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세상 속 평범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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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누각
작품등록일 :
2023.03.27 12:23
최근연재일 :
2023.04.0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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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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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주술의 맛을 본 자

DUMMY

나는 최대한 몸속에 잠식한 혈고를 진정시키려고 달래는 말을 조곤조곤 내뱉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번 봐주십쇼.'부터 시작으로 별의별 사과의 언어를 혈고를 향해 보냈고,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서히 가슴의 지끈거림이 가라앉았다.


나는 맨바닥에서 몸을 푼 다음 번쩍 일어나 다시 마저 하던 일을 끝마쳤다. 이미 냄새가 슬슬 나기 시작한 시체를 얼른 나는 구덩이 속으로 발로 민 후 삽을 가지고 흙으로 재빨리 덮었다. 영차영차거리며 나는 신속히 고인을 묻었다. 땅 표면을 일부러 삽 가지고 흩트리며 자연스레 그 아래의 시체가 잊혀지길 바랐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실 저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박수를 치려고 손을 무섭게 올렸다면 죄송합니다, 부디 다음 생에서는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근데 만약 정말로 저를 다섯 번째의 제물로 사용하려 그랬으면 짐승들이 안 가져가게 시체를 묻은 거에 감사하십쇼.'


속으로 쓸데없는 것을 중얼거리며 나는 텃밭을 한번 눈으로 둘러봤다. 수상한 핏자국 몇 개만 정리하면 깔끔하게 현장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나는 어서 외정의 우물로 걸어가 바가지에 물을 담아서 돌아왔다. 군데군데 물을 뿌려주니 거짓말처럼 살인 흔적들이 씻겨 나갔다.


'...내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이것을 여기는 건가? 오랫동안 종각에 방치되어 있어 기본 도덕을 까먹었나? 애초에 여기서 따로 우리에게 교육을 선사하지 않으니 다들 반쯤 인간성을 포기하고 동물처럼 생활했지. 그나마 요즘 내가 체계적으로 규례를 세워서 망정이지...'


도대체 심검산이라는 조직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의아해하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텃밭을 미심쩍은 시선으로 살펴보았고,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나는 그곳을 은밀하게 빠져나왔다.


희한하게, 거기서부터 멀어질수록 나의 숨이 가빠졌다. 어째 천벌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매 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이 느낌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심해져서 결국 내면의 의심을 이기지 못한 채 나는 휙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심 아무것도 예상하지 않으며. 그러나, 예기치 못한 추종자의 면상이 나의 시야를 뒤덮었다.


"자, 장로님을 뵙습니다!"


나는 후딱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답변이 들려오지 않았다. 나의 시선이 그의 발을 향해 멈춰있었고, 긴장된 상태에서 나는 장로의 기분을 그의 자세를 보며 가늠하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태산처럼 가만히 미동조차 없이 그저 서 있어서,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무수히 많은 상념들이 말떼처럼 내 정신의 들판을 밟으며 돌진했다. 그것들이 나의 이성의 탑을 의구심과 공황으로 무너뜨리려고 했다. 결국, 돌파에 성공했다.


'들켰나? 무릎 꿇고 당장 빌어야 하나? 살려달라고 애원해야 하나? 조상으로 모시겠다고 하면서 영원한 충성을 바쳐야 하나? 눈에 모래를 던진 뒤 돌로 뚝배기를 깨야 하나? 나는 하루에 두 번이나 살인을 할 것인가?'


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며 그의 답신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장로의 낮은 어조가 귀에 들렸다.


"쓸데없는 잡념 집어치우고 고개를 들어 본인의 눈을 마주쳐라."


나는 바로 깍듯하게 똑바로 등을 펴 섰고,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만났다. 장로의 눈은 신비와 투시로 가득 차 있었고, 천리안을 연상시켰다. 이따금 반신반의의 섬광이 그의 눈앞을 지나가곤 했고,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추가 명령을 대기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억겁의 찰나가 지나간 후, 무상한 순간은 장로가 입을 열며 과거의 영원 속에 갇혔다.


"왜 소심을 죽였느냐?"


철렁 가슴이 떨렸지만, 의외로 희망의 불씨가 마음속에 불붙었다. 아마 장로는 중간이나 끝부분 사이부터 나의 만행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심과 나의 다툼의 근원을 모르는 듯한 분위기였으니. 잘하면 이 위기를 역전할 수 있었다. 잘하면.


"저는 오늘 의뢰를 추진하기 위해 외문제자 소심님의 텃밭을 가꾸러 갔는데, 거기서 제가 한동안 혼자서 그곳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장로는 표정에 한 치의 변화도 없이 그저 나를 계속 무뚝뚝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제가 할 일을 하던 와중, 예고 없이 불쑥 제 뒤에 소심님이 나타나며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 좋았는데, 돌연 회화를 나누던 가운데 저를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저는 들고 있던 괭이로 그의 머리를 내려쳤습니다. 누군가 시체를 발견하고 오해를 사거나 사건을 더 크게 부풀릴 염려가 들어 먼저 그를 묻은 후 장로님을 찾아가 이 모든 것을 보도할 예정이었습니다."


설명을 마친 나는 입을 닫은 다음 묵묵히 그의 심판을 받을 준비를 하였다. 내 이야기를 듣는 도중 관상이 일절도 흔들리지 않은 그는 냉담하게 대꾸 없이 나를 응시했다. 떳떳하다는 듯 나는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불후의 침묵은 마른하늘 날벼락처럼 우리 사이를 바람 같이 지나쳐 달려간 야생 사슴의 갑작스럽고 교묘한 등장에 의해 깨졌다.


