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전(傀儡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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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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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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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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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차(槃車)에 오줌 묻히며 아래로 던져 버린다.

DUMMY

혹시나 부도자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백칠은 좀 많이 졸아있었는데. 다행히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백칠의 멱살을 풀어주었다.


" 허튼수작을 용서해 주는 건 이번 한번 뿐이다. "


" 그럼... 비키니만 빼고... "


" 어림없는 소리. 네가 요구한 모든 걸 거절한다. 감히 날 속이고 온전한 몸으로 가는 것도 감지덕지 하거라! "


부도자는 거칠게 백칠의 목덜미를 틀어 쥐고 빠르게 동굴을 빠져나가 버렸다. 백칠은 끌려 나가는 와중에도 아쉬움을 버리지 못해 입맛만 다셔야만 했다.


****


사실 이건 여담이지만 백칠의 꿈은 속옷 디자이너이다. 예쁜 비키니를 모으는 건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며 디자이너 안드레 정을 가장 존경하는 꿈 많은 소년이었다.


남들이 모두 전승자를 꿈꿀때 그는 일찌감치 주제를 파악하고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 전승자가 되는 걸 포기한 건 전승자가 되기 싫은 게 아니라 일류 전승자가 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부에도 운동에도 전혀 재능이 없는 그가 전승탑에서 일류 무공에 선택을 받는다는 건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으면서 수많은 전장에 끌려 다니다 죽을 바에야 차라리 일반인으로 사는 게 났다. ]


이게 평소 백칠의 철학이었다.


그러고 보면 통곡의날을 만들어냈던 500명의 삼류 전승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인지 빗대어 볼 수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도전도 해보지 않고 포기 하냐며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는 게. 엄청난 전승자들의 사망률 가운데 삼류 이류 전승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실제로 그와 비슷하게 값진 전승의 기회를 포기하고 일반인으로 사는 자들도 적지 않은 실정이기도 했다.


' 운이란 놈들은 매번 갔던 놈한데 가고 그놈한테 또 간다. 그러니 내 인생에 운이란 건 없다고 생각해야 해 '


부도자에게 끌려가면 백칠이 한 생각이다.


로또 같은 확률인 일류 전승의 벽을 뚫기에는 자신의 운과 재능이 너무 좋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백칠이었다.


부웅


동굴을 빠져나오자마자 부도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먹만 한 주머니에서 그보다 수십 배는 큰 쟁반을 끄집어 내더니 그 위에 올라타고서 어두운 밤 하늘을 엄청난 속도로 날기 시작했다.


" 으헉 "


백칠은 당연히 기겁했다. 그가 가진 상식으로 쟁반은 날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대롱 대롱 매달려있는 게 오금이 저려와서 였다.


지금 백칠이 겪고 있는 일은 분명 이야기책에서나 나올법한 일이었다.


찔끔


참아보려 했는데 결국 오줌이 흘러 나오고 말았다. 그때 부도자의 무시무시한 음성이 들려왔다.


" 내 반차(槃車)에 오줌 묻히며 아래로 던져 버린다. "


안 그래도 허공에 매달려 가고 있어 죽겠는데 던져 버린다고까지 하니 없던 오줌도 나올 판이었지만 백칠은 죽기 살기로 참아야 했다.


잠시 후 부도자는 백칠의 집 마당으로 내려섰다. 위치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귀신처럼 알아서 찾아왔다.


" 10분 주겠다. 다녀 오너라 "


" 고맙습니다. "


마당에서 바라보자 할머니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 다행이다. 별일 없으시구나 '


그 모습에 백칠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백칠이 조심히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할아버지 위패를 향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에 얼마나 집중하고 계시는지 문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계속 뭔가를 중얼 거리고 계셨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 영감 칠이를 무사히 돌려 보내주세요..만약 우리 칠이가 잘못되면 죽어서도 나 만날 생각하지 마시구려.."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자 백칠의 눈에서 와락 눈물이 흘러놔왔다. 그동안 밤새 이렇게 자신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하셨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간신히 울음을 삼킨 백칠이 조심히 할머니에게 다가가 그녀의 작은 등을 끌어 앉았다.


