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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소
작품등록일 :
2023.03.12 09:13
최근연재일 :
2023.04.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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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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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종 가연선묘 (2)

DUMMY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곧 진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정황상 요만은 죽었다고 판단된다.


‘정신을 잃었는데 요만이 죽고 나는 그의 권능을 흡수했다.’


권능이 두 개라니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꼭 베르단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몸은 그대로야. 또한 요만의 잔혼이나 잔류사념 같은 것은 남지 않았어.’


진우의 미간이 모였다.


‘···혹시 나는 불사신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는 경험을 몇번씩 하는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엔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했다. 헌터 시절에도 고난은 있을지언정 결국 다 이겨내었다.

여태껏 베르단과 요만을 상대로 할 때를 제외하면 죽기 직전까지 간 상황은 없었다.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그 두 번의 적이 그냥 우연히 악마종이었을 뿐 상대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실소가 흘러나왔다.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야.’


그걸 확인한답시고 자살이라도 하는 미친 짓을 할 순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 친다 해도 그게 2번으로 끝이면? 혹은 다른 제한이 있다면?


‘그게 무한정이라고 어떻게 장담 하겠어. 게임도 아니고.’


진우는 에너지 법칙상 ‘무한에 가까운’ 이라면 몰라도 ‘무한’ 이라는 말은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한에 가깝다는 말은 얼마든지 다음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엔트로피를 역전시켜 시간을 과거로 보내겠다는 발상만큼 위험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요만과 베르단의 공통점과 차이점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둘 다 악마종이라는 거지.’


요만은 악마종 흡혈요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가 자기 피를 받아들인 것이다.


‘아니야. 베르단에게 당하기 전까지 나는 인간의 몸이었다. 그것과는 상관없어.’


진우의 생각이 깊어졌다.

요만의 어머니가 사안철귀라는 말이 생각났다.


‘요만은 사안철귀의 피가 옅어서 권능만 흡수되고, 베르단은 혼과 지식까지 흡수된 것인가?’


아니면 처음 생각대로 악마종이라는 것과는 아무 관련 없을 수도 있다.


‘베르단이 특수한 경우고 그 후로 변화가 생긴 거라면?’


베르단에게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할 이변이 일어났고, 그 사고 후로 모든 것이 뒤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평범한 인간으로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베르단 생전의 기억이 있으면 뭔가 추측이라도 보겠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진우가 고개를 젓고는 생각을 떨쳐내 버렸다.

자세한 기억도 없는데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다.


‘어쨌든 지금 나는 살아있다. 그것뿐이야.’


복잡한 상념을 날려 보내고 지금만 생각했다.

진우는 곧 평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귀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런 주제에 딕션은 얼마나 좋은지 소리가 뇌 속을 파고 박히는 기분이다.


“아저씨. 혹시 실성하셨어요? 혼자 심각한 표정 짓다가 다시 실실 웃고는 또 해탈한 표정을 지으시고··· 머리를 다친 건 아니죠? 히히.”


쉴라가 진우 얼굴에 바짝 다가와서는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저 혼자 웃어 대었다.

진우가 빙긋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쉴라. 너는 몇살인데 나를 계속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야?”


“네? 저는··· 올해로 142살이요···. 아저씨는 몇살인데요? 보기엔 그냥 아저씨로 불러도 될 거 같은데···.”


진우의 갑작스러운 말에 쉴라가 움찔하며 말한다. 눈꼬리를 내리깔며 진우의 표정을 살피는데 퍽 귀여워 보였다.


“하하. 나는··· 음. 300살 정도다.”


정확히는 350살 정도겠지만, 왠지 아저씨란 말이 분해서 살짝 낮추었다.

사실 정신을 잃은 기간을 빼면 쉴라와 별 차이 나지도 않는다. ···라고 합리화했다.


‘나이로 보면 영체에서 각성한 지 얼마 안 됐겠어. 그런데 벌써 인진명이라니, 쉴라의 재능이 대단한가 보군.’


초월종의 평균 수명이 2천년 정도라고 하니, 쉴라의 현재 외형은 나이대와 얼추 맞는다고 할 수 있었다.

진우의 말에 쉴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생각보다 어렸네. 아저씨 노안이었네요? 그 나이면 아저씨라고 부르긴 좀 미안해지는데··· 이미 아저씨란 말이 입에 붙었으니 그냥 아저씨라고 부를래요. 아저씨. 히히히.”


“그래. 그냥 네 마음대로 불러라. 하하.”


또 저 혼자 뒤집어지며 낄낄대는 소녀의 모습에 진우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노인이 종이에 감싸진 환약을 들고 다가왔다.


“쉴라야. 좀 떨어져 있거라. 환자에게 무슨 말을 그렇게 걸고 있느냐?”


“아이참. 이 아저씨가 심심할까 봐 그런 거죠!”


