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말아 먹고 이계에 환생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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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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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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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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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DUMMY

대충 볼일을 마무리한 관산은 마지막 일을 처리하기 위해 구역철을 타고 4구역으로 향했다.


거대한 돔으로 지어진 평안시의 구역철은 경유지가 많아 속도가 많이 느렸지만 금석 한 개의 십분의 일 가치인 10골드란 적은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는 평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관산은 자신의 어풍비행보다 한참이나 느린 구역철의 속도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묵묵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관산은 많은 사람들이 탑승해 있는 전철이라 그러려니 생각하며 무시하려 했지만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시선에 결국 고개를 돌려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이쁘장하게 생긴 소년 한 명이 특이하게 생긴 안경을 쓰고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 소년은 관산과 눈이 마주치자 화늘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관산의 시선이 사라지면 다시 그를 훔쳐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뭐 하는 녀석이지?..'


어디서나 있을법한 일이었지만 내공이 생기면서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진 관산에게는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쳐다봤다고 해서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라 관산은 예민한 오감을 차단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아직 3성에 머물러 있는 흡명마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잠깐 감았다 뜬 거 같은데 구역철은 어느새 2시간을 달려 4구역에 도착해 있었다.


문득 소년이 생각난 관산은 그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봤지만 소년은 이미 사라지고 그곳에는 늙은 노파가 자리해 있었다.


관산은 이내 소년의 얼굴을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구역철에서 내렸다. 그는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고 4구역 12동으로 향했다.


허름한 아파트 단지 10평도 되지 않은 작은 평수에 수백 가구가 들어차 있는 닭장과도 같은 곳을 올려다보던 관산은 승강기조차 없는 곳을 걸어서 올라갔다.


그가 찾은 곳은 13층 첫 번째 집이었다.


아이에게 뭐라고 말 해야 할지 몰라 호흡을 길게 내쉰 관산이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며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 한 명이 살짝 고개를 내밀어왔다.


" 누구..세요..? "


아이는 잔뜩 경계하면서도 관산의 얼굴이 앳 때보여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 무슨 일이 있는 건가? '


일단 관산은 모른체하고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먼저 밝혔다.


" 호문님의 심부름을 온 관산이다. 네가 서현이니? "


관산이 호문이란 이름을 들먹이자 아이는 눈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와락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 네..제가.. 서현인데..아빠가.. 보냈다고요?.. 전..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흐흑 "


차마 호문이 죽었다는 말을 대놓고 할 수가 없어 일단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아이는 관산의 출입을 허락해 주었다.


" 들어오세요. "


집안으로 들어오자 호문이 말했던 데로 아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스럼없이 거실 바닥에 앉은 관산은 아이를 자신의 맞은편에 앉혔다. 그리고 그동안 줄 곳 가슴에 품고 다녔던 비닐봉지를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 오래전 아버지께서 이것을 전해 달라 하셨다.. 일이 .. 바빠 연락을 못하니.. 돌아..오실때까지 밥 잘먹고 있으라는 말도 함께. "


아이는 관산이 건네준 비닐봉지를 열어보았고 그곳에 들어있는 낡은 운동화를 확인하고는 왈칵 눈물을 쏟아내며 운동화를 가슴에 끌어안고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 아빠.. 엉엉 사랑해요.. 아빠.."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린아이의 오열은 관산의 마음을 아려왔다. 저 심정을 누구라도 헤아릴까 싶어 관산은 섣불리 아이를 위로하려 하지 않았고 아이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멍에가 눈물에 씻겨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을 오열하던 아이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자 관산은 가지고 있던 금석을 모조리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 큰 돈은 아니지만 받아둬.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까. "


관천주를 건네줘 목숨을 살려준 값으로 턱 없이 약소한 금액이었지만 당장 그가 할 수 있는일은 이 정도가 전부이다.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아이는 관산이 내민 금석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 고맙습니다. "


" 그래 절대 밥 굶지 말고 꿋꿋하게 이겨 내야해. 내가 자주는 못 오겠지만 간간이 찾아올 테니까. "


" 번거롭게 찾아오지 않으셔도 돼요.. 저 아빠 없이도 잘.. 살..수 있어요......아빠는 언젠나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 .. 그러니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고...자주 말씀하셨거든요 "


아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죽음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유지하던 호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왠지 그 남자라면 그랬을 것도 같았다.


관산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는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내 이름은 관산이다.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관산 오빠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


오래 있어봐야 마음만 더 아플 것 같은 관산은 현관으로 향했고 아이를 스쳐지나던 중 예민한 감각으로 아이의 두 발의 높이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의족? '


" 가만히 있어봐 "


허리를 숙여 아이의 바지를 올려보니 정말 오른발이 의족으로 되어 있었다. 그제야 관산은 호문이 자신을 떠나보내며 했던 말의 진짜 뜻을 알 것 같았다.


" 이런..."


