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 - 어느 살인자와 학살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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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작품등록일 :
2023.04.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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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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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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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 - 110 (최초의 공화국 4)

DUMMY

 “쏴! 총알을 퍼부어! 탄약을 아끼지 마! 그동안 훈련한 성과를 보여줘!”


 보병대를 이끄는 유나가 고성을 지르며 빠른 사격을 독려한다. 초원을 가득 메운 총성마저 그녀의 외침을 가로막지 못한다.


 “커헉!”


 “아악!”


 10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탄환의 폭풍이 돌격하던 중기병대의 정면을 꿰뚫었다.


 이미 선두의 다수가 쓰러졌고, 뒤따라오는 2열과 3열까지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맨 뒤쪽의 5열마저 갑자기 들려온 총성과 쓰러지는 동료들에 당황한 조짐이 보인다.


 “해냈다! 갑옷이 뚫렸어!”


 “할 수 있어! 이길 수 있다고!”


 메케한 포연 뒤로 강대한 위용을 선보이던 중기병대가 쓰러지는 것을 본 병사들 사이에 환호성이 퍼져나간다.


 제국의 중기병은 그 수가 적은 만큼 타국보다 훨씬 더 튼튼한 중갑과 큰 말을 사용한다.


 그들의 중갑은 탄환을 언제까지고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5~8발 안쪽에선 확실한 방탄 성능을 자랑한다.


 그러나 유격전을 수행하는 경보병들이 사용하는 소총과 탄환이라면 그들의 중갑을 충분히 일격에 꿰뚫을 수 있다.


 이전부터 정우는 이러한 총기와 탄환을 몰래 긁어모았다. 그 수는 적어도 1,500명의 병사들을 무장시킬 정도에 달한다.


 군수품이라는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둑한 금편 주머니와 적절한 ‘설득’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기 마련이다.


 그가 몰래 무장을 준비해온 이유는 단 하나, 여차하면 레흐와 붉은머리에게 대항할 ‘수단’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를 배신하기 위해 모아온 무장이,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될 줄은 정우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 안 끝났어! 들뜨지 마! 아직 절반 넘게 달려오고 있잖아!”


 유나가 고양된 사수들을 진정시킨다. 재장전이 어마어마하게 오래 걸리는 총기인 만큼, 조준이 흐트러졌을 때의 위험도 매우 크다.


 “장전도 쉬지 마! 지금 저기서 돌격하고 있는 놈들을 여기서 모조리 끊어내야 해!”


 “재장전! 재장전! 빨리 움직여!”


 처음 전장에 나선 충격과 혼란, 고양감에 잠시 얼어있던 병사들 역시 유나의 일갈에 정신을 차리고 손을 바삐 움직인다.


 2천의 보병 중 총병은 단 500에 불과하다. 전면전에 쓸만한 화기는 모조리 레흐가 맡은, 북부의 포타첸 전선으로 보냈다.


 정우에게 주어진 전력은 3천의 경기병과 2천의 보병이 전부였다.


 주어진 장비 역시 전원을 무장시키기에도 빠듯하다.


 거기에, 정우는 개인의 무력과 전투 경험이 풍부할 뿐인 전사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에게 지휘 경험은 30명이 안 되는 사냥꾼이나 배달부 무리를 이끌어 본 것이 전부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전투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집단자살행위라 평가받는다.





 그러나, ‘공포’와 ‘파괴’, 혼란을 무기로 삼는 그의 천성은 예상외의 곳에서 효용을 보였다. 그의 ‘사냥꾼’으로서의 면모가 그에게 ‘길’을 보여주었다.


 거대하고 강대한 제국군은 곰이요, 자신이 인솔하는 병사들은 사냥꾼이다.


 그 뒤론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이 전투는, 그저 거대한 ‘사냥’일 뿐이다.


 “잘했어! 유나! 앞으로도 계획대로 간다!”


 정우가 대열 가운데의 유나에게 크게 소리친다. 달리는 말 위의 짧은 순간에도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신뢰를 보낸다.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거야! 초짜같이 굴지 말라고!”


 유나 역시 씩 웃으며 주먹을 들어 보인다. 광기와 절규가 휘몰아치는 전장에서도, 때론 인간성이 꽃을 피운다.





 “돌격! 돌격! 상대는 경보병이다! 대열 안에만 들어가면 저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


 중기병대의 지휘관이 흔들리는 대열을 바로잡으려 호령한다.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의 후예답게, 단 1번의 일제사격으론 흔들리지 않는다.


 사십 평생 대규모 회전을 4번은 겪었고, 작은 싸움은 수도 없이 넘어왔다. 몇번은 승리했고, 몇번은 패배했다.


 그 경험들은 그녀를 강하게 단조해 냈다. 부하들이 쓰러지는 도중에도 무엇에 당했는지 빠르게 파악해낼 정도로 말이다.


 중기병의 갑옷을 꿰뚫을 수 있는 건 경보병의 사격뿐이다.


 “재장전하는 틈을 놓쳐선 안 된다! 지금 돌격해서 진형을 붕괴시켜야만 한다!”


