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화 행주 대첩 3

히로이에의 5군이 화공을 준비하고 있는데, 고려군이 길어온 강물을 목책에 붓고 있었다.
“그냥 둘 수 없다. 빨리 궁수들은 나아가 불화살을 날려 목책을 불태워라.”
궁수들이 불화살을 장전해 언덕으로 올라갔고, 방패병과 판자를 든 병사들이 그들을 호위해 위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돌, 포탄 등을 막아냈다.
궁수들이 목책을 겨냥해 불화살을 날렸지만, 강물로 젖은 나무는 불이 붙지 않았다.
히로이에는 화공이 먹히지 않음을 확인했다.
곳곳이 붙은 불은 고려군이 강물로 바로 진화하고 있었다.
“할 수 없구나. 전군, 모두 돌격하라.”
일본군이 다시 목책을 향해 돌격해오자 목책의 화재를 진압하던 고려군은 다시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각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라.”
무기고의 병사가 달려와 보고했다.
“큰일입니다. 폭약과 화살이 떨어져 갑니다.”
권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화살을 아껴라. 그리고, 거인들을 노려라.”
조경은 목책까지 내려가서 수비병들과 함께 싸웠다.
거인들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목책 위로 올려보내며 지휘하고 있었다.
조경은 강궁으로 거인들을 하나둘 저격했다.
히로이에의 가신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지휘관들을 잃은 병사들은 기세를 잃고 주춤했다.
“이놈이.”
히로이에는 목책에서 화살을 날리는 조경을 확인했다.
그는 직접 언덕을 올라가며 병사들을 지휘했다.
“물러서는 놈은 베겠다. 다 이긴 싸움이다. 빨리 돌격하란 말이야.”
그는 조경이 날리는 화살을 쳐내며 독전했다.
탕!
격발음이 들리며 산탄이 히로이에에게 날아왔다.
그의 몸이 붕 뜨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망할. 이런 망할.”
히로이에가 부상을 입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가신들은 그를 이송해 퇴각했다.
“안 된다. 이놈들아. 돌격하란 말이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상처가 벌어집니다.”
가신들은 그의 상처를 지혈하며 그를 후송했고, 그의 5군도 물러났다.
히데모토의 6군과 다카카게의 7군만 남았다.
“히데모토, 너와 나만 남았구나. 두 번의 전투로 승부를 지어야 한다. 적은 지휘관들을 저격하고 있으니 준비하고 가라. 적에게 휴식을 주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교대로 싸우는 일본군과 달리 고려군은 지쳐 있었다.
“큰일났습니다. 이제 화살이 떨어졌습니다.”
암담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제 몸으로라도 막아야지.”
권율은 목책에는 승장 처영과 승병들을 배치하고, 자신은 목책 방어선이 무너질 경우를 대비해 토성에서 두 번째 방어선을 구축했다.
처영은 기지를 발휘해 승병들에게 허리에 모래주머니 하나씩을 차게 했다.
처영은 화살통을 봤다.
화살 5대가 전부였다.
처영은 화살을 당기며 언덕 아래를 노려봤다.
일본군이 눈치를 보며 올라오고 있었다.
처영이 쏜 화살을 맞고 한 병사가 쓰러졌다.
일본군은 멈춰 조총을 난사했다.
“엎드려.”
목책에 탄환이 튀고 박혔다.
처영은 남은 화살을 마저 날렸다. 화살은 다 소모되었다.
히데모토는 가신들의 방패로 보호받으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는 고려군의 뛰어난 궁술을 경계했다.
그러나 목책에서 더는 화살이 날아오지 않았다.
“저놈들이 무슨 꿍꿍이지?”
“주군, 아무래도 저들의 화살이 다 떨어진 듯 합니다. 이제는 안심하고 돌격해도 될 듯합니다.”
“그건 아직 확인해 봐야 알 일이다. 오히려 우리를 더 깊이 유인해 공격하려 하는 것인지도 몰라. 너희들은 철저히 나를 지켜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주군.”
