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청혼 그리고 결혼식

채소 요리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온 소아연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다 듣고 있었겠구나.”
“···.”
소아연이 올 때를 기다려 일부러 연습하는 것처럼 고백했다.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제일 나은 방법인 것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소아연이 기어코 눈물을 터트렸다.
“···평생 함께할게요.”
그동안 혼자서 티도 안 내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한동안 그녀를 달래느라 꽤 고생했다.
“아까 왜 울었어?”
“그냥 눈물이 나왔어요. 헤헤!”
소아연은 지난 과거를 떠올렸다.
···부모를 잃고, 어린 나이에 쌍둥이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도 지나가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앞만 보면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게 되다니···.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고 바라던 대로 꿈이 이루어졌다.
기뻤다.
너무나도 기뻐서 자꾸 눈물이 났다.
‘···이래도 되는 건가?’
이 행복이 정말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늘 불행과 함께한 삶이었기에.
‘어험! 이제야 눈물을 그쳤군.’
평호영도 기분이 묘하면서 이상했다.
소아연을 화전민 마을에 데려다주고 마차로 돌아오면서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전쟁터에서 눈먼 화살에 죽거나 늙어 죽을 때까지 혼자일 줄 알았는데, 나도 장가를 가긴 가는구나!”
* * *
복건성 삼양(三陽)현.
번화가 구석, 말린 해산물이나 생선을 파는 건어물(乾魚物) 가게가 영업하고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도 없고, 오고 가는 사람도 없이 파리만 날리고 있는 그때,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왔다.
“괜찮은 건어물을 사고 싶은데, 좀 볼 수 있소?”
“마침 괜찮은 물건이 나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점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손님을 가게 안으로 안내했다.
드르륵!
가게 안쪽, 꽉 막힌 벽이 열리더니 비밀 장소인 암실(暗室)로 손님이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손님을 안내한 점원이 어느새 가게 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더니 경계 어린 시선으로 다시금 주변을 빠르게 확인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파리가 많아? 그나저나 큰일이네. 이렇게 장사가 안돼서야···.”
* * *
흑살문, 임시본거지.
십 년 사이, 중원에서 암살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살수 단체.
언제, 누가 세웠는지도 모르고, 그들의 인원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그 누구도 모른다.
철저하게 신비에 가려진 비밀 문파, 흑살문.
접선 장소도, 그들의 본거지도 수시로 바뀌었다.
“야차님! 이번 의뢰는 거절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평범한 손님으로 가장해 암실로 들어온 남자는 어느새 분위기가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탁자를 마주 보고 앉아있는,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의 규칙에 어긋난 것도 없다면서?”
“그렇긴 합니다만, 의뢰인의 가지고 온 자료가 너무 부족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흑살문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규칙을 가지고, 살수의 도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오로지 무림인을 대상으로 한 의뢰만 받는다. 대상이 무공을 익혔을 지라도, 어린아이라면 의뢰를 받지 않는다.]
[초절정(超絕頂) 이상의 고수는 거금의 의뢰비를 준다 해도 의뢰를 받지 않는다.]
[자체 조사 중 표적이 의인(義人)이라고 판단했을 때, 의뢰를 철회한다.]
마지막 규칙의 의인이라는 기준이 모호하긴 하지만, 지금까지 암살한 사람 중에 의인은 없었다.
대부분 악인이나 악랄한 자들이었다.
그 외에도 규칙이 몇 개 더 있긴 했다.
“의뢰인을 위협하고, 겁박하고 있다는 것도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흑살문 문주 야차가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표적의 무공도 절정 수준이라고 정확하게 증명된 것도 아닙니다.”
“의뢰인이 정파 문파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강서성에서 겉으로 평판이 그리 나쁘지는 않으나, 속은 사파보다 더 음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의뢰는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신중이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흑살문 문주 야차가 말없이 고민에 잠기더니 바로 결론을 내렸다.
“3호, 규칙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의뢰를 받는다. 단, 의뢰인에게도 조건을 걸도록 하지. 의뢰인이 보낸 자료가 하나라도 틀리면, 의뢰비를 반납(半納)하고, 그 즉시 의뢰를 즉각 철회한다고 전해. 또한, 의뢰인이 보내온 자료가 부족하니 본문 자체적으로 표적을 따로 조사한다. 표적의 과거 행적, 동선, 행동, 취미, 취향까지 전부다.”
