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6화 심유경의 계략1

심유경이 성문을 통과하자 문을 지키던 사쿠에몬과 일본군들이 심유경의 목에 칼을 겨누며 위협했다.
“그를 협박해서 그가 어찌 나오는지 반응을 보자.”
아고스티뉴는 병사들에게 초병들에게 심유경을 위협하게 명을 내렸지만, 심유경은 끄떡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예상한 반응 중 하나였다.
“워~, 워~! 이거 위험하다고.”
심유경은 검날을 손으로 집어 밀어내며 능글맞게 웃었다.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사쿠에몬은 인상을 찡그렸다.
“주군에게 데려가자.”
사쿠에몬은 심유경을 아고스티뉴에게 데려갔다.
심유경은 아고스티뉴에게 안내되면서 일본군의 무장과 장비를 확인했다.
그는 성 곳곳에 매달린 십자가 깃발을 봤다.
심유경은 웃었다.
‘키리시탄이구나. 최선봉에 키리시탄이 있구나.’
중국에서 일본어는 천시당하는 언어였다.
귀족과 황족들은 일본어를 쓰지 않았고, 주로 상업을 하는 사람들이 교역하면서 일본어를 썼다.
심유경은 ‘저자거리의 무뢰한’이라 불렸다고 하니 아마도 한미한 집안 출신인 것 같다.
당시 중국과 일본의 무역은 중국의 상인이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상업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심유경의 아버지는 상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 심유경도 일본에 갈 기회가 많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병부상서 석성은 고려로 원병을 보낼 결정을 하면서 외교적 해결책도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일본의 실정을 잘 아는 자를 보내려 했었고, 그때 심유경이 자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심유경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저는 일본어에 능할 뿐, 아니라 일본과 교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관백 히데요시와 친분도 쌓았었습니다. 제게 일임해 주신다면 신명을 다해 소임을 완수하겠습니다.”
중국 조정에는 일본을 잘 아는 자가 별로 없었다.
석성으로서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제독 이여송과 마귀가 보바이의 난을 진압하려 출병한 상태라, 고려로 큰 병력을 움직이기는 힘들었다.
강화 협상으로 시간을 끌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석성은 이에 심유경을 유격 장군으로 임명하고 일본과의 외교협상을 맡겼다.
“그대를 유격 장군으로 임명하고 강화 교섭을 맡기겠다. 이여송과 마귀가 난을 진압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그리고 확약은 하지 말고, 나에게 협상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일본군의 서진을 막으라는 것이지요? 저들을 도발해 협상을 파토내면 안 되겠지요. 저들에게도 솔깃한 미끼를 던져줘야죠. 저들이 끌리는 제안을 한 후, 황제 폐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조정에 보고하러 간다고 하며 그 기간 동안 휴전하자고 제의한다면, 마다하겠습니까? 우리는 시간을 벌고, 이여송, 마귀 제독은 난을 진압하고 그 병력을 고려로 돌릴 수 있겠지요.”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라.”
아고스티뉴는 군사를 심유경 앞에 시위하듯이 펼쳐놓고 야카타와 함께 심유경을 맞았다.
“왜 중국이 고려와 우리 일본 사이의 일에 개입해 병력을 보냈는가? 우리에게 대패했으니 우리 일본군이 세계 최강이라는 것은 이제 알았겠지? 원군을 보낼 땐 언제고 이제는 대화를 하자니 대체 무슨 속셈인가? 시간이라도 끌어보자는 수작인가?”
아고스티뉴는 최대한 심유경을 압박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허허허. 우습군. 우스워.”
심유경은 아고스티뉴의 압박에 하찮다는 듯 조소를 보였다.
“뭣이?”
아고스티뉴는 발끈했다.
“기껏 4천 병력을 이겨놓고 그렇게 허세를 보이나? 게다가 요동 부총병은 우리 중국이 자랑하는 장수들의 반열에 끼지도 못하는 자이다. 이여송이나 마귀 같은 제독을 이겼다면 모르지만, 기껏 조승훈 따위를 이겨놓고 으스대는 꼴이란. 쯔쯧.”
“뭐? 이 자가?”
사쿠에몬이 분노했다. 야카타가 사쿠에몬을 제지했다.
심유경은 정색하며 말했다.
“나는 황제 폐하의 밀명을 받고 온 사람이다. 내가 너희 야만족들의 위세에 허술하게 넘어갈 사람으로 봤다면 오산이다. 우리나라는 백만의 대군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군대를 모두 일으켜 고려 땅을 침략한 너희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 굳이 백만이 아니라도 요동과 산동, 이 인근의 병력만 긁어모아도 20만이 된다. 폐하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너희들은 지옥의 공포를 맛보게 될 것이야. 철부지들이 세상 물정도 모르고.”
아고스티뉴와 제장들은 분을 못 이겨 부르르 떨었다.
“그렇다면, 왜 황제는 대병을 동원하지 않는 건가?”
“싸우면 서로가 피해가 크니까. 말로서 너희들을 타이르라고 나를 보낸 것이다.”
아고스티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너희의 황제는 뭐라고 하던가?”
“우선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야겠군. 고려는 예의를 숭상하는 나라로 일본에 아무런 잘못을 한 것이 없다. 대체 너희는 무슨 이유로 군사를 일으켜 고려를 공격한 것인가?”
아고스티뉴는 전쟁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다.
‘중국을 쳐서 세계를 통일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애초에 협상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 어떻게 말한다?’
그는 고민했다.
심유경은 계속해서 말했다.
