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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소
작품등록일 :
2023.03.1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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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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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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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거래장

DUMMY

오늘도 일상처럼 전쟁터에 갔다가 다시 지부에 복귀한 진우는 숙소로 들어갔다.

한 달이 지났지만, 전쟁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졸본시 뿐만 아니라 경계에 있는 모든 지부가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그나마 졸본시는 지부장인 벽산칠해 자르한의 활약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는 편이다.


전쟁 초기에 본성은 금마왕 볼드를 비롯해 그의 직속 부대들이 혈귀전의 주력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새로운 척성령의 비사로 마왕의 칭호를 얻은 혈귀전주 초야는 만만치 않은 자였다.


그는 악마종 흡혈요마였다.

초야는 막 척성령을 이룩한 마왕급 비사였지만, 이미 오래전 마왕의 칭호를 얻은 금마성주와 비등한 무위를 가졌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혈귀전주 초야가 미세하게 우위에 있었다.


처음 격돌한 볼드와 초야는 양쪽 다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은 상태로 현재는 서로 대치 중이라고 했다.


‘어휴···. 이놈의 전쟁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진우가 샤워하고 나와서 자리에 풀썩 앉았다.

애초에 도망치려고 한 계획을 접었으니 이제 다른 방법은 없었다.

빨리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방법밖에는.


‘그리고 도저히 답이 없는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면 그때 몸을 빼내도 된다.’


진우는 요근래 경신술에 꽤 자신이 붙은 상태였다.

그동안 숙소로 돌아오면 꾸준히 베르단의 지식을 탐독하며 정리하였고, 두 가지 경신술을 합쳐 태기영신술을 익혔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태기술과 영신술의 장점만 합쳐 새로 만든 것이다.

그것조차도 사고 가속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겨우 완성하게 되었다.


또한 전쟁 내내 암습을 단행하고 다시 몸을 빼내는 방법으로 전투하다 보니, 신법과 보법의 성취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월혼의 비사를 만나도 쉽게 잡히지는 않을 자신이 생겼다.


‘정다연에게는 5년 후에 약속을 이행하라고 말했지. 아직 시간은 여유 있어. 그전까지 연혼의 경지를 이루면 돼.’


상념을 마친 진우는 공법을 운용했다.

그리고 사고 가속 권능을 일으키며 베르단의 지식을 탐독해 나갔다.

아니 그러려고 하는데.


끼익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진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탐지술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일라지야.’


그녀가 들어와서 언제나처럼 눈을 반짝이고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데칸과 베넷, 아마리가 시야에 잡혔다.

데칸은 종종 그를 방문했는데 세 명이 다 같이 온건 처음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데칸이 쭈뼛쭈뼛한 자세로 서 있었다.


진우는 그동안의 전쟁에서 인진명의 혈귀전 비사를 무려 10명 넘게 주검을 만들었다. 졸본 시 내에서 조금 위상이 높아져 있었다.

그만큼 동급의 비사를 처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데칸 일행도 한결 더 깍듯이 그를 대하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친밀함을 과시하려는 듯 살갑게 구는 면도 생겼다.


“진우 님?”


“그래. 데칸, 무슨 일이야?”


“혹시 제가 들어와서 실망하신 건··· 아니시죠? 헤헤. 일라지야 님은 분쟁지역에서 아직 귀환 전 이라고 합니다.”


일라지야는 그와 다른 분쟁지역에 가서 아직 귀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진우는 오늘 분쟁지역에서 빨리 귀환한 편이다.

아직 대부분 금마성 비사들은 분쟁지역에 있었다.

일라지야 본인도 아주 뛰어난 비사였다. 또한 그녀 옆에는 괴물 같은 자르한이 함께 있을 테니 전혀 걱정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진우가 너털웃음 터트렸다.


“하하. 아니다. 용건 있으면 말해.”


“금일 저녁 7시에 졸본 시 내에서 5년에 한 번씩 있는 보물 거래장이 열린다고 합니다. 진우 님도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보물 거래장이라···”


마계 대부분 도시에서는 이런 보물 거래장이나 경매회 같은 것이 주기적으로 열린다.

본인에게 필요 없는 보물을 더 유용한 보물로 바꾸거나, 마력석 등으로 필요한 영약 재료나 보물 같은 것을 거래하는 것이다.

비사들에겐 정기 행사나 다름없었다.


진우도 콰스시에서 한번 참여한 적 있었는데, 그때는 눈에 띄는 것이 없어 실망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도 졸본시는 처음이니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곧 준비하고 나갈 테니 1층에서 기다리고 있어.”