" 할...머니..저..왔어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 "


흠칫 놀라던 할머니가 울먹이는 백칠의 목소리에 일순간 몸이 굳어졌고 점점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 칠.....이..니? "


" 네.. 할머니..얼굴 좀 .. 보여 주세요.."


백칠이 천천히 할머니의 몸을 돌리자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 범벅으로 변해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없이 서로를 위해 눈물을 흘려 주었다.


10분이란 시간은 안부를 묻기조차 부족한 시간이었다.


백칠이 할머니에게 장시간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부도자가 직접 집안으로 들어 왔는데 그는 신기하게도 백칠의 학교 선생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백칠도 정말 담임 선생님이 찾아온 줄 알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는 아무말 없이 할머니의 이마를 손가락은 한번 짚는 것 만으로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아무쪼록 부족한 칠이 잘 부탁합니더 "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백칠은 할머니가 안심하는 표정을 보이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부도자는 가방에서 단약을 하나 꺼내 할머니 입속으로 집어 넣어주었다.


백칠은 그가 허튼짓을 하는지 알고 깜짝 놀랐지만 약을 먹은 할머니가 금세 편안한 얼굴로 잠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감사합니다. "


" 온심단(溫心丹)이다. 허한 기운을 돋아주고 심신을 보호해 주는데 특효가 있지. 보아하니 네 할머니는 오랜 지병을 가지고 있구나. 알고 있느냐? "


" 예 알고 있습니다. "


실제로 할머니는 폐가 좋지 않은 덕분에 잦은 기침을 달고 사셔서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신다. 지금처럼 깊은 잠은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 네가 내 말만 잘 따른다면 지속적으로 찾아와 온심단을 먹여주겠다. 그럼 네 할머니는 평생 죽을 때까지 잔병치레도 안 할 테고 수명도 최소 10년은 늘어 나실 거다 "


" 그렇게 만 해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


이번 만큼은 백칠도 진심으로 부도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하지만 모든 걱정이 사리진 건 아니었다.


" 좋다. 이 모든 게 네가 하기에 달렸다. 이만 가자. 네 소식은 온심단을 먹이러 올 때 내가 틈틈이 전해주겠다.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이제 그만하거라 "


백칠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읽었던 모양이다.


" 알겠습니다. "


집을 빠져나온 뒤 두 사람은 다시 날아올랐고, 부도자는 빠르게 육지를 벗어나 바다를 가로질렀다.


" 어디로 가는 겁니까? "


" 가보면 안다. "


궁금해 물어봤지만 역시나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후 두 사람에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는데 다시 육지가 보이기 시작하자 부도자가 백칠에게 질문을 하나 했다.


"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전승자란 것들이 거들먹거리고 있더구나 그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냐? "


" 전승자요? "


조금은 의외였다.


" 저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알려 드릴까요? "


" 아니다. 됐다. 생각해보니 굳이 알 필요가 없겠다. "


백칠은 부도자가 왜 이러나 싶어 궁금해 했는데 잠시 후 지상에서 번쩍거리는 빛과 함께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오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쿠앙


그 소리는 지상에서 기갑괴뢰들과 마수가 격돌하는 소리였다.


15미터 크기의 기갑괴뢰(機甲傀儡) 10기가 30미터 크기의 거대한 마수 세 마리를 상대로 혈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크아아앙


마수는 3급 병화수(炳和獸)중 상급으로 취급받는 철관오(鐵冠蜈)란 지네였고 기갑괴뢰는 일본의 주력기인 류오기(流俉器) 같았다.


류오기는 한국의 충무기(忠武器)와 다르게 머리에 뿔을 달고 있어서 백칠 같은 일반인도 구분하기가 쉬운 기종이었다.


' 잠깐만! 그럼 지금 여기가 일본이야? '


부도자는 그 잠깐 사이에 대한 해협을 건너 버린 것이다. 그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전승자들의 전유물인 기갑괴뢰가 싸우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에게 전승자에 대해 물어본 것이었다.


