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6일 동안 개최되었던 축제가 끝났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있었지만, 축제는 성공리에 끝났다.
축제의 여운이 맴돌았으나 사람들은 다음 축제를 기대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처음 만났을 당시의 불칸과 달리 열정이 넘치는 불칸은 장비의 제작보다 축제를 즐겼고.
축제가 끝나고 나서야 다른 한 명의 장인과 함께 현무의 장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재료를 다듬는 시간이었지.”
“그렇군요.”
“그냥 스승님이 즐기고 싶으셨던 거잖습니까!”
“이놈이?!”
“이런 놈이 내 라이벌이라는 것이 인생의 수치다.”
“아, 자네도 즐겼지 않은가!”
“딱 이틀만 그랬지. 자네처럼 6일 동안 술 퍼먹고 놀지는 않았어!!”
“윽!!”
약간의 헤프닝이 있었지만, 새로운 장비의 제작에 들어갔고.
‘만련정골’을 사용한 가면의 제작은 현무가 상승한 제작 기술에 익숙해지는 대로 시작하기로 했다.
‘불칸님의 말에 따르면 내가 주고 두 사람이 보조로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장비가 나올 확률이 높다고 했지.’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정오가 살짝 넘어간 시간까지는 대장간에 출근해 망치를 두드리거나.
두 장인과 임철완이 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익숙해지는 것에 힘을 썼다.
그리고 강기령에게 한 말을 번복하는 일이 되었지만, 오후에는 아카데미로 향했다.
테오도르의 선물인 아카데미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명문과 거대길드 등의 생도가 빠져나가면서 아카데미가 보관 중이던 그들과 연관된 지식이 유실되었으나.
명문과 거대길드 등의 지식이 아니어도 현무에겐 남은 지식만으로도 충분했다.
축제가 끝난 ‘테라’에서 오전에는 망치를, 오후에는 지식을 쌓으며 일상을 보냈다.
가끔 흑발의 소녀, 모리안이 찾아왔지만 딱히 말을 걸지는 않았기에.
현무도 큰 관심을 주지 않고 해야할 일을 했으며.
저녁에는 프람과 린드, 늦은 밤에는 테오도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하루가 지날수록 바다는 점차 얌전해졌고.
노틸러스 호를 비롯해 묶여있던 비정기선들이 배를 점검하기 시작하며.
‘테라’에서, 평화로운 나날에서 벗어날 때가 찾아왔다.
노틸러스 호 위에서 ‘테라’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오라클’의 일이 있었지만, 약 3개월 동안 머물렀던 ‘테라’는 평화로웠다.
튜토리얼의 기억이 없었다면 쭉 살고,
‘...기억이 없었다면 진작 죽었을 거다. 그리고 기억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바꿀 수 있었어.’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버리고 떠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불칸과 ‘만련정골’의 이상함을 눈치챈 또 한 명의 장인의 실력은 대단했다.
고급 재료가 아낌없이 사용된 것도 있지만, 겨우 5일 만에 현무가 맡겨두었던 모든 장비의 성능이 완전히 달라졌고.
그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작 기술의 숙련도가 가파르게 상승했으니까.
가면의 제작도 마찬가지.
두 장인 없이 현무가 혼자서 만들려고 했다면 형태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아주 긴 시간을 들여야 했을 거다.
그렇게 대장간에서 개인적인 볼일이 끝난 후에는 선물을 만들었다.
불칸의 제안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능력자인 자네에겐 별로 쓸모가 없겠지만, 그래도 익숙해지면 나중에 벌어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다네.’
‘상급 제작’에서 상승한 기술을 이르는 말이었다.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으나 ‘장인 구역’이라는 환경에서 배울 일이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를 생각하면 이쪽이 감사할 일이기에.
불칸의 말처럼 기술에 더 익숙해지기 위해 개인적인 볼일이 끝났음에도 대장간으로 매일 향했고 겸사겸사 아는 이들에게 줄 선물을 만들었다.
떠나기 전날까지 말이다.
‘잘 써주면 좋겠군.’
선물이 잘 쓰이길 바라며 이번에는 프람과 테오도르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프람은 아니었지. 대신....’
혼자 찾아온 프람과 대화를 하던 날.
테오도르와 이야기를 나누다 떠오른 가설에 따라 ‘꿈’에 대해 살짝 떠보았다.
‘아니요. 같은 내용의 악몽을 연속으로 꾼 적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보다는....’
‘?’
‘...현무님이 남긴 조언대로 강해지기 위해 감각을 단련하고 ‘초감각’을 얻은 이후부터입니다만.’
‘....’
‘저번에도 말했듯이 감각이 속삭이더군요. 어떤 흐름이 바뀌었음을....’
