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육성형 게임으로 대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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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ek
작품등록일 :
2023.03.30 22:00
최근연재일 :
2023.05.03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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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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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자수

DUMMY

회의실은 지원자들의 참가 서류로 정신이 없었다.

지원서 정리를 하던 직원 잭슨이 피로에 절어 궁시렁거렸다.


- 아니, 지원 자격 미달이면 좀 알아서 넣질 말아야지.

우리가 무슨 기계도 아니고 이걸 일일히 다 어떻게 체크해요?

하여간 예술하는 사람들 공지사항 제대로 안 읽는 거 고질병이라니까.


이에 팀장 마리아 역시 지겹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 어쩌겠어? 2세 분들 줄줄이 진로 정할 적령기가 되셨으니.

‘공정한 심사’를 위해 올해부터 추가된 사항이라잖아.

상식적으로 부모가 심사위원이면 눈치껏 다른 공모전으로 가야지, 원.


그래도 오늘이 대망의 지원 마지막날이었다.

마을의 실질적 지주인 로이스가 유독 문화/예술에

힘을 준 탓에, 공모전이 열리면 그 혜택을 노리는

온갖 참가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던 것이다.

올해로 벌써 4년차가 된 잭슨이었다. 웬만한 업무는 이제 익숙했다.

다만 마리아의 말마따나 유독 필터링이 까다로워진 올해만큼은

베테랑인 제 팀들 모두가 버거워할 정도였다.


- 어. 팀장님, 이것 좀 보셔야겠는데요.


얼추 작업이 막바지를 향할 즈음, 잭슨이 흥미로운 서류 한 장을 발견했고.


[제 14회 ‘채 앤 빛의 아이’ 공모전 신청서


접수 요강 :

참가 목적 :

······


신청인 : Storm Kim & Bella Anderson]


- 뭐야, 기어코 나오시겠다 이거야?

나이제한 걸려서 소팅 작업 두 배로 빡세진 게 누구 때문인데.


벨라 앤더슨. 이름을 확인한 마리아가 코웃음을 쳤다.

오벨리오에서 가장 큰 공모전의 간판 심사위원 재키의 외동딸.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 이 개고생을 한 건데.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 왜 저번 프로모션 때 깽판친 꼬마애 하나 있었다 했잖아요.

알고보니 걔가 벨라 라데요? 의지가 대단하긴한데..

이거 완전 눈 가리고 아웅 아닙니까, 팀장님. 반려해야 하는 거 아닌..


- 아니, 냅둬. 사회의 쓴맛을 좀 봐야 지도 정신 차리지.


‘스톰.. 분명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인데.’


기억을 더듬던 마리아가 이내 시계를 확인한 후 테이블을 두드린다.


- 자,자. 다들 퇴근해. 야근만 벌써 며칠 째야. 마무리는 내가 할테니까

집에 가서 좀 쉬어.


- 앗, 그래도 되겠습니까. 근데 저 팀장님 혼자 고생하시는 거 못 보는데.


벌써 입이 귀에 걸린 잭슨이 맘에도 없는 소릴 해댔다.


- 야, 하나만 할래? 부탁이니 집에 좀 가주세요. 샤워도 좀 하고.


- 그럼 고생하십쇼!


이래저래 바람 잘 날 없는 올 해 공모전이었다.



***


‘제임스 퀘스트 먼저 진행하고, 내일 벨라랑 작업 스케줄 잡고..

아. 정신없다.’


현실 복귀 5일 전. 이번주 주말을 끝으로 스케줄표는 비활성화된 상태였다.

어차피 복귀와 동시에 다음 달 스케줄을 짜고 바로 돌아올

생각을 하는 김연풍이었지만, 흐름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니까.’


잠시 상념에 빠진 김연풍이 머리를 털어댔다.

걱정만 해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건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

말 그대로 퀘스트를 돌파하듯 차근차근 해나가면 될 일이었다.

퇴근길 받아온 구운 바나나를 먹으며 김연풍이 상태창을 확인한다.


[체력 : 151 / 근력 : 45 / 존엄 : 60

양심 : 15 / 감각 : 184 / 예술 : 222.7 / 매력 : 115

화술 : 117 / 기품 : 63 / 무술 : 12]

[소지금 : 182,500G]


그러니까, 아틀리에와 광산에서 이틀간 열중한 덕에

꽤나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시간 대비 상당한 고효율의 결과.

물론 마이너스가 된 스탯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신경 쓸 부분은 아닌듯 싶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노력의 결과를 수치로 확인하자 의욕이 넘치는 김연풍이었다.

그가 쇼핑백을 열어 구입해 온 재료들을 늘어놓는다.

무려 만 골드를 재료값으로 탕진한 채였지만,


‘뭐, 그만큼 혜택이 톡톡하긴 하니까. 무엇보다 제임스가 너무 진심이었잖아.’