 경보병의 소총은 재장전에 길면 3분까지도 걸린다. 설령 숙련된 사냥꾼이라 해도, 50초 아래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녀의 판단은 지극히 정확하고 합리적이다. 상대의 대열엔 얇은 도끼창의 벽만이 존재할 뿐, 그 외의 호위병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400이 넘는 병력이 남았다. 탄환을 쏟아낸 경보병 대열 정도라면, 남은 병력의 돌격만으로도 일거에 분쇄할 수 있다.


 상대와의 거리는 대략 250보. 전력으로 돌진한다면 못 해도 1분 안에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만약 여기서 물러나 보병대의 지원을 기다린다 해도, 그 시간 동안 후방에서 사격이 날아온다.


 지금은 나아가야만 할 때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고향 땅을 위하여!”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지휘관의 호령에 고무된 중기병들이 말에 박차를 가한다. 그들 역시 역전의 용사들이다. 잠시 당황했을 뿐, 상황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서 물러섰다간 동료들이 위험해진다. 그동안 실전을 거치며 전열이 무너졌을 때 어떤 참극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본 그들이다. 쉽사리 물러설 순 없다.


 “커헉!”


 “크..흡!”


 “제기랄! 율희! 주!”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다시 한번 일제사격이 그들을 덮쳤다. 조금 전의 일제사격에서 20초도 채 흐르지 않았다.


 일체의 회피기동 없이 돌격해오던 그들의 대열이 다시 한번 탄환의 폭풍에 휩쓸린다.


 몇 남지 않았던 1열은 완전히 붕괴해버렸고, 2열과 3열의 기병들 역시 태반이 쓰러졌다.


 “말도 안 돼!”


 “크윽! 어서 빠져나가야..!”


 남은 병력은 쓰러진 말과 기수들과 뒤엉켜 돌격력과 기동력이 크게 줄어버렸다.


 몇몇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나머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기까지 한다.


 정예병인 만큼,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공격을 받았을 때의 충격이 더욱더 강하게 다가온다.





 “차탄 준비! 2열 뒤로 빠져! 3열 앞으로!”


 공격의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경보병을 일반적인 보병을 다루듯 5열 순차 사격을 시행하도록 한 것이다.


 제정신 박힌 지휘관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다. 장전 시간이 느린 소총으로 순차 사격을 해봤자 경기병들의 포위 습격에 좋은 먹잇감이 돼버린다.


 무엇보다, 상대 보병대가 근접전을 걸어올 때 일방적으로 도륙당한다.


 긴 사거리를 이용한 선제사격으로 극초반에는 상대보다 더 나은 전투력을 보여줄 수 있겠으나, 언제까지고 거리를 유지할 순 없다.


 “..무슨..일이란말이냐..”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에 지휘관 역시 넋이 나간 채 쏟아지는 탄환의 폭풍을 마주한다.


 “커..헉!”


 탄환이 그녀의 어깨를, 가슴을, 복부를 꿰뚫는다.


 인근의 중기병들 역시 그녀와 같은 최후를 맞이한다.


 몇몇은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아채고 아수라장을 빠져나가려 말머리를 돌려보지만, 역시나 쏟아지는 탄환에 목숨을 잃는다.


 500에 달하던 중기병대가, 단 2분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모조리 쓰러져 격파되었다.





 “제기랄! 우리 중기병대가 모조리 당했습니다!”


 “나도 봤다! 빌어먹을..! 이놈들이 끝까지 붙어서는!”


 우회기동을 하던 경기병대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본진에서 보급을 마친 정우의 기병대가 끊임없이 그들을 추격하고 있다.


 대장과 부관이 내뱉는 욕지거리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이놈들 말 모는 실력이 왜 이런 거야?!”


 “말로만 들었지, 정말로 이 수준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올레스니카의 너른 초원에서 자란 말들은 빠른 속도로 정평이 나 있다.


 사람들 역시 말을 모는 것에 통달해있다.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죽는 유목 부족들은 당연하거니와, 농경민들 역시 이동을 위해 말을 모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 그들을 속도와 선회력 하나만을 보고 훈련했다. 아무리 제국의 정예병이라 한들, 쉽사리 떨쳐낼 순 없다.





 “지금이라도 기동을 포기하고 본대와 합류해야 합니다. 이대론 죽도 밥도 안 됩니다!”


 “그랬다간 우릴 따라오는 저놈들이 우리 보병대를 건드리겠지. 큰 피해는 없겠다만, 가만히 전장을 지켜보는 것보단 이게 낫다.”


 중기병대의 전멸이라는 대사건에 잠시 조바심을 느낀 경기병대 대장이었으나, 아직 상황은 변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마음을 추스른다.


 단지 일거에 포위 섬멸한다는 구상이 틀어졌을 뿐이다. 여전히 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저쪽 보병은 2천 정도. 그것도 1,500이 경보병이지. 우리 보병대는 지금 진군하고 있는 것만 해도 1만 6천이 넘는다. 방진의 힘 싸움으로 넘어가면 우리가 이겨.”


