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무스메] 오라버니vs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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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민트
작품등록일 :
2023.03.0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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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3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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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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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해줘서 기뻤어.'

DUMMY

한 달 전, 당주는 말했다.


'이번에는 눈감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예요.'


이 문장의 맥락은 명백했다. 맥퀸의 문제를 당주가 대신 처리하겠다는 것.

무엇을 처리하겠다는 것인지 자세히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괴로움에 눈을 감고 귀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여전히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알기 싫어도 최소한의 정보는 들어온다.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메지로 가문의 힘. 정해진 결과.'


비록 끝없는 절망의 늪을 허우적대고 있지만, 영광스러운 과거는 분명 그녀의 손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현재의 맥퀸에게 레이스가, 마음이 부서져 버린 탓에 삼은 도피처일 뿐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그녀는 경기장에서 언제나 진심을 다해 달렸으니까.

다른 모든 것을 잃은 지금, 그것은 마지막 남은 삶의 의미였다.


그렇기에 지금 당주의 말을 그저 의례적인 응원으로 흘려 넘길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그 위화감을 또다시 모른 체 할 수가 없었다.


레이스에 가문이 어떻게 영향을 준다는 말인가?



"...그냥 다음 기회를 노릴까요?"


무언가 놓친 것이 있다. 하지만 진실은 단서 없이 그녀의 창의력만으로 도달하기에는 어려운 영역에 있었다.


"맥퀸답지 않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죄송해요... 저는..."


그녀는 눈물을 글썽인다.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하고 끝내 주저앉아버리고 마는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맥퀸이 반드시 이길 겁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맥퀸에게 당주는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레이스란 원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죠. 유력한 우승 후보가 마군에 갇힌다든가 하는 일은 심심찮게 일어나니까요."


분명 마군사는 경기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어째서 이 타이밍에 얘기하는 걸까.

반드시 맥퀸이 이길 것이라고 이야기한 직후에.


섬찟함이 그녀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애써 동요를 숨기고 최대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 실수만 없다면, 맥퀸이 이길 거라는 의미입니다."


어째서인지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불규칙한 식사가 문제였을까. 잠을 설친 것이 문제였을까.


모를 일이다.




-----


당주는 맥퀸이 저질렀던 것과 같은 방식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물리적 폭력은 실행하기에는 간단해도, 후폭풍을 감당하기 곤란한 방법이다.


라이스와 맥퀸의 재대결이 성사된다는 사실은 어차피 며칠 내로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경쟁자가 괴한에게 습격당한다면, 정말로 메지로 가문과 관련 없는 범죄라고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다.


대놓고 대립각을 세운 이상 노골적인 방법은 오히려 쓸 수 없었다.

그녀가 한 일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몇 마디 말을 흘린 것이 전부이다.



타카라즈카 기념에 출전한 18명 중에서, 오랫동안 메지로 가문의 후원을 받아왔던 우마무스메들에게 '강력한 경쟁자를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조언을 했을 뿐이다.


맥퀸을 꺾은 라이스가 당연히 더 강력한 경쟁자고, 승리를 위해 1등을 견제하는 것은 모든 경기에서 이루어진다.

메지로 가문이 가난하지만 재능있는(하지만 G1 우승은 못 하는 정도의) 우마무스메들을 후원해온 것은 오래전부터 해왔던 일이고.



승부조작이라는 말은 당치도 않은 음해다.

그저 모든 경기에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견제와 반전이 타카라즈카에서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은 것에 불과하다.

덤으로 마침 맥퀸은 안쪽 번호를 배정받을 것 같은 행운이 따를 뿐이고.





---------------



며칠 후, 타카라즈카 기념의 출전자 명단이 공개되었다.



[공정한 경기면 당연히 맥퀸이 이긴다ㅅㄱ

[공ㅋㅋㅋ정ㅋㅋㅋ 뭐 얼마 받고 이런 댓글쓰냐?