‘초감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튜토리얼의 프람, 현무가 아는 유일한 보유자 ‘감각살해자 페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 뿐.
‘‘초감각’에 익숙해지고 단련을 계속하면서 그 흐름이 뭔지 알고자 노력했지만, 알아낸 것은 그 흐름이 정말 엄청나게 거대하다는 것과....’
‘....’
‘당신이 남긴 말처럼 지금의 행복을 잃기 싫다면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
단단한 각오가 느껴지는 말이었고.
프람은 꿈이 아닌 ‘초감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튜토리얼의 일을 느끼고 있었다.
프람과의 대화를 밤에 찾아온 테오도르에게 이야기했고,
‘흐음, 가설 중 하나가 틀렸군.’
‘네.’
‘사례가 겨우 3개 뿐이니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야. .... 그래도 제법 확신을 가진 가설이었는데, 아쉽군.’
‘저는 그다지....’
테오도르가 확신을 가진 가설이란 이런 것이었다.
- 튜토리얼에서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현무와 연관된 존재일 것.
‘그레이맨’, ‘세례자’, 테오도르 자신까지.
짧든 길든 현무와 인연이 닿은 존재라는 부분에서 출발한 가설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가설에서 ‘감각살해자 페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
‘다른 가설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몇몇 존재에게만 ‘꿈’이라는 형태로 튜토리얼의 일을 보여준다는 건데....’
‘큰 영향력을 남긴 존재는 맞는 것 같습니다만....’
‘자네의 의문은 ‘그레이맨’이나 ‘세례자’처럼 움직임이 없냐는 거지?’
조심스러운 현무의 말에 테오도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를 보게.’
‘....’
‘나도 악몽을 꾸었지만 ‘테라’에서 움직이지 않았지.’
‘...그렇죠.’
‘왜 움직이지 않았냐고? 움직일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회색분탕자식이랑 아이를 빼앗긴 부모는 경우가 달라. 하지만 나를 포함해 세계에 큰 영향력을 남길 정도로 강한 능력을 보유했으나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자들. 그들이 꿈을, 악몽을 보았다면!’
‘....’
‘그때도 지금도 영웅이라 불리는 녀석들과 특히 자네가 바꾼, 꿈과는 다른 현실을 보면서 더 크게 실감했겠지. 지금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괜한 움직임으로 지금의 흐름을 방해하면 일어날 비극을.’
‘하지만 그건 너무....’
‘낙관적이지, 수동적인 태도고 그러나 꼭 나쁜 것만도 아닐세. .... 물론 가설일 뿐이야, 빌런이나 사이비 중에 세상에 큰 영향력을 가진 자들이 더 많으니까.’
‘....’
‘그들이야 꿈을 꾸고도 개꿈이라 치부하며 주변에 화풀이 할 인간들이긴 하지만....’
꿈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했다.
사례가 겨우 3개 뿐인 상황에서 둘이서 떠들어봤자 명확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후 얼마남지 않은 기간 동안에는 아카데미 도서관에서 얻은 지식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현무가 획득한 ‘??마력운용’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실험했다.
명문과 거대길드의 후계자이던 생도들이 빠져나가면서 도서관에 남은 지식 중 ‘비전’이라 할 만한 것은 남지 않았지만.
테오도르는 ‘교수’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존재다.
‘네크로맨시’로 직접 사용하지는 못해도 그가 가진 방대하고 깊은 지식은 현무가 흉내만 내던 ‘비전’과 ‘비기’에 대한 것도 있었다.
오늘 새벽까지 ‘??마력운용’으로 테오도르를 통해 보완된 ‘비전’들을 몸에 새겼다.
‘마지막에 선물을 주셨지.’
오늘에서야 조정이 끝났다며 준 선물은,
‘그걸 받을 줄은 몰랐는데....’
정신력을 큰 폭으로 올려주는 ‘비약’이었다.
‘패도’처럼 완전히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네크로맨서들의 정점인 테오도르가 직접 제조한 비약이다.
튜토리얼에서 사령의 땅을 함께 나아가던 테오도르는 한가지 약속을 했다.
일본을 정화할 때까지 자신을 보호해 준다면 현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물건을 주겠다고.
이번에 받은 ‘비약’과 비교하면 들어간 재료도, 제작된 환경도 달라 큰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테오도르의 말과 달리 그것만으로도 현무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비약, ‘영혼의 평화’였다.
[ 아이템 : 영혼의 평화
-1. 정신력을 폭발적으로 상승시켜주는 비약(祕藥)이다. (기본 +5%)
-2. 네크로맨서만의 비전으로 만들어진 비약이며 본래는 스승된 자가 아직 미숙한 제자를 위해 준비하던 것이다.
