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유능했던 악당의 2회차ㅤ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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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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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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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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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얀센 폰 비텐베르크

DUMMY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이야기지.


"자크. 우리 아이 이름은 자크라고 해요."

"그럼 내 성을 따 자크 피에트로인가. 멋진 이름이오."


나는 평범한 마을에, 평범한 부부에, 평범한 아이로 태어났네.


유아기의 아장아장 걷는 연습부터 글을 익히기까지 영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내게 이 세상은 별천지였어.


"진짜라니까? 마을에 마법사가 왔어! 축제에서 폭죽을 터뜨릴 거래!"


판타지였지.


"폭죽 만드는 사람을 그냥 마법사라고 호들갑 떠는 거 아니야?"


새 고향이었고.


"아니라니까? 진짜 마법사님이라고!"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어."


새 가족이었어.


"아씨! 자크 오빠는 맨날 그따위야!"

"임마, 이거 오빠한테 말버릇 보소?"


여동생에게 이끌려 도착한 광장에서 나는 진짜 마법을 보았지.

테크닉과 특수한 도구로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라 진짜 마법 말이야.


솔직히 처음 볼 때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흔히 있는 호들갑이라고 생각했다네.


하여튼, 상상해보게.

소드 마스터니 마법이니 하던 게 공상의 산물이었던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 진짜 판타지를 목격했을 때의 감동 말이야.


난 마법사가 되고 싶었어.

소드 마스터도 되고 싶었지.

할 수 있다면 그 대단한 양반들을 만나보고 싶었네. 누구나 그랬을 거야. 평범했어.


평범한 마을사람 A가 그런 존재를 만나는 게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거란 걸 생각지 못했던 거지.


「한 명도 살려두지 마라!」

「누구도 이곳을 살아 나가선 안 된다!」


반나절도 안 걸리더군. 내가 알던 세상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이.


「단장님! 이쪽 구역은 청소를 완료했습니다. 소각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 철저하게 불태우라는 명령이다. 우리는··· 명령대로 해야만 해.」


명분은 마을에 퍼진 역병을 외부로 반출하지 않기 위해서, 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유였지.


훗날에야 알았네.

변경의 기사단장이었던 남자.

내가 살던 마을을, 가족을, 친구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던 그 남자가 후일 소드 마스터로서 황실의 기사단장이 되는 얀센 폰 비텐베르크라는 것을.


말했지?


평범한 사람이 초인을 만나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거라고.


* * * *


다섯 평 남짓의 요양실. 귀족의 개인실이라기에는 비좁고 가재도 형편없지만, 그녀의 경제사정을 생각하면 상당히 무리한 게 틀림없는 호화로운 방이다.


그래도 이 요양실에 갇혀 사는 환자의 신분으로 볼 때, 아무리 크게 봐줘도 부족하다는 감상이나 나올 테지.


환자의 정체는 전 황실 기사단장이자 검술명가 비텐베르크의 가주. 그리고 제국이 자랑하는 마스터급의 강자, 얀센 폰 비텐베르크였으니까.


"직접 마주하는 건 12년 만이군, 백작"

"흐흐, 내겐 어제처럼 선명하다네."

"정신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쭉 지켜봤네. 사실인지 확인해보려고."

"12년 동안이나? 직접?"


백작이 놀란 표정을 하자 당연히 부정한다.


"외주 줬네. 난 바쁜 사람이야."


방금 나간 한나처럼, 나는 언제나 백작의 주변에 감시자들을 두었다.

그가 정말로 제정신이 아닌 건지, 가문이 몰락해가는 과정에도 그가 이를 방치하는지.


하지만 그는 정말로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다.

아무리 황실 기사단장 직위에서 해임되었어도 그간 쌓은 인맥은 반석처럼 두텁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소드 마스터인 이상 백작의 가치는 크게 퇴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문은 몰락하고 재산은 방계들에게 빼앗겼으며 하나 남은 직계후손은 빈곤에 허덕이며 제 아비를 부양했다.


그는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맞았다.


"드디어 날 죽이러 온 건가?"

"그럴 리가. 늙고 병들었다곤 해도 왕년의 소드 마스터를 내가 어떻게 죽이겠나. 그러려면 암살자라도 보냈겠지."

"그것도 그렇군. 커피 마시겠나?"


백작은 손으로 요양실의 탁자에 놓인 커피포트를 가리켰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손수 커피 원두를 갈며 뜨거운 물을 부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대접하는 것처럼.


"기억나나? 막 파샤 왕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사관학교에 방문했을 때. 그때가······."

"13년 전이었지."

"맞아. 그때, 참 대단한 천둥술사와 싸운 다음 해였어. 미안하네. 내 그간 정신이 온전치 못한 탓에 시간 감각이 모호하네."


그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을 위한 게 아니었다.


"엘리시아 양 말이야. 잘 컸더군. 올곧고, 훌륭하게 자랐어."