[부정경기인거 곧 다 밝혀진다. 트레센 이사장도 곧 탄핵당할 거임. 지금 웃어둬라 대깨쌀들아.

[현실부정하는 맥갈 애잔하네. 부정은 적폐인 느그 가문이 했겠지.

[거 눈치 없이 끼어들어서 잔칫집에 재 뿌렸는데 그거만으로 욕먹어도 싼 거 아님?

[아니, 누가 3연패 하지 말라고 칼들고 협박함? 꼬우면 이기시던가.



맥퀸과 라이스, 메지로와 트레센, 당주와 이사장.

세 방면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세기의 대결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편에 따라 상대편에 분노를 퍼붓는다.

이것은 스포츠맨십 충만한 신사적인 결투가 아니라, 감정을 소모하는 추잡한 진흙탕 싸움에 가까웠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메지로 맥퀸과 라이스 샤워의 재대결은,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승부의 향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라이스는 맥퀸에 비해 인기가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끝내 맥퀸의 3연패를 저지해 버린 것과, 이어진 일련의 사태로 인해 이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모두가 그녀를 주목하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 두 사람이 받은 투표수 차이는 6배. 거의 그만큼의 팬 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기의 배율 차이는 2배를 간신히 넘기지 못한 수준이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메지로 가문이 라이스의 꿈을 이루어주는데 한 손 보탰다고 할 수 있으리라.


지지의 동기가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였으니 말이다.




-----


이 무렵에는 이사장도 여유를 약간이나마 되찾았다.

메지로 가문이 제기한 온갖 의혹 중에서 일부는 진실이었고, 그것을 부풀리며 트레센을 흔들었지만, 이사장을 직접 공격할만한 여지는 결국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메지로 언론이 아랫사람 관리를 엉망으로 했다며 책임지라고 비난하면, 친트레센 언론이 어쨌든 본인은 깨끗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물론 보통의 정치인들이라면 이렇게 주장해봐야 꼬리 자르기라고 비웃음당할 뿐이다.

하지만 이사장이 사재를 털어 쓸 정도로 학원의 학생들을 아낀 수많은 일화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학원에 제기된 의혹 중 인정할 것은 겸허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평소에 선행을 베푼다고 해서 반드시 보답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항상 배신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사회가 지금까지 유지되지 못했을 테니까.


현대인들은 냉소적이며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암울한 시대일수록 동시에 사람들은 미담과 영웅의 등장을 바라는 법이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 이사장은 당주와 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이슈라면, 기자들이 빠질 수 없다. 바늘 가는 곳에 실 가는 것만큼 당연한 이치다.

언론 플레이는 메지로 가문의 전문 분야였지만,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없는 고유 영역은 아니다.


"라이스 씨, 이번 타카라즈카 경기에 출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걸핏하면 갑자기 튀어나와 인터뷰를 시도하는 기자들을 매번 피하는 것도 곤란했고,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될 수도 있었기에 이사장은 라이스에게 정식 기자회견을 권했고, 그녀는 받아들였다.


"지난번 봄에 하신 말씀을 사실상의 은퇴 선언으로 받아들인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다시 경기에 나오신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자신의 주장을 은근하게 전달하면서, 확실하게 약속하거나 책임질 여지는 피하는 세련된 정치인의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메지로라면 모를까 라이스에게는 불가능했다.


"트레센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라이스는 못난 아이라 생각해서... 트레이너가 되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고, 있어도... 거절하려 했었는데."


"라이스와 같이 있는 사람은 불행해지니까요."


그러나 애초부터 그녀에게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세심하게 연출된, 화려하게 가꾸어진 정원 같은 아름다움이 라이스의 매력이었던 적은 없었으므로.


"그런데 그런 라이스에게 오라버니는 재능이 있다고, 트레이너가 되어 돕고 싶다고... 라이스가 도망쳐도, 쫓아와서..."


"그렇게, 말해줘서 기뻤어."


이사장이 진솔하게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조언했지만, 너무 감정적이었다고 생각한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간간이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진다.


