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말아 먹고 이계에 환생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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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2.27 18:07
최근연재일 :
2023.03.2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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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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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DUMMY

아영은 촛불을 들고 공훈비가 있는 위석대로 향했다. 정법실에서 위석대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오랜만에 칙칙한 정법실(定法室)을 나서게 되자 그런 것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앞으로 10년을 더 정법실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갑갑해 하면 안 되는데 큰일이네 "


마천성(魔天星)과 벌이고 있는 전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자원한 근무지지만 정법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료하고 재미없는 곳이었다.


" 이래서 다들 안 가려고 했던 거구나 "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 와서 근무지를 바꿀 수도 없어 아영은 이렇게 틈 만나면 정법실을 나와 싸돌아다녔다.


지금도 그렇다. 정법실에서 위석대까지는 고작 1시간 거리지만 아영은 일부러 가장 먼 길을 선택해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이유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상륙장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거함 가루라가 있었고 현재 가루라는 창현 사형이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적은 바로 창현 사형이었다. 백상성(白上星) 제일 종문인 무극종(武極宗)의 제일 미남 창현은 종문의 여제자라면 누구라도 사모하지 않은 여자가 없을 정도로 굉장한 미남에 천하귀재였다.


아영 역시 창현을 사모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창현에게 자신은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과 창현은 그렇고 그런 사이였으니까. 요즘은 창현 사형이 일이 바빠 자주 보진 못하지만 한 달전까지만 해도 둘을 매일 밤 밀회를 즐기는 사이였다.


물론 그런 짓은 종문에서 엄격하게 금하는 금기 중 하나다. 발각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엄청난 형벌이 떨어질 테지만 아영은 창현 사형만 옆에 있다면 그까짓 거 하나도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 오늘은 밤에 만나자고 해야겠어. "


아영은 문득 지난날 밀회가 생각나 얼굴에 춘심을 피워내며 상륙장으로 향했다. 창현사형의 근무지는 거함 가루라의 조타실이었다.


비록 아직 함장은 아니지만 다음대 함장으로 거론될 정도로 전도가 유망해 어느 누구도 창현 사형이 다음대 함장이 되리란 걸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아영은 창현을 놀래켜 주기 위해 최대한 소리를 죽여 조타실에 접근했는데 그녀가 막 조타실의 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창현.. 보고싶었어요.."


" 나도 그랬어 희.."


아영은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고 그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건 바로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 하는 소리들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건 창현 사형이 말한 희가 누군지 그녀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 말도 안 돼 어떻게 사모님과....'


그랬다 희는 바로 장문인의 반려인 상희였던 것이다.


순간 너무 놀라 다리가 풀려버린 아영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고 덕분에 창현은 아영에게 모든 비밀을 들켜 버렸다는 걸 눈치챘다. 그 순간 창현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 아영아 네가 여긴 왜 있는 것이냐 "


" 사형.. 난..난... "


창현의 엄청난 살기에 겁을 먹어버린 아영은 슬금 슬금 뒤로 물러났지만 감히 상대도 되지 않은 경지 차이로 인해 너무 쉽게 손목을 잡혀 버렸다.


" 잘못했어요 사형. 사모님 비밀..로 비밀로 할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


아영은 빌고 또 빌었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의 얼굴은 점점 더 서늘해져만 갔다.


" 미안하다. "


마음의 결정을 내린 창현이 특기인 열화기(熱火氣)를 일으키자 아영은 혼비백산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손목을 타고 넘어온 열기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한순간에 타올라 재로 변하고 말았다.


" 쯧 아까운 노리개를 버리고 말았구나 "


창현이 손에 묻은 재를 털어버리고 돌아서자 상희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 창현 아영은 정법실 관문장로를 모시고 있는 아이인데 이렇게 죽여도 괜찮을까? "


"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된거 난 당분간 종문을 떠나 있을테니 당신이 손을 좀 써줘.. 마침 구실도 있고 하니 여행 삼아 의뢰나 다녀오겠어 "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두르자 아영이 남긴 잿더미에서 불꽃 하나가 떠올라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창현이 손바닥 위에 있는 불꽃에 입김을 불어 넣은 순간 공중에 날아 오른 불꽃이 허공에 웬 이름 하나와 의뢰 내용 그리고 의뢰 보상을 나타냈다.


" 훗 보상이 고작 200 영석이라니.. 하급 제자도 마다할 보상이지만 공개 되지 않은 의뢰가 필요한 지금으로 써는 이만한 게 없겠구나. "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영패를 불꽃에 가져다 댔고 그순간 불꽃이 영패 속으로 훅하고 빨려 들어가 버렸다.


" 얼마나 나가 있을 생각이야? "


" 글쎄 조만간 종문 승급 대회도 있고 하니 그리 오래 나가 있진 않을 생각이야 그러니 희 당신이 아영이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해주면 좋겠어. "


"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니 너무 문란하게 놀다 오진 마 "


" 후후 당연하지 당신이 있는데 내가 한눈을 왜 팔겠어. "


" 흥 순 바람둥이 같으니 "


창현이 조타실을 걸어 잠그자 희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들어내며 창현에게 안겨왔다.


*****


후우


관산이 큰 숨을 토해 내자 그의 입에서 작은 연기 하나가 빠져나갔다. 드디어 노인의 모든 생명력을 빨아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분명 노인의 모든 생명력은 몸속으로 빨아들였는데 손바닥 위에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구슬 하나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 흡명 마공을 시전하면 이런 게 만들어진다는 소리는 없었는데 "


검은색의 동전만한 구슬은 무색 무취에 도무지 정체를 파악할 수 없어 관산은 일단 주머니에 집어넣고 차후에 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는 즉시 관천주를 꺼내 바닥에 굴렸다.