"아, 엘리. 내 딸······."

"자네가 온전치 못한 동안 그 아이가 홀로 가문을 이끌어왔지. 거덜 나는 건 막지 못했지만 말이야."


백작은 슬픈 눈으로 커피를 내려놓고 흔들의자에 앉았다. 회한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가문의 원수일 내게 묻는다.


"엘리는··· 지금 몇 살인가?"

"스물다섯이네. 이제 어엿한 처녀지."

"그렇군. 벌써··· 벌써 그렇게 되었어."


우리는 12년 전, 열셋의 엘리시아를 기억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런 아버지가 데려온 생도에게 눈을 반짝이던 무구한 아이를.



"고맙네."

"무엇이?"

"내 딸을··· 해치지 않아 줘서."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백작의 가녀린 목을 꺾어도 풀리지 않을 해묵은 분노 속에서도 엘리시아는 그 대상이지 않았다.

백작과 나의 골짜기처럼 깊은 원한에서 그녀만큼은 죄가 없었으니까.


"우리의 원한 관계는 우리끼리 끝내야지. 제삼자를 끌어들일 생각은 없네."


미래의 내가 그녀를 죽이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대응이었을 뿐이다.

그녀가 나를 쫓지 않았다면 난 엘리시아를 그대로 내버려 뒀겠지.


"그런가. 그것 참··· 관대한 조치로군."

"그러나 이젠 그녀에게 관여를 안 할 수 없어. 자네 딸은 이미 폭풍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엘리시아 폰 비텐베르크는 검성(劍星)이니까."

"······!"


백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내가 언급한 명칭이 단순한 별호가 아님을 안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거짓말···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별의 가호를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 남자만큼은 모를 수가 없기에.

그렇기에 믿지 못하는 그에게 증거를 내민다. 그것은 내 체내에 흡수되었던 렐릭이었다.


"렐릭···. 어째서 그게 자네 손에······."

"내가 이 시대의 계승자이기 때문이지."


백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눈앞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네, 백작. 몰아칠 폭풍우를 견디려면 좋은 방파제를 마련해야 해."

"무슨··· 의미이지?"

"우리의 해묵은 원한은 잠시 접어두고 미래를 생각하자는 거야."


얀센 폰 비텐베르크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늦어도 올해를 넘기지 못하겠지.

전 회차에서는 그의 자연사를 생각지 못하고 찾아오는 게 늦었다. 아니, 애초에 제정신이 아닌 백작을 찾아와봤자 의미가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난 백작이 왜 정신이 나갔는지 안다.

그가 충성하던 조직이 백작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압데슬람의 납치극으로 생긴 아주 잠시간의 빈틈. 당장 오늘 밤에라도 그의 혈관에 약물을 주사하러 올 놈들의 하수인을 생각하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고? 무엇보다 난··· 자네의 원수야. 그들도 나를 이리 팽했는데, 자네라고 그러지 않을 거라 믿을 수 있나?"

"나는 그들과 달라. 난 자크 피에트로야."


악명 높은 대악당. 하지만 난 결코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악당으로서 가진 품위니까.


"자네 딸은 폭풍에 휘말릴 운명이야. 그것이 별과 연결된 이들의 숙명이니까. 하지만 자네 협조 여하에 따라 나는 내가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킬 걸세."

"······그거면 됐네."


백작은 내 구두뿐인 약속을 믿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제 대가를 받아낼 차례다.


"이름을 말해."

"이름?"


백작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난 자네가 '43번 마을'을 말할 거라 생각했어. 자네 고향 말일세."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자네가 헤까닥 중인 12년 동안 난 나의 왕국을 만들었네."


무한한 자원과 인맥, 조직력으로 구성된 범죄계의 왕국을. 무엇보다 미래의 정보가 있다.


"하지만 뒷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더군. 중요한 '이름들'을 파악하지 못했어."


미래는 격동의 시기였다.

제국이 무너졌고, 무너진 방파제에서는 셀 수 없는 호우가 터져 나왔다.


그 과정에서 갈아치워진 '이름들'은 또 몇 명인가. 10년 후와 현재의 정보격차는 클 수밖에 없다.


"나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니야. 결국 나도 명령받는 하수인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한 사람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지."


백작은 펜을 들어 쪽지 조각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가 적은 이름. 백작을 하수인처럼 부리고 내가 살던 마을을 불태우라 지시한 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군."


그래, 그랬단 말이지. 역시 제국 고위층에 숨어 있었던 건가.

내가 이름을 확인하고 생각에 잠긴 사이 백작은 쪽지를 벽난로에 던졌다.


"그 외에도 자네에게 확인할 게 많아. 예를 들면··· D-문서라던지."


압데슬람이 백작이 출처를 알고 있을 거라 확신했던 그것 외에도 정신이 온전한 백작에게선 알아낼 게 많다.