“네!”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데칸이 화색을 띠며 물러났다. 뒤에서 베넷과 아마리의 표정도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진우는 방안을 정리하고 간편한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1층으로 내려가자 데칸 일행은 서로 무엇을 거래해야 할지 의논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진우가 당도하자 그들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는 보물거래 장으로 안내했다.


“진우 님은 필요한 보물이 있으신가요?”


“아니. 딱히 생각해 둔 것은 없는데··· 응? 아마리 너는 어느새 비사 대성 단계에 도달했구나.”


“네! 이번 전쟁에 미약하지만, 저도 거들면서 깨달음이 있었어요! 데칸 님, 베넷 님의 도움이 컸지만요. 후후.”


“우리가 뭘··· 아마리 네가 재능이 뛰어난 거야. 흠흠.”


“그, 그래. 이번 거래장에서 영약을 얻어 더 정진하면 아마리도 곧 마정에 도달할 거야. 하하.”


진우의 말에 아마리가 쑥스럽다는 듯 홍조를 띠며 조곤조곤 말했다.

처음 봤을 때 그녀는 비사 9성 단계였는데, 어느새 대성하여 마정 단계의 진입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데칸과 베넷의 반응도 수상했다. 

아마리의 칭찬에 둘 다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괜히 하늘을 보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데, 무슨 교과서 읽듯 로보트처럼 말을 해댄다.


‘그런 건가··· 하하. 과연 누가 승자가 될까?’


데칸과 베넷도 성취가 제법 있었는데 마정급 초기에서 중기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정 단계부터는 초기, 중기, 후기 그리고 대성 단계로 나눴다.


하지만 대성 단계가 아니라면, 그런 구분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실제로는 비술의 성취도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막 초기에 들어선 비사가 후기의 비사를 참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사례다.

지금 대치 중인 혈귀전주 초야와 금마성주 볼드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


“진우 님. 도착했습니다.”


데칸의 말에 진우가 주변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마족으로 붐비고 있었다. 다른 점은 일반인은 없고 모두 비사들이라는 점이다.

그들 중엔 좌판을 깔아 놓고 물건을 진열에 놓은 자들도 있었다. 커다란 종이 지방을 깃대에 달아 놓아 거래하고픈 보물들을 적어 놓은 자들도 있다.


지금이 전쟁 중이라도 이는 오롯이 금마성과 혈귀전의 전쟁이었다. 거대 세력이 아니라 다른 중소세력에 소속되어 있는 비사들이 훨씬 많았다.

또한 소속 없이 떠도는 방랑 비사들도 많았기에 전쟁통에도 보물 거래장은 활발했다.


진우는 어느새 변안술로 위장했고, 거래장을 거닐며 이것저것 보물들을 살펴보았다.

데칸 일행도 각자 흩어지며 필요한 것을 찾아다녔다.

한참을 둘러보던 진우는 점점 흥미가 식는 것을 느꼈다.


[비사 대성 단계에서 효력 있는 영약 구합니다.]

[도법 관련 비술서 아무거나 구한다.]

[7품에서 9품까지 보검 다양하게 있다.]

[8품 이상 방호형 보물 아무거나 구함.]

[각종 경신 비술서 팜요 : 가격협의]

[천질화, 영마보경, 소수보 셋 중 하나라도 있으면 전음술 주세요.]


‘개판이구먼.’


여기저기 깃대에 매달려 있는 방문의 내용은 각양각색에 말투도 제각각이었다.

천천히 둘러보는데 진우의 눈에 차는 것은 없었다.

한참 동안 거래장을 돌아다녔지만,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계속 거리를 활보하던 진우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한 토안족의 늙은 비사가 침울한 얼굴로 나무 탁자 위에 좌판을 깔아 놓고 물건들을 진열해 놓은 곳이다.


그런데 그 물건들이 볼품없어서 지나가는 비사들은 그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늙은 비사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진다.

조잡한 보물들 사이에 한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커다란 새의 깃털이었는데, 깃털 무늬가 붉은색과 금빛이 물결처럼 어우러져 꽤나 이색적이었다.

다만 빛깔이 바래져 그 미색을 잃어 가고 있었다.

깃털의 길이는 1m가 넘어 보였는데, 깃털이 이 정도라면 본체의 크기는 대단히 거대한 존재일 것이다.

진우가 흥미를 느낀 이유는 베르단의 방대한 지식 속에도 저런 형태의 깃털을 가진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토안족의 늙은 비사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 나이를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진우가 다가가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 이 깃털은 무엇인지요?”


늙은 비사는 진우에게서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대번에 자신보다 한참 높은 경지의 비사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는 공손히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서 오십시오. 비사님. 사실은··· 저도 이 깃털이 뭔지 잘 모릅니다. 허허.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서 아주 오래전에 보고차원에서 가져왔었죠.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효용을 알 수 없어 이렇게 거래장에 내놓은 겁니다.”