" 현재 내 수명은 얼마나 남았어? "


[ 5년 ]


" 고작? "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적었다.


" 쩨쩨하군 확실히 흡명마공의 숙련도가 낮아서 모든 생명력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어. "


당연히 손실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했는데 아직은 생각했던 것보다 효율이 많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게 어딘가. 고작 6개월 시한부 인생에서 5년이나 더 살수 있게 됐으니 이건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 다를 바 없었다.


조금 걱정이 되는 건 흡명마공이 비인비전(非人祕傳)이라는 것이다. 바로 인간이 걸어서는 안되는 길 말이다.


관천령도 말하지 않았던가 후유증이 엄청난 무공이라고. 어째 됐건 충분한 수명을 확보한 뒤에서는 최대한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 이곳은 나쁜 놈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그런 놈들만 노려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보는 수밖에 당분간은 이걸로 위안으로 삼아 보자. "


미라처럼 말라버린 노인의 시체를 땅에 묻어버린 관산은 창고로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을 구해야 했고 나쁜놈들도 처리해야했다.


창고를 나온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아직 아이과 아이를 납치했던 놈들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남아있지 않더라도 끝까지 쫓아가 죽여버릴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창고로 돌아온 관산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의외로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헙.. 어.. 어떻게 "


그가 들어올 때 다들 화들짝 놀라는 걸 보니 아마도 노인이 이길 거라 확신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거 안타까워 어쩌나..


관산은 흘러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일단 아이들을 모두 밖으로 내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 내 손가락이 모두 접힐 때까지 아이들을 안전하게 밖으로 내 보낸다. 도망가거나 허튼짓 하는 놈 있으면 그놈부터 죽인다. "


더 이상의 부연 설명 없이 관산이 오른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 하나를 접기 시작하자 창고에 있던 남자들이 흠칫 놀랐다.


아직은 상황 파악이 잘되지 않았는지 딱히 움직이는 놈들이 없자 관산은 다시 손가락 하나를 접어 보였다.


그러자 눈치 빠른 한 놈이 자신이 데리고 있던 아이를 끌고 나와 쭈뼛쭈뼛 창고 문으로 걸어가 아이를 문밖으로 밀어 내보냈다.


" 이름이 뭐냐? "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놈은 관산의 어린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큰 어른을 대하듯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 팔용입니다. 상족 "


당연히 이런 모습이 그의 동료들에게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나머지 녀석들이 노란 머리를 죽일 듯 노려봤지만 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로지 관산만 쳐다보고 있었다.


" 이름 꼬락서니 하고는. 일단 넌 저쪽으로 가 있어라 "


" 예 상족 "


관산은 다시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손가락이 접힐 때까지 더 이상 눈치 빠른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 더러운 일을 하는 놈일수록 눈치가 빨라야 하는 법인데 너희들은 애초에 오래 살 맘이 없거나 아니면 내 생각보다 더 나쁜 놈들일지 모르겠다. "


이들에게 더 이상 인간적인 감정을 바라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관산은 미련 없이 허리에 차고 있던 목검을 뽑아 들었다.


" 너희들의 남은 목숨은 좋은데 쓰도록 하지. "


최대한 빠르게 끝낼 생각이었다. 자칫 아이들이 다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일검에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목검이 혈왕장 보다 좋았다.


' 총알을 손바닥으로 막으면 좀 아플지도 모르니까 검기로 잘라 버린다. '


관산이 목검에 영기내공을 불어 넣자 놈들도 감추고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상대는 다섯. 의외로 노인이 데려온 젊은 남자는 상황을 지켜볼 뿐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관산의 첫 표적은 서현이를 데리고 있는 녀석부터였다. 이들의 대장격인 중년 남자가 가장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이라는 인질이 없어 맨 나중에 처리 하기로 마음먹었다.


" 팔용. 아이가 다치지 않게 잘 보호해라 "


" 예? "


팔용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그 순간 관산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혈운보를 밟았다.


" 엇! "


보법 같은 상승 절학이 없는 세계. 갑자기 관산의 모습에 감족같이 사라져 버리자 목표를 잃은 놈들은 까무러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사. 사라졌다!! "


처음 계획대로 서현이를 데리고 있던 빡빡머리 등 뒤로 유령처럼 나타난 관산은 번개처럼 목검을 휘둘러 놈의 양팔을 잘라 버리고 서현이의 수혈을 짚어 잠재운 후에 팔용이에게 던졌다.


" 받아라. 방금 내가 한 말 명심해라. 만약 한명의 아이라도 다치는 날에는 그 순간 네 목숨도 사라지는 거다 "


그제야 관산의 말을 이해한 팔용은 필사적으로 날아오는 서현이를 자신의 품속으로 집어 넣었다.


" 으아악 "


그리고 터져 나오는 빡빡머리의 비명소리. 모든 총구가 관산을 향해 불을 뿜었지만 이미 관산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부터 수라장(修羅場)이 펼쳐졌다.


유령과 싸우는 느낌이 이럴까. 순식간에 모든 조직원의 팔을 잘라버리고 아이들을 잠재워 빼내는 관산의 신묘한 기술에 중년 남자는 도무지 믿기지 않아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 도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단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모든 조직원이 쓰러지고 자신의 목 위로 피 묻은 목검이 올라왔다. 그는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어린 관산은 자신이 두려워한 노인보다 몇 배는 더 무서운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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