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아니야 오늘은 내가 초대했으니 특별히 봐줄게. 아빠는 지금 군대에 있어 단국(團國) 제 7군단의 천인장 신분으로 마수 토벌대를 이끌고 계시지 "
" 그러시군요.. "
" 그게 궁금했어? "
" 차상호님께서 가문을 이끌고 계시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
" 아빠가 살아 계시지만 현재 가주는 오빠가 맞아.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문에 관심을 끊어버린 상태야 하지만 유독 수희 만큼은 끔찍하게 생각하시지.. "
" 그럼 혹시.. "
관산은 차수현의 말에 뭔가 짐작되는 게 있었다.
" 그래.. 아빠는 수희가 저런 상태라는 걸 몰라.. 아빠는 나와 수희가 무사히 각성에 성공해 각성자가 된 줄만 알고 있거든 "
" 역시 그렇군요.. "
"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실.. 너에게 부탁이 있어. "
" ......... "
관산은 왠지 불길한 예감에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수현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 며칠 내로 수희를 이곳에서 피신시킬 거야 그러니 네가 수희를 따라가서 그녀 곁에 머물며 계속 치료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
"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피신을 시키다니요? 누군가에게 습격이라도 받을 예정입니까? "
"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동안 너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것도 사과할 테니 내 부탁 거절하지 말아줘.. "
수현이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부탁을 해오자 관산은 조금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녀의 부탁을 수락할 수는 없어 일단 대답을 뒤로 미뤘다.
"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
" 알았어.. 하지만 2주가 지나기 전에는 반드시 대답을 해줘야 해. 당장 이곳에서 내보내 주지는 못하지만 만약 싫다고 해도 억지로 강제하지 않을 꺼야 그러니 부담같지 말고 최대한 심사숙고해서 말해줘 "
" 알겠습니다 "
관산은 짧게 대답했고 수현에게 인사를 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기다렸다는 듯 차상호와 차종호가 수현에게로 다가왔다.
" 오빠들이 시키는 대로 하긴 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해요? 내가 저러 녀석에게 사과까지 했어요. 그때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는지 알기나 하세요? "
차수현이 벌레 씹은 표정으로 차상호와 차종호를 돌아보며 쏘아붙이자 차상호가 수현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그녀를 달랬다.
" 어쩔 수 없다. 수희를 원래 대로 돌려놓으려면 녀석이 꼭 필요하다 그러니 당분간 녀석의 비위를 맞춰야지 않겠느냐 "
" 정말이에요? "
" 종호가 방법을 찾아왔다. 지금 준비하고 있으니 그때까지 아무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 "
차수현이 놀란 눈으로 차종호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맞아 그러니까 아무 소리 말고 형이 시키는 대로 하고 2주일만 고생하면 수희를 회복시킬 수 있다 그러니 그때까지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추거라. "
"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어요? 그냥 잡아서 묶어 놓으면 될 텐데요? "
" 모르는 소리 이일은 그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그가 수희를 진정으로 치료할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이다. "
차상호가 언성을 높여 말하자 차수현은 오빠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쳇 알았어요. 시키는대로 할게요 "
" 그래 난 종호와 함께 준비를 해야 하니 이곳은 너에게 맡기겠다. "
다음날부터 관산의 태도가 바뀌었다. 항상 차분하고 조용하던 관산이 갑자기 거만하고 오만한 태도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그의 태도 때문에 하인들은 물론이고 제임스조차 당황했지만 차수현이 그를 제지하지 않고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줘란 명령에 다들 관산에게 관심을 끊어 버렸다.
[ 이 방법이 먹힐 거 같으냐? ]
' 먹혀도 좋고 안 먹혀도 상관없습니다. 수희가 살아있는 이상 차수현은 절대 절 죽이지 못할 테니까요.. 그녀의 오빠들이 아무도 없는 지금 무슨 꿍꿍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
관산은 지난밤 수현이 보여준 태도와 차상호에게서 봤던 눈빛이 신경 쓰여 한숨도 자지 못했다.
' 그리고 더 이상 흡명마공을 찾는 일을 미룰 수도 없게 되었고 말입니다. '
[ 뭐 알아서 하거라.. ]
그날부터 관산은 저택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그동안도 비교적 운신이 자유롭긴 했지만 차상호의 눈치가 보여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었는데 차상호와 차종호가 없는 이때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오늘도 관산은 저택을 이잡듯 뒤지고 다녔고 마침 1층 대회의실 벽에 작은 환풍기 하나를 발견했다.
관산은 환풍기가 달린 위치가 수상해 그것을 떼어냈고 환풍기가 작은 통로로 길게 이어진 걸 보고 작은 몸을 그 속으로 밀어 넣었다.
' 조금 작긴하지만 충분하겠어 '
간신히 몸을 우겨 넣은 관산이 막 환풍기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려 할 때 누군가 갑자기 그의 발을 잡아 끌기 시작했다.
" 이 이 녀석아 거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가는 거야? "
그는 바로 하인들을 관리하는 집사 상국이었다.
" 여기가 어딘데요? "
" 어디긴 어디야 이곳은 비밀 창.... 아니 그런 건 알 거 없고 거긴 들어가면 안 돼! "
" 아 비밀 창고의 환풍기구나 "
" 험.. 이제 알았으니 뒤로 물러나거라 거길 허락 없이 들어갔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
상국은 극구 말렸지만 관산도 막무가내였다.
" 구경만 하고 나올게요. 수현아가씨도 뭐라 하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도 제가 어딜 가든 상관하지 말라는 가주님의 명령 들으셨잖아요..제가 책임질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긴.."