나는 이 틈을 노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흙먼지의 혼란과 느닷없는 짐승의 환청 같은 발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나는 잽싸게 입을 열어 피를 내뱉었다. 비록 혈검의 형상을 마음속으로 이 짧은 기간에 그려내지는 못했지만, 우선 내키는 대로 각혈했다.


그러나, 나는 아주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전혀 예지하지 못한 현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뜻밖에 장로는 내 일격을 피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도 입을 열며 내 각혈을 삼켰다.


이 장면을 실견한 나의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은 채 나는 그저 얼떨떨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입 안을 내 피로 가시더니 그는 다시 그것을 뱉어냈다. 진홍 명주 손수건을 의복 속 어디서 꺼내더니 장로는 자기 입술을 텁텁 닦았다.


"흠, 역시 아직 초심자라서 피의 통제가 서투르구나. 걱정 말거라, 나는 어느 정도 너의 주장을 믿는다. 몇 달 동안 소심이 사라졌는데, 무슨 일이 당연히 벌어졌었겠지. 특히 장로들에게 들키기 싫은 무언가가 있었겠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종문제자가 외문제자를 살해한 것은 명백한 법질서에 어긋남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죄를 면하기 위해 장로까지 공격한다? 예상대로 이번 종문심사를 통과해서 외문제자가 될 자는 도모뿐이구나. 운명을 받아들여라. 본인은 장로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종문제자 회린을 유죄로 판단하고 사형을 선고한다."


말이 끝나게 무섭게 장로는 입을 열었지만...


"크헉!"


...검의 모습의 각혈이 아니라 평범한 피를 토해냈다. 혼비백산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은 표정을 내보내며 장로는 잠시 비틀거리다 털썩 땅바닥에 쓰러졌다. 눈을 부릅뜬 채 연달아 피를 토해낸 그는 결국 홍채가 희미해지더니 더 이상 신체에 미동이 없었다.


당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으나, 불평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미 차가워지고 굳기 시작한 장로의 시체를 냅다 들고 소심의 텃밭으로 달려갔다.


제발 사람을 마주치지 않기를 기원하며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을 통해 별일 없이 텃밭에 발을 내린 나는 어서 삽을 또 한 번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적당한 크기의 구덩이가 완성되었을 때 나는 장로의 시신을 그 안으로 발로 민 뒤 신속히 구멍을 흙으로 메웠다. 물론, 땅속에 묻기 전에 나는 그의 몸을 샅샅이 뒤졌지만, 특이하게 장로임에도 불구하고 영약이나 보물, 신비한 도구 등 같은 그런 것이 아예 없었다.


송글송글 이마에 맺은 땀을 소매로 닦으며 나는 나의 수작업 결과를 지켜보았다.


'좋아, 토지가 어색하지 않아. 일부러 땅을 파러 다니지 않는 이상 이 아래 두 개의 시체가 있다는 것을 절대로 눈치채지 못할 것이야.'


나는 마지막으로 텃밭의 상태를 살피며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을 조리 있게 다듬으며 오전을 다 보냈다. 구름 하나 없는 푸른 하늘에 떠오른 태양을 보며 거의 정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점으로 돌아오자면, 대체 왜 장로는 저절로 곯아떨어졌지? 내가 모르는 자초한 부상이 있었나?'


혼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


'또? 이 혈고는 정말이지 골칫덩어리네. 어떻게 뺄 수는 없나? 심장을 수저로 후벼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얘를 맞서 대응을 어떤 방법으로 할까 숙고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뭔가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깜짝 놀라 나는 외투를 손으로 마구 치우면서 맨살을 보려고 거의 의복 전체를 벗었다. 느낌이 적중했다, 정말로 무엇이 내 명치부위를 기어 나오고 있었다.


'...두루마리에는 혈고가 자의로 숙주(宿主)를 벗어난다고 한 적이 없는데? 오히려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오지 않으려 한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뚱보 혈고를 응시하며 이놈이 어디 갈지 궁금해서 그냥 관찰하기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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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오늘(2023.04.07)부로 비정기 연재로 전환합니다 23.04.07 13 0 -
15 동물과 사람이 구별되는 근본 23.04.07 24 1 10쪽
14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 23.04.06 22 1 10쪽
13 기괴한 혈고(血蠱) 23.04.05 31 1 11쪽
12 완벽한 무시를 당해보지 못해서 23.04.04 37 1 10쪽
11 어떻게 심검법 수행자가 하늘을 나는가 23.04.03 42 0 10쪽
10 복리라는 도술 23.04.02 47 1 10쪽
» 금지된 주술의 맛을 본 자 +1 23.04.01 47 1 9쪽
8 희생이라 쓰고 살인이라고 읽는다 23.03.31 50 2 11쪽
7 살인의 추억 23.03.30 55 2 10쪽
6 거센 혈결의 진실 23.03.30 56 3 10쪽
5 이면의 면식 23.03.29 57 3 10쪽
4 착취에 얽힌 이해관계 23.03.29 65 2 10쪽
3 쓸모없는 쌓아놓은 인맥 23.03.28 72 2 10쪽
2 심검산(心劍山)의 실체 +1 23.03.28 85 2 11쪽
1 10살 때 하늘을 날던 남자에게 끌려간 날 23.03.27 13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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