“살명(殺命)!”
흑살문에서 살수로 유일하게 천(天) 급의 경지에 오른 야차.
그가 내린 결정에 흑살문 3호는 군말 없이 따랐다.
3호가 물러나자, 비밀 장소에 혼자 남은 야차가 의뢰인이 보낸 자료를 다시 훑어봤다.
[평호영]
[20대 초반] [무공 절정]
등등.
그밖에 암살에 전혀 도움 될 것 없는 쓸데없는 내용이 다였다.
“···고향도 모르고, 지인도 없고.”
백 번에 가까운 암살 의뢰를 성공한 야차도 이렇게 특이한 경우의 의뢰는 처음이었다.
“은거기인(隱居奇人)이라 하기엔, 나이도 너무 젊고.”
어쨌든 의뢰인이 흑살문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암살 의뢰는 원래 없었던 일로 돌아간다.
“음! 내 결정에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야차는 작은 살수문파의 문주로서, 자신의 결정에 따라 흑살문의 운명이 갈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 *
추운 겨울도 지나, 날이 서서히 풀리며 봄이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용천 마을 근처, 새 장원을 건축하는 현장에는 인부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더구나 금화상단에서 소개해준 대목수도 며칠 전에 합류해 작업 현장을 나 대신 총 관리하고 있었다.
“중원에서 명성을 날린 대목수라서 그런가? 내가 할 때보다 작업 속도가 확실히 빠르군.”
작업 능률도 높을 뿐만 아니라 대목수가 데려온 목수들도 중소도시에 있는 대목수들에게 지지 않을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홍 목수! 자네가 연무장의 바닥재를 책임지고 맡게.”
“장 목수! 숙소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이 목수! 창고 부지는 설계도보다 더 확장했으면 좋겠어.”
작업 현장을 둘러보면서 평호영은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금화상단에서 제대로 된 대목수를 데려왔군.’
마침, 명(明) 대목수가 목수들에게 지시를 끝낸 뒤, 내가 직접 작성한 장원의 설계도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설계도에 뭐 문제라도 있수?”
칠십이 넘어서 그런지, 백발 머리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명 대목수가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아니네. 혹시 이 설계도, 자네가 작성한 건가?”
“그렇수.”
“자네, 이런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배웠나?”
“그냥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곁눈질로 배웠수다.”
감탄 섞인 표정으로 명 대목수가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허허허! 내가 자네 나이 때는 감히 흑연에 손 댈 생각도 못 했는데··· 자네, 정말 대단하군. 혹시, 내 밑에서 목수로 일해 볼 생각 없는가? 내가 제대로 키워주겠네.”
과한 칭찬이 어쩐지 부담스럽긴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고.
“됐수. 이미 표국을 운영하기로 결정했으니.”
몇 번의 거절 끝에 명 대목수가 포기했는지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작업할 때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하슈!”
“워낙 작업 환경이 좋아 딱히 필요한 것은 없지만··· 알겠네.”
거기에 있다간 명 대목수한테 계속 붙잡혀있을까 봐, 서둘러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거참! 노인네가 끈질기네.”
그때, 나 대신 회계나 잡다한 업무를 모두 맡은 마 촌장이 나를 보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평 대인!”
며칠 사이, 많은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살이 좀 빠진 듯했다.
“무슨 일이오?”
“다름이 아니라, 곧 봄이라 저를 포함해 화전민 마을 사람들 모두 올해 농사를 준비해야 할 듯합니다. 더불어, 평 대인께서 저희에게 맡기신 땅도 개간해야 해서, 당분간은 작업 현장에 못 올 것 같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마 촌장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장원 건설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도맡았는데···.
까딱하다간 그 골치 아픈 모든 일을 내가 떠맡기게 생겼다.
“어험! 몇 가지 좀 물어봅시다.”
“네, 평 대인!”
“설마, 수당이 적어서 삐진 거요?”
마 촌장이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닙니다.”
하긴, 내가 그동안 마 촌장을 너무 공짜로 부려먹긴 했다.
