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그런 방법은 없다. 그리고 네가 빼앗긴 생명력도 12년 치가 아니고.. ]
"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분명 지금까지 여섯번 관천주를 던졌잖습니까? 그럼 12년이 아닙니까? "
[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이다만 관천주를 한번 던질 때마다 반드시 2년 치 수명이 소비되는 게 아니야. ]
" 그럼 요? "
[ 질문과 상황에 따라 더 많이 소비 될 수도 있고 더 적게 소비 될 수도 있다. 수 많은 상황 중에서 가장 수명을 많이 소비하는 일은 당연히 생사가 달린 일이겠지만 여기에서도 위협의 강도에 따라 많은 변동폭이 존재하지 ]
" 그 말은 딱히 정해진 건 없고 그때그때 엿장수 마음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
[ 그 판단은 기령인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관천주가 하는 거니까 뭐 그렇게 생각한들 내가 어쩌겠느냐 ]
" 어르신은 관천주와 별개의 존재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제 짐작이 맞는 겁니까? "
[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확하게 말하면 상리공생(相利共生)관계라고 말해야 하겠지. 덕분에 내가 관천주가 하는 일에 관여는 할 수 없지만 관천주가 하는 일을 엿볼 수는 있거든 ]
" 쉽게 말해서 어르신은 관천주에 기생을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
[ 기생이라.. 듣기가 좀 불편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난 관천주의 기령이니까 ]
" 그럼 지금까지 어르신이 지켜 봤던 자들 중 가장 많은 수명을 빼앗긴 자는 누구이며 그는 어떤 상황에서 그런 생명력을 빼앗긴 것입니까? "
관산은 최악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오는 리스크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다 생각해 관천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 음 아직 많은 기억이 돌아온 건 아니지만 떠오른 기억 중에서 보면 그는 왕팔이란 자다. 중원성에있는 천하제일객잔의 점소이 신분이었던 놈인데 겁도 없이 광마의 대머리를 보고 폭소를 터트려 쫓긴 적이 있었다. 그때 그놈이 관천주를 한 번 던지는 것으로 300년이란 수명을 빼앗긴 적이 있지. ]
" 예? 300년이요? "
생각지도 못한 수치에 관산은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어르신 인간이 그 정도로 수명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다면 그는 필시 광마란자 때문이 아니라 관천주에게 수명을 모조리 빨려 그 자리에서 즉사했겠군요 "
[ 아니다. 왕팔은 그때 관천주의 도움으로 무사히 광마에게 도망쳤고 추후 광마를 찾아가 복수까지 성공했다 ]
" 말도 안됩니다. 인간이 어떻게 300년의 수명을 빼앗기고 살아날 수가 있단 말입니까? "
[ 난 그가 인간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그는 인간이 아니라 비룡족이었다. 참고로 비룡족은 500년은 거뜬히 사는 종족이지 ]
" 그렇군요.. 그는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이었군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300년은 정말 말도 안되는 댓가입니다 "
관천령의 이야기에 관산은 대충이나마 관천주가 수명을 빼앗아가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생각 없이 던졌다 간 정말 큰일 나겠구나 '
[ 왕팔을 쫓던 광마는 정말 무서운 자였다. 널 쫓았던 마수나 옆방에 있는 저런 여자 수백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강자인 그에게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댓가로 허비한 300년은 결코 비싼값이 아니다.. ]
" 네 어련하시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했으니 제가 지금까지 빼앗긴 수명이나 말씀해 주십시오 "
[ 넌 15년하고 183일치의 수명을 소비했다. ]
" 에효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
왕팔의 이야기를 듣기 전었다면 모르겠지만 설명을 듣고 난 뒤라 그런지 관산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 그리 억울해 할 것 없다. 상황을 돌이켜 봐라. 관천주를 굴리던 순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갔는지 말이야. 이처럼 관천주는 모든 상황을 고려해 값을 매긴다. 그러니 관천주를 던질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 ]
" 그러시는 분이 잘도 관천주를 던져라 꼬드기셨군요 "
[ 그때는 그래야 했으니까 아까도 말하지 않았느냐 난 관천주를 오랜 시간 지켜봤다 그래서 대충 상황에 따라 소모 될 수명 정도는 알아 차릴 수 있지. 물론 관천주에게 흡수 당한 후라면 분 초까지 알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예상은 예상일 뿐 이 역시 100프로 정확한 건 아니니 혹시 틀렸다고 날 원망하지는 말거라 ]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지만 이내 관산은 실망하고 말았다. 왠지 자신 없어 하는 관천령의 목소리에서 절대 그를 믿어서는 안되겠다는 불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혹시 제가 관천주에게 천하제일인이 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
[ 만약 네가 천하제이인일 때 그런 질문을 한다면 그다지 많은 수명을 빼앗기지는 않겠지만 지금 그런 질문을 했다가는 넌 백골조차 남기지 못 할 것이다. ]
" 그러니까 어르신이 보시기에 얼마나 소비될 거 같습니까? "
[ 최소 500년이다.. 더 될 수도 있고 ..왜냐하면 500년이 지난다 해도 네가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이니까 말이다. ]
" 글쎄요 제 생각으론 500년을 노력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 꿈도 야무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 직접 관천주에게 물어 보든가 방법이 아닌 진실을 원하는 질문에는 큰 수명이 소비되지 않으니까 ]
" 싫습니다. 쓸때 없는 질문에 수명을 허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
[ 그건 그렇고 조만간 범의 아가리에 들어가게 생겼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테냐? ]
" 걱정은 되지만 지금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 위기가 닥친 것도 아니니 지금은 좀 쉬고 싶습니다 "
[ 알아서 하게라 ]
" 아.. 꼭 묻고 싶었던 게 있습니다. 어르신은 관천주의 기령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관천주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
[ 당연히.. 모른다.. 난 관천주가 흡수한 생명력 덕분에 탄생한 기령이라 관천주가 만들어지고 한 참 후에 태어났거든 ]
" 역시.. 왠지 그럴 거 같았습니다. "
이후 관천령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관산도 급격하게 허비한 생명력 덕분인지 온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는 일단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관천주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고 침대로 기어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관산은 누군가 자신을 흔들고 있다 생각했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 조금만 늦게 일어났으면 넌 팔 하나는 반드시 부러졌을거야 "
사위가 완전히 어두워진 깊은 저녁 어둠 속에서 차수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무슨 일입니까? "
" 준비해 곧 출발할 거니까 "
" 지금 말입니까? "
" 그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
그녀는 그렇게 돌아가 버렸고 관산은 불을 켜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은 새벽 1시였다.