" 엄청나다. "


일류 고수 이상만 탈 수 있는 기갑괴뢰의 실제 위용은 듣던 대로 엄청났다. 오기(五器) 급인 류오기 보다 삼왕급이 더 대단하겠지만 류오기도 충분 엄청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쾅쾅쾅쾅


저것 보라. 류오기들이 들고 있는 거대한 검에서 일제히 검기(劒氣)가 발사되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백칠의 심장을 뛰게 만들기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 뿐인가. 후방에서 기회를 노리던 여성형 기체가 들고 있던 검을 흔들자 검 끝에서 엄청나게 큰 매화꽃 한 송이가 만들어지는데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 와 검기유형(劒氣有形) .. 대단하다..저 정도면 절정고수가 틀림없을거야 "


백칠의 탄성에 부도자가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 흥! 조잡하다. 기(己)는 고사하고 아직 경(境)에도 들지 못한 무인의 검기가 무에 대단하다고..호들갑이냐 "


부도자의 생각은 그와 조금 다른 듯 했지만 뭐 상관없었다.


' 아닌 게 아니라 전승을 받아볼까? 그래도 평생 단 한 번 주어지는 기회인데. 그냥 포기했다가 나중에 후회할 거 같긴 한데.. '


그가 다시 전승에 대한 열망을 불태울 때 수 미터 크기의 매화꽃 한 송이가 류오기의 검을 떠나 마수에게도 날아가기 시작했다.


살랑 살랑


마치 나비가 춤추는 것처럼 허공을 유영하며 날아간 매화가 철관오의 몸에 적중하자 단단한 철관오 외피가 뜯겨 나가 버렸고 드디어 감춰진 붉은 피부가 드러났다.


기회를 맞은 다른 류오기들이 다시 전력을 쏟아부어 검기를 만들어냈고, 어느새 다시 아물고 있는 철관오의 붉은 피부를 향해 쏘아 보냈다.


쏴아아아아


시원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검기들은 철관오의 붉은 피부에 직격 했고 철관오는 엄청난 괴성을 토해내더니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


쿠웅


드디어 전승자들이 마수 한 마리를 처리한 순간이었다.


' 멋있다. '


그 장면이 어린 백칠의 마음속에 화인(火印)처럼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못마땅한 부도자가 갑자기 속도를 높여버려 백칠은 더 이상 싸움을 구경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일본을 지나친 부도자는 도무지 멈출 기미가 없이 계속 바다를 횡단하며 날아갔다.


그는 태평양을 향해 끝없이 날아갔고 오래 매달려 있다 보니 아찔한 느낌도 조금씩 사라졌다. 조금 여유가 생기자 일본에서 봤던 장면을 다시 떠올린 백칠은 금세 시무룩한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 지금 내 처지에 전승이 웬 말이야.. 당장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인데..'


온심단을 할머니에게 주기적으로 주는 조건으로 종양술을 익힌다고는 했지만 암울한 미래에 백칠의 가슴은 먹먹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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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귀환 23.04.19 143 3 11쪽
20 이별 23.04.18 128 3 11쪽
19 단혼환(丹混丸) 23.04.17 131 4 11쪽
18 절정에 오르다. 23.04.16 136 3 11쪽
17 백태패공기 23.04.15 135 2 11쪽
16 신궐혈 23.04.14 141 4 11쪽
15 칠색 과일 23.04.13 145 4 12쪽
14 일류에 들다. 23.04.12 141 3 11쪽
13 파산검 23.04.11 148 3 11쪽
12 이세기 23.04.10 144 4 11쪽
11 섬에서 생활 8개월 째 . 23.04.06 152 4 11쪽
10 섬 생활 15일 째. 23.04.05 151 4 11쪽
9 너구나. 주인님이 말씀하신 게? 23.04.04 156 4 11쪽
» 내 반차(槃車)에 오줌 묻히며 아래로 던져 버린다. 23.04.03 171 3 11쪽
7 50년이나 이곳에 있으셨어요? 23.04.02 185 5 11쪽
6 공백체 23.04.01 185 5 11쪽
5 지구에는 처음 오시나 봐요? 23.04.01 208 5 11쪽
4 맛있을 것 같아서 데려왔습니다 23.03.30 222 3 11쪽
3 내가..그런데.. 아니라고 23.03.30 221 3 11쪽
2 여자 팬티나 훔쳐보는 변태 색기 +2 23.03.29 252 3 10쪽
1 조우 +2 23.03.28 356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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