후회따윈 하지 않았다.


김연풍이 제임스의 퀘스트, 즉 결혼기념일 선물로 준비한 것은

‘프랑스 자수’ 였다. 10cm 짜리 캔버스에 인간의 눈으로 아무리 정밀히

그림을 그린다 한들, 자그마한 퍼플 몰들 기준 조잡하게 보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에 잠시 난관에 봉착한 김연풍이었지만,

그에겐 디폴트로 발동되는 여러 스킬들이 존재했다.

즉 고민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 이 말씀이었다.


‘다행히 백수 시절 자수 클래스를 수강해놓기도 했고.

나 참. 그 때에 감사할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네.’


게다가.


[근력 스탯 ’30’ 충족, ‘손기술’ 스킬이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NEW! 손기술 : 두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싶습니까?

근력을 올려 ‘제작’ 과 ‘집중’ 능력을 얻으십시오.

근력과 제작이 무슨 연관이 있냐고요?

인체는 생각보다 직관적이고, 또 신비롭습니다.

체/근력은 오벨리오의 모든 생활에 근간이 되는 스탯입니다.

신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마세요.]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 설명이었지만,

덕분에 수월하게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김연풍이 늘어놓은 재료들 중 ‘돋보기 안경’ 을 집으며

작업 착수에 들어갔다.


‘자칫하면 자색 고구마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퍼플 몰의 털은 강렬한 보라색이었고.

작가의 소관으로 이를 은은한 라일락빛 실로 표현할 예정이었다.


‘미니 바나나를 부케로 들었으니.. 대신 배경에 은방울꽃을

한아름 수놓는 것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바나나보다 더 달콤한 노란색 실,

꿀 떨어지는 커플의 눈이 되 줄 새카만 실,

고급스런 예복에 기품을 더해줄 반짝이는 실크사..


김연풍의 구상엔 막힘이 없었다.

바늘에 실을 꿰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를 놓는다.

평면을 표현할 땐 귀여운 스템 스티치 기법을,

입체자수가 필요할 적엔 포근한 실론스티치를.


상태창의 말마따나 인체는 신비로웠다.

오 년도 더 전에 배워둔 자수놓는 법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고,

오벨리오에서 새로 습득한 스킬은 이를 막강하게 보완해주었다.


‘예쁘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뻐근한 뒷목과 허리가 적어도 잘 시간은 훌쩍 넘겼다는 걸 알려왔다.


‘이 정도면 만족하겠지.’


마지막 매듭을 정리한 김연풍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이렇듯 자그마한 자수틀은 금세 풍성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보람찬 하루. 그것이 일상이 된 요즘, 김연풍은 바쁜 스케줄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내일이 기다려지곤 했다.


‘우리 챗니스랑 레미 것도 하나씩 떠놔야지.’


미소가 떠나지 않는 작업시간이었다.



***


- 오전 수업은 여기까지. 다들 고생했어요.


어제에 이어 능률 90%로 마무리한 미술 수업.

남은 10%은 과연 무엇일까 잠시 생각에 잠긴 김연풍이었지만.


- 여기서 뭐 해. 정원으로 나오라니까.


벨라가 낮은 목소리로 보채왔다.


엄마의 입김을 최대한 배제하자는 것이 벨라의 첫 번째 요구사항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재키가 벌써부터 동네방네 두 사람의 합작에

대해 떠벌려 둔 것이었다.

김연풍으로선 그 덕에 제임스의 퀘스트를 수주받는 뜻밖의 이득을 누리긴 했지만.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공모전에 참가한 벨라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재키가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마음 놓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뭔놈의 스케줄이 이렇게 빡빡해. 이래서는 작업 시간이 저녁 이후로

한정이 되잖아.


김연풍이 짜온 타임 테이블을 확인하며 벨라가 틱틱거렸다.


“이건 협상불가. 나는 벨라 너처럼 ‘여유있는’ 처지가 아닌지라.”


까칠하기 짝이없는 철부지 소녀였지만, 이런 그를 슬슬

다루는 법에 능통하게 된 김연풍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절대 먼저 꼬리를 내리거나 약한 소리를 하지 말 것.

겉포장지가 유별나게 견고할 뿐, 결국 엄마의 관심이 고프고

세상을 알고 싶어 하는 어린 아이일 뿐이었다.


‘가끔 왠지 짠해보일 때도 있단 말이지.’


- 그럼 이따 우리 집으로 온다는거지?


벨라가 못마땅하다는 듯 물어왔다.


“응. 바로 오늘 저녁부터 시작이니까 아이디어 짜두고.

원장님한텐 개인 교습이라 말씀드렸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김연풍이 오늘부로 급하게 추가한 저녁 시간 스케줄.

비밀 퀘스트 ‘벨라 아가씨와의 콜라보레이션’ 을 수락한 덕에

‘개인 미술교사’ 아르바이트가 해금된 것이다.