잠시 후 정말 차상호와 차종호가 관산의 방에 찾아와 당장 출발할 것을 알려왔다.
그들은 밤새 어디에 다녀 왔는지 지저분한 몰골에 땀 냄새까지 진동하고 있었지만 관산은 감히 묻지 못하고 그들을 따라 나서야 했다.
이후 어둑한 밤길을 달려 관산이 도착한 곳은 의외로 부유전함 선착장이란 곳이었다.
관산 역시 이 세계에 부유전함이란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정박해있는 거대한 비행선들의 외형을 보고 오래전 지구에서 만들어진 기구 비행기를 떠올렸다.
' 에어쉽.. '
확실히 부유전함은 지구의 초창기 비행선인 에어쉽과 상당히 닮아 있었지만 작동 원리는 완전히 다르다.
지구의 에어쉽이 헬륨과 프로펠러로 움직인다면 부유전함은 부유석(浮遊石)이라는 희귀한 광물로 만들어져 공중에 뜰 수가 있었다.
차 씨 남매는 부유전함으로 창천시까지 이동할 속셈인 것 같았다.
관산을 포함한 네 사람이 부유전함 선착장에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늙은 신사 한 명이 차상호에게 다가와 가볍게 인사를 건네왔다.
" 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
" 설마 요 그 많은 금석을 지불하고 제가 왜 안 오겠습니까. 이미 모든 준비가 마무리 됐으니 박사님은 치료에만 전념해주시면 됩니다 "
" 알겠습니다 "
어느새 다섯 명으로 늘어난 일행이 부유전함에 탑승하자 곧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은 모두 일등실 안으로 들어갔다.
부유전함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목적지까지 착실하게 날아간 덕분에 관산은 반나절 만에 창천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사히 창천시에 도착한 그들은 차 씨 가문의 하인들이 몰고 온 차량에 탑승해 한 참을 더 이동하고 나서야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 여기가 이들의 영지로구나 '
산 아래에 자리 하고 있는 가문은 의외로 규모도 작고 볼품없어 보였지만 그들이 지배하는 일대의 영지들은 아주 기름져 보였다.
' 왜 농사를 짖지 않고 있지? '
상족이란 작위는 영지를 동반하기에 각성자가 되어 작위를 받는 순간 그들에 빌붙어 보호를 받으며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차 씨 가문의 인근에는 그런 자들이 보이지 않아 관산은 조금 의아했다.
어째 됐든 그가 상관할 일은 아니여서 관산은 관심을 끊어버리고 차상호를 따라 한 2층 저택에 들어섰다. 내부는
넓은 저택은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수리해야 할 곳들이 방치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꽤 오랜 동안 관리가 안된 티가 확연히 나고 있었다.
관산이 중세시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저택 내부를 두리 번 거리고 있을 때 차상호가 동생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는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 수현은 신평을 방으로 데려가고 종호는 박사님에게 객실을 내어드려라 "
" 네 "
" 박사님 이쪽으로 "
늙은 신사는 차종호가 대려 갔고 관산은 차수현에 붙잡혀 한 작은 골방으로 밀어 넣어졌다.
" 얌전히 있어 함부로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
" 여기까지 왔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
관산은 거칠게 저항했지만 각성자의 완력 앞에서는 의미 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 시끄러워 이제부터 너에 대우는 네가 하는 만큼 달라질 거야 명심해 "
철컥
한평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골방에 밀어 넣은 것도 모자라 밖에서 자물쇠 걸리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관산은 자신의 신세가 정말 처량하게 느껴졌다.
" 기회를 봐 도망쳐볼까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글러버렸구나 "
[ 넌 관천주를 무슨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로구나. 너처럼 관천주를 사용하지 않는 놈도 처음 본다. ]
" 젊은 나이에 요절하기 싫으니까요 "
[ 미련한 놈 그렇게 수명이 아까우면 관천주에게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물어보면 될 거 아니냐 ]
" 생각이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불해야 할 대가를 미리 알 수가 없으니 망설이고 있는 것 뿐입니다. "
" 아! "
그때 불현듯 관산의 머리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바로 관천주를 꺼내 굴리며 질문을 생각했다.
' 나에게 남은 수명은 얼마나 되지? '
질문을 마치자 여지없이 수명이 빠져 나가는 징조가 느껴졌고 관천주의 퍼즐들이 움직이며 글자를 만들어 냈다.
[ 10년 ]
" 뭐? "
생각보다 너무 적은 숫자에 잘 놀라지 않은 관산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 내 수명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럼 내가 25살에 죽게 된다는 말이잖아! "
[ 저런..너 이제 보니 요절한 상이었구나.. ]
도저히 믿기지 않은 관천주의 글자에 관산은 침통함을 느끼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던 관산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관천주를 바닥에 굴리기 시작했다.
실의에 빠져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 모습과는 분명 어울리지 않은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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