-3. 경지가 높은 네크로맨서가 만든 경우 누구나 탐낼 만큼의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네크로맨서가 아닌 자에게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추가 +5%, 부작용 : 일시적인 감각폭주)
-4. 하지만 이 비약의 경우 정점에 이른 네크로맨서가 많은 재료와 세밀한 조정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더욱 극대화하였다. (추가 +10%, 부작용기간 1일로 단축)
-5.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비약으로 당사자가 아닌 이가 복용 시 즉시 사망하여 망자가 된다. (현무 전용 비약) ]
뭔 짓을 해도 획득되지 않는 ‘감정’으로 인해 제작한 테오도르에게 직접 들었지만,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은 효과였다.
‘비약을 마시는 것만으로 정신력이 20%나 증가하다니.’
물론 적용되는 것은 순수한 정신력뿐이나 그것만으로도 깎이기 전에 가깝게 정신력이 상승했다.
바로 복용했기에 현재 현무의 감각은 부작용으로 폭주 상태였지만.
‘이 정도면 버틸만해.’
‘만독지’에 들어가지 전보다 성장하고 크게 변한 감각이 폭주한 상태이긴 했으나 적당히 버틸만했다.
날 선 감각을 다스리며 배웅하러 온 이들에게 인사와 함께 준비한 선물을 전하고 현무는 노틸러스 호에 탔다.
폭주한 감각에 조금 익숙해질 무렵.
배의 선미로 선장이 찾아와 말을 걸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던데, 그냥 정착하지 그랬나?”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많아서요.”
“그런가.... 뭐, 나나 우리 선원들은 좋지!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고!”
“네.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대답한 현무는 선장이 떠나고도 선미에서 ‘테라’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
현무가 떠난 ‘테라’는 크게 2가지가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월드 아카데미.
명문과 거대길드의 후계자가 아니라면 사전에 재능을 확인하고.
여러 시험을 통해 생도를 받던 아카데미가 문을 활짝 열었다.
일부 사람들이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월드 아카데미가 처음 설립된 의미를 이제야말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로 인재를 길러내는 장소로!”
아카데미 총관이 앞장서서 소리를 높였고 뒤에서는 ‘교수’가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잠시 관망하던 총본부마저 동의하면서 우선 시범적으로 ‘테라’의 모든 아이가 생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겼고.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것들도 크게 다양화하면서 장인 구역에만 머무는 장인들도 대거 끌어들였다.
비용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총관이 도대체 어디서 난 것인지 알 수 없는 막대한 자금으로 많은 것을 밀어붙이자.
비싼 비용 때문에 아카데미에 보내고 싶어도 걱정하던 부모들은 너도나도 아이들을 아카데미로 보냈다.
다음으로 변한 것은 총본부였다.
아카데미의 변화가 아직 ‘테라’ 내부에 한정한 변화라면.
총본부의 변화는 세상 전체에 약간의 소란을 불러일으켰으니,
- 더는 세계정부 총본부로 있지 않겠다!
바로 갑작스러운 독립선언이었다.
총본부의 독립선언은 의외로 많은 곳에서 지지를 받았다.
‘한반도’와 ‘미다스’가 가장 먼저 지지를 선언했고 다음으로 ‘시계탑’.
그다음으로 ‘바티칸’과 ‘필중’, 마지막으로 ‘진천회’가 지지하면서 소란이 커졌으나.
‘패도’를 비롯한 지지한 쪽의 수장들이,
- 눈앞의 빌런과 사이비도 어쩌지 못하면서, 독립을 반대하면 어쩔 건데? 자기들 앞가림이나 제대로 해라.
라는 뉘앙스로 말하자 조용해졌고 독립을 선언한 총본부에서 당황했을 정도로 쉽게 그들의 독립이 받아들여졌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총본부의 본부장 대리에서 독립하며 임시로 ‘테라 가드’의 수장이 된 강기령이,
‘좀 더 빨리 질러 볼 걸....’
이라고 중얼거렸다고 하지만 소문일 뿐이었다.
큰 변화가 2개 뿐이라면 작은 변화는 아주 많았다.
‘테라’에 살던 이들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움직이였지만 웃음을 잃지는 않았다.
본래 세계정부 총본부와 월드 아카데미 외에는 거주가 허락되지 않은 ‘테라’였다.
외부인에게 걸린 제약만큼 거주민들에게도 여러 제약이 있었으나, 그 제약이 월드 아카데미의 개방과 세계정부 총본부의 독립으로 사라졌다.
‘테라’의 사람들은 변한 일상이 약간 버겁기는 해도 그보다 더 큰 해방감을 느꼈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째서 ‘테라’에 정착했는지를 잊지 않았으니까.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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