‘저녁 시간은 비워두는 게 원칙이지만.’


스마트칩 업데이트 이후 제공된 스케줄 스플릿 기능을

백분 활용한 김연풍이었다.

광산 아르바이트를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시간을

개인 미술교사 스케줄로 지정한 것.


‘이게 될 까 했는데. 되버렸지 뭐야.’


미술교사로서 부여된 시간은 두 시간 남짓.

그러나 이후 저녁 시간은 무엇을 하든 김연풍의 자유였다.

어차피 재키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했으니.

벨라와의 작업에 차질이 생길 일은 없을 터였다.


- 알았어. 참, 꼰대 꼭 씻고 와라.

광산 알바 끝나고 냄새 풍기며 들어왔다간 바로 쫓아내버린다.


‘그럼 그렇지. 측은하긴 개뿔.’


“걱정마.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왔으니까.”


김연풍이 한차례 쏘아붙이며 광산으로 향했다.



***


- 이, 이걸 정말 그냥 받아도 되는건지..


‘안면몰수’ 하고 부탁드린다던 제임스는 막상 선물을 마주하자

몸을 베베 꼬아보였다.

리본으로 곱게 포장한 바구니엔 자수는 물론

연유를 뿌린 특제 구운 바나나까지 한가득 담겨있었다.

오늘 김연풍의 광산 일정은 B존 채굴이었다.

필드에서 그를 발견한 제임스가 친히 땅을 파

연풍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작업하는 내내 엄청 즐거웠는걸요. 덕분에 녹슨 자수 실력에

기름칠도 좀 했습니다.”


민망해하는 제임스를 위해 김연풍이 너스레를 떨었다.


- 크흑. 한낱 퍼플 몰을 위해 이다지도 노력하는 인간이라니..

소문대로 역시 스톰 님은 엄청나게 친절하시군요.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할지..


‘이미 다 갚았는걸. 내가 받아가는 게 훨씬 크답니다.’


상태창을 떠올린 김연풍이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저 뿐만 아니라 여기 광산 모두에게

큰 도움을 주고계시잖아요.”


- 무엇보다, 이거 완전 플로럴 취향 저격입니다.

언제 와이프와 저녁 한 끼 꼭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자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제임스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두더지가 차려주는 저녁상이라.. 이거 기대된다고 하면, 좀 이상하려나.’


[NEW! 본드네 부부 : 소문난 잉꼬커플 제임스와 플로럴 본드.

둘은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유저와의 관계 역시 일심동체로 연결된다.

남편은 광산 일을, 부인은 자그마한 와인 바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아주 성실하고 귀여운 커플.

제임스의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열리는 비밀 인연이다.

좋아하는 음식 : 각종 구운 과일들 / 취미 : 애정행각 / 친밀도 : +15]


[Tip : 오벨리오의 주민 퀘스트는 ‘인간’에게만 한정되있지 않습니다.

동물들과의 인연을 맺어보세요. 상상도 못한 새로운 세계로

당신을 초대해 줄 것입니다.]


- 그럼 전 다시 굴 파러 가보겠습니다. 스톰 님, 정말 감사드려요.

조만간 꼭 연락드릴게요.


땅으로 뿅 사라지는 제임스 본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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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레미와 숲요정 23.04.27 37 1 12쪽
25 코코의 우물을 향해 23.04.26 41 1 12쪽
24 필드 앤 우드 23.04.25 44 1 12쪽
23 한밤중의 모험 (3) 23.04.24 46 1 12쪽
22 한밤중의 모험 (2) 23.04.22 53 1 12쪽
21 한밤중의 모험 (1) 23.04.21 54 2 12쪽
» 프랑스 자수 23.04.20 56 1 12쪽
19 퍼플 몰의 퀘스트 23.04.19 53 1 11쪽
18 예술의 눈 23.04.18 57 1 13쪽
17 방랑자 제이 23.04.17 61 1 12쪽
16 제야의 광산 23.04.15 63 2 12쪽
15 벨루아 아트 23.04.14 61 2 12쪽
14 드로잉 23.04.13 68 2 12쪽
13 아티 밸리 23.04.12 72 3 13쪽
12 작별 23.04.11 71 3 12쪽
11 재회 23.04.10 73 3 13쪽
10 통역 23.04.08 76 2 13쪽
9 반장 김연풍 23.04.07 81 2 14쪽
8 어학원 D반 23.04.06 82 2 12쪽
7 스마트칩 23.04.05 87 3 12쪽
6 오벨리오의 공작가문 23.04.04 98 2 12쪽
5 성장 23.04.03 109 3 13쪽
4 첫 아르바이트 (2) 23.04.02 114 2 12쪽
3 첫 아르바이트 (1) 23.04.01 133 4 12쪽
2 오벨리오의 흉가 23.03.31 18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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