“하하하. 용도도 모르고 그 가치도 모르는데 어떻게 값을 매기고 거래하려고 내놓은 겁니까?”


“그게···. 영약을 구하려면 뭐라도 팔아야 해서··· 가진 걸 다 올려놓은 겁니다. 허허허"


늙은 비사는 민망한지 어색한 표정으로 허허로이 웃을 뿐이었다.

진우는 진열된 깃털을 들어 다른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깃털의 결이 아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기분 좋은 촉감이다.

물결모양의 적빛과 금빛이 진우의 손길을 따라 요동치며 퍽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미약하지만 스스로 마력을 발산하는 것이 보고차원에서 얻었다는 말은 맞을 것이다.

진우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이 깃털을 사겠습니다. 얼마를 쳐 드리면 됩니까?”


진우가 이렇게 바로 거래를 제안할 줄은 몰랐는지 늙은 비사의 주름진 눈이 동그래졌다.


“어··· 그러니까··· 음. 허허···.”


진우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도 이 깃털의 출처나 용도는 모른다.

하지만 베르단의 지식 속에도 없는 보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거래할 가치가 있는 보물이라 생각되었다.

한참 서성이는 늙은 비사가 고민에 빠져 미간이 모인다. 주름진 얼굴에 한층 더 세월이 흔적이 얹어졌다.

이내 늙은 비사가 결심했는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구가 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중급 마력석 3개로 받겠습니다.”


진우가 예상한 범위였다. 

아마 그가 필요하다는 영약이 딱 그 정도 가격을 하는 모양이다.

늙은 비사는 겉보기에도 이미 수명이 얼마 안 남아 보였다.

영약의 도움으로 하루빨리 비사를 넘어 마정 단계에 이르고, 삶을 더 영위하고 싶어 할 것이다.


진열된 다른 조잡한 물건을 보아하니 지금이 아니면 또 다른 물건들은 팔기 힘들어 보였다.

늙은 비사의 얼굴에서 절박함이 묻어 나오며 간절히 진우를 쳐다보았다.


“그냥 중급 마력석 6개로 드리지요.”


“네?”


“제가 생각하는 이 보물이 가지는 가치의 최소치입니다.”


그러고 진우가 냅다 공간석에서 마력석을 꺼내고는 늙은 비사에게 건네주었다.

진우가 보기엔 이 깃털이 뭐가 됐든 중급 마력석 3개로 교환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지 이 늙은 비사는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해 보였다.


그런데도 물건에 흥미를 보이는 거래 대상자가 나타났는데, 상품에 대해 본인도 모른다며 아무런 과장이나 첨언도 없다.

저토록 절박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정말 멍청할 정도로 솔직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이상은 오지랖이겠지. 영약을 더 쓴다면 어쩌면 마정급에 오를 수 있을지도···. 뭐. 이제는 어르신에게 달렸습니다.’


진우는 그냥 빈손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흥미로운 보물을 얻어 나름 만족스러웠다.

진우가 미소를 지으며 깃털을 공간석에 집어넣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감사합니다. 비사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늙은 비사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떠나가는 진우에게 인사를 건넨다.

한참이 지나 진우가 완전히 사라졌는데도 늙은 비사의 고개는 멈추질 않았다.


작가의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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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악마종 흡혈요마 (1) 23.03.30 29 0 17쪽
21 기습 23.03.29 30 0 13쪽
20 열양잠영술 23.03.28 35 0 12쪽
19 방랑비사 바이칸트 23.03.27 36 0 13쪽
18 경매회 (2) 23.03.26 32 0 13쪽
17 경매회 (1) 23.03.25 32 0 14쪽
» 보물 거래장 23.03.24 40 0 12쪽
15 고대철 23.03.23 44 0 14쪽
14 전쟁 23.03.22 43 0 14쪽
13 마도원가 23.03.21 44 0 13쪽
12 흑천마계 (4) 23.03.20 44 0 15쪽
11 흑천마계 (3) 23.03.19 47 0 15쪽
10 흑천마계 (2) 23.03.18 56 1 19쪽
9 흑천마계 (1) 23.03.17 71 0 12쪽
8 귀환 23.03.16 67 0 14쪽
7 김진우 선생님 23.03.16 66 0 15쪽
6 지구에서 온 손님들 (4) 23.03.15 72 0 11쪽
5 지구에서 온 손님들 (3) 23.03.15 75 0 10쪽
4 지구에서 온 손님들 (2) 23.03.14 77 1 8쪽
3 지구에서 온 손님들 (1) 23.03.14 88 2 13쪽
2 첫 원정 23.03.12 106 2 11쪽
1 프롤로그 23.03.12 117 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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