백작과의 대화로 지새운 밤은 짧았다. 하지만 그 밀도는 충분할 정도로 짙었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도 되겠나?"

"말하게."

"자네는 그날··· '용(龍)'과 만났던 거지?"


백작의 마지막 물음. 나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 * * *


얀센 백작 납치극 사건 이후 요양원은 보호자인 엘리시아에게 거듭 사죄를 반복하며 경비를 강화하겠다 약속했다.


엘리시아는 민간 요양원이 경비를 강화한다 한들 압데슬람 같은 테러리스트를 막을 순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과를 정중히 받아들였다.


"후우······."


병원에 있는 동안 엘리시아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여러 검사를 위해 한동안 병문안도 못 한 탓이다.


무엇보다 자크 피에트로의 탈주로 수사국이 뒤집혀진 마당에 엘리시아가 홀로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아버지··· 들어가겠습니다."


요양사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그곳에는 흔들의자에 몸을 맡긴 백작이 있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왔느냐."


딸의 방문을 인지할 만큼 백작의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


"아버지······."


그것만으로 엘리시아는 지난 12년을 보상받은 듯했다.


"이제··· 괜찮으신 건가요?"

"그래, 그간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엘리시아는 울컥하는 자신을 억눌렀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가··· 어찌하면 좋을꼬.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


얀센 백작은 엘리시아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이 자신의 죄업으로 인한 듯 죄책감을 느꼈다.


세계에 마법을 계승하고, 별의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 각성한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다.


별의 파국을 가져올 흉성(凶星)의 등장.

사악의 도래에 맞서 별이 개입해 내려지는 것이 별의 가호.

엘리시아의 운명은 그러한 가혹한 싸움의 중심에 서도록 선택되고 말았다.


"아가. 앞으로 네겐··· 많은 시련과 고난이 올 것이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도망치는 길도 있어."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건가요?"

"너 스스로 보고 판단하거라. 자크 피에트로 옆에서. 보고, 판단하고 네 의지로 선택하거라."


피에트로? 어째서 그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아버지는 피에트로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었나? 엘리시아는 혼란스러웠으나 얀센 백작은 말없이 엘리시아의 검을 들었다.


"이 검은 우리 가문에 내려져 오는 보검이다. 그것 아느냐? 시조께서 '검성(劍星)'이라 불린 것을."


검성 비텐베르크. 제국의 건국신화에서 등장하는, 대마법사와 함께 사악한 용을 벤 위대한 검사.

마검이 양산되는 현시대에도 버젓이 제국 최고의 보검으로 손꼽히는 비텐베르크의 검.


"별의 가호를 받았던 시조께선 이 검에 가문의 진정한 힘을 숨기셨다. 내가··· 그토록 추악한 짓을 통해서라도 가문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 검만큼은 더럽힐 수 없었다."

"아버지, 그게 무슨······."

"역대 가주들의 힘을 담은 이 검이 너를 지켜줄 거다."


엘리시아는 가문의 보검을 든 백작의 행동이 두려워졌다. 그것이 마치 작별을 고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얀센 백작은 더이상 말로 설명하기보다 딸을 위해 필요한 것을 남기기로 했다.

곧 그에게서 막대한 마력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소드 마스터의 진기였다.


"아버지··· 아버지!"


엘리시아는 다급히 이를 막으려 했으나 곧 검이 발산하는 마력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환한 빛이 방안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건 자신을 향해 환히 웃는 아버지였다.


"미안하다, 아가. 네게 짐만 남기는 아비라서."


빛이 사그라들고 엘리시아는 고개를 숙인 아버지를 껴안았다. 옅어져 가는 온기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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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5

  • 작성자
    Lv.44 루나이츠
    작성일
    23.05.26 18:11
    No. 31

    한방에 쭉봤는데 약간그 미드의 블랙리스트였던가 그삘이 나네요 거기선 딸과 아부지였지만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0 極限光
    작성일
    23.05.26 18:26
    No. 32
  • 작성자
    Lv.99 적검
    작성일
    23.05.26 20:15
    No. 33

    블랙리스트는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지만 너무 긴 시즌으로 인한 고구마까지는 재현하시지 않기를 ㅜ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원투쓰리..
    작성일
    23.05.29 14:56
    No. 34

    잘보고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찬탄
    작성일
    23.06.01 21:56
    No. 35

    뭐 이렇게 될건 알았지만 새삼 50퍼 이상의 책임이 있다기엔...
    원인제공자는 책임이 없다는건지
    예를들어 유럽이 아프리카를 노예화시켜서 분개한 초인이 유럽을 멸망시키면 원래 있었어야할 과학기술의 진보를 저해한 책임이 초인에게 가는건가? 초인을 분개시킨 악행을 저지른 유럽은 책임이 없고?
    이런류를 볼때마다 참...
    뭐 장르적인 허용이라 이해는 하지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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