" 정 걱정되면 수현 아가씨한테 가서 물어보고 오세요. 전 아저씨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
" 좋다. 내 가서 물어보고 올 테니까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
" 아 글쎄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다녀오세요. 틀림없이 아가씨도 허락하실 거예요 "
상국은 관산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수현에게 물어보기 위해 달려갔고 관산은 그 틈에 환풍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정말 30평 정도 크기의 비밀창고가 나왔다. 하지만 그곳은 기대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보물이라고 모셔 놓은 것이겠지만 관산의 눈에는 전부 쓰레기들로 밖에 안 보였다.
용도조차 알 수 없는 기계부품들에 망가지고 부서진 TV 냉장고 세탁기 그리고 자동차까지 고물들 천지였다.
" 하아 완전히 쓰레기장이 따로 없구나 "
관산은 한숨부터 튀어나왔지만 흡명마공이 있을 곳은 이제 여기 밖에 남아 있질 않아 그는 마음을 다잡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나 수색을 지속했을까 구석구석 살피던 관산의 눈에 수많은 책들을 모아 놓은 곳이 눈에 띄었다. 희색을 들어낸 관산은 그곳으로 달려갔고 즉시 책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책들의 종류는 참으로 다채로웠다. 의학서적 누군가의 논문서적 학술서적에 만화책 소설책 거기에 외설 잡지까지 수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관산은 그 속에서 이질적인 형태의 오래된 서책 세 권을 찾아냈다.
" 찾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다른 것들도 같이 있었구나. "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체 급히 비급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가 찾은 서책에는 [ 흡명마공 ] 과 [ 모산파 12부적술(模山派 什二符籍術) ] 그리고 [ 신체개조대력조향술 (身體改造大力操向術) ]이라고 적혀있었다.
[ 모산파 12부적술까지는 알겠는데 신체개조대력조향술이란건 나도 처음 들어본다]
" 내용을 살펴보면 뭔지 알게 되겠죠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습니다. "
관산은 이런 책이 더 있을까 싶어 찾아보고 싶었지만 수현이 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했기 욕심을 버리고 다시 환풍기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나 관산의 범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환풍기 앞에서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 수현과 마주치고 말았던 것이다.
" 너 이 자식 이게 무슨 짓이야? 아무리 오빠가 행동에 자유를 줬다지만 가문의 금지구역까지 네 맘대로 다닐 권한을 준 건 아니야! "
수현은 그가 금지구역에 들어갔다는 것보다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모습에 더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 가주께서 어디든 다녀도 좋다고 하셔서 전 그런 제한이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죄송합니다 "
" 뭐?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
관산의 불만 가득한 태도에 수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어딘가 하나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수현은 필사적으로 화를 참고 있었다.
" 아무리 네가 우리 가문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더라도 이런 무례를 참는 건 이번 한번 뿐이야. 다음에도 이러면 그때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니 날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말아 줘 "
"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서재에 볼 책이 없어 안에서 이 책을 가지고 나왔는데 돌려 드릴까요? "
관산은 들고 있던 책의 먼지를 거칠게 털어내며 보란 듯이 수현에게 내밀며 말했다.
" 됐어!. 그까짓 책 얼마든지 줄 테니 방금 내가 한말을 꼭 지켜줬으면 좋겠어 "
" 알겠습니다. 그럼 전 제방으로 돌아가 책이나 읽겠습니다. "
이후 관산은 들고있던 책을 일부러 거칠게 흔들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 저런 개자식이.."
수현은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지만 오빠들의 당부가 있어 감히 관산에게 손을 쓰지 못하고 괜히 옆에 있던 상국을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퍽 퍽 꽈직
" 악. 아가씨 .. 잘못했습니다. "
" 죽어 죽어! 이개자식아. 죽여버릴꺼야아. "
" 으아악 커..헉 "
수현의 구타는 상국이 숨을 멎을 때까지 계속되었고 끝내 상국의 숨이 끊어지자 그제야 분을 삭이며 구타를 멈췄다. 관산은 멀리서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갔다.
[ 사갈 같은 계집이로구나 ]
' 예 원래 저런 여자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만 유독 상냥하게 대하고 있으니 그 속셈이 심히 의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아마 이들에겐 큰 속셈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은 수희와 연관이 되어 있겠지요 '
[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인간들의 마음은 마족들 보다 어둡다. 난 잘 모르겠으니 네가 알아서 판단 잘하거라 ]
이날 이후 관산은 수희에게 피를 흘려줄 때 외에는 자신의 방에서 단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수현이 몇 번 찾아와 이유를 물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묻는 말에 대답만 할 뿐 방문을 열어주지 않아 지금처럼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다.
" 맘대로 해! 빌어먹을 자식 "
이때 관산은 관천령의 도움을 받아 흡명마공에 입문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 역시 안됩니다. "
[ 이상하다. 이 정도 했으면 분명 기를 느끼고 흡력까지 만들어야 정상인데.. ]
" 뭐가 잘못된 걸까요? "
[ 글쎄다. 나도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구나. 흡명마공은 마공의 특성상 입문하기가 너무 쉬워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무공인데 어째서 너에게만 요지부동이지 .. ]
" 어르신은 무공에 관한 지식이 많으시니 분명히 이유를 알아내실 겁니다..다시 한번 숙고해 주십시오. 시간 없습니다. 어르신 "
[ 알겠다. ]
일주일 동안 바깥출입도 삼가하며 익히고 있는 무공이 눈곱만큼의 진전도 없는 상태라 관산은 극도의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흡명마공을 익히는데 실패한다면 그는 꼼짝없이 3년 혹은 그전에 죽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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