쉴라가 토라진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고 포드로가 진우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기력 회복에 좋을 것이야. 먹어 보게.”


“네···.”


진우가 환약을 받는데 은은한 약향이 퍼지며 뇌를 정화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정환단 아닙니까? 어르신과 쉴라는 초월종 가연선묘(嘉兗善猫)였군요!”


진우는 대번에 이들의 정체를 눈치챘다.

정환단은 가연선묘의 비전단약이다. 베르단의 지식에도 분별법만 있지 제조법은 없었다.

진우의 말에 포드로가 살짝 놀라며 말했다.


“응? 젊은 놈이 형태와 향만으로 정환단을 바로 알아보다니 별일이구나.”


“별거 아닙니다. 그보다 저에게 이런 호의를 다 베푸시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이거 참. 허허.”


포드로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쉴라도 놀란 모양인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아저씨. 대단하네요. 정환단은 잘 안 알려진 단약인데?”


“후후. 내가 아는 게 좀 많아.”


“핏. 좀 띄워 주니깐 허세 부리는 거예요?”


쉴라가 눈을 흘기고 진우는 정환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단약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식도를 타고 몸 구석구석에 퍼져간다.

진우는 앉아서 공법을 운용했다.

온몸에 약기가 순환되며 쇠했던 몸의 내부에 활기가 도는 듯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혈색이 한결 좋아졌다. 몸 상태가 완전히 호전된 듯 가뿐해진다.

진우가 일어나 앞에 있는 포드로에게 고개를 숙이곤 말했다.


“어르신. 제가 어떻게 사례라도 드려야 할 거 같은데···”


“사례라··· 그런 건 필요 없네. 허허.”


“아닙니다. 구명의 은을 어찌 대수롭지 않게 넘기겠습니까?”


“하하. 자네는 정말 사안철귀답지 않군. 뭐··· 정 마음이 불편하면 그냥 아무거나 던져주고 가게.”


진우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포드로의 말엔 은근히 축객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우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서는 제가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경지의 비사일 겁니다. 그러니 쉴라에게 제가 선물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오와. 정말요? 뭘 줄 건데요?”


그 말에 뒤에 있던 쉴라가 눈을 반짝이며 후다닥 달려왔다. 

그녀가 콧김을 뿜으며 얼굴을 들이미는데, 진우가 포드로를 지긋이 보며 말했다.


“어르신. 개혼벽수라고 아십니까?”


“개혼벽수라··· 고서에서 본 적이 있네. 인진명의 비사가 연혼으로 승급할 때 도움이 된다는 영차 아닌가?”


그는 오래 산 만큼 경험이 많았다.

그동안 개혼벽수는 커녕 재료인 공공혼엽도 아는 이가 없었는데 포드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자네가 개혼벽수를 가지고 있다는 건가?”


“아직은 아닙니다. 이번에 지부에 돌아가면 재료를 거래하러 본성으로 떠날 생각입니다. 그 후에 제가 개혼벽수를 제다하고 쉴라에게도 나눠 드리지요.”


진우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미적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 해도 어찌어찌 천운으로 살아남았지만, 이곳 세계에는 자신보다 강한 존재들이 너무 많았다.

서둘러 경지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우선 나부터 강해져야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객기일 뿐이야.’


이번에 너무나 큰 무력감을 맛보았다.

본성으로 가도 공공혼엽을 거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머뭇거렸는데, 반뇌묵수의 가치를 알았으니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눈앞의 노인은 까마득한 수준의 고수다.

단구경의 비사인 자르한도 어렴풋이지만 가늠이 됐었다. 그런데 포드로는 아무런 기운도 읽을 수 없다.


‘어쩌면··· 척성령의 마왕급이다.’


그런 포드로가 함께한다면 본성으로 가는 길에 혈귀전을 마주쳐도 문제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거기다 초월종 가연선묘는 이따금 선행을 하며 덕을 쌓는, 마계에서는 아주 드문 특이한 종족이다.

또한 그들은 다른 종족에 비해 혈육에 대한 정이 깊었다.

쉴라를 통해 이 절대 고수의 호의를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진우의 말에 포드로의 눈이 커지며 말했다.


“뭐라고? 자네가 제다술(製茶術)을 할 줄 안단 말인가?”


그가 깜짝 놀라자 진우가 의아해졌다.


“네, 그렇습니다만···.”


“제다술은 영단을 만드는 제단술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일이야. 고도의 집중력과 아주 세밀한 마력의 제어가 필요해. 거기다 흙과 물, 나무, 불, 공기의 속성에 모두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지. 수많은 제다법 또한 지금은 대부분 실전되었다고 들었는데···. 허허.”


“아··· 그렇습니까?”


진우는 베르단의 지식 속에 잠들어 있는 제다술을 익히고, 몇 번 실행해 보면서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실패할 때도 종종 있었지만 포드로가 말한 정도는 아니었다. 