“공격하면서 저들을 떠보도록 해라.”
일본군은 조총을 난사하며 나아갔지만, 고려군은 반응이 없었다.
“정말? 정말 화살이 떨어진 것인가?”
그때, 화살이 한 대 날아와 일본군 병사가 맞고 쓰러졌다.
히데모토는 흠칫 놀랐으나 이내 다시 침착해졌다.
“더 앞으로 나아가라.”
몇 대의 화살이 더 날아왔고, 더는 화살이 날아오지 않았다.
히데모토는 안도하며 웃었다.
“정말, 놈들의 화살이 다 떨어졌다. 이제 승리는 내 것이다.”
히데모토는 소리쳤다.
“이제 놈들에게 화살은 남아 있지 않다. 안심해라. 모두 검을 뽑아 들고 돌격하라. 승리는 우리 모리 군의 것이다.”
히데모토의 말에 병사들은 안도하고 기세가 올라 함성을 지르며 언덕 위를 달렸다.
처영은 돌격해오는 일본군을 바라봤다.
승병들도 창을 들고 검을 뽑았다.
처영도 검을 뽑았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모래주머니 속의 모래를 움켜쥐었다.
“이얏!”
드디어 일본군이 목책에 도달했고, 목책을 사이에 두고 일본군과 승병이 대치했다.
“이때닷!”
처영과 승병들은 움켜쥔 손의 모래를 일본군의 눈으로 뿌렸다.
“이놈들이.”
모래가 눈에 들어간 일본군은 눈을 뜨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승병들은 창과 검으로 일본군을 찔렀다.
선두의 일본군이 쓰러졌다.
백병전에 자신이 있던 일본군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했다.
“비겁한 놈들.”
승병들은 다시 모래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모래를 움켜쥐고 있었다.
일본군은 위축이 되었다.
그러나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병사들 때문에 앞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목책 사이로 검과 창이 뼈져 나와 일본군을 찌르고 있었다.
“밀지 마. 밀지 마.”
잠시 혼란이 있었다.
뒤늦게 일본군도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응전했다.
목책을 사이에 두고 양군은 대치하며 서로 검과 창을 찔러 넣으며 전투를 계속했다.
일본군과 승병들 사이에 피해자가 속출했다.
조경이 승병들을 구원하기 위해 수백 명의 병력을 이끌고 목책으로 내려왔다.
그는 목책을 넘어 뒤에서 일본군을 공격했다.
백성들도 돌을 준비해 투석전을 벌이며 합세했고, 히데모토는 당하지 못하고 후퇴 명령을 내렸다.
일본군이 물러나자 수비병들과 백성들은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권율은 엷은 미소를 띄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무기는 동이 났고, 병사들과 백성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일본군은 마지막 7군인 다카카게의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저들을 막을 수 있을까?
“마지막이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막지 못하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저들의 무기가 모두 동이 났다. 적이 쓸 수 있는 술수는 모두 썼다. 더는 할 수 있는 건 없다.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성안의 모든 병사와 백성들은 죽여라. 목책을 해체하고 성을 파괴한다. 우리 배후에 이런 요새를 남겨둬서는 안 된다.”
다카카게의 7군은 의기양양하게 목책으로 올라왔다.
승장 처영과 승병들은 거친 숨을 내쉬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기세등등한 다카카게 군을 보며 동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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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지금 일본군과 우리 근왕군이 싸우고 있습니다.”
첩보를 나간 우태와 동이가 달려와서 보고했다.
“하필, 중국군이 퇴각한 틈에.”
“일본군이 3만 대군으로 우리 근왕군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근왕군 1만 명은 서울 남쪽에 고립돼 있습니다. 우리 군은 통진과 금천, 행주산성에 분산돼 있는데, 일본군이 도원수가 지키는 행주산성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군이 물러나지만 않았으면 일본군이 그 대군을 동원할 수는 없었을 텐데.”
히토미가 걱정하며 말했다.
