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유희

천사종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머리 위로 떠오른 원. 광륜의 색이 푸른 색인가 아니면 금빛의 색을 띄는가.
'푸른 광륜은 멸악 유구한 유희의 권속들. 금빛의 광륜은 유스테스의 권속이다.'
지금 눈 앞에 있는 건 금빛의 광륜. 그러면 저건 유스테스의 권속인가?
아니 그 녀석이라면 굳이 이런 던전까지 보내서 나를 만나려하지 않을 거야.
애초부터 그 녀석은 성역에서 조용히 침묵한 체, 자신을 이길 자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
"어이 천사. 그 같잖은 금빛의 광륜은 집어치우지 그래?"
화아악ㅡ!!
약간의 짜증이 섞인 말투와 함께 그의 뒤로 푸른 불꽃이 작렬한다.
화마(火魔)와 같은 푸른 불꽃은 금방이라도 천사를 집어삼킬 것처럼 강렬했지만, 천사는 미소를 거두지않고 그들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그대들의 신에게서 나온 대리인일 뿐입니다.
조금 무례하게 느끼셨다면 용서해주시길.}
"푸른 광륜. 적어도 우리를 맞이하려 왔으면 제대로 된 '소속'을 밝혀야 되는게 아닌가?
아이테르나의 작은 권속이여."
사아아..
그 말에 천사는 미소를 거두었다.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점점 무거운 중압감이 느껴진다.
아니.. 말은 천사지 세상에 천사 따위는 없다. 그냥 형태가 다른 악마만이 존재할 뿐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거세군.'
만일 누군가 지금 눈 앞에 천사와 싸울 거냐고 묻는다면 난 거절할 거다.
눈 앞에 있는 천사는 세 쌍의 날개를 지닌 '상급 천사'다. 엄연히 고위급 천사이자 신의 사자로써 명령을 받고 온 상태,
싸워서 이긴다해도 난 결국 두번째 멸악인 유구한 유희와 척을 지게 된다.
{감히 가벼운 그 입술과 혀로 그 분의 진명을 언급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다가는 그 실낫같은 명줄도 끊길겁니다.}
따악!
천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금빛의 광륜이 부숴지고 새로운 광륜이 생겨난다.
푸른 별과 같은 광륜. 특유의 청록색을 지니는 유구한 유희의 상징과 같은 색.
"나 역시 언행을 좀 가볍게 했군. 하지만 구태여 이 곳까지 찾아온 걸 보면 목적은 있을 터.
그럼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이지 천사?"
가능하다면 대화하고 싶지않다. 평소였다면 대화로 정보를 캐낼 마음이 들었겠지만,
어째서인지 대화할 마음은 커녕 그냥 빨리 눈 앞에서 없어지기를 바랬다.
'그리고 위에 앉은 저 마수.. 저건 본래 이 던전의 보스다.'
전에 본 그 거체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큰 점을 미루어 보아 최소 2급 이상의 대형 마수다.
던전의 보스조차 상처 하나없이 토벌했다. 그럼 이 던전 마수들도 이 천사가 토벌 한것이겠지.
ㅡ우리가 빠르게 이 곳까지 올 수 있도록.
{저는 그저 그 분의 하찮은 새. 하나 저로써는 이해하지 못하나 그 분은
당신에 대해 흥미를 가지시더군요.}
"왜 나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거지? 그 자에 비하면 난 아직 미천하고 무능한 개미에 불과하지 않나?"
{부패.}
천사는 천천히 손짓하며 하나의 손을 그린다. 창백하고 거친 검은 손 그건 추악한 부패의 손이였다.
{부패는 이전 당신과 만남으로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다른 위대한 존재들중 처음으로 인간인 당신에게.}
검은 손 흡사 시체가 썩어가는 색과 비슷하나 그저 검을 뿐인 손.
추악한 부패는 다른 멸악들처럼 강대한 힘을 지녔지만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무언가를 손에 넣고 싶은 강렬한 의지나 자신 휘하의 부하들이 없다는 것.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그가 나에 대해 흥미를 보이는게 너희들한데 무슨 의미가 있지?"
{모르는 척 하지 마십시오. 그 위대한 존재인 부패가 흥미를 가질 정도라면, 필시 무언가 당신에게 있을 터.
그게 무엇인지 순순히 대답하는 게 좋을겁니다.}
꽤나 강압적인 말과 함께 다시 깔리는 중압감. 대답하지 않는다면 즉시 공격할 기세였으나
이진범은 그에 대답하듯 푸른 불꽃을 작렬 시켰다.