 대장이 잠시 뒤를 돌아본다. 말을 바꿔 탄 탓에 적 기병대에게선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아군은 1천, 추격하는 적은 2천. 숫자에서도 밀리는 상황이다.


 “거기에 아직 후퇴 신호도 내려오지 않았다. ‘적암백’께서도 우리가 저놈들을 묶어두고 있다는 것만 해도 이득이라 판단하신 거지.”


 대장이 말에 박차를 가한다. 그가 결심을 굳혔다.


 “이대로 계속 말을 달린다. 저놈들이 등을 보일 때까지. 그때가 되갚아줄 때다.”





 “칫, 중기병대가 전멸해버리다니.. 예상외의 전술을 쓰는군. 저놈들.”


 보병대의 후방에서 전진하던 ‘적암백’ 건흥이 혀를 찬다. 그의 얼굴에선 당혹감과 함께 미묘한 비웃음이 드러난다.


 오로지 중기병을 잡는 것과 선제타격에 집중한 나머지, 보병의 기본인 근접전을 포기해버리는 전술은 미치광이의 발악일 뿐이다.


 귀중한 부하, 특히나 양성이 어려운 중기병의 손실은 뼈아프지만, 여기서 적 병력을 완벽히 잡아내기만 한다면 나쁘지 않은 전과다.


 물자 역시 확실히 본대에 전달한다면, 성공이라 부르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보병대, 포위진을 취한다! 중앙에서 양익으로 각각 1천을 더한다. 양익은 언제든 발검 및 착검할 준비를 해둬라.”


 이번에도 적암백은 정석적인 전술을 들고 왔다. 숫자에서 앞서는 만큼, 기병대의 도움 없이도 포위전을 치를 수 있다.


 중앙의 얇은 전선으로 압박하면서, 양익의 대열을 길게 늘여 완전한 포위를 노린다.





 “이게..무슨!”


 그러나, 이번에도 적의 보병대는 기상천외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때다! 산개! 다들 계획했던 집결지점으로 흩어져!”


 밀집대형을 이루던 경보병들이, 본진과 보급품을 내버려 두고 일거에 흩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게 진짜라고. 귀족 나으리. 지옥문에 들어온 걸 환영하지. 그동안 겪은 ‘고상한’ 전장하곤 다를 거야.”


 흩어지기 시작한 보병대를 본 정우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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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붉은 손 - 119 (르브셰 공성전 3) 24.06.08 2 0 11쪽
119 붉은 손 - 118 (르브셰 공성전 2) 24.06.04 4 0 12쪽
118 붉은 손 - 117 (르브셰 공성전 1) 24.06.01 5 0 12쪽
117 붉은 손 - 116 (까마귀 무리) 24.05.30 6 0 11쪽
116 붉은 손 - 115 (제국군 군무회의) 24.05.28 6 0 12쪽
115 붉은 손 - 114 (승전보) 24.05.25 7 0 12쪽
114 붉은 손 - 113 (최초의 공화국 7) 24.05.22 5 0 11쪽
113 붉은 손 - 112 (최초의 공화국 6) 24.05.18 7 0 11쪽
112 붉은 손 - 111 (최초의 공화국 5) 24.05.14 7 0 11쪽
» 붉은 손 - 110 (최초의 공화국 4) 24.05.11 8 0 11쪽
110 붉은 손 - 109 (최초의 공화국 3) 24.05.04 7 0 11쪽
109 붉은 손 - 108 (최초의 공화국 2) 24.04.30 9 0 12쪽
108 붉은 손 - 107 (최초의 공화국 1) 24.04.26 9 0 11쪽
107 붉은 손 - 106 (공화파 탄압 5) 24.04.24 8 0 11쪽
106 붉은 손 - 105 (공화파 탄압 4) 24.04.20 8 0 11쪽
105 붉은 손 - 104 (공화파 탄압 3) 24.04.19 9 0 11쪽
104 붉은 손 - 103 (공화파 탄압 2) 24.04.16 12 0 11쪽
103 붉은 손 - 102 (공화파 탄압 1) 24.04.10 12 0 11쪽
102 붉은 손 - 101 (막간의 이야기 4) 24.03.31 13 0 11쪽
101 붉은 손 - 100 (막간의 이야기 3) 24.03.28 11 0 11쪽
100 붉은 손 - 99 (막간의 이야기 2) 24.03.22 13 0 11쪽
99 붉은 손 - 98 (막간의 이야기) 24.03.21 11 0 11쪽
98 붉은 손 - 97 (순혈당 - 6) 24.03.17 10 0 11쪽
97 붉은 손 - 96 (순혈당 - 5) 24.03.12 10 0 11쪽
96 붉은 손 - 95 (순혈당 - 4) 24.03.09 11 0 12쪽
95 붉은 손 - 94 (순혈당 - 3) 24.03.05 11 0 12쪽
94 붉은 손 - 93 (순혈당 - 2) 24.02.27 10 0 11쪽
93 붉은 손 - 92 (순혈당 - 1) 24.02.21 11 0 12쪽
92 붉은 손 - 91 ('흑의백' 나탈리아 - 6) 24.02.1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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