"오라버니는 절대 나쁜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걸 직접 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나요? 세상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니까, 열심히 노력한 게 전부니까."


하지만 그녀가 오늘 말하려 온 이야기는 지극히 감정적인 것이기에 노력은 의미가 없었다. 손은 가슴에 모였고, 목소리는 언젠가부터 떨리고 있었다.

슬픔, 억울함, 분노. 모두 다른 감정임에도, 그녀가 표출하는 형태는 비슷했다.


"맥퀸 씨의 우승을 빼앗은 게 잘못이라면, 라이스의 잘못이에요. 오라버니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까... 라이스를 미워해 주세요."


떨리는 목소리의, 이겨서 잘못했다는 이상한 사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희생, 모든 요소가 가련한 그녀의 외모와 맞물려 사람들의 동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말이 멈추자,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이스는 증명하기 위해 나왔어요."


그녀는 겨우 동정받기 위해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이번엔 미리 사과드릴게요. 타카라즈카 기념마저 뺏었다고 원망하셔도 좋아요."


"맥퀸 씨, 라이스와 다시 한번 달려주세요. 맥퀸 씨를 이기고, 지난 경기에 부정 같은 것은 없었다고 증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이내 사방에서 터져 나온 셔터 소리가 그녀를 뒤덮는다.




메지로 가문의 전략은 결국 맥퀸의 패배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강렬했기에 성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라이스의 호소는 이 문제의 근원을 드러내고 있다.


졌다고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이 있었다라고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런 유치한 분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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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라이스 샤워의 오라버니' 23.04.30 35 0 9쪽
39 '홀로 여정을 마치는 법' 23.04.26 15 0 6쪽
38 '메지로 맥퀸의 트레이너' 23.04.25 14 0 12쪽
37 '하고 싶은 말, 있지 않았어?' 23.04.24 26 0 10쪽
36 '그리고 절대로 멈추지 말아요.' 23.04.10 22 0 10쪽
35 '끝까지 맥퀸 씨를 방해할거야.' 23.04.09 29 0 10쪽
34 '트레이너 씨와 함께 꼭 행복하시길.' 23.04.08 25 0 10쪽
33 '하늘에 닿을 듯이.' 23.04.07 19 0 11쪽
32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23.04.06 37 0 11쪽
31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23.04.04 22 0 12쪽
30 '어떤 스위츠보다도 달콤한' 23.04.03 32 0 11쪽
29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23.04.02 32 0 11쪽
28 '유일한 구원' 23.04.01 22 0 15쪽
27 '존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23.03.31 20 0 11쪽
26 '트레이너, 자네의 담당을 믿나?' 23.03.30 20 0 11쪽
25 '라이스는 말이야, 맥퀸 씨를 용서했어.' 23.03.29 18 0 13쪽
24 '오라버니는 지금... 행복해?' 23.03.28 16 0 8쪽
23 '늦었지만, 이제는 다를거야.' 23.03.27 23 0 9쪽
22 '이번 경기가 끝나면, 정말로.' 23.03.26 17 0 9쪽
» '그렇게, 말해줘서 기뻤어.' 23.03.25 18 0 10쪽
20 '이기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23.03.24 19 0 12쪽
19 '사람이 숙일 줄도 알아야죠.' 23.03.23 18 0 12쪽
18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23.03.22 17 0 11쪽
17 '말하지 않으면, 전할 수 없는데.' 23.03.21 18 0 16쪽
16 '라이스가 멀리 가버려도, 내가 꼭 따라갈게.' 23.03.20 20 0 13쪽
15 '하나쯤은 뺏어갈 수 있잖아요.' 23.03.19 19 0 13쪽
14 '이제 괴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23.03.18 18 0 13쪽
13 '사랑하지 않곤 배길 수 없는' 23.03.17 17 0 10쪽
12 '누구를 위하여 나는 달리나.' 23.03.16 30 0 11쪽
11 '맥퀸 씨, 오라버니를 좋아하는거지?' 23.03.15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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