"순순히라.. 뭐 대답하지 않는다면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스릉ㅡ
이진범은 검까지 뽑아들었다.
부패가 자신에게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균열의 열쇠 엘리시움때문.
하나 이는 멸악이 현계로 내려온 결정적인 이유이기에, 결코 다른 멸악에게까지 알려저서는 안되었다.
"올 거면 와라. 하나 온다면 즉시 이 녀석들에게 걸린 현혹을 풀고 싸워주지."
상대는 상급 천사. 이곳에 있는 모든 마수를 상처하나 없이 죽인 괴물이지만, 그렇다고 못싸울 상대는 아니였다.
최악의 경우 유구한 유희와 척을 지니게 되겠지만, 엘리시움이 다른 멸악에게 알려지는 것보다는 나았었다.
{...이 정도면 되겠군요 질문은.}
따악ㅡ!
또 다디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에 짙게 깔린 중압감이 사라진다.
{그 분의 말씀대로 확실히 대답하려 하지 않으시군요. 그러면 이번에는
진짜 제가 이 곳에 온 이유인 그 분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날 시험한건가?"
{무례를 느끼셨다면 사죄드립니다. 이건 제 주인이신 그 분께서 명하신 일이었습니다.}
이진범은 짙게 한숨을 내뱉었다. 진심으로 천사에게 아니 분명 위에서 지켜보고 있을
유규한 유희에게 놀아난 거 같았다.
"그래 그럼 내게 전할 말은 무엇이지?"
스르륵..
천사는 조용히 눈을 감고 허공에 손가락을 올린다. 그러자 허공 아래로 어떤 새하얀 손이 내려왔고
마치 교감하듯 서로 손을 맞잡는다.
{ㅡ태고의 악의 앞에 쓰러져. 다시 일어선 자여.}
말이 하나의 벽화처럼 내 눈 앞에 빛으로써 새겨진다.
{ㅡ다시 돌아온 감성은 어떤가? 새롭게 기회가 생겨 기분이 좋은가? 아니면 다시 복수심이 끌어올리는가?
아니 본래 그대가 ㅁㅁ한것은 본인의 의지가 있었겠지만, 결국 나의 힘 덕분이였으니 필히 혼란스럽겠지.}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유희다. 저건 천사가 아닌 유구한 유희의 정신이다. 저 특유의 말투와 말에서 느껴지는 온화함.
저건 유희의 정신이 천사의 몸에 내려온 것이다.
{ㅡ말이 사납군 하지만 좋다. 그것이 과거 불굴자라 불리우던 자의 말투니까.}
"나에 대해 알고있는 건가 멸악 유구한 유희!!"
이진범은 적의를 내뱉었다. 불굴자 그건 자신이 회귀전 멸악에게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절망 속에서도, 무릎은 꿇어도 결코 쓰러지지 않았기에 지어진 이명이였다.
어째서 유구한 유희가 내 이명을 알고있는거지? 분명 현재로써 내 회귀사실을 아는건 나와 조율자.
그리고 내 회귀를 직접 목격한 절망의 마왕 뿐일텐데.
싱긋.
천사는 아니 유희는 혼란스러워하는 이진범을 보며 미소지었다.
{ㅡ알다마다.. 두번째 삶은 정녕 만족스러운가? 불굴자 아니 ㅁㅁ자 이진범이여.}
"뭐..뭣..?!"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시작한다.
유구한 유희 멸악중 절망의 마왕 바로 아래인 두번째 멸악은 이미 그가 회귀한 걸 알고있었다.
{ㅡ그대는 이전에 날 한번 죽였었지. 난 아직도 내 몸에서 빠져나오는 별들과 그 풍경을
잊지않고 있다. 그 불길하고 검은 멸망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을 때는 정말로 그조차 죽일 수 있겠다 생각했었지.}
천사는 유희는 마치 가녀린 어린아이를 대하듯 다가와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ㅡ하지만 실패하고 패배했지. 결국 지금처럼 제대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오히려 둘로 나뉘었다.
한쪽은 정신이 온전하나 육체를, 다른 한쪽은 정신은 불완전하나 온전한 육체를 얻었다.}
이진범은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가 어째서 자신이 회귀한 사실을 아는지 왜 자신에게
이렇게 대하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움만이 가득찼다. 하나 그의 몸은 혼자가 아니였다.
[잠깐 몸을 빌리마 이진범.]
스르륵...
몸에 검은 기운이 서리기 시작한다.
{ㅡ실패자이자 패배자 이진범이여. 그대가 진짜 추구하는 건 무엇이지?