“고려와 중국은 순치(脣齒)와 같은 나라이다. 너희들이 어찌하여 명분도 없이 군사를 출동시켜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죄 없는 백성들을 살육하는가? 너희들이 만약 철병하지 않으면 비단 산동과 요동의 병사들만 다 출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병사들을 다 징발하여 너희들을 남김없이 모두 섬멸하여 너희들의 씨를 말려 버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할 것이다.”
아고스티뉴는 심유경의 달변에 놀랐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좋다. 황제가 우리와 대화를 하겠다니 차분히 우리의 요구 사항을 말하겠다.”
“요구 사항을 말해보라.”
아고스티뉴는 뜸을 들이다 말했다.
“우리 일본은 최근에 권력이 바뀌었다. 지금의 관백 전하께서 일본을 통일했다.”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대의 관백과 나는 친분이 있는 사이이기도 하고.”
아고스티뉴는 심유경이 히데요시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신께서 우리 관백 전하를 안다고?”
그들의 대화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과거 장사를 하느라 나가사키를 자주 오갔었지. 거기서 그대들의 관백과 친분을 쌓았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일본의 권력이 관백 전하께 돌아갔으니 황제께서 관백 전하를 일본왕으로 책봉하는 것이다.”
심유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그것인가? 내 그 정도는 쉽게 이뤄줄 수 있을 것 같네. 내가 바로 돌아가서 황제 폐하께 말씀드리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더?”
“우리 일본이 중국에 조공할 수 있게 허락해주는 것이다. 우리 일본은 중국과 조공을 하고 싶어 고려에 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들이 길을 막고 열어주지 않아 이렇게 군사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어디서 약을 팔아. 히데요시가 3국을 평정해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피력해 왔는데. 히데요시가 책봉과 통공(通貢) 정도로 물러설 리 없다. 이를 바로 전했다가 나중에 틀어진다면, 내 입장이 곤란하지. 본색을 드러내라고.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지. 협상이 너무 빨리 성사되면 재미없지.’
아고스티뉴 또한 히데요시의 허락 없이 강화 협상에 응한 것이었다.
협상이 순조롭게 타결된다면 그로서는 오히려 곤란한 상황인 것이었다.
‘관백이 황제의 책봉 따위를 바라고 군사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이 정도 조건으로 협상이 순조롭게 타결된다면, 내 목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협상을 좀더 장기적으로 끌고 가 조율해 종전에 합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 좋다. 그렇다면, 일단 너희들이 군사를 먼저 물려야 할 것이다. 평양에서 철군하고, 평안도 밑으로 내려가라.”
아고스티뉴와 제장은 의아했다.
“무슨 말인가? 무슨 이유로 우리가 평양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인가?”
심유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희들은 모르는구나. 이곳은 바로 중국 조정의 땅이니 그대들은 물러나 주둔하면서 중국 조정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고스티뉴는 고려의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평양을 가리켰다.
“여길 보라. 여기는 분명히 고려 지역이다.”
그러나 심유경은 궤변을 늘어놨다.
“그래, 고려의 지역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곳 평안도는 평상시 중국 사신들의 조서를 영접하는 까닭에 많은 궁실들이 있다. 비록 여기가 고려 지역이라 할지라도 중국과 가까운 곳이니 너희들은 이곳에 머물면 안 된다. 너희들이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한다면, 평안도에서 물러나 기다려라.”
아고스티뉴는 심유경의 논리에 당황했다.
뭐? 평안도가 중국의 땅이라.
그러나 거기서 아고스티뉴도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평안도가 중국의 땅이라면, 평안도를 제외한 고려 땅은 일본이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빌미로 고려를 나눠가지는 협상을 체결한다면, 병사들도 지치고 보급도 어려운 지금 처지에 관백도 허락할지 모른다.
고려를 분할 점령한 후, 힘을 키워 중국을 치면 되는 것이다.
“알겠다. 하지만, 군사를 물리는 것은 내 권한 밖의 일이다. 관백 전하의 뜻 없이는 군사를 물릴 수 없다. 내가 관백 전하께 사람을 보내 동의를 구한 후, 병력을 철수하도록 하겠다.”
심유경 또한 바라던 반응이었다.
“좋다, 바라던 바다. 나 또한 황제 폐하께 고하여 폐하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심유경의 입장에서는 이여송과 마귀가 난을 진압하고 고려로 들어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그 전에 일본군이 공격해온다면 곤란한 상황이었다.
“내가 황제 폐하께 보고하고 허락을 구한 후 돌아올 때까지, 그대가 관백에게 보고하고 돌아올 때까지 얼마의 기한이면 되겠는가?”
아고스티뉴는 야카타와 상의했다.
“지금의 뱃길로라면 50일이면 된다.”
심유경도 동의했다.
“좋다. 그러면 나도 폐하께 고하고 50일 뒤 돌아올 테니, 그때 다시 협상하도록 하자.”
“좋다. 그렇게 하겠다.”
“단, 그때까지 서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휴전하자는 것이다.”
야카타와 사쿠에몬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시간을 끌자는 것인가?’
그들은 아고스티뉴를 바라봤다.
아고스티뉴는 눈을 감고 숙고했다.
“좋다. 휴전하겠다.”
심유경은 웃으며 말했다.
“대화가 되는군. 그러면 오늘부터 휴전이 될 것이다. 일본군은 평양 서북쪽 10리 밖을 나오지 못하고, 고려의 군사도 그 10리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도록 금표를 세운다. 50일 뒤 다시 이곳에서 협상을 재개하도록 한다.”
‘어차피 우리 군도 지쳤다. 휴식이 필요하다.’
아고스티뉴는 그렇게 생각하고 휴전을 선언했다.
두 진영은 훨씬 화기애애해진 분위기로 바뀌었고, 아고스티뉴는 심유경을 성문까지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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