가연선묘는 영약과 영단에 대해서도 일가견 있는 종족이다. 그가 한 말이라면 신빙성이 있을 터였다.

제다법이 이렇게 귀했는지 몰랐는데, 이미 호언장담을 해놨으니 번복하기도 힘들었다.

진우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저는 이미 여러 번 영차을 제다 한 바 있습니다.”


“허허허··· 그렇구먼. 젊은 친구가 아주 비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군. 개혼벽수라면 쉴라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테지. 그런데 금마성 본성까지 가야 한단 말인가? 흠···.”


“우와. 그럼 우리 도시로 가는 거예요?”


쉴라는 진우가 준다는 선물이 이상한 영약 같은 거란 말에 시무룩했었다.

그런데 도시로 간다는 말에 신나서 방방 뛰었다.


‘이 꼬마 아가씨가··· 개혼벽수가 얼마나 만들기 힘든 건데.’


진우는 조금 울컥했다.

쉴라는 각성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포드로는 그녀를 데리고 세상을 경험시킬 겸 대륙을 활보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어리기만 한 손녀였다.

큰 도시는 피해서 성년행을 다녔는데, 도시로 간다는 말에 그녀가 지금 흥분한 것이다.

포드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필요하다는 그 재료가 뭔가? 나는 제단술에 제법 조예가 있네. 그리고 영단의 재료가 되는 영약들도 꽤 있지. 내게 재료가 있으면 굳이 먼 길을 갈 필요가 있겠나?”


“흐에엥? 아니, 진우 오라버니. 제발 엄청 엄청 귀한 재료라서 구하기 힘든 거라고 말해주세요···.”


포드로의 말에 쉴라가 울상이 되며 펄쩍 뛴다. 진우가 피식 웃고는 귓등으로 흘려 버렸다.

사실 이것도 노리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포드로 정도라면 공공혼엽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필요한 건 공공혼엽이란 재료입니다. 다른 재료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포드로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허허··· 아쉽구나. 지금은 내게 없는 재료야. 예전에 그것을 입수하고 문헌에서 공공혼엽이라는 걸 알아내었지. 그런데 호기심에 이런저런 연구를 하다가 날려 먹었어. 그게 개혼벽수의 재료로 쓰였구먼···?”


진우는 조금 실망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르신조차 공공혼엽을 아예 모르는 재료라고 했으면, 나도 의구심이 생겼을 거야. 그거보단 낫다.’


“그럼 어르신께서는···?”


“한동안 자네와 동행하도록 하지. 쉴라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제다술을 꼭 한번 견식해 보고 싶군.”


진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노회한 그도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가연선묘의 피를 속이진 못했나 보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런데 제가 개혼벽수의 제다법을 우연히 발견하긴 했지만, 다른 쪽에도 크게 식견이 깊은 것은 아닙니다.”


“허허. 개혼벽수의 제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네.”


진우도 조심성이 생겨 모든 것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포드로의 말에 쉴라는 진우보다 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녀가 코를 벌렁거리며 말했다.


“오오! 진우 아저씨. 몸은 다 나았죠? 우리 얼른 출발해요! 히히.”


도시행이 확정되자 귀신같이 다시 아저씨로 호칭이 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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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월종 가연선묘 (2) 23.04.03 23 0 13쪽
25 초월종 가연선묘 (1) 23.04.02 24 1 14쪽
24 일라지야 23.04.01 23 0 12쪽
23 악마종 흡혈요마 (2) 23.03.31 26 0 13쪽
22 악마종 흡혈요마 (1) 23.03.30 29 0 17쪽
21 기습 23.03.29 30 0 13쪽
20 열양잠영술 23.03.28 35 0 12쪽
19 방랑비사 바이칸트 23.03.27 36 0 13쪽
18 경매회 (2) 23.03.26 32 0 13쪽
17 경매회 (1) 23.03.25 32 0 14쪽
16 보물 거래장 23.03.24 40 0 12쪽
15 고대철 23.03.23 44 0 14쪽
14 전쟁 23.03.22 43 0 14쪽
13 마도원가 23.03.21 44 0 13쪽
12 흑천마계 (4) 23.03.20 44 0 15쪽
11 흑천마계 (3) 23.03.19 47 0 15쪽
10 흑천마계 (2) 23.03.18 56 1 19쪽
9 흑천마계 (1) 23.03.17 71 0 12쪽
8 귀환 23.03.16 67 0 14쪽
7 김진우 선생님 23.03.16 66 0 15쪽
6 지구에서 온 손님들 (4) 23.03.15 72 0 11쪽
5 지구에서 온 손님들 (3) 23.03.15 75 0 10쪽
4 지구에서 온 손님들 (2) 23.03.14 77 1 8쪽
3 지구에서 온 손님들 (1) 23.03.14 88 2 13쪽
2 첫 원정 23.03.12 106 2 11쪽
1 프롤로그 23.03.12 117 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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