과거의 실수를 번복하지 않는 건가? 재빨리 신체를 강화해 모든 멸악을 죽이는 건가?
그리고 그게 진심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입 닥쳐라 아이테르나.]
화아악ㅡ
거센 불길과 함께 그는 유희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의지가 꺽여가는 이진범의 정신을 내버려두고 그의 육체를 잠시 빌려갔다.
한때 칼을 겨누었던 적을 향해 적의를 내비쳤다.
{ㅡ주인이 바뀌었군. 그래 그 표정이야말로 날 죽인 장본인 당신의 얼굴이지.}
"같잖은 말들로 날 휘둘리게 말아라 아이테르나. 더 이상 나를 우롱한다면 지금 당장 썰어주겠다.]
차갑게 식은 그의 분노가 검에 담겨 뽑혀진다. 그 분노는 과거 유희의 목조차
배어버렸던 가장 순수한 악의(惡意).
{ㅡ푸흡..! 크하하하하하!!!}
목에 칼이 겨누어지고 있음에도 그녀는 웃었다. 미친 사람처럼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본 관객처럼
그를 비웃었다.
{ㅡ이미 한번 죽은 주제에.. 아직 저희에게 담긴 악의와 그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네요.
이미 그 육체는 자신이 아닌 자신에게 넘겨주고서 지켜보기만 하는 방관자 주제에. 뭐가 그렇게 잘나신 거죠?}
"방광자라.. 그래 네 눈에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
그의 검이 떨리기 시작한다.
{ㅡ순순히 인정하시는건가요? 뭐 좋아요.. 저 역시 시간이 썩 많지 않으니 한가지만 물어보죠.}
그녀는 그의 떨리는 손을 잡아 내려놓고 얼굴을 가까이 붙혔다.
{ㅡ당신.. 진짜로 원하는 게 뭐죠?}
"내가 그딴 것에 대답해야 할 이유가 있나?"
{ㅡ있죠. 주변에 있는 저 아이들은 저에게 있어 훌륭한 카드인걸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다름아닌 그의 뒤에 있는 동료들.
그녀 역시 빙의한 상태이기에 제대로 된 힘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한순간에 뒤에 있는 셋을 죽이는 건 너무나 간단했다.
"...네놈들을 모조리 찢어죽이고 동료를 살리는 것. 그건 너도 알지 않나?]
그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가 바라는 건 그 대답이 아니였다.
{ㅡ아니..당신이 ㅁㅁ하면서까지 진정으로 소망하는 것이요.}
멸악인 그녀가 그에게 물은 것은. 그가 회귀하고나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 모든 멸악을 쓰러트린 그 뒤에 얻어야 하며 이루어야 하는 '꿈'이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나의 소망은 그때나 이전이나 변함없이 너희를 끝내는 것 .그거 하나다.]
{ㅡ흠.. 그거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점차 변화하고 있어요.}
"또 그 잘난 혓바닥으로 날 농락할 샘이냐?]
{ㅡ아니요 하지만.. 아마 이진범.. 그가 당신을 변화시켰겠지요. 본래 같으면 빙의하는 즉시 절 배었으면 되었을텐데 그러지 않았잖아요?}
그 말에 그는 잠깐 고개를 숙이고 잠깐 사색에 빠졌었다.
그 말대로 과거 자신이였으면 검으로 목을 내리쳐 그를 쫓아냈을 것이다.
애초부터 대화할 이유도 없겠거니와 굳이 적인 상대와 긴밀하게 이야기해서 좋을 게 있는가?
'ㅡ저는 그 누구도 져버리지 않을겁니다.
적어도 후회되지 않은 그것이 제 목숨을 내던지는 행동이여도 저는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문득 떠오른 말. 그건 이진범이 용들에 의해 허상에 사로잡혔을 때였다.
고작 용이 만들어낸 자아 하나 구하겠다고 스스로 목숨을 걸었었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자신은 구하기는 커녕, 허상에 몇주간 갇혀 결국 그 아이의 자살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에도 그는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갔으나 다른 결과를 맞이했었다.
콰가가가각ㅡ
용의 시련으로써 이용당했어야 할 혈족의 황자를 구했다.
전신이 끔찍한 동상에 걸려 몇주간 움직이지 못할 상태에 걸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와 어울렸다.
'ㅡ나를 죽여줄 수 있나 마지막 인류여.'