사람을 잘 다루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줬어야 했는데···.
요즘 하도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워낙 마 촌장이 일을 잘하기도 했고 앞으로 표국이나 장원을 운영하려면 이런 문서나 회계를 담당하는 사람이 꼭 필요했다.
“마 촌장! 올해 농사를 준비하려면, 마 촌장이 종일 마을 사람들과 같이 일해야 하는 거요?”
“그 또한 아닙니다. 농번기(農繁期)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기라, 마을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일을 분배해 무슨 일부터 할지 정하는 게 촌장의 할 일이죠.”
“별거 아니구먼. 뭐, 그런 일이라면 여기서 지시해도 되지 않소? 아니면 다른 사람을 촌장으로 세우든가?”
“하하! 그렇긴 하죠.”
“그럼, 됐네. 그냥 까놓고 얘기하겠소. 내 일 좀 도와주쇼. 마 촌장도 이 일이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 내가 급료는 넉넉하게 챙겨드리겠소.”
마 촌장이 다급히 손을 저었다.
“평 대인께서 저희에게 베푸신 게 얼마나 많은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그리고 지금 주신 수당만으로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아부인지 진심인지 모르지만, 마 촌장의 대답이 듣기 참 좋았다.
“수당은 수당이고, 급료는 급료지. 받으시오. 지금까지 일한 급료요.”
“평, 평 대인! 제가 일을 하더라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속도 모르고, 자꾸만 거절하는 마 촌장이 조금 답답했다.
돈주머니를 마 촌장한테 기어코 손에 쥐여 주고, 뒤돌아섰다.
“군말하지 말고, 받으쇼! 그게 서로 편하니까.”
“평 대인! 평 대인!”
마 촌장을 뒤로 한 채 손을 흔들며 다른 작업장으로 향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일꾼들이 그늘이 있는 임시 휴식처에서 간단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힘드시죠? 이것 드시고 일하세요.”
“아닙니다. 부인! 내가 평생 작업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음식이나 간식을 많이 챙겨주는 작업장은 못 봤습니다.”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네, 부인!”
나와 소아연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퍼지더니 일꾼들이 이제는 그녀를 함부로 하대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리고 그녀의 평판은 전보다 더 좋아졌다.
일꾼들은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에 반해 소아연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늘 항상 웃고 다녀서 만나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어찌 이리 예쁘고, 착할까?”
“평 대인은 정말 좋겠어. 저런 참한 색시한테 장가가고.”
알게 모르게 뒤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갔다.
‘···이러니 아연이에게 더 미안하네.’
표국에 관련된 건물을 먼저 짓고 있어서, 당분간 신혼살림 집 없이 마차에서 살기로 했다.
물론, 그녀에게 양해를 구했고, 소아연도 흔쾌히 동의해줬다.
‘···가가! 사실 마차 안에서 자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긴 했어요. 가가랑 마차 안에서 단둘이라, 정말 기대돼요.’
소아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누구 말대로 장가 잘 갔어.”
* * *
따뜻한 봄날.
나와 소아연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꽤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화전민 마을 사람들, 인연이 있는 용천 마을 사람들, 일꾼들 등등.
“결혼 축하합니다. 평 대인!”
“자네! 내 딸은 안 데려가고. 정말 이러긴가? 허허! 어쨌든 축하하네!”
“돈도 그렇게 많으면서, 우리 주점에서 숙수로 왜 일했나? 나를 갖고 장난친 것도 아니고. 축하하네. 축의금은 넉넉하게 챙겼네.”
“으으으앙! 평 아저씨! 우리 마을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면서 아연 언니랑 왜 결···혼해요? 내가 조금만 더 크면 평 아저씨랑 결혼할라고 했는데!”
“결혼 축하하네! 장가갔으니 이젠 야산에서 약초 캘 일도 없겠구먼.”
마 촌장, 늙은 노부부, 만단주점 점주, 꼬맹이 미화, 약방 어르신 등등
일일이 하객들의 축하와 인사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분명 조촐하게 한다고 했는데··· 어험!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지?’
그때, 하객들 사이에서 코가 떨어지도록 맡았던 진한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다. 전장에서 맡았던 냄새였다.
‘저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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