 뒤에서 쫓아오는 자전거를 보고는 차에서 내렸다.


“헉, 헉. 춘배 형...”

“......”


춘배는 천천히 다리의 난간 쪽으로 가서 팔을 기댔다. 그리고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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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4화. 약속 23.04.27 54 2 13쪽
123 123화. 진정한 수호자 23.04.27 55 3 13쪽
122 122화. 자격 증명 23.04.26 54 3 11쪽
121 121화. 아실리움 23.04.26 61 2 11쪽
120 120화. 눈부신 희생 23.04.25 58 2 17쪽
119 119화. 인연의 끈 23.04.25 52 2 15쪽
118 118화. 모두에게 닿기를 23.04.24 50 2 14쪽
117 117화. 탄식 23.04.24 56 2 13쪽
116 116화. 유년기의 끝 23.04.23 54 2 13쪽
115 115화.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 23.04.23 56 2 12쪽
114 114화. 마지막 축제 23.04.22 48 2 12쪽
113 113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23.04.22 49 3 12쪽
112 112화. 다시 도착한 탑 23.04.21 57 2 13쪽
111 111화. 준비는 끝났다 23.04.21 60 2 14쪽
110 110화. 추락 23.04.20 105 2 14쪽
109 109화. 쿠데타 23.04.20 56 2 12쪽
108 108화. 피튀기는 접전 23.04.19 52 2 11쪽
107 107화. 신세계의 왕 23.04.19 5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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