멸악이 나타나고 모든 혈족이 죽고 미쳐버린 피의 황제가 내게 남겼던 말이였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자식이 죽자 용에게 선전포고를 가했고, 그 결과 본래라면 빠르게 탄생했어야 할 '용사'가 늦게 나왔다.
그 결과 용사는 용신을 죽이는데 실패했다.
'가 망자들을 상대할테니 이진범 넌 저 빌어먹을 주교의 목을 노려.'
'알겠으니 한번 거하게 얼려봐.'
하지만 그는 황자인 케인을 살렸고, 그 덕분에 주교와 싸울때 무리없이 그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던 조율자마저 새롭게 심장이 뛰는 느낌이였었다.
'다시 생각하니 나 역시 네게 영향을 받기 시작했군.'
회귀하고 나서 난 네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랬다.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옛 동료들과 만나 인연을 쌓고 빠르게 강해지기를 바랬다.
압도적인 힘. 그거야 말로 과거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멸악을 죽이는 가장 빠르고 확률이 높은 방법이었기에
그는 그걸 소망했었다.
'하지만 모든 멸악을 죽이면 그 뒤는 무엇이지..?'
추악한 부패,유구한 유희를 포함한 8명의 멸악과 절망의 마왕까지 죽이면 그 뒤는 어떻게 되는거지?
아니.. 그 전에 자신은 존재할 수 있는건가.
"후.. 이딴 걸 고민하고 있다니 나 역시 물러졌군.]
그는 머리를 짚으며 검을 다시 들었다. 악의도 적의도 없는 칼날이 자신을 비춘다.
공허하면서도 영혼하나 없는 눈. 지금의 이진범과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였으나, 그는 자신과 다른 길을 걸어갈거다.
"나는 네 힘 덕분에 회귀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 불완전하게 둘로 나뉘어졌지.
그러나 이건 축복일지도 몰라.]
{ㅡ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오히려 지금의 그 몸보다 더 강해질 수 있지 않나요?}
"그렇다해도 지금처럼 뒤에 이 녀석이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나 홀로 독식해 주변에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지금보다 강해졌을 수는 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성을 유지하고 주변 사람을 구하면서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건 불굴자이자 멸악 살해자라 불리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소망을 물었나? 그래 그건 여전히 너희를 죽이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하나 이전에는 오로지 멸악에 대한 종말이라는 결과만을 바랬다면,
지금은 어디까지나 과정에 불과했다.
"아마 그때쯤이면 난 없을지 모르지.. 하지만 이 녀석이 아니 이진범이.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했으며, 구한 자들에게 둘러쌓여 나와 같은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써 살기를 바란다.}
그 말에 그녀는 유구한 유희는 무표정으로 침묵했다.
달라졌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이미 그는 자신이 알던 불굴자 이진범이라 불리던 자가 아니였다.
스르륵...
"허억...!"
다시 이진범의 정신으로 되돌아온다. 몸이 버틸 수 있는 빙의 시간이 지나자 그에게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ㅡ...그 말만 남기고 또 들어가는 것이는 건가요? 뭐 좋아요. }
그의 주변에 신성력이 휘감아지자 두통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이..이게 무슨 짓이냐!"
{ㅡ착각하지 말아라. 이건 단지 그가 내게 건낸 대답의 값이니.}
그녀는 말투를 바꾸었다. 아직 그는 자신에 비하면 한참이나 약한 인간에 불과했지만,
과거 자신을 죽인 불굴자는 그에게 자신의 모든 걸 걸었다.
{ㅡ원한다면 빼앗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런 선택을 내린 거죠 불굴자.}
파직..파직..!
점점 천사의 육신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조율자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도
거의 없어지기 시작한 거다. 멸악으로써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것도 그녀에게 있어 일종의 '유희'였기에 다시 미소 지은 체 이진범을 내려다 보았다.
{ㅡ너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이진범.
지금 니 옆에 있는 두 아이. 그 중 저 금발의 여자 아이는 네 힘을 빠르게 눈치채게 될 것이다.}
"또 날 혼동시킬 샘인가?"
{ㅡ거짓말로 듣고싶다면 들어라. 하나 저 아이는 얼마안가 새로운 별을 품을 것이고. 넌 저 아이에 의해 끔찍한 일을 겪게 될 터이니.}
천사의 주변으로 점점 빛이 쌓이기 시작한다. 허공 위에서 뻗어진 손은 점차 사라지고,
그 뒤를 이어 천사의 형체마저 없어진다.
{ㅡ불굴자. 어디 한번 깊은 칠흑 속에서 다시 발버둥 쳐보시죠.. 그것도 제게는 그저 하나의 '유희'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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