[ 뭐든 가져가도 좋으니 잘 부탁한다. ]


그 당시 호문이 했던 말이었다. 그는 낡은 운동화를 부탁한 게 아니라 자신의 딸을 그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 그렇게 안 봤는데 너구리같은 아저씨네... "


" 2년 전에 기형수에게 .. "


아이는 운동화를 품에 안은 채 잔뜩 주눅 든 모습으로 변명 같은 말을 해왔지만 관산은 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현관을 나섰다.


" 괜찮다. 네 잘못 아니니까 . 다음에 보자 "


그렇게 호문의 집을 나선 관산은 바로 돌아가지 않고 아파트 아래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 기다리다 보면 무슨 일인지 알게 되겠지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늦은 저녁이 되었다. 투명한 돔 천장 너머로 붉은 달이 차오르길 얼마 후 저녁 10시쯤 되었을 때 아파트 현관 앞으로 허름한 차량 한 대가 다가왔다.


그 속에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두 명이 내렸는데 한 명이 권총을 들고서 주변을 경계하자 빡빡 머리의 또 다른 남자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0분 후 빡빡머리 남자는 이불에 쌓인 뭔가를 들고 내려오더니 황급히 그것을 차량에 태우고는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차량이 출발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관산이 어풍비행을 시전해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차량은 낡아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시속 80km 속도로 4구역을 벗어나 5구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도 계속 달려 6구역의 외곽 어느 허름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체 따라오던 관산은 가볍게 발을 굴려 3미터 높이의 창고 지붕에 올라선 후에 부서진 지붕의 틈으로 창고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험악하게 생긴 남자들이 각각 어린아이들을 한 명씩 데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총 다섯이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대장으로 보이는 40대 남자가 막 들어온 차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납치되어 온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들이 모두 여자아이들이란 사실이다.


" 조금 늦었군 "


무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차량에 다가가자 허름한 차에서 젊은 남자 두 명이 허겁지겁 이불에 쌓인 뭔가를 가지고 내렸다.


" 죄송합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조금 늦었습니다. "


" 괜찮다. 그것보다 주인이 있는 물건은 아니겠지? "


" 예. 저희가 몇 개월을 지켜봤지만 아이를 찾아오는 어른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


" 좋아. 물건을 보여라. "


남자의 명령에 빡빡머리 청년이 이불을 풀었고 그 속에서 겁먹은 어린 서현의 모습이 드러났다. 중년 남자는 서현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다 오른발을 보고 나서 인상을 찡그렸다.


" 네놈들 물건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구나. "


중년 남자가 서현이에게 다가가 오른발을 걷어 올리자 숨겨진 의족이 드러났다. 그걸 본 청년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 죄. 죄송합니다. 아이가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아. 다리 상태를 미쳐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


"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잘잘못은 차후에 다시 이야기할 테니 아이를 데리고 자리로 이동하라 "


" 예. "


중년 남자의 명령을 들은 빡빡머리 청년은 감격한 표정을 드러내며 서현이를 데리고 미리 도착해 있던 사람들 옆으로 가서 시립했다.


" 다들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라 "


잠시 후 중년인이 창고를 나가더니 웬 노인과 젊은 남자 한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노인은 신분이 높은지 중년인 조차 감히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창고에 들어온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두 명의 아이를 지목했다.


여섯 아이 중 유일하게 황금색의 머리를 하고 있는 아이와 서현이었다.


" 이 두 아이로 하겠다. "


" 나머지 아이들은.. 그곳으로 보낼까요? "


" 아니. 그러기에는 요즘 아이들이 너무 귀하다. 원하는 자들이 많으니 이참에 거래처를 놈 늘려야겠다. 하나하나 가격을 매겨 다시 보고해라. "


"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저 아이는 다리가.."


" 알고 있다. 신경 쓰지 말거라 "


냉막한 표정의 노인이 돌아보자 중년 남자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노인의 눈길을 피했다. 그는 노인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 분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


용무를 마친 노인이 막 창고를 빠져 나가려 던 도중 고개를 들어 지붕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정확하게 관산의 위치를 파악했다..


" 그만 내려오시게. "


' 들켰구나. 역시 각성자였어 '


관산은 흠칫 놀랐지만 의외로 순순히 모습을 들어냈고 사뿐히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 순간 노인의 눈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제야 모든 상황을 관산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중년 남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버렸지만 노인은 한결같이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 생각보다는 어리군..그래 너는 왜 이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냐? "


노인의 말에 관산이 서현이를 가리키자. 서현이를 데리고 서 있던 빡빡머리 청년의

얼굴이 퍼렇게 질려 버렸다.


" 저 아이 "


" 이런 주인이 있는 물건이 껴 있었구먼. 좋다. 데려가라 우리는 주인이 있는 물건은 취급하지 않으니까 "


의외로 순순히 서현이를 내어줄 듯한 태도를 보이는 노인을 향해 관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저 아이들 전부. "


그러자 노인이 처음으로 뒷짐을 풀고서 관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어린놈이 무서운 게 없는 모양이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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