“머저리 이여송 같으니. 그런 겁쟁이를 어디다 쓰겠어.”
홍철이 비아냥거렸다.
“행주산성이 무너진다면, 금천과 통진의 근왕군도 위험해집니다.”
“우태, 동이야, 너희는 각자 수색병을 이끌고 전황을 수시로 확인해 보고해 줘. 그리고, 우리도 상황을 봐서 움직이려고 하니, 일본군의 배치도 확인해서 보고해 줘.”
“알았어요.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우태와 동이는 수색병을 이끌고 출발했다.
현성과 의병들은 두 사람의 보고에 따라 움직일 채비를 갖추었다.
다카카게는 군의 선두에 서서 지휘하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대장이 선두에 서자 병사들은 용기백배하여 뒤따랐다.
목책이 앞에 다다랐고, 일본군들이 목책으로 쏟아지듯 달려들었다.
처영도 승병들을 독려했지만, 선두에 직접 서서 병사들을 인솔한 다카카게의 판단이 주효했다.
승병들은 목책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지만, 일본군의 기세에 눌려 고전했다.
다카카게는 목책 사이로 장검을 찔러 넣었다.
그는 목책을 지키는 승병들을 쓰러뜨린 그는 목책을 뜯어냈다.
곳곳에서 목책이 뚫렸다.
“자, 가라! 이제 적의 요새는 무너졌다.”
뚫린 목책 사이로 일본군이 쏟아져 들어갔다.
처영과 승병들은 목책 앞뒤에서 협공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당황한 승병들은 뒤로 물러섰다.
처영과 승병들은 토성까지 밀려났다.
다카카게의 병사들은 토성까지 공격했고, 토성의 일부가 무너졌다.
토성에서 지켜보던 권율이 검을 뽑고 호통쳤다.
“마지막 전투다. 모두 총공격하라. 우리 근왕군과 백성들의 운명이 이 1합에 달렸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라.”
권율과 조경이 토성의 문을 열고 관군과 함께 달려 나와 싸웠다.
권율과 조경도 선두에서 백병전을 벌여 병사들의 사기를 돋구웠다.
양보할 수 없는 혈전이 펼쳐졌으나 갈수록 근왕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돌을 주워온 백성들은 토성 위에서 일본군을 향해 토석전을 벌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세는 점점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둥! 둥! 둥!
성 뒤편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산 위에서 싸우던 양군이 병사들은 잠시 북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척의 전함이 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고려군의 전함이었다. 고려 수군의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전함의 선두에서는 병사들이 나와 뿔피리를 길게 불고 있었다.
전함은 화살과 창검 등의 무기를 잔뜩 싣고 있었다.
“와! 원군이다!”
지쳐 있던 근왕군의 기세가 급격히 올라갔다.
힘차게 반격하는 근왕군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다카카게도 크게 당황했다.
이순신의 함대는 일본군에게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순신의 함대가 여기까지 온 건가?”
1군에서 6군까지 모두 패퇴했다.
남은 건 다카카게의 7군뿐이었다.
“이순신의 함대가 왔다면, 배후가 위험하다. 일단 퇴각한다.”
단지 2척의 전함이었지만, 더 많은 이순신의 전함이 있을 거라고 다카카게는 지레짐작했다.
그래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다카케가가 퇴각하는 걸 보고 권율도 추격 명령을 내려 도망하는 일본군을 쫓아 수백 명을 베었다.
3천의 병력으로 3만의 일본군을 대파한 위대한 승리였다.
이여송의 퇴각으로 우세를 잡았던 일본군은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행주산성에서 대패를 당했다.
전쟁에 참여했던 장수들은 큰 비난을 받았다.
그것보다 심각한 것은 큰 손실로 인해 더는 서울을 지킬 여력도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평양까지 후퇴했던 이여송은 뒤이어 대첩의 소식을 전해 듣고, 퇴각한 것을 후회했다.
이여송은 다시 병력을 돌려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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